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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귀 님의 서재입니다.

전생을기억하는마법소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민트소
작품등록일 :
2021.05.12 14:14
최근연재일 :
2021.06.22 11:15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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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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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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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30화. 채수영 경위

DUMMY

“올해 근무태도 평가에서 마이너스가 없고, 교육훈련 평가 최고점에 경찰업무기여도 역시 최고점이라···.”


회의실 안에 중년의 여성이 채수영 경위의 인사기록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수영은 조금 전 그녀로부터 건네받은 명함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경찰청 성평등정책담당관 윤최상실]


“저···, 3년 전까진 표창도 많이 받았다고 들었는데요···.”


이번에는 수영보다 젊어 보이는 여성이 윤최담당관에게 작게 말했다. 방금 전 윤최 담당관으로부터 소개받은 미디워 가드 여우주 기자였다.

그 말을 듣자, 윤최 담당관은 서류를 앞으로 넘겨 프린트된 목록을 손으로 짚으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경찰 대학장 표창 하나. 경찰대학 1년 교육할 때 받았나보죠? 수석이라 들었는데···.”


“···.”


수영이 별 말 않자, 윤최 담당관은 계속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4년 전, 경찰청장 표창 하나. 그리고 3년 전 국무총리 표창 하나. 그 외 경찰서장 표창 다수.”


“이야! 어마어마하네요. 담당관님, 이정도면 여경의 레전드급 아닙니까? 그림 좀 나오겠는데요?”


“훗. 그러니 여우주 기자님이 잘 좀 써주셔야죠? 아무튼, 채수영 경위님. 인터뷰 겸 경위님 고충을 들으려하니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시기 바래요.”


“···네.”


윤최담당관이 고개를 돌려 여 기자를 바라봤다. 여 기자는 녹음기를 켜고 수첩을 꺼내며 말했다.


“먼저 3년 전, 일계급 특진과 함께 본청 수사과로 내정되어 있었는데 진급은 보류되고 지구대로 좌천당한 상황부터 말씀해 주시죠.”


“굳이 좌천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곳 지구대 순찰도 민생치안에 가장 가까운 영역이라 시민들을 직접 마주 뵐 일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래서 꽤 보람을 느끼며 업무에 입하고 있습니다.”


“아···, 네. 하하.”


여 기자가 웃으면서 넘기자, 윤최 담당관이 입을 열었다.


“기록으론 국무총리 표창으로 얻은 평가 점수가 과잉진압 벌점으로 전부 상쇄됐다고 나와있어요. 그런데 듣기론 가해자를 검거하는 도중 성희롱에 대처하여 그렇게했는데 불이익 받았다고 하더군요.”


담당관의 말에 여 기자가 말을 보탰다.


“저희는 채 경위님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런 훌륭한 성적에도 진급이 누락되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한 기사도 기획하여 송고할 계획입니다.”


“진급이 되지 않은 것은 저도 유감입니다만, 특별히 여성이기 때문에 누락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단지 체력적으로 남성이 우월하다고 여경들의 평가가 박해지는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일반적으로 남성의 근육이 크기 때문에 비교적 체력의 우열이 존재하는 건 사실입니다만, 여성도 충분한 노력으로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는 사안이라 봅니다. 앞서 교육평가에서 보셨겠지만, 저는 늘 체력단련으로 컨디션을 조절해 실전상태에 임하고 있습니다.”


“정말 훌륭한 여성 경찰관이세요.”


“굳이 제가 여성이라서기 보단, 시민에게 봉사하는 한 명의 경찰로서 맡은 임무를 다 할 뿐입니다.”


윤최 담당관은 마음에 안드는지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다 화제를 전환하고자 했는지 다시 말을 꺼냈다.


“저희 여가부 상임위원으로 이번에 주기만 의원이 발탁되신 거 아시죠? 행정부 산하 관청에 있는 여직원들의 차별에 무척 관심이 많으시답니다. 이번에도 경찰 내 성차별로 진급누락 사례를 조사해서 시정조치할 수 있도록 하라는 권고를 받았어요.”


여 기자가 옆에서 거든다.


