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수호자의 노래

수호자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정상호
작품등록일 :
2020.05.04 01:40
최근연재일 :
2022.03.19 23:5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3,503
추천수 :
125
글자수 :
397,167

작성
20.10.31 23:50
조회
52
추천
2
글자
10쪽

백야 (8) 하인츠

DUMMY

하인츠는 대장군의 탑에서 이른 저녁의 프레이루엘을 내려다보았다.


탑에서 홀로, 이른 저녁을 마친 하인츠는 여운을 만끽했다. 가을하늘은 석양으로 물들어갔다. 달은 붉게 빛나는 하늘을 비집으며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파먹은 듯, 달은 보름달에서 조금 부족한 모양새였다.


오랜만에 찾은 여유였다. 프레이루엘에 발을 붙인 이후, 끝없이 이어진 회의는 어느덧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주한 일정 덕분에 프레이의 달은 구경도 하지 못했기에, 하인츠는 조금 아쉬움이 들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하인츠의 뺨을 간질이는 바람의 향기는 농익은 가을의 향기가 났다. 상처는 거의 아물었지만, 아직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하인츠는 창문을 닫으며, 다시 대장군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마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잠깐의 여유를 방해하는 소음이 들리자, 하인츠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인가?” 하인츠는 짜증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문 너머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리숙한 로나트 아우스타르의 목소리였다.


“저녁도 끝마칠 시간에 웬 손님이냐?” 하인츠가 소리쳤다.


문 너머에서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내, 로나트 아우스타르가 말을 꺼냈다. “덩치가 큰 사내였습니다. 헤스마르 케멜이라고 이름을 밝혔지요.”


‘헤스마르 케멜···?’ 하인츠는 무뚝뚝한 사내를 떠올렸다. “아무렴 괜찮겠지. 들라 하여라.”


문 너머의 인기척이 사라졌다. 하인츠는 참나무로 된 책상에 걸터앉고는 손님을 기다렸다. 책상 위에는 손잡이가 달린 둥그스름한 술병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언젠가 두었던 과일주가 있었다. 하인츠는 적당한 크기의 잔에 조금 술을 따랐다.


하인츠가 포도의 향긋함을 즐길 무렵,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조금 전보다는 조금 억센 두드림이었다. 하인츠는 문 너머의 다른 인기척을 눈치챘다.


“들어오도록 하시오.” 하인츠의 말과 함께 대장군의 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서 보인 얼굴은 헤스마르 케멜이었다. 언젠가 프레오른 황자와 함께했었던 얼굴이었다.


덩치 큰 사내는 예의 바르게 절했다. “좋은 저녁이올시다, 대장군 나리.”


“반갑소, 헤스마르 케멜.” 하인츠는 입에 머금은 포도주를 꿀꺽 삼켰다. “그래서 이 좋은 저녁에 무슨 일이시오?” 하인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헤스마르 케멜 역시 직설적인 사내였고,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도 마찬가지였다. “황자께서 찾으십니다.”


하인츠는 헤스마르 케멜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많은 별이 밤하늘에 빛났고, 밤거리에는 어느덧 인적이 끊기기 시작했다. 카텔루드 만신전 앞에서 그들은 멈춰 섰다.


“황제께서 이런 곳에 계시오?” 하인츠는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목소리를 줄이시오.” 헤스마르 케멜은 하인츠를 향해 속삭였다. 그리고 그는 잠시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보는 눈은 없는 것 같소이다. 황제께서 기다리실 테니, 어서 들어갑시다.” 헤스마르는 최대한 조심하며, 만신전 내부로 들어섰다.


밤의 만신전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헤스마르는 기둥에 걸린 횃불을 집어 들고, 만신전의 복도를 걸었다. 평소에는 순례자와 수도승으로 가득한 만신전은 활기가 없어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헤스마르는 어느 복도 끝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막다른 벽에는 커다란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기둥에는 불 꺼진 촛대가 달려 있었다. 헤스마르는 막다른 벽으로 다가가, 벽에 달린 촛대를 붙잡았다. 촛대가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이자, 막다른 벽 너머로 다른 길이 드러났다.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이었다.


