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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geun61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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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바람의 저쪽, 구름의 이쪽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이검혼
그림/삽화
검혼
작품등록일 :
2022.05.14 14:25
최근연재일 :
2022.07.19 10:58
연재수 :
58 회
조회수 :
93,885
추천수 :
489
글자수 :
241,019

작성
22.07.01 10:53
조회
964
추천
3
글자
9쪽

자신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DUMMY

“자, 이리 와서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그래, 뭘 조사하려고 오셨소.


어서 물어보시오. 나는 이 마을의 촌장이오”


“촌장님, 암하리가 도대체 언제 어떤 무리에 의해 저렇게 잿더미가 되었는지요.”


자리가 너무 지저분해 앉기가 썩 내키지 않았으나 그래도 서로 마주 보고 앉아야 대화가 좀더 잘 될 것 같다고 생각한 정소초는 촌장이 권한 너덜너덜한 거적때기 위에 주저 없이 앉으면서 말했다.


촌장이 긴 한숨을 몇 차례 몰아쉬고는 회한과 울분이 뒤섞인 복잡한 속내를 뱉어내듯이 말했다.


“다 그 빌어먹을 금광 때문이지요!”


“금광이라고요! 이곳 암하리에 금광이 있었던가요? 그곳이 어딥니까? 관에 신고는 했습니까?”


금광이란 말에 화들짝 놀란 정소초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가씨. 하나하나 차근차근 물으시오. 시간은 많으니까.”


자신의 실수를 인지한 정소초가 멋쩍게 왼손으로 이마 한쪽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한 차례 쓸어올리며 금세 목소리를 낮췄다.


“촌장님 죄송합니다. 금광이라는 말에 제가 잠시 흥분했었나 봅니다. 그런데 금광과 암하리의 횡액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요.”


촌장이 먼발치에서 돌아앉아 작고 납작한 돌로 바닥에 뭔가를 하염없이 그리고 있는 한 아이를 한 차례 힐끗 쳐다보고는 계속 자신이 하던 말을 이었다.


“저 아이는 종하라고 합니다. 그의 아비가 이 근동에서는 탁월한 약초꾼이었지요. 마치 날랜 산양처럼 이 산 저 산을 타고 다녔지요.


여기서 산 하나 넘어 이십여 리쯤 떨어진 곳에 ‘단애골’이라는 깊은 골짜기 하나가 있습니다.


그곳은 워낙 골이 깊고 험해서 사냥꾼조차 잘 가지 않는 골짜기이지요. 사람의 손길을 거의 타지 않아 진귀한 약초가 많은 곳이기도 하고요.


우리 마을에서 종하 아버지만 봄, 가을 일 년에 두어 차례 약초를 캐러 그 골짜기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한 번 가면 보통 보름 정도씩 머물곤 했지요.


그곳에 종하 아비가 늘 자는 동굴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루는 곤히 자는데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가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종하 아버지는 그 멧돼지를 쫓아내기 위해 커다란 돌들을 마구 던졌지요.


멧돼지가 나가고 나서 잠자리를 다시 고르다가 멧돼지에게 던질 돌을 파낸 자리에서 뭔가 번쩍거리는 걸 봤답니다.


금이었지요. 어린아이 주먹만 한 금덩어리를 캔 종하 아버지가 그 길로 약초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마을로 곧장 돌아왔지요.


그 금을 어찌 처리할까 고민하던 종하 아버지는 대여섯 조각으로 잘라서 팔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하필이면 그날 저녁 운악산 산적패가 마을로 들이닥쳤습니다. 원래 그 산적패들은 우리와 잘 알고 있어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진 않았습니다.


가끔씩 필요한 게 있으면 마을로 뭔가를 얻으러 오곤 했지요.


그날은 산적패의 수괴가 뱀에 물려 전신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열이 심하게 나서 종하 아버지께 약초를 구하기 위해 마을에 내려왔던 모양입니다.


워낙 다급한 산적패가 기척도 없이 종하 집 방문을 벌컥 열었지요. 마침 그때 종하 아버지는 여러 조각으로 쪼갠 금을 막 숨기려던 참이었고요.


금덩이를 보고 눈이 홱 뒤집어진 산적패 중 하나가 잠자는 종하의 목에 칼을 대고 금이 어디서 났는지를 캐물었지요. 종하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그 동굴을 말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산적패들이 그 동굴을 장악하고는 금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채굴한 금을 평소 자신들이 거래하는 장물아비한테 넘겼지요.


그게 사달이 났습니다. 장물아비도 그 금을 처리해야 하니까 평소 거래하던 성도의 전장에 넘겼습니다.


그런데 금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가공도 전혀 안 된 걸 보고 전장주가 의심을 했지요.


그리고 달포도 안 돼 오륙십여 명이나 되는 운악산 산적패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에게 하룻밤 새 몰살을 당했습니다.


흉신악살도 그런 흉신악살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것도 모자라 금광에 대한 비밀이 새어나갈까봐 우리 마을 사람들도 닥치는 대로 학살했습니다.


