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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 신의 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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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요로운
작품등록일 :
2020.06.07 00:04
최근연재일 :
2021.09.08 23:50
연재수 :
1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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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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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쪽

86화. 서비스 지역이 아닙니다.

DUMMY

[....입니다.]



“뭐?”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나는 잠시 벌려진 누더기 입술을 응시했다. 무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WOM을 안내하지 않는 말을.


불행히도, 주변의 웅웅대는 소음이 입술의 소리를 덮었다.


“잠시만, 안돼.”


새하얀 광휘 끝에 어릿거리는 현실이 보였다.


누더기 입술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을 ....세요. 정식...그...입니다.]



웅얼거리는 목소리.


기계음이 아니다.


홀로그램과 동화되는 누더기 입술을, 나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나는 힘껏 달렸다.


입술의 끝이 슬며시 비틀리더니 웃음 비슷한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안개처럼 흩어졌다.


“대체...”


넌 뭘 말하려고 했던 거냐.


인공지능.


나는 입술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홀로그램이 입술 대신 어지럽게 흔들렸다. 멀미가 날 정도로 어지러웠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속을 게워냈다.


홀로그램 사이로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모두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워프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한 건 나 뿐인 모양이다.


그럼 이런 기이한 일을 겪은 것도 나 뿐일까?


나는 비척거리며 걸었다. 밖으로 나오는 건 쉬웠다.


그냥 발을 뻗으면 되는 일이었다.


화악


나를 마지막으로 토해낸 워프 게이트에서 빛이 사그라들었다.


텐트 안쪽에는 너저분한 물품들만 굴러다닐 뿐.


어디에도 누더기 입술은 없었다.


“괜찮아?”


멜이 큰 얼굴을 내게 들이밀었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언제 보나 이 얼굴과 덩치는 놀랍다. 적응이 꽤 되었는데도 말이다.


“응. 두걸음만 뒤로 더 가 주면 더 괜찮을 거 같아.”


내 말에 멜이 킥킥거리며 두걸음 물러섰다.


“가끔 마력이 불안정하신 분들이 어지럼증을 호소하곤 하십니다.”


라하틴이 내 옷에 묻은 토를 가리키며 나직히 말했다. 나는 옷자락을 뒤로 감췄다.


나를 여기로 불러준 사람 앞에서 무슨 추태람.


“저 친구가 원래 몸이 좀 약해서 그렇습니다.”


아니라고.


멜이 말을 덧붙였다. 나는 멜을 노려보았다.


이것도 친구라고.


멜은 내 시선을 깔끔히 무시하고는 딴청을 부렸다.


내가 뭘 기대한 거냐.


나는 폭,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저렇게까지 하는 걸 봐서, 멜은 나처럼 이상한 일을 겪지는 않은 게 틀림없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미리 전령을 보내두었으니 나와계실 겁니다, 라하틴이 우리에게 말했다.


다행히 새우잡이 배는 당첨되지 않은 모양이다.


다른 의미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장서 걸음을 재촉하는 라하틴의 뒤통수에 머리칼이 팔랑거린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의 뒤를 따랐다.


머리는 여전히 복잡했다.


‘WOM’


찝찝함이 녹진하게 뇌를 녹였다. 나는 WOM을 불렀다. WOM은 기다렸다는 듯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WOM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랄.


나는 작게 욕을 내뱉으며 눈을 굴렸다.


누더기 입술은 보이지 않았다.


‘왜지?’


왜일까. 왜 아까는 그런 말을 했던 걸까.


잔잔한 물 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혼란은 점점 퍼져나갔다.


“...어?”


앞서 나가던 티세뉴의 입에서 김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들었다.


멀리허 희끗한 인영들이 우리 쪽을 향해 양 팔을 벌렸다.


명백한 환대였다.


“어어?”


티세뉴의 목소리가 커졌다. 왼손이 치켜세워져 맞은편을 가리켰다.


“너?”


라하틴보다 조금 커다란 흰머리의 남자가 생글거렸다. 티세뉴의 앞까지 다가온 그는 자신을 똑바로 향하는 검지손가락을 집고는 위아래로 흔들었다.


“나도 반가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생랑,”


너 테스타리히 집안이었냐?


놀란 티세뉴의 목소리가 우렁우렁 길에서 울려 퍼졌다.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생랑이라고 불린 남자는 눈매를 곱게 휘었다.


“개새끼야, 너...”


“회포는 나중에 풀자고.”


손님이 계시니 말이야.


‘나도 손님이야!’를 연신 외치는 티세뉴를 뒤쪽으로 민 남자가 우리에게 우아하게 미소지었다. 얼굴에서 후광이 뿜어져나온다.


불공평하다.


후작가문인데다, 잘생기기까지.


물론 라 미모의 발끝에는 못 미치지만.


“생랑 테스타리히라고 합니다.”


“제 둘째형입니다.”


