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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 오징어

라이더 크로니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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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thepan
작품등록일 :
2022.05.21 12:45
최근연재일 :
2022.08.07 21:51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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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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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9,608

작성
22.05.2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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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subversion (4)

DUMMY

객실문을 조금은 긴장된 채 열어보니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복도의 좌우를 훑어봐도 보이는 사람이 없었어.


문밑을 보니 또 그 고급진 하얀색 명함크기의 카드 한 장과 이번에는 새롭게 발행처가 찍혀있지 않은 [플래티넘 카드] 한 장이 놓여있었어.


한 번 더 주변에 사람이 없나 살피고 조심스레 문을 닫은 다음 다시 침대 위에 앉아 먼저 명함카드 내용을 확인해 봤어.


[Riverside by Schindler's factory 20:00]


오늘 약속장소를 말하는 것 같아.


크라쿠프 지도를 검색해 보니 아아주 옛날 영화인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이 된 바로 그 공장이 크라쿠프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비스와강 옆에 있는 걸 확인했어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는 사실 이 때 검색으로 처음 알게된 거야).


이제 생뚱맞은 '플래티넘 카드'를 확인해 보자.


카드는 진짜 '플래티넘', 바로 '백금'으로 만들어진 묵직한 카드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그럴 듯하게 이름만 붙여서 있는 척 해주는 싸구려 카드가 아니다.


있다는 이야기만 들어봤지 직접 내 손에 들고 만지고 무게를 느끼게 될 줄이야.


부자 회사인 [AMP]에서 친절하게 용돈도 챙겨주는 건가 싶어서 카드 안의 크레딧을 확인해 보았는데,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이 금액은!


한국으로 돌아가 지하의 [Young Station] 스튜디오를 시내 제일 중심의 삐까번쩍한 빌딩의 1층 쇼윈도로 옮기고 소속 크리에이터들의 월급까지 두둑히 챙겨주고도 4, 5년은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생전 처음 가져보는 엄청난 숫자였어.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입에서 나오고 말았다.


이걸로 나한테 뭘 하라는 거지?


그냥 아무렇게나 여기서 막 쓰면 된다는 건가?


진짜 아무렇게나, 엄청 비싼 음식도 사 먹고, 기념품도 사고, 더 비싼 물건이나 장비나 . . . 오랜만에 옷 같은 것도 사고 . . . 그래도 되는 거야?


한국에서 출발 전 치킨 하나를 가지고 생존을 놓고 한바탕 고민하더니, 이제는 생전 처음 와본 외국의 도시 호텔 방안에서 무언가 . . .


무언가 내 진짜 '자존심'을 가지고 혼자만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5.


저녁 7시 30분쯤이 되어서야 호텔에서 나왔어.


이번에는 [POD]을 부르지 않고 걸어가기로 했어.


내 인생 첫 번째 '해외여행'인데 이제서야 정말 '여행' 다운 걸 조금은 해봐야 하지 않겠어?


크라쿠프 지도를 띄워놓고 목적지까지 방향만 맞게 대충 여기저기 빠른 발걸음 속에서도 이것저것을 보며 분위기를 느끼며 간만에 조금은 들뜬 마음이 될 수 있었어.


우연의 일치인지 재수가 좋았던 것인지, 하필 내가 크라쿠프를 방문한 날은 이틀간 펼쳐지는 [KRAKOW GREAT DRAGON NOBLE FEST]의 마지막 날이었어.


크라쿠프의 바벨 언덕 밑 동굴에서 살았다는 [바벨 드래곤]의 전설을 모티브로 서기 2000년부터 시작된 축제인데, 이게 50년 전쯤부터는 '노블'들의 후원을 받으며 '귀족축제'의 성격도 가지게 되었어.


예전 '셀레브리티'라는 역할을 '노블'들이 맡게 되면서, 이 '셀레브리티'들이 레드카펫을 밟으며 한꺼번에 모이는 [크라쿠프 축제]는 아주 예전 유명했던 '영화제'라는 것들처럼 크게 유명세를 모았지.


덕분에 이제 세계의 각 지역들은 자신들만의 [노블 페스트]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노블들의 사교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있어.


이들을 볼 수 있다는 게 어느 순간 '즐거움'과 '영광'이 되어버린 '평민'들은 별 다른 생각도 없이 '축제'를 즐기며 '환호성'을 질러대고 있다.


'노블들의 사교행사'에 빠져서는 안 되는 '노블'들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어버린 거지.


