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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 오징어

라이더 크로니클

웹소설 > 일반연재 > SF, 대체역사

jinthepan
작품등록일 :
2022.05.21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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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7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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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05.2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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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version (2)

DUMMY

2.


5년 전, 내 사무실은 지금처럼 고층건물 9층에 있지 않았어.


장소도 지금 같은 도심도 아니라 한참 언저리의 구식 3층 건물의 지하였지.


그래도 내가 지은 이름으로 조그만 간판도 걸려 있었다구.


[Young Station]


세상 사람들이 왠만하면 다 젊은이의 모습으로 (더 이상 크레딧도 빌리지 못 하고 팔 장기도 없어서 [재생]을 못하는 이들만 제외하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진짜 젊은이들', 진짜 [Young]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뜻으로 만든 이름이야.


그냥 'young'한 것 말고, 'young'하지만 무언가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였지.


처음에는 '기업'의 [AI]들이 찍어내는 음악이나 영화, 소설 말고 진짜 '사람'들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노하우를 공유하려 [웹]에 만든 공간이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호응이 좋았어.


입소문을 타고 제법 BBS 거주자들이 늘어나자, 진짜로 함께 모여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을 현실세계에 마련하자, 라고 의기투합, 제법 유명한 펀딩 사례로 지하실의 스튜디오를 만들 수 있었지.


비록 한참전의 중고지만 괜찮은 기초장비들과 혼자서는 꿈도 꾸지 못할 넉넉한 공간에서, 제대로 녹음을 하고 촬영을 하고 코딩을 하고, 서로 처음 만나 함께 모여 의논할 수 있는 [Young]들만의 창작공간에서, 자연스레 [Young]들의 고민과 불만이 공유되었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구체적으로 '억울한 사례'들이 '기업'들과 연관된 제보로 이어지게 됐어.


여러 사례들을 모아서 [Young Station]의 이름으로 첫 번째 멤버 전원 콜라보의 영상 피드를 만들어 체인블럭에 올렸는데, 이게 뜻 밖의 히트를 친다.


이렇게 맨땅에 머리를 점프해서 박아버리는 '쌈마이 고발'이 제법 긴 시간 동안 없었거든.


스튜디오 한켠을 사무실 겸 생활공간으로 지키며 'young member'들의 편의를 봐주고, 자기 작업도 짬짬이 하던 내 위치가 어느 순간 탐사보도팀장처럼 되어버렸어.


더 많은 '부조리'와 '불합리'가 접수되고, 나는 당연스레 현장에 가서 인터뷰를 따고 연락을 거부하는 기업 담당자들의 꽁무니를 쫓으며 대답없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옛날 영화에나 나오는 '열혈 기자' 같은 것이 되어 있더구만.


아직도 왠만하면 주구장창 남은 내 인생을 생각할 때 이런 말을 쉽게 할 순 없을 것도 같지만, (또 뭐 그리 별 것 없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크레딧을 갚으며 맘대로 죽을 수도 없을 인생이라면,)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살아있다'라는 걸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


내가 만든 무엇인가가 정말로 세상을 바꾸고 '스폰서(한국 지역에서는 '빽'이라고 표현한다)'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좀 더 좋게 만들도록 힘이 되고 의지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을 거야.


그런데 이 '어느 정도'에 너무나 깊게 빠진 나머지 드디어 2년 전에는,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고야 말았어.


아주 우연찮게, 창작계의 [Young]이 아니라 아는 [Young]의 유통업계 기업의 친구를 통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나 만들어서는 안될 '존재'들을 만들고, 이들을 '상품'이라 부르며 판매에 나섰던 거야.


비겁하게도 자신들의 '명성'과 '품격'에 흠이 갈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는지, 지역이 아니라 유럽 시장 쪽으로 먼저 유통을 시도하고 있었어.


이 말도 안 되는 '상품'들을 선진 유럽에서도 인정하고 애용한다 같은 논리로 지역시장으로도 역수입하려는 거였겠지.


조사를 하면 할 수록, 단 1mm 차이로 규제들을 빠져나가는 그 사악한 치밀함에 정말 순수한 분노를 느끼며, 절대 이 녀석들을 가만히 둘 수 없다고 생각하며 조사에 빠져들었어.


그러다 사건의 핵심을 모두 파악했을 때 이제 나는 '귀환가능지점'을 이미 지나있었다.


더 이상 예전처럼 기업의 담당자들이, 나와 같은 위치의 사람들이 질문대상이 아니었어.


'대통령'이니 '부통령'이니 '국무총리'니 '수상'이니 하는 말단 공무원들의 수준도 훨씬 넘어버렸지.


'노블'도 보통의 '노블'이 아니야.


[다보스 세계의회]의 한국 지역 상원의원.


'한국 최고의 기업'이라는 [HCG]의 소유주인 [Sir Kim]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숨을 가다듬고 눈을 겨우 떠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하고 앞을 보니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의 최고의 권력자를 상대하고 있었던 거야.