라하틴이 조용히 덧붙였다. 나는 조용히 목례했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가 우리에게 호의적인 것만은 틀림없다. 무해한 것이 확실한 그의 태도는 차치하더라도, 내 몸이 별다른 반응이 없는 걸 보면 말이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생랑은 몸을 돌리며 과장된 몸짓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그 순간 강렬한 빛이 우리를 비추었다. 나는 눈을 찌푸렸다. 앞이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빛이었다.


눈뽕은 라 신전에서 당한 게 끝일 줄 알았는데.


“아, 이걸 받으시지요.”


손에 무언가가 쥐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빛을 뒤로 했다. 천천히 선명해지는 시야 속으로 손에 쥐어진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경?”


동그란 두 개의 알과 뒤로 뻗은 길쭉한 선. 분명히 내가 아는 그 익숙한 안경이 맞다.


“저희 성이 좀 유별나서요. 이게 있으시면 편안하게 앞을 볼 수 있으실 겁니다.”


생랑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게 들려왔다.


글쎄, 안경을 낀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겠어?


심호흡을 하고 안경을 걸쳤다.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와.”


순수한 감탄사가 들려왔다. 나는 뒤돌아섰다.


“우오.”


나도 질세라 감탄사를 내뱉었다.


저게 뭐람.


여기 건축가들은 대체 뭐하는 사람인거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마천루가 햇빛을 반사해 찬란하게 빛났다.


내가 본 빌딩들 중, 저걸 압도하는 건 없다.


단언컨대.


화려하게 솟은 금빛 마천루 사이로 번쩍이는 보석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분명 저걸 맨눈으로 보면 눈이 멀어버릴 것이다.


저 호화로운 성이 우리의 목적지인 모양이었다.


“가실까요?”


어디 사는 제비의 말투처럼 들리는 생랑의 말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우리는 홀린 듯 생랑을 따라 발을 옮겼다.


마치, 하멜른의 쥐처럼.



***



“아, 그런 일이라면.”


생랑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차를 한모금 입에 머금었다.


품위가 철철 흘러넘치는 태도로, 그는 미소지었다.


“제가 전적으로 협력하도록 하지요.”


“원래부터 재수 없었지만, 지금은 더 그렇네.”


티세뉴가 찬물을 벌컥이며 들이켰다. 생랑이 내민 손을 툭 쳐내며 티세뉴는 눈을 부라리며 으르렁거렸다.


“그 때는 미안.”


“네가 갑자기 사라진 것 때문에 우린 그날 다 뒈질뻔 했다고.”


“폐하가 그때 하필 나를 부르셔서.”


생랑이 고함을 장전하는 티세뉴의 곁으로 다가갔다.


“네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생랑의 눈이 곱게 휘어졌다.


어떤 뒷이야기가 둘 사이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좋은 일이다.


그 이유로, 티세뉴가 여기서는 나에게 들러붙지 않는다.


‘....아닌가?’


티세뉴가 한 손으로 내 옷깃을 꾹 눌러쥐고 있다. 나는 억지로 손을 떼내며 입꼬리를 올렸다.


티세뉴도 티세뉴지만, 지금 문제는 생랑이라는 이 사람이다.


생랑 테스타리히.


둘이 무슨 관계냐고 묻자, 티세뉴는 과거에 그와 동료였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숨길 것도 없지요. 저희 가문의 사람들은 어릴 때 다른 지역에서 몇 년간 지내다 이곳으로 돌아옵니다.’


지역에 대해 이해를 높이기 위함이랄까요, 생랑이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오랫동안 머문 곳이 슈트라였지요.’




[생랑 테스타리히에 관련된 ‘소문’을 볼 수 있습니다.]


[필요 적립금: 1000WOM]




타타, 그렇게 안 봤는데 이런 취미라니.


과금을 유도하는 타타 신전의 알림을 상쾌하게 무시하고는 생랑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둬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돈을 내라니. 훌륭한 날강도의 새싹이 보인다.


게다가 WOM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기로 한 시점 아닌가.


사실 생랑에 대해서도 의심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알지 않는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생랑 테스타리히가 내게 호의적인 것은, 무언가 꿍꿍잇속이 있는 것이다.


“지금 부모님과 형님, 동생은 외출했습니다. 오시면 인사 나눠보시지요.”


새로운 사람을 좋아하시는 분들입니다.


생랑이 과거에 잠긴 나를 끌어올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새로운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렇게 경계가 없을 수 있을까?


게다가 지금 여기에는 사사건건 대립하는 수알눈의 황족도 있다.


누티얀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후드를 깊이 뒤집어쓴 수상한 모습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결론적으로, 이곳은 수상하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억지로 미소를 걸었다.


지금 내 판단에 따라 행동하면 내 생명이 빠르게 사그라들지도 몰랐다.


파쇼프의 권력자라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의 집에 들어와 있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경거망동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조용히 차를 입에 머금었다.


다행히도, 차에는 독이 없었다.


“슈트라에는 얼마나 오래 계셨던 건가요?”