“그 대상에 채수영 경위가 적합한 것 같아요.”


“주 의원님이 저를 지목하셨나요?”


“그건 아니지만, 이런 말해서 미안한데 의원님께서 경찰관 각 개인의 신상을 다 아시지는 못합니다. 저희는 케이스를 조사해 그에 적격한 인재를 알리고, 시정조치 하는 것이죠.”


“저는 주 의원 아드님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공권력 남용으로 징계를 받았습니다. 지구대로 발령난 것도 그 이유이고요.”


“음···.”


윤최 담당관과 여 기자는 사건의 내막을 처음 들은건지 얼굴에 당황한 빛을 띠었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하지만 3년 동안 계속 진급이 누락되었다는 건 여경으로서 공정하지 못한 평가가 뒤를 이어···.”


“앞서 말씀드렸듯이, 여경으로서 차별을 받아 진급이 누락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여 기자가 의문을 자아낸다.


“근데, 당시 체포하는 과정에 있어 채 경위님 혼자서 단독으로 체포했나요? 다른 경찰관들은 없었고요? 가해자가 여성일 경우, 여경이 몸수색과 체포를 하고 남자일 경우 남경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강우석 경위가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당시 경사였던 그가 먼저 체포하려 했으나 주 의원 아드님의 저항이 거셌고, 강 경위에게 직위에 따른 위협을 가했습니다. 사법경찰관도 아닌 일개 경사 따위가 감히 자기에게 수갑을 채우냐고요. 그래서 제가 나섰던 것입니다.”


“역시! 남성이 남성을 제압하지도 못해 여경이 남성을 체포하는 경우까지 왔군요! 윤최 담당관님, 그 강우석 경위 인사기록도 가지고 계시나요?”


“강우석, 강우석이라···. 아, 여기 있군요. 강우석 경위. 정황을 보건대 당시 직무태만임에도 어떤 징계도 받지 않고 올해 경위로 승진이라···. 확실히 남성에게 편향된 인사방침이라 볼 수 있겠네요.”


가만히 듣던 채 주임이 황당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게 그런 식으로 이해를 하게 되는 건가요? 강우석 경위는 일처리에 있어 언제나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경찰입니다.

사건이 벌어지면 가장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해 왔기에 파트너로서 늘 든든하게 의지하던 동료였죠. 그 당시도 가해자의 협박 때문에 체포만 제가 했을 뿐, 이후 모든 뒷처리를 강 경사가 도맡아 했어요.”


“어쨋든 강 경위는 진급했고, 채 경위는 진급누락에 좌천됐다는 말이지요?”


“담당관님, 이거 소스 괜찮은데요? 잘하면 그림 좀 나오겠어요.”


“하아···.”


채 주임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기야 바지 벨트를 풀고 순찰복 상의를 들어 올렸다.


“어, 어맛!”


“채 경위님,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군살 없이 근육으로 촘촘한 우윳빛 상체엔 갈비뼈 아래에서 하복부에 이르기까지 자상 흉터가 길게 나 있었다.


“3년 전, 대림동 중국 조직원 검거 때, 조형로 팀장이 조직 두목으로부터 칼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것을 보고 두 번째 칼날을 제가 몸으로 막았습니다. 이게 바로 그 상처이죠. 그리고 난투 중 저에게 들이댄 두 번째 칼을 강우석 경위가 저 대신 맞았습니다.”


“···.”


채 주임은 걷어올려진 상의를 다시 내리며 말을 이어갔다.


“경찰에겐 그 사람이 남자냐 여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고 서로 등을 맡길 수 있는 동지며 가족이냐가 핵심입니다. 폭력과 흉기가 오고가는 이런 전장에서 남자 여자 구분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채 경위는 경찰서 내에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느 정도의 차별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고의적 차별, 다시말해 남자와 여자의 생리적 차이에 의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들은 그 차별대로 인정하고 넘어가자는 주의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비단 남녀 차별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 어디에서도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죠. 굳이 부자와 빈자, 권력자와 피지배자, 똑똑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별을 논할 필요 없이, 같은 계층의 사람들끼리도, 같은 성별의 사람들끼리도 그 안에서 작게나마 차별이 존재하지요.”


