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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돌집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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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대마두의 제자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연재 주기
이돌집
작품등록일 :
2022.05.11 13:37
최근연재일 :
2022.07.15 14:42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35,947
추천수 :
653
글자수 :
229,726

작성
22.06.17 13:53
조회
617
추천
9
글자
9쪽

각성의 전조 (3)

DUMMY

나는 점점 가라앉았다. 더 낮고, 더 깊숙이.


더 이상 가라앉을 곳조차 없어졌을 때.


세상은 비로소 완전히 어둡고 잠잠해졌다.


쏟아지던 빗소리마저 잦아들고, 바람 한 점조차 불지 않은 고요한 세상.


그 안에서 나는 내 안에 몰아치는 감정들과 마주했다.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쳐 박은채. 나는 울부짖었다.


나를 위해 생을 포기한 사부를 위해 목놓아 울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스스로의 나약함에 구슬피 울었다.


“흐흑···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살아온 모든 인생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머릿속 가득 메운 부정적 감정들은, 내게 죽음을 종용하고 있었다.


미련을 버리라고. 인생은 고통뿐이며 너는 아무것도 얻지도 이루지도 못할 거라고.


나는 그렇게 내 생에 처음으로, 무언가를 포기할 용기가 생겼다.


스스로 생을 포기할 용기.


“······.”


그제야 나는 울음을 멈출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그리 하셨듯, 이번에는 내가 그리 할 차례였다. 보잘것없는 나의 생으로 이 모든 것에 대한 속죄를 빌어야 할 차례였다.


비로소 질긴 욕심과 미련들을 끊어냈을 때, 한 줄기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왔다.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따뜻한 바람.


첫여름의 훈풍(薰風)처럼, 풀과 흙내음이 물씬 나는 바람이었다.


그 미약하고도 따스한 바람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사··· 사부님······?”


눈처럼 하얀 무복에, 새하얗게 세어버린 머리를 정갈히 묶은 사부님이 검무(劍舞)를 추고 있었다.


“······.”


나는 말없이 사부를 바라보았다.


여름날의 나비처럼, 사부의 걸음은 부드럽고 가벼웠다. 부드럽게 디딘 걸음은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았다.


팔과 한 몸인 것처럼 움직이는 검은 떨어지는 꽃잎을 받으려는 듯 느리고 차분했다.


사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짙은 흙 내음을 품은 따뜻한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와 코끝을 간질였다.


만물을 포용하는 듯한 따스한 바람이었다.


나는 넋을 잃은 채 사부의 검무를 바라보았다. 사부님의 검무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는 예전에 사부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사부에게 검술을 직접 배우기도 했었다.


사부의 검술은 매우 실용적이고 군더더기가 적은 움직임들로 구성되어있었다. 독고세가의 독고구검을 변형시킨 검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사부가 펼치는 검법은, 사부가 생전 사용하던 검법과는 완전히 달랐다.


오히려 불필요해 보이는 동작들을 모아 만들어낸 아름다운 춤처럼 보였다.


검무의 아름다움에 취해 미처 보지 않았던 것들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검로와 보법, 그리고 호흡까지.


검법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사부가 내게 가르친 검법과 그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사부님···?"


나는 조심스레 눈앞의 사부를 불렀다. 도대체 지금의 검무는 무엇인지, 내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사부는 검을 멈추지도, 내게 대답해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빠르게 검무를 출 뿐이었다.


사부의 움직임이 빨라지자, 미약하게 불어오던 훈풍이 조금씩 싸늘하게 식는 것이 느껴졌다.


꽃을 찾아 노닐던 나비 같던 움직임이 서서히 거세고 무겁게 변했다.


사부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무거운 울림과 함께 흙먼지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쿠쿵!


디딤발에서 시작한 우레와도 같은 소리가 하늘에까지 닿았다.


떨어지는 꽃잎을 받아 낼 듯 부드럽고 느리던 검이 점점 사납고 강렬한 기세를 품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을 타고 나온 차가운 바람이, 눈보라처럼 뺨을 찢을 듯 몰아쳤다.


한겨울의 삭풍(朔風)이었다.


사부의 검이 더욱 빨라지며 맹렬해졌다. 일도양단의 기세를 품은 검격이 수십, 수백을 넘어 사방을 향해 비산했다.


번쩍이는 섬광들과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굉음이 지척에서 연이어 터져 나왔다.


더욱 거세진 바람에 눈을 뜨기조차 힘들어졌다. 숨이 막힐 정도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턱이 덜덜 떨려왔다.


"사, 사부님!"


나는 다시금 사부를 불렀다. 당장 저 검무를 멈춰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저 검무에 휘말려 죽기 일보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눈보라 같은 바람에 부딪혀 부서지고 말았다.


사부의 검 끝에서 쏟아져나온 수백 수천 검강들이 의지를 가진 것처럼 솟구쳐 올랐다. 하늘을 가득 메운 검강들이 소용돌이치며 다시 땅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거대한 검강의 폭풍이었다.


"안돼!!"


콰콰콰쾅!