“만신전에 이런 숨겨진 게 있었을 줄이야···!” 하인츠는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헤스마르는 하인츠를 무시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하인츠도 헤스마르가 손에 든 횃불에 의지하며, 어두운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은 그다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계단의 끝에는 또 다른 숨겨진 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헤스마르가 몇 차례 벽을 두드리자, 다시 벽이 사라지고 숨겨진 방이 드러났다. 텁텁한 공기와 함께 좁은 방의 모습이 하인츠의 눈에 들어왔다.


좁은 방을 은은한 촛대 몇 개가 밝히고 있었다. 좁은 방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대리석 원탁이었다. 차가운 원탁 주변으로 사내들이 앉아있었다.


상석에는 프레오른 황자가 있었다. 벽에 고급스러운 지팡이를 세워놓은 황자는, 언제나처럼 여유로운 표정으로 하인츠를 맞이했다.


하인츠는 대리석 원탁의 비어있는 자리를 찾았다. 마침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가 비어있었기에, 하인츠는 재빨리 자리를 찾아갔다. 이미 꽤 대화가 무르익었는지, 원탁에는 술잔을 주고받은 흔적이 가득했다.


“제때 오셨군요, 대장군.” 프레오른 황자가 나긋하게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황자 전하.” 대장군은 인사를 건네며, 주변을 살폈다. 대부분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렇기에 알고 있는 얼굴은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아서 하이드른 공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 반대편에는 특이한 가면을 쓴 사내가 있었다. 하인츠의 기억에는 게르한 발루케라는 이름의 재무장관이었다. 재무장관은 알 수 없는 눈빛을 띄웠다.


헤스마르가 열렸던 숨겨진 문을 제자리로 돌려놓자, 좁은 방에는 고요함과 먹먹함이 감돌았다. “대장군께서 오셨으니, 이야기를 시작하지요.” 프레오른 황자가 말을 꺼냈다.


오직 은은한 촛대가 밝히는 방에 중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황자에게로 향했다. 하인츠는 눈치를 살피며, 좁은 방에 있는 이들의 얼굴을 머리에 새겼다. 그곳에 모인 이들이 바로, 프레오른의 측근이었다. 그들의 얼굴을 읽어두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하인츠는 생각했다.


또한, 하인츠는 누구보다 프레오른과 가까운 이들의 모임에 자신이 초대받은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그 이유는 좁은 방의 이야기를 통해 도출될 것이라고 하인츠는 판단했다.


프레오른 황자는 조용한 분위기를 읽은 듯, 곧바로 입을 열었다. “북부에서 큰일이 났습니다, 대장군. 모한 바르도나가 반기를 들었다고 하더군요.” 프레오른 황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했다.


하인츠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틀림없습니다, 공. 까마귀가 물어다 준 믿음직한 정보거든요. 아마 내일모레쯤이면, 회의에서도 논의될 사항입니다.” 프레오른 황자는 말의 무게감과는 달리, 골치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그 사실을 굳이 제게, 이 자리에서 언질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하인츠는 원탁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황자는 천천히 앞에 놓인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잠시 입에 머금은 술을 음미하는 듯, 흉측한 눈을 이리저리로 움직였다. 이내, 황자는 꿀꺽 소리를 내며 개운한 소리를 냈다. “나는 그대를 북부로 보내려고 합니다, 모한 바르도나를 대적할 진압군의 사령관으로 말이죠.”


“예···?” 하인츠는 당황하며 되물었다. “하지만, 저는 이제 막 대장군이 됐을 뿐입니다. 저 말고도 다른 적임자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인츠는 아서 하이드른 공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황자는 단호했다. “이제 막 대장군이 되었으니, 그대가 적임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대가 대장군의 자리에 정말로 적합한지, 시험할 중요한 기회가 되지 않겠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대장군. 병사는 회의에서 충분히 마련될 거에요.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기사단이나 다른 영주들의 도움을 약속드리지요. 물론, 저의 힘도 맘껏 빌려드리겠습니다. 모한 바르도나에게 명예를 알려주고 오세요.” 황자가 말했다.


