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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 신의 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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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요로운
작품등록일 :
2020.06.0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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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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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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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VIP 클럽 -6

DUMMY

티세뉴는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뒀다.


분명 똑같은 냄새가 났다.


틀리지 않았다.


생긴 모습은 달랐지만, 분명히 그였다.


라님께 바쳤던 세월들을 걸고, 티세뉴는 맹세할 수 있었다.


뻗었던 손끝에서 옅은 냄새가 풍겼다.


“무슨 일이십니까?”


티세뉴는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상아색 머리가 반들반들하게 빗질된 채로 빛났다.


“아, 라 신전 분이군요.”


과장된 예의가 돌아왔다. 자신을 알아봤다는 생각에, 티세뉴는 방어적으로 한걸음 물러섰다.


“겁먹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이곳의 주인, 타타입니다. 빙그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타타가 말했다.


그의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샌님처럼 생긴 얼굴이었지만, 티세뉴는 용병으로 굴렀던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구린 냄새가 나는 자였다.


예전에 그녀의 뒤통수를 거하게 때렸던 마법사가 딱 저런 분위기를 풍겼다.


인상 좋은 샌님 같으니라고, 티세뉴는 속으로 걸쭉하게 욕을 퍼부었다.


몬스터를 겨우 빈사상태로 만들어놓고 천천히 죽이려던 그녀의 뒤통수를 파이어볼로 후려갈긴 그 마법사놈.


몬스터고 뭐고 일단 그 새끼부터 족쳐야 한다는 생각에, 당장 달려들어 마나하트를 박살내버렸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분이라면, 이미 들어가셨습니다.”


티세뉴는 생각을 멈추고 타타를 바라보았다.


타타의 눈이 흘긋, 사라진 문에 머물다가 다시 티세뉴에게로 향했다.


“아시다시피, 행사 중이지 않습니까. 그분이 참가자라서 말입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오늘은 무슨 행사가 있다고 했다.


아까 본 세 명의 라도 그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라고 들었었다.


‘그럼 가노도...?’


그가 카르넬의 모습을 한 것도 이해가 갔다.


애초에 가노는 카르넬 신전에서 몸을 의탁하고 있었으니까.


익숙한 신의 모습을 선택한다면, 가노가 카르넬을 택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기왕이면 라님을 택해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티세뉴는 가노에게는 닿지 않을 정도의 소리로 중얼거렸다.


“혹시 만날 방법은 없....습니까?”


티세뉴는 말끝을 흐리다 존댓말로 끝맺음했다.


본인을 타타라고 소개하는 걸 보니, 타타 본인이 맞았다.


신이 아닌 자가 본인을 신으로 소개한다면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 라의 햇살인 티세뉴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신을 사칭하는 것은 매우 큰 문제였다.


신의 모습을 한 자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지금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흠, 타타는 티세뉴의 얼굴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상품을 품평하는 듯한 그의 눈초리에 티세뉴는 어깨를 움츠렸다. 제법 이름깨나 날리는 용병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것 따위는 소용이 없을 정도로 두럽기만 했다.


상인의 신.


그래도 신은 신이었다.


“본래라면 조금 힘듭니다만.”


타타는 뜸을 들이다 마저 입을 열었다.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어떤....”


“이번에 새로 들어오신 분이 맞으신가요?”


라님의 상점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다는 점을 떠올리며, 티세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가능하겠군요.”


사락.


타타가 공중에 손을 뻗자, 양피지 하나가 부드러운 천처럼 그의 손에 감겼다.


타타는 양피지를 티세뉴에게 내밀었다.


[WOM 이용약관]


“여기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손가락 깨물어보셨죠? 피 나오면 잉크 대신 사용하시면 되고요.


타타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양피지의 이곳저곳을 손으로 짚었다.


티세뉴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값싼 물건을 바가지 씌워서 강매하는 사기꾼의 느낌이 풀풀 풍겼으니까.


“조건이 있습니까?”


던전에 들어가기 전, 철칙이 있다.


괜히 친절한 놈은 의심할 것.


아, 타타가 어색하게 웃었다. 뒤가 구린 놈들은 다 저렇게 웃는 모양이지.


찬란한 빛을 가진 라님과는 사뭇 다른 신이었다.


신도 신 나름이다.


티세뉴는 속으로 쯧, 혀를 찼다.


“믿고 계신 신을 멀리해야 합니다.”


한참을 주저하다 타타가 입을 열었다.


티세뉴는 미간을 찌푸렸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어떻게 감히 라님을 멀리할 수 있어?’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타타가 슬쩍 덧붙였다.


“대신 저는 음... 그래, 티세뉴님이 잊어버린 것을 돌려드리지요.”


잃어버린 것?


티세뉴는 기억을 더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잃어버린 것이 없었다.


“잃어버린 기억조차 없다면, 그만큼 더 중요한 것이지요.”


타타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것 아십니까? 라님이 신관을 들일 때, 무언가 하나씩 가져가십니다.”


