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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준 님의 서재입니다.

날씨의 마도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복준
작품등록일 :
2022.08.15 20:49
최근연재일 :
2022.11.01 15:17
연재수 :
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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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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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수 :
311,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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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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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긴장된 상황에서의 자그마한 여유

DUMMY

마치 나 혼자 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멍하니 벤치에 앉아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거짓말 같죠?..."


'이 목소리는...'


난 옆을 향해 돌아봤다.


끊없는 깊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칠흑빛 머리.


세월이 공들여 다져낸 백사장의 모래같이, 고운 피부.


그 순백함 속에, 약간의 자극적임으로 시신경을 흥분시키는 진한 눈화장.


바로 차세연이었다.


"단지, 전쟁이 서막이 끝났을 뿐인데. 모두 마치 전쟁이 끝난 것처럼 평화로운 게."


난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람은 늘 그런 마음속에 안식처를 가지고 살아요. 눈앞에 보이지 않는 이상 거짓이라고 믿는 거죠. 말기 암 환자가 눈앞에 암이 보이지 않으니, 언젠가는 낳겠지라는 헛된 희망을 품는 것처럼."


"......"


"어리석은 거죠."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이라 해도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려 한 정부가 나쁜 건 아닐까?...


상대방의 어리석다면 그 어리석음을 일깨워줘야 하는 게 상급자로서의 일.


그런데 정부는 그 어리석음을 이용하여 잘못을 덮으려 했다.


실제로도 덮었고.


그런 정부가 내가 구해야 할 세상이라면...


절망스럽다.


"어느 쪽이 악일까?..."


"네?..."


흠칫하는 그녀.


"어느 쪽이 악이라니 당연히 저희를 공격한..."


"하지만, 레지스탕스는 이렇게 말했어. 그동안 정부가 자신들을 외면해 왔다고. 비록 자진해서 나간 사람들도 있지만, 인구 과부하로 분명 정부에서 내보낸 사람들인데도 말이야..."


"그거야... 레지스탕스가 여태처럼 해왔던 무력도발로 정부를 자극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처음부터 과연 무력으로 결계안의 세력을 협박했느냐는 거야. 물론 지금 그들을 대응은 잘못됐어. 매우 비인간적이고 잘못된 행동이야. 하지만... 처음 밖으로 쫓겨났을 때 그들이 이렇게 무력 도발을 할 힘을 가지고 있었을까?"


기석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차세연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들이 이런 힘을 가질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거야. 실로 수도와 지방의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정부가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지방이 자주적인 통제권을 가진지도 거의 50년이 넘었으니. 이미, 다른 나라가 서로의 머리에 구상된 지는 오래였지."


슬픈 기석의 눈.


"심각한 자연재해. 기아에 허덕이는 지방 지역. 수도권으로부터 물자 조달 요청. 다만, 수도권의 거절. 그 모든 게 이미, 이전부터 극심한 분극을 알리는 전조 아니었을까?"


"아......"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세연은 그만 말을 잃었다.


"그렇게 커진 서로에 대한 반감은 갈수록 심해졌고. 칼을 간 레지스탕스는 협상을 넘어서는 힘을 가지게 된 거야. 복수할 날만을 기다리며."


그럴싸한 말.


다만, 차세연에게 기석의 말은 단지 근거 없는 가설일 뿐.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그래서... 어떡할 건가요? 국가에 대해 반기라도 들건가요?"


기석의 바라보는 차세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아니... 그냥 김의진을 추모하는 행렬과 그 사실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덮으려는 정부를 보고. 내가 하는 일이 옳을까? 하고 생각한 거야. 모두를 슬프게 하는 전쟁의 비극이 계속되어야 하는지..."


"하지만."


일그러진 차세연이 얼굴.


"당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기석의 양어깨를 잡는 차세연.


"그렇다고 계속 공격해오는 레지스탕스를 잠재울 수 있나요? 당신의 말이 맞다고 치고. 그 우둔한 정부를 바로잡을 수 있나요?"


"그래도..."


"적어도 살아있는 사람은 살려야 할 거 아니에요?"


"......"


"소중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당신에게도. 당신이 나섰지 않았다면, 잔나리 교수님은 죽었을 거에요. 결계를 기준으로 한 전선도 뚫렸겠죠. 차예나도 김미연도 이시아도 모두 죽었을 거에요."


