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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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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연재 주기
정상호
작품등록일 :
2020.05.04 01:40
최근연재일 :
2021.09.04 23:50
연재수 :
74 회
조회수 :
2,467
추천수 :
125
글자수 :
373,682

작성
21.01.16 23:50
조회
56
추천
1
글자
8쪽

업의 그림자 (8) 린

DUMMY

불과 얼마 전, 린은 그림자 숲을 처음 보았다. 그림자 숲의 첫인상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그림자 숲의 풍경은 그때와 조금 달랐다.


겨울 하늘에 외롭게 뜬 태양이 내뿜는 빛은 그림자 숲에 전혀 닿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림자 숲의 겨울은 혹독했지만, 그렇다고 전혀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째서 트리할트 대영주의 청을 가볍게 수락하셨나요?” 린이 물었다. 그들이 밟는 숲길에는 썩은 나뭇잎이 무성했다.


그림자 숲을 헤집으며 앞으로 나아가던 레이지가 멈춰 섰다. 기사단장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린의 얼굴을 마주했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니까.” 레이지는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린은 그 모습을 보며, 레이지가 사뭇 긴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얼핏 지나가며 들었던 ‘그림자들’이 어떤 존재일지, 린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기사단장을 긴장하게 했을까? 린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트리할트 대영주가 말했던 그림자를 찾기 위해, 그들은 계속해서 숲을 누볐다. 그들 사이에는 정적이 감돌았고, 그저 가죽 부츠에 뭉개지는 낙엽 소리만이 자리했다.


“대체 언제쯤 ‘그림자들’과 마주할 수 있을까요?” 린은 푸념 섞인 혼잣말을 이어갔다. “꽤 시간이···.”


“조심해!” 레이지가 소리치며, 재빨리 칼을 뽑았다. 그와 동시에 강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그림자 속에 울렸다. 레이지의 칼끝에 부딪힌 화살이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레이지는 날렵한 칼을 꽉 쥐며, 숲을 향해 외쳤다. “누구냐! 모습을 드러내라!”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대신, 또 다른 강철 화살이 날아왔다. 레이지는 자세를 잡고, 화살을 튕겨냈다.


레이지가 린을 가로막아 주었기에 갑작스레 날아온 화살은 린에게 전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린은 놀라움과 공포에 사로잡혔다.


잠시 이어지던 화살은 어느 순간 멈췄다. 그리고 어두운 수풀 속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렵한 활을 쥔 자는 기묘한 은색 까마귀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림자들이 아니었구나···.” 까마귀 가면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어딘가 아쉬운듯한 말투였다.


레이지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레이지는 날카롭고 야윈 검을 까마귀 가면을 향해 겨누었다. 레이지의 칼날에는 분노가 느껴졌다.


“이런, 일단 사과드려요. 그림자들인 줄 알고 그만, 무례를 범했네요. 세상에 동료를 감싸는 그림자는 없으니까···.” 그녀는 조금씩 걸어오며 말했다.


레이지는 여전히 경계하며 칼을 겨눴다. 그러자, 은까마귀 가면을 쓴 여성은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잿빛의 머리카락과 함께 가면 아래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리 경계하지 말아요. 제 이름은 리메나, 그림자들을 쫓는 사냥꾼이에요.” 가면 아래의 얼굴에는 아름다움과 강함이 함께했다.


린은 차근히 리메나를 살폈다. 그녀의 눈동자는 붉은색을 띠었다. 짧은 잿빛 머리카락에서는 전혀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무서울 정도로 그녀의 피부는 창백했다. 린은 리메나에게서 무언가 신비한 느낌을 받았다.


레이지는 천천히 칼을 내려놓았다. “···먼저 온 사냥꾼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레이지는 경계와 의문이 섞인 물음을 던졌다.


“그렇겠지요. 저는 초대받은 손님이 아니니까요.” 한 손에 기묘한 가면을 든 리메나가 말했다.


“수상하지만 딱히 상관은 없겠지. 실력만 좋다면야.” 레이지는 날카로운 칼을 다시 칼집에 돌려놓았다. “그래서, 그림자들은 찾았나?” 레이지가 물었다.


“전혀요. 흔적을 여럿 찾긴 했지만요.” 리메나가 차분히 말했다.


“쳇···.” 레이지는 대놓고 싫은 티를 냈다.


“그래서, 그쪽은 뭔가 찾으셨나요?” 리메나가 물었다.


레이지는 고개를 저었다. “이 숲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말이야. 그다지, 꺼낼 만할 정보는 없군.”


“그러면 오십보백보군요.” 리메나는 다시 가면을 썼다. “서로 가던 길을 가는 게 좋겠어요.”


“맞는 말이로군.” 레이지도 동의했다.


리메나가 말했다. “이 숲은 넓고 외롭습니다. 다시 만날 때에도 부디, 그 모습 그대로이길.” 그 말과 함께 그녀는 어두운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넋을 놓고 수풀을 바라보던 린이 이내 정신 차렸다. “신비한 사람이었네요.”