그분의 기억창고를 채우는 게 바로 그런 것이죠. 타타의 말에, 티세뉴는 라님의 정신 속에 꽂혀 있던 수많은 책들을 떠올렸다.


빼곡하게 꽂힌 책들이 수도 없이 늘어선 책장들.


“그리고 다행히도, 저는 그분이 당신에게서 무엇을 가져갔는지 알 것 같군요.”


안타깝게도 말입니다. 타타의 말이 티세뉴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궤변이다.


그분이 절대 무언가를 앗아가실 리가 없다.


무려 신계의 일인자이신 그분이, 무에 부족한 게 있다고 그런 일을 할까?


이건 단순히, 그녀와 라님을 갈라놓기 위한 상인의 이간에 불과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도무지 모르겠군요.”


티세뉴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쪽이 비정상적으로 힘이 세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까?”


그녀는 힘이 셌다. 오크의 머리통을 양 손으로 뽑아낼 정도로. 티세뉴는 어릴 적부터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다.


신께서 예비한 바가 있어 이렇게 강한 힘을 주셨다고.


그분이 바로 라 님이시다.


“아티팩트들도 제한 없이 착용하시고 있으시겠지요?”


아티팩트에 제한이 있었나?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타타가 쐐기를 박듯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주변에 대해 민감하고요. 특히 후각 쪽으로.”


“냄새를 잘 맡는데. 그게 어때서요?”


한때는 수인과의 혼혈을 의심해 볼 정도로, 티세뉴의 코는 정확했다.


한번의 의심은 있었지만, 그 의심 자체는 그릇된 것이었다.


절대 잘못 맡았을 리 없었던 냄새였다.


무심코 벌렁이는 코를 보면서 타타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지요. 제가 알던 그쪽은 라의 서재에 꽂혀 있을 테니.”


“그게 무슨...”


“그쪽이 쫓던 사람.”


가노?


티세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이름이 왜 여기에 나오는 거야?


“그도 WOM의 회원입니다. 잃어버렸던 것을 찾아가셨지요.”


물론 공짜는 아니었지만, 타타는 굳이 그녀에게 그 말을 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굳이 과거를 잊고 사는 자에게 그것을 깨닫게 하려는 건, 단순한 변덕에 불과했으니까.


그녀가 하지 않겠다면 그게 다였다.


티세뉴는 덤에 불과했다.


진짜는 이미 행사를 핑계로 잡아두었으니까.


“WOM은 라님처럼 여러 신들의 신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공급하는 가게입니다.”


타타는 깃펜으로 양피지의 한쪽을 짚으며 말했다.


“선택받으신 분들에게 열리는 곳이고, 그러기에 몇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티세뉴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양피지를 훑었다.


“종교가 없을 것.”


“네. 그래서 여쭸던 겁니다.”


라님의 햇살로 살아온 세월들을 떠올렸다.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그분 아래에서는 행복했다.


고아로 살아온 그녀를 따스하게 품어주던 라님과 그분의 다른 햇살들.


신도들을 칭하는 말인 ‘햇살’은 그 말처럼 따뜻했다.


“그리고.”


타타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작게 소리를 죽였다.


“잃어버린 기억에는 당신의 부모도 있습니다.”


“뭐...”


그럼 조용히 말한 이유가 없잖습니까. 놀라 소리치려는 티세뉴의 입을 타타가 틀어막았다.


티세뉴는 혀를 씹어 생긴 통증을 삼켰다.


라님.


내 부모님.


잃어버린 기억.


티세뉴의 저울추가 미친 듯 흔들렸다.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라님의 상점에서 라님의 신력만을 구매한다면 어떨까?’


티세뉴가 간신히 떠올린 결론이었다.


“이런 경우가 이전에도 있었습니까?”


입을 가린 손이 떠나자, 티세뉴가 말했다. 타타는 망설이지 않고 네, 라고 답했다. 티세뉴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얼토당토 않은 생각은 아니다.


그렇게 하면 될 것이다. 라님의 상점에서만 물건을 사면 될 것이다.


“서명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행사에는 참여하실 수 없지만, 방금 들어간 고객님을 만나실 수 있도록 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가입 선물이랄까요.


타타가 씨익 웃었다.


이 여자는 덤이었다.


없어도 됐지만, 있다면 그에게 아주 큰 힘이 될 만한 덤.


티세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깨물어 피를 내고는 망설이지 않고 종이에 휘갈겼다.


[티세뉴 라이탄]


“아주 잘 선택하셨습니다.”


파앗


타타의 말과 함께 양피지에서 빛이 뿜어져나왔다.


티세뉴는 질끈, 눈을 감았다.



***



밖은 놀 한 마리의 소리도 없을 정도로 조용하다.


무슨 VIP행사가 이래.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건 안다.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로는, VIP들만을 위한 패션쇼를 해서 구매하도록 한다던가, 백화점 한 층을 다 사게 한다던가.


