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수호자의 노래

수호자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정상호
작품등록일 :
2020.05.04 01:40
최근연재일 :
2022.03.19 23:5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3,518
추천수 :
125
글자수 :
397,167

작성
21.04.10 23:50
조회
38
추천
1
글자
8쪽

안개빛 희극 (5) 아라기

DUMMY

땅을 울리는 커다란 소리가 줄지어 들려왔다. 날렵한 말에 올라탄 아라기는 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고개를 가볍게 돌렸다. 소리가 들린 저 너머에서는 시꺼먼 연기가 올라왔다.


‘벌써 시작인가···.’ 아라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거의 삶의 절반을 전장에서 살았던 아라기였다. 그렇지만, 반란군의 편에서 칼을 쥐는 것은 실로 긴장되는 일이었다.


아라기는 긴장과 함께 고삐를 힘차게 쥐었다. 곁에서 함께 말을 몰던 아이마르가 말을 건넸다. “긴장 푸시오, 형제여. 계획대로 잘 될 거요.”


아라기는 애써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 같은 건 하지 않아. 그저, 예상외의 사태를 걱정하고 있을 뿐.” 아라기는 조금만 본심을 드러내며 말했다.


눈동자를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시끄러운 폭발음이 계속해서 들렸다. 아라기는 서두르기 위해 고삐를 몇 번이고 당겼다.


피로 물든 거리는 잔해가 만들어낸 먼지로 가득했다. 아라기는 짙은 먼지 덕택에 눈을 찌푸렸다. 아수라장이 된 거리를 바라보며, 아라기는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계획은 제대로 기억하오, 형제여?” 아이마르가 미묘한 감정 사이를 뚫고 질문을 던졌다.


아라기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물론, 기억하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나?”


“예스트라에는 데네르 기사단의 주둔지가 있지요.” 아이마르는 전혀 아라기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말만 했다. “그곳에는 예스트라의 주둔기사가···.”


“적당히 좀 하시오. 제대로 기억하고 있으니까.” 아라기가 짜증을 섞으며 손사래 쳤다. “그 주둔기사를 처리하는 게 내 임무니.”


“제대로 알고 계시니 참으로 다행이오.” 아이마르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곧 낯선 거리로 들어섰다. 아라기의 옆으로 예스트라의 백성들이 뛰어갔다. 그들은 하나같이 겁에 질린 눈동자였다. 상처와 피로 덮인 끔찍한 모습이었다.


“저기가 그곳이오. 기사단의 예스트라 주둔지. 이 성의 주둔기사가 저곳에 있을 거요, 형제여.” 아이마르가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손가락의 끝에는, 적당히 높이 솟은 아름다운 탑이 있었다.


아라기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아이마르는 이내 알았다는 듯 입을 닫았다.


탑으로 이어지는 거리는 무너진 잔해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잔해 위에서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예스트라의 기사들은 피를 흘리며 힘겹게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아라기는 과거를 떠올렸다. 크레게올드에서의 처절한 사투를 떠올렸다.


크레게올드는 아라기에게 처음 피와 전쟁의 맛을 알려준 곳이었다. 과거의 아라기는 고향을 떠날 때, 그곳에 모든 잡념을 두고 왔었다. 하지만, 사사로운 감정은 쉽사리 사라지지 못했다.


아라기는 잔해에서 일어나는 싸움에 끼어들었다. 피로 물든 예스트라의 기사가 입을 열기도 전에, 아라기의 칼날은 기사의 목을 취했다.


“아라기 형제···!” 고전하던 병사들이 아라기를 보며 미소지었다. 아라기는 그들에게 호응하지 않고, 칼에 묻은 피를 가볍게 닦아냈다.


아이마르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대단한 실력이오. 여전히 녹슬지 않았구려.” 아이마르가 말했다.


아라기는 적당히 닦아낸 칼을 칼집에 되돌려놓았다. “흥···. 당연한 얘기지.” 아라기는 주둔기사의 탑이 놓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당당한 발걸음을 예스트라의 잔해가 방해했다. 흙먼지 덮인 잔해 곁에는 고깃덩이가 가득했다. 기사들의 파편과 시민들의 슬픔이 가득했다. 아라기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다, 이내 탑으로 걸어갔다.


탑 아래에는 아직, 전투가 한창이었다. 판금으로 무장한 예스트라의 기사들은 탑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사수하고 있었다.


“반란군 놈들, 너희들은 아무것도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피와 땀으로 물든 예스트라의 기사 하나가 소리쳤다.


뒤이어 여명기사회의 병사들이 탑을 막아선 기사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예스트라의 기사들은 잘 훈련된 듯, 반란군들을 제대로 막아내고 있었다. 그들의 기세는 꺾일 줄을 몰랐다.


“정말 고결한 사내들이로다.” 아이마르가 감탄을 쏟아냈다. “저들을 뚫어내긴 쉽지 않겠소, 형제여.”


‘충직하고 고결한 기사라···.’ 아라기는 다시 검을 뽑았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아라기는 작게 혼잣말을 내뱉으며, 길목을 가로막은 기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저자를 막아라! 절대 아무도 이곳을 지나가게 해선 아니 된다.” 조금 전 결의를 다졌던 기사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가장 노련하고 충직한 기사임이 틀림없었다.


무엇이 그들을 충직하게 만들었을까. 아라기는 그 이유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아라기가 어렸을 무렵, 쓸모없는 감정을 에런든에 두고 왔을 무렵, 아라기는 누구보다도 더 충직하고 고결한 사내였다.