이 역겨운 사업의 구조와 현황을 모두 밝히고 설명할 자료들을 눈 앞의 화면에 띄워놓고, 이걸 정말 할거야? 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심장에 슬슬 부하가 걸릴 때쯤부터 였어.


오프라인의 세계에서는 누군가들이 내 뒤를 밟고 주변을 서성이고 집앞을 지키며 현실 속의 압박을 시작하고 있었다.


날 죽일 순 없어.


[Davos World Act 2122]의 세계계약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옛날식으로 스스로 목을 조르게 만들 정도의 '위협'은 줄 수 있었지.


나는 꺾이지 않았다.


나는 잃을 것이 없었거든.


아니, 그때는, 잃을 것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뒤 녀석들을 상대로 쳐둔 내 방어막을 한방에 깨버리듯 [HCG]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어느 담당자에게서 [voice]가 들어왔어.


간단히 말해 손 때라는 협박을 고상하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거였지.


한순간 '욱' 해버린 나는 내 귀만 아픈지도 모르고 크게 고함을 치며 '쎈척'하고 말았어.


"이봐, 나는 싫은 놈 앞에서 절대 못 웃고, 좋은 사람 앞에서 싫은 척 못하는 사람이야! 뭔지 알아? 개새끼라고! 개새끼라서 너희 같은 놈들 앞에서는 꼬리 치지도 못하고 꼬리 내리지도 않을 거야! 덤벼봐! 같이 죽자고!!"


옛날 영화에서 본 구식 '전화기'라는 걸 쓰고 있었다면 마지막에 멋지게 '수화기'를 내려 처박으며 박력있게 전화를 끊었을텐데.


그냥 툭 끊기는 [voice]는 정말 멋대가리 없게 허무했다.


지금도 한 번씩 생각해.


그때, 그렇게 객기 부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Young Station] 간판 뒤 지하 스튜디오에서, 여전히 다른 바보들과 함께 계속 '꿈'이라는 걸 가지고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그 전화통화 말고, 나는 왜 다른 [Young]들과 고민을 나누지 않았을까.


다른 이들의 고민은 그렇게 잘 들어주던 내가, 왜 정작 내 고민은 '공유'란 걸 하지 않았을까.


이제 진짜 들어갈지 나갈지를 결정해야 할 순간이 찾아온 어느 날, 저녁 늦게까지 고민 중이던 그때, 잊지 못할 그 '이벤트'가 시작되었어.


혼자 지키고 있는 스튜디오의 문에 누군가 적당한 세기로 노크하기 시작했어.


온몸의 잔털이 쭈뼛 서면서, 드디어 제대로 녀석들과 맞짱을 뜨기 시작하는가 싶어, 미리 준비해둔 찰진 알루미늄제 야구 방망이를 어깨에 걸쳐 휘두르기 레디 상태로 문을 열었어.


눈앞에 있는 건 아직도 크레딧을 아끼려 아들놈에게 배달을 시키고 있는 동네 치킨집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맡는 튀긴 닭 냄새에 벌써 몇 끼 굶은게 드디어 기억났지만, 이렇게 비싼 음식을 내가 시킨 적이 없어.


아, 그놈들, 이런 식으로 장난쳐서 크레딧 없는 나를 괴롭히겠다는 건가? 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계산 다 됐어요. 빨리 받아요."


"누가?"


"모르죠."


나도 모르게 벌써 몸은 치킨 봉지를 들고 있었어.


스튜디오 한 구석의 낮은 테이블 위에 치킨 봉지를 올려놓고, 이걸 풀어서 먹으면 설마 저녀석들에게 매수되는 건가? 하며 또 생존을 건 유치한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봉지 안 치킨 박스 위에 놓여진 생뚱맞은 하얀색 명함 크기의 종이 카드가 드디어 눈에 띄더군.


치킨은 먹지 못해도 교섭조건 정도는 봐도 되지 않을까 하고 딱 봐도 고급진 재질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CENTRAL AIRPORT GATE 308 08:00]


뭐지? 하고 뒤집어 보니 처음 보는 이름이 적혀 있었어.


[Anti-Magike Polis]


뭐지? 라틴어인가?


검색을 해보니, 그리스어다.


[반마법경찰]인가?


아냐, 이 단어가 'magic'하고는 또 다른 것 같은데, 하고 너무나 자연스레 닭다리를 이미 뜯으며 [bot]들을 검색에 내보내고 있었어.


[14세기 후반, magike, '세상의 일들에 영향을 미치고 미리 예측해내며 숨겨진 자연의 힘을 이용해 경이로움을 만들어내는 기술', '초자연적인 기술'로 '정신세계나 초인간적인 존재들의 활동을 통솔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프랑스어 고어 magique, 후기 라틴어 magice, 그리스어 magike]


배달된 닭 한 마리를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아무 생각없이 다 뜯어먹고도 검색을 계속하며 몇 시간이 더 지나 아침해가 올라올 때 쯤, 나는 서둘러 가볍게 꼭 필요한 물건들만 내 오래된 가죽 메신저백에 급히 넣고 [POD]을 불러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Rider Chron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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