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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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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인간
작품등록일 :
2018.08.16 18:46
최근연재일 :
2022.11.24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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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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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9

DUMMY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눈은 저절로 스르륵 감겼고, 내가 눈을 감고 있는 동안, 해는 황야의 땅을 비집고 흙먼지 묻은 얼굴로 천천히 떠올랐다.



일어나보니 아침 식사 시간은 훌쩍 넘어가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보인 것은 제리포와 드포넌트가 라시인의 말을 듣고 있는 모습이었다. 두 경비대원은 아직 숙취가 풀리지 않았는지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듣고 있었다.


“잘 알았지? 너희가 할 일은 그것 뿐이야.”


“그것 뿐이라기엔 너무 양이 많지 않아? 일단 해 보겠다만······.”


제리포는 농담하듯 말했다. 라시인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자신의 배낭을 집어 들었다. 그의 뒤에서 헬름이 배낭을 등에 매고 한쪽 발을 구르고 있었다.


“그런 일은 네 녀석의 변신 능력으로도 같이 갈 수 있잖아? 왜 굳이 에딘과 미를 따로 보내는 거야? 마법사는 눈치도 빠르고 위험하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다고!”


“변했던 건 폴리모프 스크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 스크롤이 없어! 그리고 몇 번을 말해? 다시 돌아온다고! 위험에 빠지는 일 없어!”


라시인이 헬름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헬름은 걱정스럽다는 듯 큼직한 발을 무겁게 쿵쿵 구르다가 라시인에게 경고했다.


“으으, 에딘과 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각오해. 널 마법사에게 재료로 주고 바꿔올 거니까.”


라시인은 그 말에 콧 웃음을 치고 여관을 나갔다. 막 깨어난 나와, 멀뚱히 앉아있는 미를 보며 헬름은 걱정 가득 담긴 목소리로 “조심해.” 라고 말하고 라시인을 따라 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자 제리포와 드포넌트는 자신들의 무장을 바로 하고는 내쪽을 향해 씨익 웃었다.


“이 여물통에 머리를 박으라고요?”


“그래. 그게 가장 확실한 변장이지. 냄새도 나고, 기름기도 흐르고. 꼭, 막 밖에서 구르다 온 아이 같잖아?”


한 마디로 저쪽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보 분장이었다. 변장을 안 시켜 놓으면 너무 교활해 보인다나 뭐라나. 나는 마구간 안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생 정신으로 냄새나는 여물통 안에 머리를 박아야 했다. 구릿하고 비린 냄새가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후우, 정말 대단하군. 좋아, 그럼 이제 옷을 좀 꾸며줘야지. 미, 잠시 나가주실래요? 바지도 벗어야 하거든요.”


제리포는 그렇게 말하며 미를 마구간에서 내보냈다. 그리고 날 씨익 웃으며 바라보았다. 나는 제리포와 드포넌트를 향해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바지는 이거랑 가방에 있는 거 단 두 벌 밖에 없거든요?“


“이 일이 잘 풀리면 많이 사 줄게. 자, 벗어. 우리가 잘 손봐줄 테니까.”


나는 결국 바지를 벗어 그들에게 던져주었다. 둘은 나의 윗옷도 탐내었고, 나는 될 대로 되라는 표정으로 윗옷마저 던져주었다. 둘은 신나게 내 옷들을 짓밟고 찢고 바닥에 쓸었다.


제리포는 좀 더 현실적인 걸 원한다며 침을 뱉고 신나게 내 옷을 밟았다. 나는 뭐 씹은 표정을 지은 채 둘을 바라보다가 그들이 돌려준 걸레를 죽고 싶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었다.


“휴우, 누가 보면 바보가 아니라 거지로 볼 걸요.”


마구간에서 나온 나를 보며 미가 코를 막고 말했다. 어지간히 냄새가 심한 모양이다.