생랑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과거를 되짚는 눈으로 허공을 잠시 응시했다.


“10년정도 있었던 것 같군요.”


정확하지는 않지만요.


생랑이 덧붙였다.


10년.


정확히 그 언저리의 시간을 슈트라에서 보냈다면, 슈트라에 그의 기반이 어느정도 있는 셈이다.


당연히 티세뉴와 같은 인맥도 많이 알 테고.


“그런데 갑자기 올라오셨군요.”


“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생랑의 눈빛이 잠시 티세뉴에게 머물렀다 떨어졌다.


“폐하가 부르셔서 말입니다.”


“그게 빌어먹을, 3년째야. 3년째 우린 아무런 연락을 못 받았다고.”


티세뉴가 씹어 내뱉었다.


한곳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인맥과 기반을 쌓아온 사람이 다시는 그 지역에 연락을 하지 않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따로 감금되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이.


무슨 일을 하다가 도중에 다른 사람들과 헤어졌다면 더더욱 그렇다.


다시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해야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생랑은 그러지 않았다.


그 지역에 나타나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황제의 부름이 그에게 그렇게 지시한 것일까?


수상한 것을 하나하나 따지자면 끝이 없다.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


최소한 지금 이곳의 태도는 환대쪽에 가까우니, 이 상황을 이용함이 옳다.


“피곤해 보이시군요.”


꼬마 라하틴이 나를 보며 말했다.


어린 놈이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다.


나는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금 쉬시죠.”


그래, 지금은 조금 쉬어야 할 때다.



***



케심의 어스름이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높은 곳에 틀어박힌 탓인지 달이 유달리 가까웠다.


어지럼증이 나를 덮쳤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이곳에서 편안히 잠을 자도 될까?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함만이 촘촘하게 채워진 공기에 숨이 막혀온다.


마천루에서의 밤은 아득했다.


이들을 믿어도 될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머리를 뒤덮었다.


그리고 곧 결론이 났다.


경계.


아까 누티얀의 반응도 마음에 걸렸다.


나는 잠을 자는 대신 누티얀을 찾아나서기로 결심했다.


손을 대자, 아무런 소리 없이 문이 젖혀졌다.


불길한 예감이 갑작스럽게 엄습했다.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런 상황이면 항상 문제가 생겼다.


“젠장.”


나는 문 앞에서 망설였다. 활짝 열린 문 밖이 시커멓게 물들어있었다.


발을 내뻗기조차 무서운 어둠이 방 안쪽으로 밀려들었다.


흐웁


던전, 던전.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카라윤과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던전의 어두움이 망막을 뒤덮었다.


입 안을 깨물었다.


비린 액체가 흘렀다.


옷자락으로 핏물을 닦아냈다.


울컥이며 차오르는 핏물을 목구멍으로 넘기자 시야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환상이야.”


머리를 털었다.


조심스럽게 복도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텅 빈 복도에 발걸음 소리만이 울렸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두침침한 복도 사이에서 나는 심호흡을 했다.


“누티얀을 찾아야 해.”


주머니에 손을 넣자 잘각거리며 무언가가 집혔다.


쥐어진 주먹 사이로 빛이 스며나왔다.


인어의 눈물.


불현 듯 아렐과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동생을 찾아야 해.


아렐의 목소리에 멜의 목소리가 겹쳐왔다.


나는 눈을 꿈뻑이며 앞을 쳐다보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복도 위로 젠과 함께하던 시절들이 신기루처럼 흔들렸다.


손을 들어 내 뺨을 휘갈겼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가끔 나를 잠식하는 그런 혼란일 뿐이다.


정말 가끔.


“누티얀의 방이 어디였더라.”


빌어먹을 마천루는 크기도 정말 컸다.


내 기억에 누티얀과 티세뉴의 방은 한층 아래에 있었다.


“내려갑니다.”


희미한 빛에 의지했다. 마도학자들의 결정체라는 기구에 몸을 싣자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있던 곳에서 보던, 일명 엘리베이터다.


“문이 닫합니다.”


이 문구는 만국 어디나 공통이냐.


픽, 웃음을 흘리며 벽에 몸을 기댔다.


조용히 문이 닫혔다.


“어?”


그런데 이상했다. 어디에도 버튼이 보이지 않는다.


내려가려면 응당 몇층으로 갈지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내려갑니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내 몸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나는 닫힌 문을 황급히 더듬었다.


아무것도 집히지 않는다.


젠장.


바닥으로 처박힐지도 모른다.


WOM을 불러야 할까?


다급함에 위를 올려다보았다. 누더기 입술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WOM!!”


살려줘.




[서비스 지역이 아닙니다.]




미친 놈아.


엿이나 먹어라.


고장난 TV처럼 지지직거리는 입술에 욕을 날렸다.


덜컹


그 때, 내가 있던 통이 멈췄다.


“문이 열립니다.”


스르륵.


문은 열린 채, 한참을 그대로 멈춰 있었다.


작가의말

날씨가 오락가락하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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