하인츠는 무어라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황자의 말은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좁은 방과 대리석 원탁, 은은한 촛불은 그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이중으로 된 숨겨진 문을 지나, 만신전을 빠져나왔다. 프레이루엘에는 벌써 해가 밝아왔다. 어떤 밤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피곤함이 하인츠를 덮쳤다. 따뜻한 수프와 부드러운 침대를 꿈꾸며 하인츠는 천천히 대장군의 탑으로 돌아갔다.


대장군의 탑에는 사용인의 손길이 가득했다. 꽉 닫힌 문 앞에는 사용인들이 가져다 놓은 단출한 요리가 있었다. 하인츠는 천을 뒤집어 씌어놓은 쟁반을 집어 들며, 집무실로 들어섰다.


하인츠는 참나무 책상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그는 가볍게 포도주를 한잔 들이키고, 쟁반을 덮은 천을 치웠다. 쟁반에는 고기나 수프, 먹기 좋은 과일이 있었다. 하인츠는 수프를 그릇째 입으로 가져갔다. 수프는 아직 따뜻했다.


수프 그릇을 내려놓다가, 하인츠는 쟁반에 놓인 편지를 발견했다. 하인츠는 끈으로 둘둘 말은 양피지를 천천히 펼쳐, 내용물을 확인했다. 조그만 편지는 마이아르 저택의 집사 카를 아우스타르 경에게서 온 것이었다.


“친애하는 영주님께. 간단하게 용건만 전합니다. 공의 아드님 에리크와 하인 테오가 사라졌습니다. 저택에서는 그들을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막을 전하기 위해, 마님께서는 올루곤 아우스타르를 영주님께 보내기로 했습니다. 언제나 멜리시아의 가호가 있기를. 카를 아우스타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수호자의 노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2024년 3월 30일 휴재 공지 NEW 22시간 전 1 0 -
공지 2024년 3월 23일 휴재 공지 24.03.23 1 0 -
공지 2024년 3월 16일 휴재 공지 24.03.15 1 0 -
공지 2024년 3월 9일 휴재 공지 24.03.09 2 0 -
공지 2024년 3월 2일 휴재 공지 24.03.02 1 0 -
공지 2024년 2월 24일 휴재 공지 24.02.23 1 0 -
공지 2024년 2월 17일 휴재 공지 24.02.16 1 0 -
공지 2024년 2월 10일 휴재 공지 24.02.09 1 0 -
공지 2024년 2월 3일 휴재 공지 24.02.02 2 0 -
공지 2024년 1월 27일 휴재 공지 24.01.26 1 0 -
공지 2024년 1월 20일 휴재 공지 24.01.19 1 0 -
공지 2024년 1월 13일 휴재 공지 24.01.12 1 0 -
공지 2024년 1월 6일 휴재 공지 24.01.05 1 0 -
공지 2023년 12월 30일 휴재 공지 23.12.29 1 0 -
공지 2023년 12월 23일 휴재 공지 23.12.22 1 0 -
공지 2023년 12월 16일 휴재 공지 23.12.15 1 0 -
공지 2023년 12월 9일 휴재 공지 23.12.08 1 0 -
공지 2023년 12월 2일 휴재 공지 23.12.01 1 0 -
공지 2023년 11월 25일 휴재 공지 23.11.25 2 0 -
공지 2023년 11월 18일 휴재 공지 23.11.17 3 0 -
공지 2023년 11월 11일 휴재 공지 23.11.10 2 0 -
공지 2023년 11월 4일 휴재 공지 23.11.03 2 0 -
공지 2023년 10월 28일 휴재 공지 23.10.26 3 0 -
공지 2023년 10월 21일 휴재 공지 23.10.20 2 0 -
공지 2023년 10월 14일 휴재 공지 23.10.14 4 0 -
공지 2023년 10월 7일 휴재 공지 23.10.05 3 0 -
공지 2023년 9월 30일 휴재 공지 23.09.28 4 0 -
공지 2023년 9월 23일 휴재 공지 23.09.21 3 0 -
공지 2023년 9월 16일 휴재 공지 23.09.15 7 0 -
공지 2023년 9월 9일 휴재 공지 23.09.08 3 0 -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