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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 신의 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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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요로운
작품등록일 :
2020.06.07 00:04
최근연재일 :
2021.09.0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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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5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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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VIP 클럽 -4

DUMMY

“어디서 어줍잖게 신을 흉내내고 있어!”


몸을 일으키자마자 바닥에 나동그라진 열다섯이 고함을 내질렀다. 라의 얼굴이 시뻘개져 있다. 타타가 재미있는 것이라도 본 것 마냥 풋 하고 웃었다.


그러고보니 그렇다.


신이 저렇게 화내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그 거만한 라의 얼굴로.


울그락붉으락 달아오른 얼굴의 라가 나와 타타를 향해 공평하게 삿대질을 했다.


저 사람, 오래 살기는 글렀군.


나는 혀를 찼다.


“둘 다 한패지! 내 주머니를 훔쳐가 놓고!”


목소리 하난 좋단 말야. 내용은 전혀 아니지만.


곧이어 명을 달리할 안타까운 사람은, 우리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고함질렀다.


“라님보다 힘도 떨어지는 어줍잖은 신들 물건이나 많이 구매하는 걸...읍!”


열다섯은 말을 마치지도 못한 채 타타에게 입이 붙들렸다. 몸을 버둥거리는 그의 옆 허공에서 사람 몸뚱이만한 저울이 튀어나왔다.


“다른 참가자를 모독한 죄를 한번 확인해 보지.”


타타는 저울에 툭툭 손가락을 두드렸다. 삽시간에 저울이 엄청난 기울기로 기울었다. 나는 놀라 타타를 바라보았다. 타타는 나를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동등한 VIP로 참여하신 행사에서 봉변을 겪게 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잠시.”


드륵, 저울의 아랫부분에서 작은 서랍이 열렸다. 타타는 한 손으로 서랍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칼?’


나는 눈을 꿈뻑였다. 타타는 엄지손가락으로 손잡이부분을 밀어올렸다. 툭 소리와 함께 검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타타는 어느새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곧게 뻗은 검은 이상할 정도로 찬란한 빛을 뿜고 있었다.


“당신이 제일 가치 있는 부분은 어디입니까?”


타타는 아래턱을 부들거리는 남자의 얼굴을 좌우로 돌려보며 말했다. 남자의 눈에 순간 두려움이 스쳤다. 라의 얼굴을 한 두려움이었다.


“생각보다 당신이 모욕한 고객님이 대단하신 분이어서 대가가 좀 클 것 같습니다. 빨리 말씀하시지 않으면...”


삭. 면도할 때 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입을 벌렸다. 열다섯의 귀가 저울의 한쪽에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저울의 눈금이 아주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물론 내가 억울한 상황이긴 하다.


가만히 있다가 도둑으로 몰렸고, 이 상황에서도 타타가 이런 일을 하게 뒤에서 조종하는 훌륭한 흑막으로 보인다.


이러나 저러나 별로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그리고 타타의 급발진.


이걸 내가 막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뒤쪽에서 신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 나와 타타, 죽기 직전의 얼굴인 열다섯을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마치 말려달라는 듯.


‘되겠냐.’


나는 애써 침착함을 가장했다.


“읍...읍!”


열다섯의 베인 귀에서는 피는커녕 아무것도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괴로움에 온몸을 뒤틀고 있었다.


타타가 칼끝으로 저울을 뒤적였다.


귀의 끝에 끼워진 무언가가 반짝이며 빛났다.


“역시 귀걸이 하나만으로는 좀 부족할 겁니다.”


“...”


미친. 그냥 귀걸이 때문에 귀를 자른 거라고?


이런 생각을 나만 한 게 아닌 듯, 남자가 양 손을 등 뒤로 돌려 맞잡았다.


그래. 손가락에는 반지를 끼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다음은 손가락이 될 터였다.


“고객님. 잔액이 부족하십니다.”


타타가 열다섯을 보며 인자하게 미소지었다.


“그 반지들이 진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주륵, 라의 얼굴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열다섯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나도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내 앞에서 물렁한 모습만을 보여주던 타타와는 전혀 달랐다.


“제가 준비한 행사에 훼방을 놓은 게, 그것 따위로 무마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생각보다 더 미친 놈이다.


타타는 검을 열다섯의 목에 가져다 댔다. 목의 옆이 작게 베였다.


피는 한방울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이쪽도 아닙니다. 모가지에 걸린 것도 아티팩트긴 하지만.”


타각, 열다섯의 목에 걸린 목걸이의 줄이 맥없이 끊어져 바닥에 굴렀다.


“너무 조악해서 제 쪽에서는 매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 감정소는 고급이라서요.


타타는 발끝으로 목걸이를 밀었다. 담쟁이덩굴이 날름 기어나와 목걸이에 얽혔다.


“음.”