당시 마을에 있던 백여 명의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그렇게 불귀의 객이 되었지요. 아직 시신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우리는 때마침 저 산 위에 있는 다랑논에서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서 이 동굴로 급하게 피신을 해서 간신히 살아남았습니다.


그자들은 혹시라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더 있을까 하여 지금도 수시로 이곳저곳을 이 잡듯이 들쑤시고 다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습니다.


진짜로 긴급한 일이 있으면 종하를 시킵니다. 제 아비를 닮아 워낙 날래고 이 주변의 샛길도 모르는 게 없습니다.


식량이 떨어질 때쯤 되면 종하가 다랑논 지하창고에서 몰래 조금씩 가지고 온 걸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있답니다.


낙양 왕부에서 왔다고 했습니까? 제발 저 흉신악살 같은 놈들을 싸그리 좀 없애주십시오. 우리도 하루빨리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불의의 횡액을 당한 마을 사람들의 무덤도 만들어야 하고, 그들을 위한 위령제도 지내야 하고, 다시 농사도 지어야 내년에도 먹고 살지요.


하지만 극도로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의 숫자가 삼백도 훨씬 더 됩니다. 금광 근처에 가건물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주변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주변이 잘 보이는 봉우리마다 밤낮없이 보초를 세워 운악산 전체를 물 샐 틈 없이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벌써 몇 달째 이곳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습니다. 발각되면 모조리 죽은 목숨이니까요.”


촌장의 기막힌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정소초는 치미는 울분과 슬픔을 주체할 수가 없어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고 눈시울을 붉혔는지 모른다.


어떤 장소 어떤 상황에 놓여있어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어떤 품위가 느껴지던 그녀였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러지 못했다.


평상시의 평정심과 침착성을 잃는 그녀가 표독한 눈빛에다 입술까지 파르르 떨면서 말까지 더듬거렸다.


“처-처, 천지에 황법이 엄연하거늘···. 저런 쳐죽일 살귀들이 있나!


금맥이 발견되면 당장 관에 먼저 신고해서 나라에 귀속시켜야 마땅하거늘···.


게다가 자신들의 비밀이 샐까 봐 무고한 무참히 양민들까지 학살하다니,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종자들이구나!


일망타진도 모자라 삼족을 멸해도 시원찮을 인간 말종들!


허 대주님. 아버님의 호위대를 제외한 왕부에 있는 병사들 전부를 이곳으로 출동시켜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왕부에 연락할 방법이 없을까요.”


“가장 날랜 병사 둘을 뽑아 지금 출발시키면 내일 오전 중으로 왕부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허 대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촌장이 손사래를 치며 허 대주의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건 절대로 안 됩니다. 그들이 이 산을 벗어나기도 전에 놈들에게 발각되어 죽임을 당할 게 뻔합니다.


그러면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의 목숨도 즉각 위험에 처해 질 수 있습니다. 병사들을 보내는 건 절대로 안 됩니다.


정 밖으로 누군가를 보내려면 종하 말고는 적임자가 없습니다. 종하만이 그들의 감시를 피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종하 아니면 그 누구도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정소초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촌장을 향해 고개를 끄떡이며 승낙의 눈빛을 내비쳤다. 촌장이 돌로 바닥에 뭔가를 그리고 있던 종하를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


“왕녀님의 말씀을 들었겠지. 어때 가능하겠느냐? 자신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촌장님 그리고 왕녀님. 제가 하겠습니다. 저들을 일망타진하는 것을 제 두 눈으로 꼭 보고 싶습니다. 그래야 횡액을 당하신 부모님도 두 눈을 편히 감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저에게 맡겨만 주십시오. 제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정소초는 종하가 보통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담대한 배짱과 의지, 딱 부러지는 태도까지 사람을 믿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면 크게 될 아이 같았다.


잠시 종하의 맑은 눈을 유심히 쳐다보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촌장님, 혹시 지필묵이 있습니까.”


“여기 그런 게 있을 리가 있습니까.”


촌장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종하가 얼룩이 군데군데 번진 누런 광목 한 장과 숯과 물을 담은 사발 하나를 들고 왔다. 그가 오른손으로 뒷머리를 두어 차례 긁적거리며 말했다.


“왕녀님. 이걸로 대신하면 안 되겠습니까?”


정소초는 종하의 임기응변에 또 한 번 감탄했다. 그녀가 만면에 은은한 웃음기를 가득 띠고서 물었다.


“올해 나이가 어찌 되느냐? 글은 배웠느냐?”


“열 살입니다. 약초 책을 공부하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간신히 천자문을 배웠습니다.”


겸손하기까지 한 종하의 태도에 정소초는 감명을 받았다. 그녀는 그 순간 종하를 왕부로 데려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새 종하가 숯을 갈아 사발에 가득 풀어놓았다.




그의 뱀 같은 징그러운 눈빛은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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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그리고 고색창연한 금琴 하나가 놓여있었다. +2 22.06.17 1,336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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