크라쿠프 시내의 건물과 건물들 사이에는 대로 위로 다양한 색깔의 섬세한 조명으로 만든 각양각색의 조형물들이 떠 있고, 그 건물들 위로는 불을 뿜으며 날아다니는 [바벨 드래곤]의 대형 홀로그램이 하늘을 휘젓고 있어 (진짜 용의 길이가 한 20미터는 될 정도로 커다란 홀로그램이었어).


거리의 사람들은 지금 지구 최강의 지역이라는 자랑스러운 [폴스카]의 자부심으로 모두 몇 백 년도 전의 선조들이 입었던 전통의상 '콘투쉬'를 입고 있었어.


(방금 전 내 현실 속 직장 사무실에서 보았던, 오늘 블럭체인에 올라온 새로운 '기억'의 영상 속 사람들이 입고 있던 바로 그 옷이야.)


무언가 좀 그래도 유럽의 느낌이 나는 여자들의 '콘투쉬'와는 달리 남자들의 '콘투쉬'는 좀 더 동양적이면서 중동풍이 느껴지는 기묘한 분위기야.


여기저기서는 오래 전의 '기억' 속에서 들렸던 그 흥겨운 민속리듬의 음악이 들리고, 조금만 공간이 비어있으면 남녀가 둥글게 모여 박자를 맞추며 춤을 추고 있었어.


(이제야 기억이 났는데 이 민속춤의 이름은 '크라쿠비악'이야.)


거리의 곳곳에서는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 남녀들의 진한 애정행각도 벌어지고 있었어.


조금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바로 돌렸다.


역시 유럽은 개방적인 곳이구나.


'결혼'이라는 것이 갈수록 드물어지고, '출산'이라는 것도 높은 '양육가격'으로 자연스레 사라지면서, 갈수록 '문란'해지는 세상이라도 한국은 아직도 저렇게까지는.


바쁘게 여러 경치와 광경과 소리들을 마음에 담으며 걸어가니 벌써 비스와 강가에 도착했어.


강 건너편으로는 그 유명한 [바벨성]이 마치 디즈니월드의 '슬리핑 뷰티 캐슬'처럼 으리으리하게 동화 속 궁전 같은 위용을 뽐내고 있었어.


더욱 그런 게, 요즘 전세계의 오래되고 유명한 고성들을 사들여서 새 것처럼 복원하고 최신식으로 레노베이션 해서 '노블'들의 주택이나 사교장으로 쓰는 게 가진 자들의 재력을 과시하고 순위를 정하는 최신 유행이 되어 버렸거든 (이 유행을 시작시킨 것도 지금 열리고 있는 이 [크라쿠프 축제]야).


강변 위로는 엄청난 돈을 들였을 것 같은 화려한 대형 불꽃놀이가 쉴 새 없이 펼쳐지고, 앙증맞게 데포르메된 각양각색의 [바벨 드래곤]들의 풍선이 떠가고, 그 위로는 크라쿠프 시내에서부터 넘어온 바로 그 [바벨 드래곤]의 대형 홀로그램이 강가의 사람들을 향해 불을 뿜으며 즐거운 비명을 자아내고 있어.


이제 나는 강가의 동쪽 약속장소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어.


모두 똑같은 '콘투쉬'를 입고 있는 이 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만나야 하는 사람을 어떻게 찾지, 하는 걱정이 뒤늦게 들기 시작할 무렵, 저 멀리 강가의 발코니에 기대어 나를 계속 보고있는 시선 하나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찾아냈어.


점점 더 가까이 가면서도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그 모습이, 더 이상의 머뭇거림도 필요없이 그냥 이 사람이구나, 라는 확신을 주었어.


그 사람은 '그녀'였어.


그때 맞주쳤던 시선이 '그녀'와 가진 첫 번째 눈빛의 교차였다.


바로 앞까지 걸어가서 두 눈 앞에서 처음 본 그녀의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멀리서 보면 키가 180은 훨씬 넘어가는 8등신 미녀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키는 180을 훌쩍 넘지는 않았어.


허리까지는 못 미치는 긴 머리의, 다른 색깔은 전혀 섞이지 않은 빛나는 금발의 아가씨였어.


'아가씨'가 맞을까?


돈이 있는 사람들이면 모두 육체나이는 23세로 유지하고 있으니까.


자신할 순 없지만, 만약 [재생]을 한 몸이라면, 정말 비싼 곳에서 고가로 제대로 [재생]을 한 게 틀림없을 거야.


정말로 새하얀 피부와 화려한 금발을 보면 동유럽 보다는 북유럽인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른 여자들과 같은 '콘투쉬'를 입고 있었지만, 염주같이 생긴 목걸이는 하나만, 대신 빨간색 리본을 치마의 좌우 끝 부분에 하나씩 더 달고 오른 손목에도 또 하나를 하고 있었어.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건 나를 계속 바라보던 그 눈동자의 색깔이야.


