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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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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정상호
작품등록일 :
2020.05.04 01:40
최근연재일 :
2022.03.19 23:5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3,517
추천수 :
125
글자수 :
397,167

작성
20.11.14 23:50
조회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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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8쪽

업의 그림자 (1) 에리크

DUMMY

마침내 에리크는 두 눈의 자유를 되찾았다.


하지만 에리크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에리크가 자리한 공간에는 오직 어둠만이 가득했다.


에리크는 두 눈 대신 두 손으로 주변을 살펴보려 했다. 에리크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손을 주변으로 뻗으려 했다.


하지만 에리크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에리크의 손에는 기껏 되찾은 자유 대신, 다른 무언가가 그를 옥죄고 있었다.


에리크는 손목을 감싼 차갑고, 무거운 것의 정체를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거친 수갑에 자유를 빼앗긴 에리크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으!”


하지만, 그마저도 끝마치지 못했다. 에리크는 소리를 제대로 뱉지 못하고, 연거푸 헛기침을 내뱉었다. 오랫동안 말을 뱉지 않았던 에리크의 목은, 그 여파로 꽤 메말라 있었다.


시끄러운 재채기가 어둠 속에 울렸다. 에리크가 자리한 곳은 좁고, 추운 곳이었는지 마른 입에서는 차가운 입김이 쏟아졌다. 에리크는 겨우 흐르는 침으로, 주린 목을 달랬다.


하지만, 그것으로 목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막처럼 메마른 목을 겨우 추스르자, 뒤따라 다른 고통이 찾아왔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주린 배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렸다.


에리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붉은 머리의 소년은 힘겹게 소리쳤다. 강철로 묶인 두 손을 차가운 바닥에 강하게 내리쳤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리쳤다. 돌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좁은 어둠 속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울렸다.


에리크는 입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여긴 어디야!” 에리크는 거친 숨을 고르며 대답 없는 외침을 계속해서 뱉어댔다. “대체 누가 날 가둔 거야!”


에리크의 의미 없는 외침은 오래가지 않았다. 배고픔은 에리크를 더욱 고단하게 만들었다. 에리크는 강철에 묶인 양손을 허무하게 내려놓았다.


그때, 어둠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 소리였다. 에리크는 숨을 죽이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발걸음 소리는 어둠 너머, 아마도 에리크를 가둔 감옥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는 조금씩 에리크를 향해 가까워졌다.


또각또각 소리가 낮고 또렷하게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는 에리크가 갇힌 감옥 앞에서 멈춰 섰다. 에리크는 마른 침을 삼키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어둠 속에서 조금씩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희미한 불빛 사이로 쇳소리가 들렸다. 감옥 문에 달린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소리겠거니 여겼다.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눈을 멀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빛이 어둠을 뚫고 나왔다. 갑자기 튀어나온 빛은 에리크의 시야를 잠시 앗아갔다.


“제발 얌전히 좀 있으라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는 목소리가 짜증을 섞으며 말했다.


에리크는 다시 눈의 자유를 되찾았다. 어둠이 가득했던 감옥에는 외로운 빛이 자리했다. 감옥 문을 열어젖힌 사내는 조그만 제등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내의 얼굴에는 지난날, 언덕에서 보았던 기묘한 까마귀 가면이 덮여 있었다.


에리크의 뒤통수가 조금씩 아려왔다. 그 상처는 ‘프레이의 달’ 아래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에그윈···.’ 분명 그런 이름이었다. 가면 위에 희미하게 보이는 푸른 두건이 더욱 기억을 선명하게 해주었다.


“···날 납치한 이유가 뭐지?” 에리크는 까마귀 가면을 향해 물었다.


까마귀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내는 손에 든 무언가를 에리크를 향해 집어 던졌다. 딱딱한 빵이었다. “그걸로 허기라도 달래라고.” 까마귀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에리크는 그 짜증에 꺾이지 않았다. “제대로 대답해!” 에리크는 없는 힘을 쥐어짜 내며 소리쳤다.


“···시끄럽군.” 에그윈이라는 이름의 까마귀 가면은 손에 든 제등을 슬그머니 벽에 걸어두었다. 그리고 사내는 구석에 있던 의자를 가져와 살며시 앉았다. 삐걱대는 소리가 좁은 감옥에 울렸다.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말이야.”


그야말로 적반하장인 상황이었다. 계속해서 짜증을 맞받아치려 했던 에리크는 잠시,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갈수록 목은 메말라갔고 배는 굶주려갔지만,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날 인질로 무엇을 얻어내려는 거지? ···마이아르의 영주가 목적인가?” 에리크가 추측을 섞어 물었다.


의자에 앉은 까마귀는 매끈한 턱을 수차례 만지작댔다. “그래, ···그랬었지. 그런 계획이었었지.” 사내는 크게 한숨을 쉬며 푸른 두건을 벗었다. 희끄무레한 머리카락이 불빛에 흔들렸다.


