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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준 님의 서재입니다.

날씨의 마도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복준
작품등록일 :
2022.08.15 20:49
최근연재일 :
2022.11.01 15:17
연재수 :
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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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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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11,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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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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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새로운 시작

DUMMY

중간중간 복도의 의자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노인들이 가끔씩 보일 뿐.


그녀가 이끄는 대로 정문에 다다랐을 땐.


조금은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정문의 시멘트 외벽을 타고 자라난 꽃을 피운 덩쿨.


대기석에서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따뜻하게 유리문 너머로 내리쬐는 햇살.


그리고 어디선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이들...'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듯한 생명의 소리.


내가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의도를 알아 챈 듯.


그녀 또한 그곳을 향해 휠체어의 방향을 돌렸다.


-덜컥.


지면과 조금은 차이 있는 시멘트 턱을 내려와 처음으로 나와본 바깥세상.


할말을 잃고 말았다.


분명 결계밖은 환경오염에 찌들어 황폐화된 곳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간이 살았던 옛 흔적 사이로 솟아난 푸른 초원이며.


손때가 타지 않은 정원이며.


마치 인간이 살지 않는 세상.


우릭 그토록 원했던 정령계에 온 것만 같았다.


동공이 확대되어 그 광경을 모두 담고 싶어 그저 바라보기만을 반복.


"기석씨?..."


쭈구려 앉아 정원을 보던 아이들 무리에서 갑자기 일어서 나를 보는 여성.


칠흑의 찰랑이는 긴 머리에.


도도한 눈.


그렇지만, 그런 차가움 속에서 나오는 온기같이 아름다운 미소.


차세연이었다.


'차세연...'


그녀는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고.


휠체어 위의 나를 꼭 끌어 않았다.


귀를 간지럽히는 흐느낌과 함께.


목을 타고 흐르는 따뜻하고 촉촉한 수분.


"드디어...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제가 그동안 얼마나... 얼마나... 기석씨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옆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는데..."


"미...안..."


"으으음~."


고개를 젓는 그녀.


"사과하지 마요. 기식씨 잘못이 아니잖아요. 기석씨는 기절한 저를 지키려고 대신 희생한 거니까."


그녀의 날카롭던 눈매도 어느새 풀썩 주저앉았고.


아름다운 얼굴엔 어느새 눈물이 흘러 햇빛과 함께 빛나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깨어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렇게 그녀와 눈물겨운 만남을 나눈 뒤.


그녀는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처음 이곳에 와서 모르는 사람임에도 친절하게 맞이해주는 주민들에게 상당히 충격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 또한 맞장구치며, 놀라 했다.


결계안은 모두 불안에 떨며, 살았기에.


자신의 생존에 몰입할 뿐.


정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내측 결계안은 호화에 찌들어 더욱 이기적이었다.


그러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감명받은 일을 말하였다.


풀냄새가 이런 것인지 처음 알았다니, 또 저렇게 큰 나무는 처음 봤다니.


등등 말이다.


그뒤에도 생전에 먹어보지 못했던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본 것과.


그저 자기 할 일을 하며 평범하게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들.


또 재산에 상관없이 수익의 40%는 세금으로 내며, 그렇게 모은 돈으로 노후를 보장해주는 제도.


이런 것들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저희 이대로 이곳에 살아야겠죠."


아마, 그럴 거다...


결계밖으로 나간 사람은 반역자나 마찬가지이니까.


"미안... 네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 내려버렸네..."


새로운 땅에 새로운 사람들.


그녀또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이 모든 일에 이질감을 느끼고 불안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의 말을 내뱉는 그녀.


"저를 위해서 그러셨던 거잖아요?. 만약 기석씨가 아니었다면, 전 이미 차도현의 손에 죽었거나 아님 수감실의 차가운 바닥에서 영양실조로 죽었을 거에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감사해요 기석씨."


그러곤 수줍은 듯 웃으며,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알록달록한 정원의 그녀.


구름이 지나간 후 태양이 다시금 그녀를 비췄고.


그날 난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본 것 같다.


"그런데. 아직은 궁금한 게 있어. 어째서 이성한은 나를 구해준 걸까?..."



그녀도 의문이라는 듯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요... 기석씨는 분명한 적인데 말이죠."


