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갈색인간 님의 서재입니다.

Red Soul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갈색인간
작품등록일 :
2018.08.16 18:46
최근연재일 :
2022.11.24 13:16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4,586
추천수 :
5
글자수 :
279,740

작성
22.09.30 12:06
조회
24
추천
0
글자
9쪽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3

DUMMY

“제기랄, 그래, 미안하다! 됐냐, 이 자식아? 근데 이 개자식이!”


헬름은 다시 소매를 걷고 라시인에게 달려들었다. 여기와서 몇 번째 달려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일은 장난치듯 달려드는 게 아니었다. 나와 제리포, 미는 두 남자의 사이를 급히 가로막았다. 둘은 씩씩거리며 주먹을 내렸다.


“그래, 우선 진정하자고. 우린 지금 너무 예민해. 이러다 누구 하나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어. 듣고 있어, 라시인?”


“내 귀가 나간 건 아냐, 잘 듣고 있어.”


“좋아. 헬름, 아까 유그드타를 봤던 것 같은데 유그드타는 어때?”


제리포의 물음에, 헬름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자식? 아주 여유롭게 성 안으로 들어가더군.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말이야! 제기랄 새끼! 그 녀석의 모가지를 확실히 비틀어 놨어야 했는데.”


“진정해, 헬름.”


헬름을 진정시키고 나자 침묵이 찾아왔다. 미는 볏짚을 깔고 잠들었고, 제리포는 혹시나 또 두 사람이 싸울까봐, 자청해서 헬름과 라시인의 중앙에 앉았다. 나는 제리포와 라시인의 사이에 앉아 헬름과 라시인의 거리를 더 떨어트려 놓았다.


드포넌트는 우리 넷의 모습을 보다가 조용히 제리포와 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벽의 철창을 째려보았다.


“철창에 빵이라도 꿰어져 있어요?”


나는 장난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드포넌트는 철창에서 눈을 때고 날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나도 그런 거 꿰어져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럼 왜 철창을 뚫어지게 바라보세요?”


“탈옥할 궁리······.”


“설마 철창이 떼어지기야 하겠어요? 슬슬 피곤한데, 드포넌트는 안 졸려요?”


“그다지. 라시인하고 헬름이 싸우면 깨워주마. 푹 자렴.”


나는 드포넌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미의 볏짚을 조금 빼내서 머리에 깔고 한 번 뒤척인 다음 검은 상상 속으로 천천히 빠져 들었다. 나 혼자 현실 도피를 하는 기분이다.



나는 검은 천막을 헤집으며 걷고 있었다. 아무리 헤집어도 계속 검은 천, 검은 천, 검은 천······. 내 성격이라면 분명 답답해서 성을 냈을 텐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걷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검은 천막 사이로 빛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한 장 남은 천을 걷어냈다. 밝은 빛이 큰 틈 사이로 비춰진다.


“제노비스 경, 도대체 뭐가 불만이지? 왜 기사단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 건지 말해보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크레미션 단장 님. 신경 쓰지 마십시오.”


집무실로 보이는 방에서는 붉은 머리의 남자와 갈색 머리의 남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붉은 머리의 크레미션 단장은 제노비스 경의 얼굴을 매섭게 째려보고 있었고, 제노비스 경은 부모에게 혼나는 아이처럼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어려 보여서 헷갈렸는데 우리 영지에 들렸었던 콜로 제노비스였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잖나. 아무 이유 없이 부하를 구타했다고 들었는데. 이유를 말해보게.”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눈에 거슬렸을 뿐입니다.”


“하아, 누누이 말했지 않았나? 자네는 부 기사단장이니 행동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근데 오히려 이게 뭐지! 이게 몇 번째인지 아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크레미션 단장은 서류함을 뒤적거리다가 제노비스 경 앞에 서류 하나를 놓았다. ‘레드 윙 기사단 사건 사고 일지.’ 라고 서류 표지에 적혀 있었다. 제노비스 경은 첫 장을 조심히 넘겼다.