그것은 꿈이었다. 영웅 이야기를 사랑했던 소년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꿈이었다. 아홉 대륙의 수많은 영웅. 그들의 일부가 되어 위대한 황제의 곁에 함께하는 꿈.


그러나 그 꿈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위대한 영웅은 그저 한순간이었다. 피를 흘리며 지켜낸 수많은 요새는 아라기의 것이 아니었다. 단 한 번에 아라기는 추락했다. 전설은 그저 이야기일 때 가장 아름다웠다.


아라기는 노련한 기사를 향해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기사는 가까스로 아라기의 칼날을 막아냈다. 흔들리는 기사의 갑옷에서 안간힘이 느껴졌다.


“···하에브? 어째서 영웅께서 이곳에?” 기사는 아라기를 알아본 듯 놀라움을 뱉었다. 아라기는 입을 꾹 다문 채, 더욱 거세게 검을 휘둘렀다.


고결한 기사는 아라기의 칼날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어째서···, 같은 루테네르인끼리 이래야 하는 겁니까!” 기사는 거의 탄식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그 말은 아라기의 검을 멈추게 했다. ‘같은 루테네르인···?’


기사는 아라기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고결한 기사는 멍한 아라기의 칼날 사이로 검을 내질렀다. 아라기는 놀라며 검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고결한 기사의 칼날이 아라기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아라기의 뒤를 쫓아온 아이마르가 거세게 기사의 칼날을 쳐냈다. 그리고 아이마르는 순식간에 기사의 오금을 베어냈다. 그리고 휘청거리는 기사의 목을 찔렀다. 기사의 피가 아라기의 얼굴을 더럽혔다.


“어째서 망설이는 것이오, 형제.” 아이마르는 칼날에 묻은 피를 싸늘하게 닦아냈다.


아라기는 눈을 감고, 얼굴에 튄 피를 닦아냈다. ‘망설여···. 내가?’


아이마르가 말했다. “올라가시오, 형제여. 그리고 그 망설임을 떨쳐내시오.” 아이마르는 반쯤 깨끗해진 칼날로 탑의 입구를 가리켰다.


아라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재빨리 탑으로 향했다. 탑의 유일한 통로인 계단을 올랐다. 나선 계단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같은 루테네르인.’ 아라기는 어째서 자신이 학살의 현장에 있는지 떠올렸다. 복수. 그것은 아라기의 자긍심보다도 중요했다.


탑의 끝에는 작은 방이 있었다. 예스트라가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창문, 그 아래에 주둔기사가 앉아 있었다. 아라기는 망설이지 않았다. 곧바로 사내에게 달려가, 그의 목을 베었다.


‘이것은 첫 번째 발걸음일 뿐.’ 아라기는 주둔기사의 목을 쥐고 탑을 마저 올랐다. 탑의 정상에는 데네르 기사단의 깃발이 휘날렸다.


아라기는 우뚝 솟은 깃발을 베어냈다. 그리고 주둔기사의 목을 탑 아래로 던졌다. 데네르 기사단의 문장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라기는 자신을 바라보는 군중을 향해 소리쳤다. “예스트라는 다시 루테네르의 영토다!” 곧 병사들의 환호가 뒤따랐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수호자의 노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2024년 4월 20일 휴재 공지 24.04.19 1 0 -
공지 2024년 4월 13일 휴재 공지 24.04.12 1 0 -
공지 2024년 4월 6일 휴재 공지 24.04.04 1 0 -
공지 2024년 3월 30일 휴재 공지 24.03.29 1 0 -
공지 2024년 3월 23일 휴재 공지 24.03.23 1 0 -
공지 2024년 3월 16일 휴재 공지 24.03.15 1 0 -
공지 2024년 3월 9일 휴재 공지 24.03.09 2 0 -
공지 2024년 3월 2일 휴재 공지 24.03.02 1 0 -
공지 2024년 2월 24일 휴재 공지 24.02.23 1 0 -
공지 2023년 6월 24일 휴재 공지 23.06.23 3 0 -
공지 2023년 6월 17일 휴재 공지 23.06.16 6 0 -
공지 2023년 6월 10일 휴재 공지 23.06.09 4 0 -
공지 2023년 6월 3일 휴재 공지 23.06.02 5 0 -
공지 2023년 5월 27일 휴재 공지 23.05.26 2 0 -
공지 2023년 5월 20일 휴재 공지 23.05.19 5 0 -
공지 2023년 5월 13일 휴재 공지 23.05.12 2 0 -
공지 2023년 5월 6일 휴재 공지 23.05.06 7 0 -
공지 2023년 4월 29일 휴재 공지 23.04.28 6 0 -
공지 이야기를 읽으시기 전에, 드리는 이야기 +2 20.05.05 120 0 -
공지 제1부 빛바랜 기사 연재 공지 20.05.04 63 0 -
80 마지막 장작 (9) 에리크 22.03.19 20 0 12쪽
79 마지막 장작 (8) 하인츠 22.02.26 14 0 12쪽
78 마지막 장작 (7) 아라기 22.02.19 16 0 8쪽
77 마지막 장작 (6) 하란 22.02.12 14 0 7쪽
76 마지막 장작 (5) 로나트 21.11.13 26 0 8쪽
75 마지막 장작 (4) 글라드 21.10.09 15 0 7쪽
74 마지막 장작 (3) 아라기 21.09.04 25 0 7쪽
73 마지막 장작 (2) 린 21.08.07 17 1 7쪽
72 마지막 장작 (1) 에리크 21.07.17 17 1 7쪽
71 안개빛 희극 (9) 카이 바르도나 21.06.19 32 0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