“딱히 도움 되는 자는 아니었지.” 레이지는 아쉽다는 듯 이야기했다.


조금 시간을 허비했지만, 그렇게 큰 낭비는 아니었다. 그림자 숲은 그들을 기다려주었다. 그처럼 숲의 풍경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그림자 숲에서의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다.


그들이 그림자 숲의 이변을 찾아낸 것은 이틀이 지난 무렵에서였다. 고요하던 숲에 이상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짐승의 것과는 전혀 다른, 무엇인가 기괴한 소리였다.


어느샌가 레이지는 칼을 뽑아 들고, 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린도 허리춤에서 칼을 뽑으며 레이지를 따랐다.


기분 나쁜 비명은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린과 레이지는 계속해서 소리의 자취를 쫓았다. 비명의 끝에는 예상대로, 까마귀 가면을 쓴 그녀가 있었다.


“아···, 오랜만이네요.” 리메나는 거친 숨을 뱉으며, 린과 레이지를 맞이했다. 그런 그녀의 발아래에는 무수한 살점이 흩뿌려져 있었다. 기묘한 피 웅덩이도 함께였다.


레이지는 다시 칼을 거두었다. “그림자들을 만났나?” 레이지가 물었다.


“겨우 조금 전에야··· 그림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리메나는 갑옷에 묻은 살점을 털어냈다. “···정말 역겨운 녀석들이에요.”


레이지의 시선은 그림자들의 잔해로 향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나 보군.”


이야기로만 들었던 그림자들의 잔해를 겨우 처음 마주한 것이었다. 린은 그 역겨운 잔해를 보며, 겨우 흘러나오는 구토를 참아냈다. 그림자들의 살점이 내뿜는 악취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리메나가 말했다. “제법 오래 해왔던 일이지만, 언제나 쉽지는 않은 일이에요.” 린은 까마귀 가면 너머로 리메나의 표정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림자들을 모두 처리한 건가?” 레이지가 거듭 물었다.


“아뇨, 오직 하나였어요.” 리메나가 말했다. “···혹시 저것이 전부가 아니었나요?”


레이지는 급하게 다시 칼을 뽑았다. “···제기랄! 조심하거라, 린!” 레이지는 소리치며 주변을 살폈다. 린은 당황하며 레이지를 따라 칼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그림자들이 훨씬 빨랐다. 어두운 수풀 너머에서 튀어나온 그림자가 린을 덮치려 했다.


“끄악···!” 린은 소리치며 뒷걸음을 쳤다. 그녀는 재빨리 평정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허리춤에 자리한 칼을 뽑는 것으로, 정신을 되찾았다.


레이지의 칼날과 리메나의 화살이 그림자들을 막아냈다. “정신을 바짝 차려라, 린! 이놈들은 가장 먼저 네 머릿속을 노릴 테니.”


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눈앞의 그림자들에 집중했다. 어둡고 차가운 수풀에서 튀어나온 그림자들의 위세는 무척 강렬했다. 하지만, 레이지는 그림자들의 공격을 쉽게 막아냈다.


리메나의 화살이 새로운 그림자를 꿰뚫었다. 화살에 닿은 망령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림자들은 흩어지고, 다시 모이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레이지의 칼날과 함께, 그림자들의 움직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곧, 그림자 숲의 그림자들은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린에게는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 런 시간 속에서 린은 겨우 제 한 몸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것으로 메이룬에 한 발짝 가까워졌어.” 레이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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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마지막 장작 (3) 아라기 21.09.04 2 0 7쪽
73 마지막 장작 (2) 린 21.08.07 4 1 7쪽
72 마지막 장작 (1) 에리크 21.07.17 6 1 7쪽
71 안개빛 희극 (9) 카이 바르도나 21.06.19 18 0 8쪽
70 안개빛 희극 (8) 하인츠 21.05.29 14 1 7쪽
69 안개빛 희극 (7) 린 21.05.15 10 1 8쪽
68 안개빛 희극 (6) 글라드 21.05.01 14 1 7쪽
67 안개빛 희극 (5) 아라기 21.04.10 26 1 8쪽
66 안개빛 희극 (4) 하란 21.03.20 117 1 9쪽
65 안개빛 희극 (3) 에리크 21.03.13 57 1 7쪽
64 안개빛 희극 (2) 카이 바르도나 21.02.27 43 1 7쪽
63 안개빛 희극 (1) 하인츠 21.02.13 42 1 7쪽
62 업의 그림자 (9) 에리크 +1 21.01.30 59 2 9쪽
» 업의 그림자 (8) 린 21.01.16 57 1 8쪽
60 업의 그림자 (7) 하란 21.01.02 46 2 8쪽
59 업의 그림자 (6) 하인츠 20.12.26 91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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