“내가 기사단장으로 부임하기 전 내용을 다 빼내고, 그 첫 날부터 기록한 것이다. 자네는 그 첫 날부터 사고를 일으켰더군. 술에 취해 시민을 폭행한 후 기물파손. 그리고 일주일 후에는 내가 저녁식사에 초대 한 귀족가 자제를 폭행. 그 다음에도 많지만 자네도 기억하고 있겠지. 내가 부임하기 전에는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제노비스 경은 아무 말 없이 서류를 넘기며 인상을 찡그렸다.


“말해보게. 그냥 이러는 건 아닌 것 같고, 불만이 있는 게 분명한데.”


“아뇨, 아닙니다. 그럼 나가봐도 되겠습니까?”


크레미션 단장은 담배를 입에 물고 문 위를 바라보았다. 문 위에는 액자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옛 레드 윙 기사단 단장들의 초상화들이었다.


대답이 없자 몸을 돌려 나가는 제노비스 경을 향해 크레미션 단장은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사단장이 되지 못 한 것에 불만이 있나?“


제노비스 경은 내딛던 발을 멈췄다. 크레미션 단장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 뒤의 창문을 닫았다. 담배 연기가 방 안을 맴돌았다.


“나는 아버지가 나에게 검을 주실 줄 알았어.”


제노비스 경은 등을 돌린 채 말했다. 크레미션 단장은 자신의 허리에 매달린 검을 살짝 힘주어 잡았다.


“하지만 사라졌어. 어느 날 집무실을 비워두시고 검을 가지고 나가셨다고! 그리고 당신······”


제노비스 경은 몸을 돌리며 크레미션 단장을 삿대질 했다. 크레미션 단장은 기분이 언짢은지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이 이 기사단에 들어왔어. 그것도 아버지의 초상화를 문 위에 달며 말이야! 그 검은 아버지가 쓰시던 검이야! 왜 네가 가지고 있는 거지? 하찮은 외국 평민 놈이!”


“검은 세습이 불가능하다.”

크레미션 단장은 자신이 모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제노비스는 검지를 크레미션 단장 눈앞까지 들이밀며 소리쳤다.


“개소리 집어치워! 검은 쥐어주면 끝 아니야? 그냥 쥐어주면 끝 아니냐고!”


“검은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에 불과해. 내가 이 자리에 앉은 건 검 덕이 아니라 레드 소울이라는 힘 덕분이다. 그것은 선택 받은 사람의 영혼 속에만 있는 것이지. 검을 세습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증명? 그 증명이 뭔데!”


크레미션 단장은 한숨을 쉬더니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을 높이 치켜들자 검 가드 부위의 검은 구슬이 붉게 변하며 붉은 빛을 사방에 퍼트렸다. 제노비스 경은 눈이 부신지 미간을 찡그렸고, 크레미션 단장은 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만약 이 검에 능력이 깃들어져 있거나, 자네가 레드 소울을 지니고 있다면 이 검이 붉게 되어 나처럼 빛을 뿜을 것이다! 잡아보겠는가? 자네는 나처럼 증명할 수 있나?”


“잡아보라면 못 잡을 줄 알아?”


제노비스 경은 악을 지르며 크레미션 단장의 손에 들린 검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노비스 경의 얼굴의 핏기가 사라졌다. 제노비스 경의 손에 잡히는 순간 구슬이 검게 변했기 때문이다.


“왜······왜! 무슨 짓을 한거야? 말해! 으아아아!”


제노비스 경은 손에 쥔 검을 크레미션 단장에게 휘둘렀다. 크레미션 단장은 책상 위에 있던 장식용 단검을 뽑아 검을 막았다. 땅에 떨어진 담배에서 피어오른 담배 연기가, 아무 말 없이 검을 교차하고 있는 두 남자의 사이로 피어올랐다.