조기석은 그녀를 다시 바라봤다.


"결국 당신이 한 선택이 옳은 거라구요. 과정이 잘못됐든 잘됐든. 결과가 어쨌든. 수많은 사람을 살린 건 틀림없는 사실이잖아요?..."


그래도 대답이 없는 기석.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차세연의 표정에서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왔다갔다.


"그래서... 이제 전장에 나서지 않을 건...가요?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데? 그게!... 도대체 당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죠? 고작 아직 명확지도 않은 신념?!"


"......"


"대답 좀 해보라고요!"


그녀의 말이 맞다.


내가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사태에서 전장으로 달려나간 건 오로지 스승님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전장에서 나를 위해 홀로 싸우고 있을 스승님이 걱정돼서.


결국 나의 선택은 맞았다.


레지스탕스를 물러나게 했고.


스승님도 구했다.


더불어 결계안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하지만... 아직 지워지지 않는 이 찝찝함이라는 건 뭘까?


옳은 일을 했음에도 느껴지는 죄책감.


허기를 채우기 위해 돼지를 도축한 느낌이다.


어떨 수없는 걸까?


과거의 오해를 풀고.


공존은 이루어질 수...


없겠지?...



우둔한 정부.


그리고 우둔한 국민.


그사이에서 내가 노력한다 해도 이루어질 수 있는 건 없다.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이에서도 나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는 것.


맞다.


내게는 주어진 일은 그것 뿐인 거다.


기석은 그녀를 바라보며,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한 미소를 지었다.


"네 말이 맞네... 미안. 괜한 고민을 했어."


"......"


"그냥 갑자기 든 생각이야. 하하. 내가 대통령도 아니고. 쓸데없는 생각을."


어색한 웃음을 짓는 기석.


이런말을 한 차세연 또한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그저 그녀가 말하는 건 최선일 뿐.


그 이상을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잘못된 길을 택하게 하지 않기 위해 한 말이다.


"아니에요. 저도 갑자기 흥분해서 죄송해요. 다만, 전부 당신을 위한 말이었었어요. 그러니, 그렇게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요."


"아니야. 뭘... 안 그래도 요즘 뒤숭숭한데, 내가 괜히 민감한 말을 꺼낸 것 같아."


뭔가 서로 불편한 분위기.


원래라면 전쟁에서 무사히 복귀한 그를 축하해 주려 했는데.


욱한 감정 때문에 다 망쳐졌다.


그래서 차세연은 분위기를 환기 시키기 위해 주제를 돌렸다.


"전장에서 보였던 활약이 대단했다고 들었어요."


"으응?... 아..."



"잔나리 교수님에게 들었거든요. 못 보는 사이에 당신이 많이 성장했다고."


"에이~. 난 그저 가서 숟가락만 얹은 거야. 스승님이 없었다면, 거인의 약점도 알지 못했고 나도 거인을 쓰러트리지 못했을 거야."


"그런가요? 그래도 모두들 당신의 활약을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거 보면 이미. 기후마도사의 레귤러 반열에 오른 것 같던데요?"


"그...런가?... 하하..."


기석이 쑥스러운듯 머리를 긁적였다.


"당신이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모습에 저도 샘이 나네요."


심통이난 얼굴로 나를 등지며 말하는 그녀.


그러곤 다시 돌아보며, 나에게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니! 이번 불 참전 불가피했지만. 기대해요. 다음 전장까지 반드시 따라잡아, 저의 능력을 보여주겠어요. 전 당신의 라이벌이니까요."


그후,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라이벌이 터무니없이 약하면 안 되잖아요? 후훗."


"으응..."


"그러고 보니, 저희 둘이 아무런 말도 없이 수업을 빼먹고 말았네요."


"그러게... 잠시 벤치에 앉았을 뿐인데 이렇게 시간이..."


벌써 시간은 10시20분.


이미 수업이 끝나갈 때쯤이었다.


"그럼, 이렇게 된 거 단단히 수업을 빼먹어 버리자구요~. 어때요? 오늘 제가 살면서 처음으로 수업을 빼먹은 걸 축하해서, 같이 놀아 주시겠어요?"