“우리는 그런 작은 차별도 사라지도록 노력하자는 취지예요.”


“예. 잘 압니다. 하지만 이런 자잘한 차별은 모두가 서로 다른 인간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자로 차별을 받아본 적, 네.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기분 나쁘고 억울하긴 하지만 시시콜콜한 것들이죠. 반면에 제가 여성이라 배려받은 것들도 많습니다. 물론 이것들도 제가 남자라면 그냥 넘어갈 만한 것들이고요.”


“직장 생활에서 억울한 점들은 당연히 풀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채 경위님은 조직에 만연해 있는 폐단이 단지 시시콜콜하다 해서 그냥 넘어가자는 투로 들리는군요. 이건 불공정한 처우를 정당화 시키자는 거 아닌가요?”


여 기자가 강한 어조로 부인하자, 윤최 담당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채 경위님. 그런식으로 넘어가주면 희생하는 여성들이 점점 더 많이 생길 것이고 결국 경찰은 여성들의 권익을 해치는 조직이 됩니다. 이것은 성평등 취지에 악영향을 미치게 돼요.”


가만히 듣고 있던 채 주임이 옛날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대학생 때 일년 간 유럽여행을 다녔습니다. 커피 마시는 작은 바에서부터 대형 마트에 이르기까지, 식료품을 구매하고 잔돈을 거슬러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거슬러받을 돈이 1.52유로가 나왔습니다. 직원은 저에게 1.5유로만 거슬러 줬지요. 0.02유로, 즉 2센트를 손해봤습니다. 처음엔 내가 동양인이라 무시하고 인종차별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날은 거스름돈이 1.92유로가 나왔는데, 이번에는 2유로를 거슬러 주는 겁니다. 8센트 이득을 봤죠. 매우 작은 단위의 금액까지 전부 신경을 쓰다간 비축된 동전이 모자란 상황에 처해지기도 하고, 또 그것이 계산 속도에 영향을 줘, 융통성을 부리는 것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앞에 있는 물을 한 잔 마시고 다시 이어갔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1.52유로만큼 받아야 하는데 1.5만 받았다고 내가 차별받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부분에서 또 플러스가 나기 때문입니다.

자잘한 문제들은 잔돈을 반올림하거나 버림을 하듯, 서로 손해보기도 하고 이익보기도 하며 넘어가는 것이 조직생활에 필요한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건 정의롭지 못한 생각이에요! 내가 손해 본 것이 나중에 다시 이익으로 되돌아올 거라는 건 계산할 수 없는 불확실한 기대일 뿐이잖습니까? 애초에 완벽히 손해도 이익도 없이 정확하게 가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차별과 불공정을 잡으려는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모든 것을 평등으로 바꾸기엔 소모되는 것들이 너무 많고 실효성도 없다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서로의 이해관계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지요.

안타깝지만 현재의 성평등 정책은 여성이 받는 반올림은 없애지 않으면서 버림에 대해서만 철저히 문제를 제기하는 것 같군요.”


한참을 듣던 윤최 담당관은 여 기자를 힐끗 보더니 한숨을 크게 쉬고 입을 열었다.


“채 경위님의 의견은 잘 알겠어요. 하지만 저희는 그런 자잘한 차별의 문제를 담론화시켜야 보다 근본적인 차별이 사라질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자잘한 차별을 무시하자는 경위의 생각은 동의할 수가 없군요. 작은 것을 무시하면 큰 차별을 당했을 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겠죠.”


“온전히 부당한 처사라면 누구보다 제가 먼저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하지만 보통의 상황들은 그렇지 않죠. 지금도 저의 진급누락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주 의원의 갑질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 기자가 윤최 담당관에게 작게 속삭였다.


“지금은 고위 공직자의 갑질에 대한 기사를 쓸 타이밍이 아닙니다.”


그러자, 채 경위가 중간에 끼어 들었다.


“부당한 처사에 관한 기사도 취사선택인가요? 그 때 그 때 입맛에 맞는?”


“그게 아니라···.”