푸른색 보석 플로라이트 두 개를 박아 넣은 것 같은 밝은 파란색의 눈동자 안에는 불꽃놀이의 조명 때문인지 빨간색과 주황색의 하이라이트가 간간이 빛나고 있었어.


정말이지, 처음 얼굴을 대하고 두 볼이 또 조금 빨개졌다.


'그녀'가 먼저 악수를 청했어.


"Thank you for coming here."


목소리를 들으니 진짜 [Young]이란 확신이 생겼어.


"아니, 그리 힘들지도 않았고, 또 반드시 와야 했어요."


내 대답을 듣는 그녀의 눈동자가 의외라는 느낌이었어.


"영어를 잘 하네요. 의사소통에 조금 걱정했는데."


두 볼이 조금 더 빨개졌다.


주변의 폴란드인들이 여기 볼품 없이 남루한 동양계 남자가 왜 현지 미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지 의외라는 표정으로 대놓고 바라보며 지나갔어.


그런 주변에는 전혀 무관심한 그녀를 따라 어디인지 모르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어.


"'우리'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알고 있죠?"


"남들이 아는 정도만이죠. 더 이상 알아보고 싶어도 알 수 없게 다 막아놨으니까."


"그런 '수상한 회사'를 믿고 여기 온 이유는?"


내 생각을 묻는 건가?


(그 당시의 나는 누군가 무언가만 물어도 내가 아는 지식을 자랑하듯 쏟아내기 바쁜, 지금보다도 더 미숙한 캐릭터였어.)


"다른 경찰들이 돈 되는 기업들의 사건만 해결하기 바쁜데, 당신들은 그렇지 않더군요."


그녀의 미간이 살짝 움직였다.


"[Magike]란 단어를 찾아봤는데, 그게 그냥 흔한 'magic'이란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단어에 '대항'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그래서 당신들이 해결했던 사건들을 검색해 봤는데, [magike]가 무엇인지 조금 알겠더군요.


각 '지역법'이나 '세계법'에서 아직 제대로 '범죄'라고 규정하지 못 해 아직은 처벌이 불가능하지만,


다시는 그런 사악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선례'를 만들어 법정까지 끌고 가서 최초로 '판례'를 만들어내는 '돈 안 되는 사건'들.


나는 [magike]가 이 세상의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모든 '악'이라고 생각했어요.


너무나 영리하고 사악해서 어떻게든 '정의'를 피해가려는 이 세상의 모든 '꼼수들'."


나는 이 '꼼수들'을 'deviants'라고 표현했어.


이 단어를 들은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이 조금은 미소 짓는 것 같았어.


"Interesting . . . deviants . . . so?"


"내가 지금 하고 있고 믿고 있는 일과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믿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때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를 생각하면, 바로 그때 그녀가 나를 '간택'했었던 것 같아.


물론 내가 그때는 눈치채지 못했던 모든 것이 그녀의 '테스트'였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은, 지금 현재에도 아직은 '미래'의 일이었다.


[완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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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54 남해검객
    작성일
    22.06.29 21:57
    No. 1

    즐감하고 잇습니다.꾸욱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ji******..
    작성일
    22.06.30 08:46
    No. 2

    너무 감사드려요!!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2 럭키포춘
    작성일
    22.07.08 21:50
    No. 3

    마지막 완전판은 뭐죠?

    배경, 장면 묘사가 좋아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ji******..
    작성일
    22.07.09 13:00
    No. 4

    [완전판] 마크가 붙은 것은 ‘무삭제 완전판’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제 서재 가보시면 완전판 게시판이 아로 있어융.

    부끄부끄 버전이에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4 뾰족이언니
    작성일
    22.07.13 23:50
    No. 5

    백금으로 된 무게감있는 카드 너무 좋아요. ㅎㅎㅎ 180이 안 되는 모델을 생각 해 보며 매력적인 눈 색...어떤 테스트를...
    아..궁금한데..더이상 보면 잠을 못 잘 거 같아 아껴서 내일 볼 게요. ㅎㅎㅎ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ji******..
    작성일
    22.07.17 15:16
    No. 6

    얼라라~~~!

    댓글 올리셨을 때 평소처럼 룰루랄라 따라가면서 답글 주욱 달았던 기억이 있는데 . . .

    ㅠㅠ 술 취했던 건가융 ㅠㅠ

    '백금' 좋아융~~~~ *@.@*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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