이런 식으로 경매를 한다던지, 방에 들어가게 한다던지, 기선제압을 한다던지 하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


지나칠 정도로 조용한 밖에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내 계획을 실현시키려면 차라리 조용한 편이 낫다.


나는 새끼손톱만큼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잘 안 보였다.


조금 더 열었지만 안보이기는 매한가지였다.


“대체 어떻게 된 곳이람.”


내 인생처럼 새까만 앞을 보며 투덜거리며 문을 더 밀었다.


뻑뻑한 느낌이 들면서 문이 더 밀리지 않았다.


“둘님.”


문에 입이 달렸나.


높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위로 향했다.


그리고.


‘헉.’


석고상같이 새하얀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까만 몸뚱아리와는 완전히 대조된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존재의 몸을 보고 착각했던 셈이다.


얼굴에 열이 쏠렸다. 나는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타타님이 부르십니다.”


그 양반이 왜?


목젖 위로 튀어올라오르던 말을 꾹 눌렀다. 여긴 신계다. 그리고 정확하게는 그 신의 별채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보다 약하니까, 부른다고 하면 넙죽 달려가야 하는 게 응당하다.


“어서 앞장서지 않고 뭐하시나요.”


그러니까, 절대 나는 비굴하지 않다.


이 사람인지 석고상인지 모를 인물의 인상이 더러워서 이러는 게 절대 아니다.


다행히 그는 바로 뒤를 돌아서 계단을 내려갔다. 양쪽으로 갈라진 계단이 모이는 곳으로 도착하자, 석고상은 벽을 두 번 두드렸다.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작은 소리가 났다.


벽이었던 곳에서 천천히 선이 그어지더니, 이내 문 모양의 무언가가 생겨났다.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소매 끝을 꽉 잡았다.


하나도 티나지 않았을 것이다.


석고상은 문 앞에서 비켜섰다. 나는 문고리를 잡았다.


슬쩍 돌려 열자 타타의 감정소가 눈 앞에 나타났다.


그의 취향을 반영하여 새로 리모델링이라도 했는지, 꽤 많이 바뀐 모습이었지만.


‘마치 잡지를 보는 것 같아.’


유명 매장의 쇼룸을 보는 듯한 모습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발을 내딛자 문이 자동으로 닫히고, 평온한 노래가 천천히 흘러나왔다.


“오셨습니까.”


그리고 반듯하게 의자에 앉은 타타.


새하얀 정장에, 반질하게 닦은 모노클이 번쩍인다.


멀끔하게 치워진 올리브색 책상에는 깃펜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돌이 두 개. 그리고 은은하게 빛나는 잔이 하나.


“부르셨으니까요.”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그에게 말했다. 타타의 입이 호선을 그렸다.


“일반적인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는데, 어떤 게 더 좋으신가요?”


“일반적인 소식이요.”


좋은 소식은 조금 있다 들어야 더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선은 ‘일반적인’ 소식.


“그럼 이걸.”


타타는 미리 준비했던 것처럼 돌돌말린 서류 세 개를 내밀었다.


[구매 이력]


[추천 상품]


[상태창]


이런다고?


나는 서류에 붙은 종이를 보며 눈을 꿈뻑였다.


추천 상품이나 구매이력이야 그렇다 치자.


이러니저러니 해도 WOM은 상점이니까.


그런데 상태창이라니.


“아, 그거.”


방금 반말 들은 것 같은데. 잘못 들었겠지. 나는 타타의 입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가 어떻게 상태창을 알고 있지?


“개발자가 쓴 겁니다. 저건. 저는 거기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모릅니다.”


무슨 글자인지 읽을 수 없어서 말이지요.


타타가 손을 휘휘 저으며 펼쳐 보라는 듯한 재스쳐를 취했다. 나는 상태창은 밀어두고, 구매 이력을 펼쳤다.


“뭐 대충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추천 상품과 비교해 보시면, 어떤 부분에서 부족한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몇몇 상품에는 심지어 별표까지 쳐져 있었다.


아래에는 붉은 표시로 ‘경매 출품’이라고 도장이 작게 찍혀 있었고.


대충 이걸 사라는 말이었다.


참여 전에 받았던 그 칩으로.


생각에 잠긴 내 귓가에 갑자기.


우당탕.


무언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타타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몇 번 톡톡 두드린 다음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일단 그 서류들은 가노님이 보관하시는 걸로 합시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소식은 조금 있다가 마저 전해드려야 할 것 같군요.”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어서 말입니다.


타타가 몸을 일으켜 감정소 한쪽으로 향했다. 나는 종이를 말아쥘 새도 없이 대충 접어 한 손에 들고는 그를 따랐다.


“가노님께 반가운 얼굴일 겁니다.”


타타가 씩 웃으며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문이 열렸다.


“이런 젠장.”


문의 뒤에서는, 당근색 머리칼을 한 사이비가 괴상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작가의말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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