“저의 진급누락은 주 의원 아드님의 갑질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러면 그쪽과 저와의 문제를 다루어야 할 텐데, 뜬금없이 강우석 경위를 끌어들여 남녀간의 문제로 방향을 트는 것이 이해가 안돼서 하는 말입니다.”


윤최 담당관이 교통정리를 했다.


“채 경위님, 국회의원의 갑질문제는 저희 소관이 아니에요. 저희는 여성이라는 성별로 인해 불이익을 받았느냐가 관건입니다.”


“맨 처음 말씀드렸습니다. 전 여성으로서 차별받지 않았습니다. 권력자의 갑질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건 담당관님이나 기자님의 관심이 아니니, 그만하겠습니다.”


윤최 담당관은 여 기자와 작게 속닥거리더니,


“네. 좋은 이슈가 될 수 있었는데 아쉽군요. 그럼 채 경위님의 진급누락 건에 대해 어떠한 차별성이 없었고, 본인도 정당한 처사였음을 인정했다고 보고하겠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


뭐라 한마디 던지려다,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지 채 주임은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를 돌아 문쪽으로 가는데 여 기자의 휴대폰이 울렸다.


“네, 부장님···. 네!? 아니 그걸 데스크에서 그냥 내보냈어요? 어떻게···? ···뭐라고요? 국장님이?”


“여 기자, 무슨 일이에요?”


“담당관님···. 청와대 국민 청원에 올라간 건 있잖아요? 저번 일로 담당관님 해임을 요청한다는···. 그 기사가 보도국에서 났는데 담당관님께 좀 비판적인 논조로 보도가 나갔···.”


“뭐? 그럴리가!”


윤최 담당관은 서둘러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 뉴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윤최상실 성평등정책담당관의 망언, 어디까지 갈 것인가?]


부들부들 거리는 손가락으로 빠르게 스크롤링을 해 기사를 훑은 윤최 담당관은 성난 표정으로 여 기자에게 소리쳤다.


“여우주 기자, 어떻게 된거야? 자기네 신문사에서 어떻게 이런 기사를 쓸 수가 있어? 자기네 회사에도 여혐 기자들 있는거 아냐? 나 정말 배신감 느껴!”


“담당관님 고정하세요! 저도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국장이 여당과 뭔가 딜하고 싶은게 있나봐요. 설마 이걸로 정말 해임되겠어요?”


“자기 일 아니라고 너무 쉽게 얘기하네? 이봐! 내가 자기한테 소개시켜준 여성단체가 몇 개야? 정부 사람들 다리놔줘서 그 콧대높은 H그룹 광고도 따 줬잖아? 그거 다시 물리고 싶어? 어휴! 이래서 핫바리 찌라시들 괜히 키워주는거 아니었는데···.”


“뭐라고요? 담당관님!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그리고 본질적인 잘못은 담당관님께 있잖아요! 제가 지금 들어가서 담당관님 후속기사 한 번 터뜨려 볼까요? 누가 먼저 다치나?!”


“아니, 뭐야? 이년이 지금 어디서 협박질이야? 펜대는 글 쓰는 대신 뒤통수 찌르라고 가지고 다니니?”


“이 아줌마가 보자보자 하니까···!”


둘이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모습에 채수영 경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회의실을 나갔다.



* * *


- 엄마아, 콩나물이랑 식빵이 왔어요~!

- 아이고, 빨리 갔다 왔네? 우리 아들 착한 일 했으니, 자!


임시연이 딸기맛 하겐다즈 아이스크림통을 내민다.


- 헤헤.

- 그렇게 좋아? 먹고나서 양치질 꼭 해야해, 알았지?

- 응!


장면이 바뀐다.


故 이정우

故 임시연 분향소.


상주 완장을 두른 슈가 빈소 앞에 앉아 있다.


- 아휴, 저 어린 걸 두고 어째?

- 마주오던 차가 졸음운전 했다면서요?

- 부모가 한날 한시에 가다니···, 근데 애는 이제 누가 본대요?···

.

.

- 네, 큰아비 되는 사람입니다. 그동안 교류가 없었죠···.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이었으니까요. 보시다시피, 둘째가 죽었는데도 아버지는 연을 끊었다고 조문도 안오셨어요.