그럼 어디가 좋을까, 타타가 콧노래를 불렀다.


“역시 심장이 좋겠죠?”


아니 왜 나를 보냐고.


타타가 나를 보면서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드래곤 하트 정도면 고객님께 최소한의 보답이 될 것 같습니다만.”


“예?”


열다섯의 몸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타타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검을 내려놓고는 열다섯의 어깨를 잡았다.


뚜둑.


뼈가 끊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더니, 열다섯의 입을 쥔 타타의 손가락 사이로 흰 거품이 새어나왔다.


타타는 쯧, 소리를 내며 열다섯을 바닥에 던졌다.


라의 모습이 바닥에 꿈틀거렸다.


내가 절대 보지 못할 모습이었다.


“행사를 망친 벌인가요, 아니면 저를 오해하고 몰아세운 데에 대한 대가인가요?”


타타의 눈이 느리게 깜빡거렸다.


“당연히 후자입니다.”


전자도 영향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타타가 말을 이으며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푸욱.


말릴 새도 없이 그의 검이 열다섯의 몸을 파고들었다.


횡으로 갈린 몸 사이로 붉은 무언가가 꿈틀대는 것이 보였다. 타타는 말끔하게 잘린 절단면에 손을 넣었다.


붉다.


불길할 정도로 붉다.


턱, 소리와 함께 저울추가 움직였다. 이번에는 정확히 가운데를 가리켰다.


타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는, 서랍에 검을 집어넣었다.


가슴이 갈린 채 눈을 흡뜬 열다섯을 뒤로 하고.


“딱 맞군요.”


짝.


타타가 박수를 쳤다. 순식간에 저울이 사라지자 정적만이 감돌았다.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고객님, 마음은 좀 풀리셨나요?”


아니, 망할 신 같으니라고.


그렇게 물으면 누가 봐도 내가 흑막이잖아.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이건 타타의 심계일까?


‘타타는 믿을만한 자가 아닙니다.’


비네롯사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 타타는 믿을만한 자가 아니었다.


“그럼 이것은 고객님의 ‘통’으로 보내드리도록 하죠.”


타타가 손가락을 퉁겼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열다섯의 몸뚱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제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행사를 진행해 볼까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네 명의 라, 한 명의 여자, 어느새 내 쪽에서 멀리 떨어진 물약팔이와 싸가지 없는 꼬맹이들이 여러 감정이 뒤섞인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청난 오해를 산 모양이었다.


시작일부터 주목받는 건 내 취향이 아닌데.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작은 소란이 있었군요.”


타타가 카펫 위를 걸어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가 마치 물결 마냥 여기저기 퍼지기 시작했다.


열다섯의 입장에서는 작은 소란이 아니었겠지만.


신이 그렇게 말하는 걸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는 이번 행사의 주최자, 타타입니다.”


이제 와서야 사람 좋은 얼굴을 해 봤자 소용 없다고.


볼멘소리를 속으로 꾹 누르며 타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말끔하게 빗어넘긴 상아색 포마드 사이에는, 한 가닥의 머리카락도 튀어나와 있지 않았다.


옆에서 나를 힐끗거리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냥 고개를 꼿꼿하게 든 채 타타를 바라보았다.


관심이 멀어지는 건 요원한 일인 모양이다.


타타는 몇 계단을 올라갔다.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 사이로 올라가는 그의 모습은 퍽 조화로웠다. 몇몇이 홀린 듯 박수를 쳤다.


나도 그랬다.


타타는 박수 소리를 듣더니, 몸을 돌렸다. 타타가 우리 모두의 방향으로 몸을 돌린 다음, 생글 미소지었다.


“열네분의 VIP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입장 전 설명드렸던 바와 같이 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화륵.


타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공에 작은 등불들이 떠올랐다.


“고객님의 앞길을 밝힐 패밀리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군요.”


타타는 어디선가 꺼낸 샴페인 잔을 살짝 들어올렸다.


나는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길게 늘어선 테이블 앞으로 다가섰다.


세모꼴의 명패가 줄지어 놓여있었다.


나는 ‘둘’이라고 쓰인 명패 앞으로 다가섰다.


타박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테이블 곳곳에 사람들이 다가서서 명패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명패 옆에 있는 잔을 집어들었다.


타타의 것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타타와 눈이 마주쳤다. 타타는 눈이 마주치자 빙그레 웃었다.


“여러분은.”


타타는 우리를 한번 둘러보더니 입을 뗐다.


“저를 만나본 분도, 아닌 분도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말입니다, 타타가 능글맞게 눈을 찡긋거렸다. 방금의 행동과는 사뭇 다른, 가벼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WOM을 사용하고 계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는 그곳을 후원하고 있고요.”