'적...'


난 그 단어에 흠칫했다.


왜냐면 난 이제 그들의 적이 아니다.


그 때 난 말했으니까.


레지스탕스 쪽으로 합류하겠다고.


"저기, 차세연. 이제 그들은 적이 아니아..."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사실 너랑 나를 살려주는 대신 내가 레지스탕스에 들어가겠다고 했어."


"그 말은 즉 슨 레지스탕스와 손을 잡았다는 말이죠?..."


숨을 삼키는 그녀.


"응... 충격적이지?..."


그래도 그녀는 다시 평정을 찾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 선택 외에는 없었던 거죠?..."


"응..."


"그렇다면 저도 받아들여야겠네요. 저희의 힘 밖의 일이니까."


어쩌면, 그녀에게는 이번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큰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때 그녀가 화낸 건, 내가 무책임하게 모든 걸 놓아버리려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은 그녀의 손으로 차재현을 무너트릴 수 있는 상황.


그녀에게는 기회다.


고개를 끄덕인 후 그녀는 각오를 다지듯 주먹을 쥐어 보였다.


"퇴원했구나."


차갑고 메말랐으며, 감정이란 건 전혀 실려있지 않은 목소리.


'이성한?!'


우리 둘의 시선은 곧장 뒤로 향했다.


검은 머리에 죽은 눈.


회색 제복.


빨간 넥타이.


여전히 차가운 기운의 이성한이었다.


"훈련은 일주일 뒤야. 몸 관리 잘해둬. 힘들 테니까."


"으응..."


"그리고 이건 자카리아에서 약초로 쓰이는 카슘이야. 물에 끓여 먹으면 뼈가 다시 굳는데 도움 될 거야."


"고마워..."


"그럼."


"잠시만요!"


발길을 돌려 자리를 뜨려던 이성한이 자신을 잡는 목소리에 다시 뒤로 돌았다.


"왜?"


"전 결계안에서 쭉 혁명군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만 들어서 당신을 그렇게 쉽게 믿을 수 없어요."


"굳이 조기석이 데려온 떨거지의 믿음은 필요하지 않아. 하지만 너 또한 조기석에게 중요한 존재겠지. 너가 나를 믿지 못하고 불안에 떤다면, 조기석 또한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전투에 돌입할 테니까. 그래, 좋아. 그러면은 어떻게 믿음을 심어주면 되?"


"네?"


의외의 받아치는 질문에 당황한 차세연.


"너가 바라는 답이 있을 거 아니야? 말해 봐."


"그. 그건..."


잠시 고민하는 그녀.


그러곤 대답했다.


"말해줘요. 어느 쪽이 정말로 정의죠?"


"정의?"


"네. 썩어빠진 정부 아래에서도 사람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었던 건 이의찬이라는 정의가 존재했기 때문이죠. 비록 정의가 꺾이고 절대군주제가 들어섰지만... 그러니 말해줘요. 어느 쪽이 정읜지."


절대 가볍게 말한 게 아니다.


그녀는 지금 정말로 이 대답에 모든 걸 걸고 있다.


향후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음... 정의가 있을까?"


"네?!"


"정의는 상대적인 것이야. 각자의 개인적인 입장에서 저의는 바뀌기기 마련이지. 과거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구축했을 때처럼. 그들에겐 미개한 인종들을 개화시킨다는 정의가 있었지만. 그 정의는 결국 원주민 입장에서는 학살과 수탈에 지나지 않았어."


"그건 당연히...!"


"지금 상황에 적용해 볼까? 결계안 사람들은 최근에 일어난 차재현의 반역으로 불안에 떨어 있을 거야. 하지만 인간의 무서운 적응력은 근 3년 사이에 그렇게 억압적이고 불공평한 제도에도 적응해 버렸지. 그런데, 만약 다시 혁명군이 쳐들어온다면 어떨까?"


"......"


"아마, 지금 현재를 지키려고 우리를 적대시하겠지. 왜냐면 혼란 속에서 겨우겨우 그들이 일궈낸 평화니까. 결국, 정의란 어디에도 없는 거야.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한 일이라 해도 그들 입장에서는 피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당신 말대로 정의도 없고 선도 없는 세상이라면.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건 뭐죠?"