“왜? 차질이라도 생겼나?” 에리크는 확신하며 물었다.


“너무 지껄이지 말라고, 사생아.” 사내는 짜증을 내며 꾸짖었다. “···제대로 확인했었어야 했는데.” 까마귀는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내며 머리를 힘껏 긁어댔다.


“그것참 아쉽군.” 에리크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까마귀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에리크에게 다가왔다. 사내는 에리크가 반응하기도 전에, 에리크의 두 손을 옥죄고 있는 강철을 걷어찼다. 에리크는 강렬한 충격과 함께, 벽에 내동댕이쳐졌다.


아픔은 곧바로 찾아왔다. “···크악!” 발목에도 사슬이 달려 있었기에, 그리 멀리 날아가지는 않았다. 피를 토하며 벽에 부딪힌 에리크는 까마귀를 노려보았다.


까마귀 사내는 덩그러니 놓인 빵을 집어 들고, 다시 에리크를 향해 던졌다. “뭐라도 먹어 놓는 게 좋을 거라고. 네 아버지의 발목을 잡기 싫다면 말이야.” 사내는 그 말을 남기고 벽에 걸린 제등을 향해 걸어갔다.


에리크는 입에 고인 피를 거칠게 뱉었다. 에리크는 사내의 뒷모습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테오는 어디에 있지?”


사내는 제등을 집어 들고, 다시 에리크를 향해 뒤를 돌았다. “네 친구를 말하는 건가? 네 친구라면 네 못지않은 대접을 받고 있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까마귀는 가면 아래로 웃음을 던지며, 감옥을 떠나갔다.


다시 에리크를 가둔 감옥에는 어둠이 찾아왔다. 에리크는 까마귀가 집어던졌던 빵을 구석으로 내동댕이쳤다. “퍽이나 안심되는군.” 에리크는 혀를 차며 눈을 감았다. 감옥은 춥고 돌바닥은 딱딱했지만, 그 어떤 것도 쏟아지는 에리크의 잠을 방해할 순 없었다.


쿵.


에리크의 잠을 깨운 것은 거친 파열음이었다. 에리크는 수상한 인기척과 함께 눈을 떴다. 감옥에는 기묘한 불빛과 함께 낯선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는 기묘한 까마귀 가면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푸른 두건을 둘렀던 에그윈과는 체형이나, 느낌이 사뭇 달랐다.


“···!” 깜짝 놀란 에리크는 아무런 말도 뱉지 못했다. 그저 가만히 사내를 노려보았다. 에리크가 얼마나 잠을 청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반나절이 지났는지, 하룻밤이 지났는지 꽉 막힌 감옥 속에서는 도통 알 수 없었다.


사내의 키는 놀라울 정도로 훤칠했다. 외로운 횃불을 든 사내는 조용히 감옥의 구석으로 걸어갔다. 사내는 에리크가 버려두었던 빵을 집어 들었다. 빵에는 이름 모를 벌레들이 득실득실했다. 사내는 지긋이 그 빵을 쳐다보았다.


“···하나도 손을 대지 않았군.” 사내의 목소리가 감옥에 가득 찼다. 머릿속을 울리는 매력적인 목소리였다.


덕분에 에리크는 한풀 공손한 말투를 취했다. “네놈들이 주는 건 죽어도 입에 대지 않겠다.” 그럼에도 에리크의 말투는 공격적이었다.


키 큰 까마귀는 에리크의 눈동자를 지긋이 쳐다봤다. 에리크는 질세라, 더욱 맹렬하게 사내를 노려보았다. 사내는 에리크에게 닿을 듯 말 듯, 희미하게 코웃음을 쳤다.


사내는 벌레 먹은 빵을 다시 바닥에 되돌려놓았다. “···맘에 들지 않는군.” 사내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거친 강철 문 너머로 돌아갔다. 문이 닫히는 파열음이 들렸고, 감옥에는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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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마지막 장작 (9) 에리크 22.03.19 20 0 12쪽
79 마지막 장작 (8) 하인츠 22.02.26 14 0 12쪽
78 마지막 장작 (7) 아라기 22.02.19 16 0 8쪽
77 마지막 장작 (6) 하란 22.02.12 14 0 7쪽
76 마지막 장작 (5) 로나트 21.11.13 26 0 8쪽
75 마지막 장작 (4) 글라드 21.10.09 15 0 7쪽
74 마지막 장작 (3) 아라기 21.09.04 25 0 7쪽
73 마지막 장작 (2) 린 21.08.07 17 1 7쪽
72 마지막 장작 (1) 에리크 21.07.17 17 1 7쪽
71 안개빛 희극 (9) 카이 바르도나 21.06.19 32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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