여기까지는 내가 아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개회사를 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제가 WOM을 후원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별안간 날아든 질문.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상인이니까, 돈이 될 것 같으니까 후원하겠거니 했을 뿐.


그러나 그는 더 많은 것을 말하려 했다.


“여러분들이 이곳에 오시기 전에 받으신 카드 아래쪽에 쓰인 비밀유지 서약을 기억하십니까?”


웅성웅성.


사람들이 동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카드를 꺼내 빛을 비추어보니, 음각으로 무언가가 쓰인 것이 보였다.


나는 흰색 테이블 너머로, 어느새 꽤 높은 계단에 올라가 있는 타타를 올려다보았다.


타타는 누더기 입술이 종종 짓던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제가 이 질문들을 왜 하는 지 궁금하실 겁니다.”


타타는 참을성 있게 모두가 자기를 올려다보기를 기다렸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타타가 말을 이었다.


“저는 신계를 무너뜨릴 작정입니다.”


예?


저 미친 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고 있는 걸까?


애초에, 본인이 신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신들은.”


타타의 말에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그의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오랫동안 힘을 쥐고 득의양양하게 굴었습니다.”


저도 역시 신이니 거기서 벗어날 수는 없겠죠, 약간의 자조 섞인 말이 스쳐지나갔다.


“따지고 보면, 신들은 단지 그런 힘을 가지고 태어났을 뿐입니다. 그냥 운에 불과하죠. 그 운을 가지고 으스대며 살고 있었다는 겁니다.”


참가자들이 입을 닫았다.


비밀 유지 서약이라는 게 꼭 필요할 정도의 말이 나올 상황이었다.


잘못하면 우리 모두가 불경죄로 단칼에 죽을 수도 있었다.


“제가 WOM을 후원한 이유는, 신들의 힘을 신이 아닌 자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그들이 뭔가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충분한 신력을 가진 자들이 나타나 자신을 압도하면, 본인이 보잘것없어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타타가 노래하듯 웃었다.


“신력은 아시다시피 여러분들이 구매했고, 그 결과 여러분들은 강해졌습니다. 아직 신들 만큼 강한 분들이 거의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만.”


타타는 나를 슬며시 바라보았다.


내게 아쉽다고 한 건지, 아니면 신들 만큼 강하다고 하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신들은 신력을 팔아 신자를 얻기를 원하셨습니다만. 물건을 파는 건 상인의 마음이니까요.”


‘신도가 아닐 것.’


WOM의 회원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


타타의 감정소에서 들었던 이야기였다. 부족한 WOM을 위해서, 소문을 내라고. 대신, 신도가 아닌 자에게.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이라고 생각했지만, 타타의 말을 듣고보니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여러분들은 WOM이, 그리고 제가 신중하게 선택한 분들입니다.”


잠시, 가지고 계신 잔의 안쪽을 봐 주시겠습니까.


타타의 정중한 말에, 나는 찰랑이는 샴페인 잔 안쪽을 바라보았다.


위쪽에서 내려다 본 잔에는 회색빛 무언가가 찰랑이고 있었다.


“각자의 잔에는, 단골 가게의 신력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신력을 크게 높이기 위해 준비한 환영주라고나 할까요.”


꿀꺽.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몇몇이 잔을 비워냈다. 나는 잔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카르넬의 신력이 분명할 회색 침전물이 일렁였다.


“각 신전에서 준비한 보상입니다. 신들이 직접 보내셨죠.”


망설이는 내 마음을 아는 모양인지, 타타가 덧붙였다.


카르넬이 직접 보낸 것이라면.


내가 카르넬을 본 지는 오래 되지 않았지만, 그만큼 인간적인 신은 드물다.


최소한 내게는 신도를 희생한 후 신물을 주지는 않았겠지.


나는 눈을 감고 잔을 들이마셨다. 따뜻한 기운이 천천히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기이하게도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는 이곳에서 여러분들께 힘을 드리고자 합니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서 기획한 행사이기도 합니다.”


내가 눈을 뜨자, 타타가 말을 시작했다.


“거래는 주고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행사는 WOM이 아닌 제가 주관한 것이고요.”


떠오른 등불들이 빛을 흩뿌렸다.


나는 타타의 말에 집중했다.


“저는 이곳에서 여러분들을 강하게 만들 겁니다. 나름대로 선별을 했으니, 여러분들이라면 충분히 신계의 신들보다 강해질 수 있겠지요. 목표는... 지금 취하고 계신 신의 신력 정도?”


라의 모습을 한 참가자들이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렸다. 다른 신들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멀쩡한 건 나와, 초록 약물병을 주렁주렁 매단 여자 둘 뿐.


“대신 여러분들은.”


타타의 눈이 불길하게 번쩍였다.


“저와 함께 싸워주셔야겠습니다.”


거대한 폭탄이, 막 떨어졌다.


작가의말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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