거대한 땅이 숨 쉬듯 들썩이며 찢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단단한 바위가 모래로 변해 흩어졌고, 우레와 같은 굉음이 귀를 먹먹하게 했다.


천재지변(天災地變). 그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검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생을 포기하려 했거늘, 나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저 비현실적인 검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죽음, 그 이상의 공포.


나는 안간힘을 다해 땅바닥에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그리하지 않으면 바람에 휩쓸려 날아갈 것만 같았다.


실제로 내 몸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공중에 떴다가 떨어지길 반복하는 중이었다.


어느덧 검강의 폭풍이 잦아들고,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들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


나는 멍하니 폭풍의 중심을 바라봤다.


투둑! 투두둑!


비 오듯 모래 알갱이들이 쏟아졌다.


누런 흙먼지 속에서, 쉴새 없이 움직이는 하얀색이 보였다.


검무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저 검무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하면서도, 저 검무가 끝에 도달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두려웠다. 저 검무의 끝에는, 그 어떤 것도 남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부님! 멈춰 주십시오!"

-······.


내 목소리가 닿은 것일까. 사부의 움직임이 서서히 느려지더니 어느 순간 뚝 멈춰버렸다.


흙먼지가 완전히 걷히고, 마침내 사부의 모습이 보였다.


그 거센 먼지와 바람속에서 한점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사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나는 그 모습에 넋을 놓고 사부를 바라봤다.


사부는 그런 나와 눈을 맞추다, 나를 향해 검을 내지르듯 뻗었다. 순식간에 터져 나온 섬광이 내 시야를 온통 밝게 물들였다.


"아아······."


나를 가두고 있던 깊은 어둠과 고요한 바다가 밝은 섬광에 쓸려나가며 부서졌다.


무채색의 세상이 색을 되찾고 있었다.


빛을 등진 사부는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 * *




번쩍!


나는 번쩍 눈을 떴다.


기세 좋게 눈을 뜨긴 했는데, 눈 부신 햇살이 눈을 찌르는 바람에 곧바로 인상을 찌푸려야만 했다.


"윽!"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린 채 하늘을 보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뭐지······?"


엄청난 일을 겪고 돌아왔는데, 해는 조금도 기울지 않았다.


잔뜩 찡그린 채 하늘을 올려 보다, 순간 태극혜검 비급의 글자들이 타고 오르던 팔이 생각났다.


나는 들고 있던 팔을 내려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보며 멀쩡한지 확인했다.


새까맣게 물들어있던 피부는 원래의 색을 되찾은 상태였다.


나는 손가락을 굽혀 주먹을 쥐어보기도, 손목을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하며 손이 잘 움직이는지 살폈다.


마치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 내 손과 팔은 멀쩡했다.


"······."


나는 멍하니 손을 내려봤다.


꿈을 꾼 것만 같았다. 잠이 덜 깬 것처럼 몽롱하고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아차!"


뒤늦게 태극혜검 비급이 생각났다.


나는 시선을 돌려 커다란 바위를 찾았다. 비급은 내 마지막 기억 그대로 바위 위에 고이 놓여있었다.


"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습관처럼 주위를 살폈다. 역시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지저귀며 날아다니는 새들의 노랫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천을 주워 몇 차례 털었다.


흙먼지가 묻은 천으로 비급을 감쌀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급하게 비급을 감싸려다 멈춰 섰다.


"······."


다시 손을 대었다가 똑같은 일을 당할지도 몰랐다. 조금 전 내가 겪은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같은 상황을 겪는 건 사양이었다.


차가운 바람에 맞았던 얼굴이 아직도 얼얼하게 느껴졌다.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경험이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비급에 손이 닿지 않게끔 조심스레 천을 감쌌다.


빈틈없이 비급을 꽁꽁 감싸 품속에 넣은 나는 조용히 조금 전의 일을 곱씹으며 산을 내려갔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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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사라진 마두와 비급 (2) 22.07.11 365 7 10쪽
45 사라진 마두와 비급 (1) 22.07.07 454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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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형문산 혈사 (2) 22.07.05 443 7 10쪽
42 형문산 혈사 (1) 22.07.04 462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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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낙룡봉 (5) 22.06.30 465 7 10쪽
39 낙룡봉 (4) 22.06.29 473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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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움직이는 무림 (3) +1 22.06.22 511 5 9쪽
33 움직이는 무림 (2) 22.06.21 511 7 12쪽
32 움직이는 무림 (1) 22.06.20 572 6 11쪽
» 각성의 전조 (3) 22.06.17 618 9 9쪽
30 각성의 전조 (2) 22.06.16 591 8 10쪽
29 각성의 전조 (1) 22.06.15 593 9 10쪽
28 기묘한 동행 (5) 22.06.14 501 8 10쪽
27 기묘한 동행 (4) 22.06.13 497 7 11쪽
26 기묘한 동행 (3) 22.06.10 527 10 10쪽
25 기묘한 동행 (2) 22.06.09 550 9 11쪽
24 기묘한 동행 (1) 22.06.08 613 11 10쪽
23 고요한 밤 (4) 22.06.07 641 12 12쪽
22 고요한 밤 (3) 22.06.06 648 1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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