“변장 실력의 뛰어남을 칭찬하셨다면 고맙죠. 그럼 이제 가죠. 절 이 꼴로 만든 마법사를 만나봐야죠.”


나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다. 제리포와 드포넌트가 길 안내를 위해 앞장서서 걸었고, 우리 둘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페코는 그저 나가서 좋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나의 옆을 따라왔다.


“에헤헤, 빵이다. 빵!”


“안 돼, 에딘! 그건 빵이 아니라 개똥이야, 에비!”


우선 나를 붙잡고 있어야 하는 미에게 위로를. 그리고 나의 무너지는 정신 상태와 도를 넘는 부끄러움에 위로를. 나는 시내 한 가운데서부터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린 짓을 하며 걸어야 했다. 연기상 나의 친누이가 되어야 하는 미는 나를 말리느라 고생해야했다. 부끄럽기도 하고, 가까이 붙을 때마다 냄새가 엄청났으니 말이다.


“우와아아! 경비 형, 업어줘!”


내가 이상한 짓을 할 때마다 앞에서 킥킥 웃는 그들이 하도 괘씸해서 드포넌트의 등에 업힌 채 그의 목을 뒤로 끌어당겼다. 드포넌트는 당황해 아무 저항도 못 하고 컥컥거리기만 했다. 제리포는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며 뒤로 자지러질 듯 웃었다. 아니, 여기가 길 한복판이 아니었다면 그는 이미 쓰러져 있었을 것이다.


“다음은 당신이에요, 제리포.”


나는 제리포를 향해 작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제리포는 사색이 되었다. 나는 다시 드포넌트의 목을 졸랐고, 그제야 제리포는 우리 둘을 갈라놓았다. 드포넌트는 목을 매만지면서도 히죽히죽 웃었다. 아프진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드포넌트에게서 떨어지자마자 미에게 쪼르르 달려가 붙었다. 미는 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를 뒤로 쓸었다. 그리고 다정한 눈빛을 보냈다.


‘이 영지는 마법사의 감시로 가득해. 여관 주인 말을 들어보니, 치안을 더 좋게 한답시고 길목마다 마법사가 시야 마법을 걸어놨다더군. 그러니까 둘은 아주 사이좋은 남매 역할을 해야 돼.’


출발하기 전 제리포가 했던 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미가 보내는 다정한 눈빛은 연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미의 눈은 친누이의 역할을 뛰어넘어 마치 귀여운 장난을 치고 온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 번도 그런 눈빛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날 낳은 어머니는 날 낳자마자 우리 부자를 떠나버렸으니까. 당연히 못 받아 본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생각이 그쯤까지 도달하자 나는 웃던 표정을 잠시 굳혔다. 미는 내가 웃음을 멈추자 ‘왜 갑자기 웃음을 멈춰?’ 라고 묻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에딘, 울어?”


그녀는 내 눈가를 자신의 얇은 손가락으로 쓸어주었다. 눈물? 왜 눈물이 난 거야? 목을 긁고 있던 드포넌트와, 제리포는 운다는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급히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을 꽉 감았다.


“으하으음! 에딘 졸린 거다. 에딘 멍청하게 울지 않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하품하는 척을 하고는 미의 손을 잡고 헤헤거리며 걸었다. 그때 미가 말했다.


“우리 여기서 쉬었다 가요. 에딘이 어디 좀 힘든 것 같아요.”


앞에 걷던 두 경비대원은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쉬고 간다는 것은 계획에도 안 잡혀 있던 일이라서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것이리라. 두 경비대원은 우리에게서 좀 떨어진 곳에 서서 입에 담배를 물고 대화를 나누다가 자기들끼리 낄낄거렸다.


나는 멀뚱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씩 웃더니 자신의 품 안에 내 머리를 묻었다.


“에딘, 울어. 갑자기 울적해지면 그냥 참지 말고 우는 거래.”