제노비스 경은 멍한 눈으로 자신의 손에 쥔 검을 바라보다가 뒤로 물러서선 땅에 검을 내팽개치며 뒷걸음질쳤다. 크레미션 단장은 단검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다 탄 담배를 재털이에 꽂았다.


“가보게.”


크레미션의 말에 제노비스 경은 도망치듯 몸을 돌려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크레미션 단장은 떨어진 검을 집어 검집에 넣다가 땅에 떨어진 뭔가를 보고 흠칫 놀랐다. 그는 다시 몸을 숙여 땅에 떨어진 뭔가를 집으며 쓴 미소를 지었다. 그의 검지와 엄지 사이에 잡힌 것은 푸른 실이었다.


그는 한참 그 푸른 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내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나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나를 바라보는 건가?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뭐야? 나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방금 대화를 들었다고 죽이진 않겠지? 근데 좀 비밀스러워 보이던데?


“옷장이 열려있군.”


그는 내 앞 허공을 밀어내는 행동을 했고, 순식간에 앞이 어두워졌다.



“푸하흐으, 골이 깨질 것 같은데.”


나는 손가락으로 미간을 주무르며 일어났다. 잠자리가 좋지 않아서 몸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주위는 아까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 일행은 모두 잠들어 있었고, 창문에는 므라카가 걸터앉아 외롭게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들어 있는 동안 깊은 밤이 찾아와 있었다.


“흐아암, 화장실······.”


내 옆에 있던 미가 부스스하게 일어났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구석에 설치된 변기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던 나는 그녀가 허리띠를 반쯤 풀자 깨달았다. 화장실과 우리들 사이의 가림막이 전혀 없었다.


“미! 미, 여기서는 안 돼요!”


“어어, 에딘? 왜 화장실에 있······꺄······읍······.”


나는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 그녀의 입을 급히 틀어막았다. 여기서 소리 질렀다간 오랜만에 곤히 자는 일행이 모두 일어날 것이다. 오해는 둘째치고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Red Soul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레인저 미, 10 부분을 좀 더 늘립니다. 18.08.28 72 0 -
62 5, 마법사의 고뇌는 길다 - 8 22.11.24 8 0 10쪽
61 5, 마법사의 고뇌는 길다 - 7 22.11.23 10 0 10쪽
60 5, 마법사의 고뇌는 길다 - 6 22.11.22 9 0 10쪽
59 5, 마법사의 고뇌는 길다 - 5 22.11.21 14 0 10쪽
58 5, 마법사의 고뇌는 길다 - 4 22.11.16 12 0 13쪽
57 5, 마법사의 고뇌는 길다 - 3 22.10.21 18 0 9쪽
56 5, 마법사의 고뇌는 길다 - 2 22.10.20 15 0 9쪽
55 5, 마법사의 고뇌는 길다 - 1 22.10.19 17 0 9쪽
54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24 22.10.18 14 0 7쪽
53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23 22.10.17 13 0 7쪽
52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22 22.10.14 13 0 9쪽
51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21 22.10.12 13 0 9쪽
50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20 22.10.11 17 0 9쪽
49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9 22.10.08 18 0 10쪽
48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8 22.10.07 17 0 10쪽
47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7 22.10.06 19 0 9쪽
46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6 22.10.05 17 0 9쪽
45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5 22.10.04 16 0 9쪽
44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4 22.10.03 16 0 10쪽
»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3 22.09.30 25 0 9쪽
42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2 22.09.29 18 0 10쪽
41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1 22.09.28 16 0 10쪽
40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0 22.09.26 17 0 10쪽
39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9 22.09.23 16 0 9쪽
38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8 22.09.21 20 0 9쪽
37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7 20.02.15 37 0 10쪽
36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6 20.02.14 33 0 9쪽
35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5 20.02.14 39 0 9쪽
34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4 20.01.17 44 0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