"개인의 정의와 개인의 선이야. 절대로 평준화는 될 수 없지만. 인간이 정한 윤리와 도덕적인 면에서는 다수의 동의를 얻을 수 있지. 그래서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나 또한 개인의 정의와 선을 실현할 거야. 난 지금 이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에. 그럼 물어볼게 넌 나의 개인적 선과 정의를 동의해 줄 수 있어?"


동의라니...


저에게 동의를 구하는 건가요?


당신의 말은 이 잘못된  결계안의 세상을 다시 구축하겠다는 거죠?


"절대 독재나 계급 사회 같은 세상은 오지 않을 거야. 지금 너가 보고 있는 결계 밖의 세상처럼. 그냥 고요히 조용히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살아가는 거지. 새로운 시대에서."


그의 말대로 이곳 결계 밖은 그 어떠한 불평들의 기조마저 보이지 않는다.


마치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를 보는 것 같이.


만약 저와 기석씨가 레지스탕스에 협력함으로써 결계 안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면...


더이상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미 검게 썩어버린 결계안 구축해야 한다.



드디어 입을 여는 그녀.


"알겠어요. 저도 당신을 믿겠어요."


"좋아. 만약 너가 거절했다면 죽이진 않아도, 우리 나름대로 제재를 가했을 거야.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무리에 있다는 건 걸림돌이 될 뿐이니까."


그 후, 다시 뒤돌아서는 이성한.


"그래. 어쨌든 믿음을 증명했으니까 갈게."


주위로 황금빛의 스파크와 함께 이성한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 뒤로 우리는 같이 살 집과 여러 가지 생필품 그리고 식료품을 받았다.


****


집의 바닦에 산처럼 쌓인 물건들.


"우...와... 그걸 어떻게 다 정리하죠?"


"그러게... 평생 써도 남을 것 같은 양이네."


"그래도 이대로 엉망진창인 모습은 두고 볼 수 없겠네요."


그녀는 팔을 걷어 올렸다.


"오늘 안에 다 정리하겠어요."


"이걸? 무리일 것 같은데..."


하나 하나 선반에 물건을 올리기 시작하는 그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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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죄송합니다. 전쟁의 서막은 43화인데 제가 착각해서 미리 올려버렸습니다. 22.09.26 31 0 -
69 린의 과거 22.11.01 24 0 10쪽
68 보라머리 린 22.10.28 21 0 10쪽
67 레지스탕스의 군사학교로. 22.10.27 22 0 10쪽
66 신혼집 같은 한 집 살이? 22.10.23 29 0 10쪽
» 새로운 시작 22.10.22 32 0 10쪽
64 퇴각 22.10.20 33 0 10쪽
63 혁명군의 기습(3) 22.10.18 19 0 10쪽
62 혁명군의 기습(2) 22.10.16 29 0 10쪽
61 혁명군의 기습 22.10.15 37 0 10쪽
60 인체 실험 22.10.13 23 0 10쪽
59 차재현의 제안 22.10.13 17 0 10쪽
58 궁지에 몰린 권익현 22.10.12 28 0 10쪽
57 가로막는 차도현 22.10.10 14 0 10쪽
56 차재현의 반란 22.10.09 15 0 10쪽
55 둘만의 전망대 22.10.08 17 0 10쪽
54 맛집 여신 차세연 22.10.08 18 0 10쪽
53 긴장된 상황에서의 자그마한 여유 22.10.06 18 0 10쪽
52 정부 속 능구렁이 22.10.05 20 0 9쪽
51 마지막 한방 22.10.04 19 0 10쪽
50 지원군 등장 22.10.03 18 0 9쪽
49 꺽여버린 빛 22.10.02 20 0 9쪽
48 영웅등장 22.10.01 21 0 9쪽
47 약점 공략 22.09.30 16 0 9쪽
46 깨어난 초대형 거인 22.09.29 19 0 10쪽
45 여단장 김의진의 폭주 22.09.28 19 0 9쪽
44 항공여단의 사투 22.09.27 18 0 9쪽
43 전쟁의 서막 22.09.27 17 0 10쪽
42 단련. 22.09.26 18 0 8쪽
41 불안한 전조의 반복 22.09.26 1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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