그녀가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품 안이 따뜻하다. 미의 그 말을 들으니, 억지로 참고 있던 눈물이 한 번에 쏟아졌다. 하지만 흐느끼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소리 내어 우는 모습을 보이긴 싫었다. 누군가 보면 누나 품 안에서 자고 있는 바보 소년처럼 보일 수 있게 노력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아마 다 쏟아냈을 것이다. 철없던 때 엄마 없던 서러움. 아버지가 푸줏간에 나가시면 집에 혼자 남아있던 외로움. 어느 날 갑자기 오셔서 아버지와 싸우는 어머니의 소리를 내방에서 듣는 괴로움. 머리가 굵어지며 어머니를 적대시 했던 내 모습. 오늘만은 모두 눈물로 끄집어냈다.


나는 울음을 멈추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히죽 웃었다. 그리고 미의 품 안에서 나왔다.


“에딘 안 울적해. 근데 울적이라는 게 뭐야?”


그녀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 갈색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려 주었다.


“그거 다행이네. 우리 에딘이 그 말을 몰라서.”


나는 자리에서 힘차게 일어났다. 미도 내 뒤를 따라 일어났다. 담배를 피며 대화하고 있던 두 경비대원은 담배를 땅에 던지며 물었다.


“다 쉬었니, 애들아? 갈까?”


“네, 어서 가요.”


둘은 다시 앞장서서 걸었고, 나는 미친 행동을 하며 그 뒤를 따라갔다.




두 갈림길에 도착하자 드포넌트는 갑자기 우리와 다른 길로 발을 옮겼다.


“나 지난번에 종탑 앞에서 뭐 좀 흘리고 왔거든? 거기서 그것 좀 찾고 갈게.”


“빨리 찾고 와, 이 손 가벼운 녀석아.”


제리포는 웃으며 드포넌트를 꾸짖었다. 드포넌트는 히히 웃으며 종탑 쪽으로 걸어갔고, 우리는 그를 바라보다가 마법사의 집으로 가는 길로 걸어갔다.


“와아, 빛나는 문이다!”


다음 말은 ‘정말 지 마법사인 거 알리고 싶어서 환장하셨구만!’ 이었지만, 그런 고차원적인 문장을 사용할 수 없는 역할이었기에 뒷말을 생략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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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5, 마법사의 고뇌는 길다 - 7 22.11.23 10 0 10쪽
60 5, 마법사의 고뇌는 길다 - 6 22.11.22 9 0 10쪽
59 5, 마법사의 고뇌는 길다 - 5 22.11.21 13 0 10쪽
58 5, 마법사의 고뇌는 길다 - 4 22.11.16 12 0 13쪽
57 5, 마법사의 고뇌는 길다 - 3 22.10.21 17 0 9쪽
56 5, 마법사의 고뇌는 길다 - 2 22.10.20 14 0 9쪽
55 5, 마법사의 고뇌는 길다 - 1 22.10.19 16 0 9쪽
54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24 22.10.18 13 0 7쪽
53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23 22.10.17 12 0 7쪽
52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22 22.10.14 13 0 9쪽
51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21 22.10.12 13 0 9쪽
50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20 22.10.11 17 0 9쪽
49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9 22.10.08 17 0 10쪽
48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8 22.10.07 17 0 10쪽
47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7 22.10.06 19 0 9쪽
46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6 22.10.05 17 0 9쪽
45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5 22.10.04 15 0 9쪽
44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4 22.10.03 16 0 10쪽
43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3 22.09.30 24 0 9쪽
42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2 22.09.29 18 0 10쪽
41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1 22.09.28 16 0 10쪽
40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10 22.09.26 16 0 10쪽
»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9 22.09.23 16 0 9쪽
38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8 22.09.21 20 0 9쪽
37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7 20.02.15 36 0 10쪽
36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6 20.02.14 33 0 9쪽
35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5 20.02.14 39 0 9쪽
34 4, 황야의 기사단 노래 - 4 20.01.17 43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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