그녀가 나에게 손을 내밀며, 싱긋 웃었다.


"그래도 넌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데... 수업을 다 빼먹어도 괜찮겠어?..."


"저도 사람이에요. 매일 공부하다 보면 지친다구요~. 그러니, 가끔씩 이런 날도 있어야죠. 다음에 있을 힘든 일들을 대비해."


맞는 말이다.


누구나 삶의 역경이 닥치고 그로 인해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스스로를 의심하며, 자신 앞의 길도 의심한다.


주위가 어둠으로 가득한 상황을 자책하며 발밑의 빛을 보지 못한다.


사라진 여유.


분명 차근차근히 둘러보다 보면 내 발밑의 소중한 것들이 보이고.


나를 향해 손짓하는 하얀 손수건이 보일 텐데도...


그래. 아직은 선택하기 이르다.


내 손에는 많은 것들이 쥐어져 있고.


단순히 의심만으로 그 많은 것들을 놓아버리기에는 어리석다.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자.


천천히...


난 그녀의 손을 잡고 대학가를 벗어나 시내로 향했다.


****


"우와~, 이런 곳은 처음이에요."


신기한 것을 발견한 아이처럼 초롱초롱한 그녀의 눈.


그런 그녀의 모습이 적응되지 않아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 또한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걸 아는지 마음을 추스르려 헛기침을 연발했다.


"흠. 흠... 그러니까... 그냥 신기해서 흥분한 것 뿐이에요. 인간이 달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도 감탄과 놀람을 표현했잖아요."


'인간?... 달?...'


"풉... 푸하하하..."


그녀의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비유에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녀는 그런 날 노려보며 말했다.


"어쩌자는 거에요~? 자기는 맨날 이런 이상한 농담 했으면서."


"하하하... 미안. 그게 그걸 내 귀로 직접 들으니까, 색다르게 웃겨서."


차세연은 웃는 기석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러게요. 저도 점점 당신을 닮아가네요.'


"그럼 가볼까요?"


차가운 성격과 기쎈 외모와 달리.


그녀가 선택한 건 맛집 데이트였다.


"이게 그 유명한 벌집 아이스크림이래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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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죄송합니다. 전쟁의 서막은 43화인데 제가 착각해서 미리 올려버렸습니다. 22.09.26 31 0 -
69 린의 과거 22.11.01 24 0 10쪽
68 보라머리 린 22.10.28 20 0 10쪽
67 레지스탕스의 군사학교로. 22.10.27 22 0 10쪽
66 신혼집 같은 한 집 살이? 22.10.23 29 0 10쪽
65 새로운 시작 22.10.22 31 0 10쪽
64 퇴각 22.10.20 33 0 10쪽
63 혁명군의 기습(3) 22.10.18 19 0 10쪽
62 혁명군의 기습(2) 22.10.16 28 0 10쪽
61 혁명군의 기습 22.10.15 37 0 10쪽
60 인체 실험 22.10.13 23 0 10쪽
59 차재현의 제안 22.10.13 17 0 10쪽
58 궁지에 몰린 권익현 22.10.12 27 0 10쪽
57 가로막는 차도현 22.10.10 13 0 10쪽
56 차재현의 반란 22.10.09 14 0 10쪽
55 둘만의 전망대 22.10.08 17 0 10쪽
54 맛집 여신 차세연 22.10.08 18 0 10쪽
» 긴장된 상황에서의 자그마한 여유 22.10.06 18 0 10쪽
52 정부 속 능구렁이 22.10.05 19 0 9쪽
51 마지막 한방 22.10.04 19 0 10쪽
50 지원군 등장 22.10.03 18 0 9쪽
49 꺽여버린 빛 22.10.02 19 0 9쪽
48 영웅등장 22.10.01 20 0 9쪽
47 약점 공략 22.09.30 16 0 9쪽
46 깨어난 초대형 거인 22.09.29 18 0 10쪽
45 여단장 김의진의 폭주 22.09.28 19 0 9쪽
44 항공여단의 사투 22.09.27 18 0 9쪽
43 전쟁의 서막 22.09.27 17 0 10쪽
42 단련. 22.09.26 18 0 8쪽
41 불안한 전조의 반복 22.09.26 1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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