- 그럼 아이 후견인은 누구로 선정하실 건가요? 법적으로는 자동으로 아버님이나 선생님에게로 갈 텐데요?

- 일단 저희는 둘째 재산 노리고 아이 받아들였다는 얘기 듣고 싶지 않습니다. 저희 형편이 아쉽지도 않고요. 둘째 상속분하고 사망보험금 나오면 그걸로 고아원에 보내 양육비로 쓰게 할까 합니다···. 뭐, 유학가려고 했다 하니, 애가 원하면 그쪽으로 보내서 성인 될 때까지 살게 해줄 수도 있고요.

- 임시연씨 쪽은···?

- 부모가 없어요. 사실 그것 때문에 저희 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했던 건데, 듣기론 사촌 언니가 한 명 있다는 얘기를···. 아, 저기 오네요.

- 헉헉, 방금 얘기 들었어요. 친가 쪽에선 법적후견인 포기 하신다면서요? 그럼 저희가 맡을게요. 우리도 핏줄로 따지면 엄연히 외가 되니까요. ···근데 상속받을 재산이 얼마라고요?···.




* * *


제법 냉기가 도는 바람과 강렬한 햇살을 동시에 느끼며 서진은 눈을 떴다. 바람에 휘날리는 커텐이 보인다.

간밤에 열어 놨던 호텔 유리창을 통해 찬바람을 들어오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헉! 하며 바닥에서 급히 일어나 슈가 누운 침대로 다가갔다.


어젯밤 침대에서 흘러나오던 압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눈을 감은 채, 핏기없는 얼굴로 누워있는 슈가 시야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슈의 코에 가져다 대었다. 들숨과 날숨이 균일하게 서진의 손가락을 간질거린다.

곧이어 이마에 손을 짚었다. 주변의 어떠한 저항 없이 슈와 접촉할 수 있었다.


“슈, 괜찮아? 일어나 봐.”


“···.”


아무 움직임이 없자, 몸을 흔들었다. 슈의 몸이 서진의 휘두르는 방향에 따라 힘없이 흔들린다.


“슈, 정신 차려···.”

“···.”


“후우···. 미안해.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기껏 해봤자, 작은 충격 정도만 생길 줄 알았는데···.”


한숨을 쉬며 슈를 응시하던 서진이 문득 슈의 머리맡에 굴러다니고 있는 유리병에 시선이 갔다.


“이, 이게...?”


투명한 유리병에 1/4 정도 남아있던 라크리데이는 처음의 은은한 하늘색에서 짙은 남색의 빛을 띠고 있었다.


마치 심해의 바닷빛 같이.


손을 뻗어 유리병을 움켜쥐었다.

병을 감싼 손이 작게 떨리고 바라보는 눈은 복잡미묘하게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천천히 뚜껑을 열자, 파란색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이전에 맡았던 마나의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햐, 향기가 눈에 보여?”


마나의 향기는 파란 빛깔을 머금고 호텔 방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열려진 창 밖까지 퍼져 나갔다.


어젯밤 매직라이트에 비추었을 때 간신히 풍기던 미약한 청량감이 아니라, 그야말로 진득하고 농밀한 향기가 유리병 주둥이에서 샘물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서진은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몸에 활력이 도는지,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다가, 아차! 하며 급히 뚜껑을 닫고 주위를 둘러봤다.


호텔 방은 밤새 폭풍우에 휩싸인 듯이 엉망진창이었다.


슈가 누워있는 침대를 중심으로 잡동사니들이 원을 그리며 퍼져 있었다.

깨져버린 매지톡스와 모스트로 앰플이 침대 주변에 널부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서진은 앰플과 손에 들고 있는 라크리데이 유리병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빛이 꺼진 매직라이트와 연결된 데모닉 배터리에 시선이 갔다.


데모닉 배터리는 바람빠진 풍선처럼 완전히 쭈그러져 매직라이트 배터리와 하나로 엉겨붙어 있었다.


대충 주사기와 앰플을 치우고, 인터폰을 눌렀다.


“···네. 저기, 하우스키퍼 좀 보내주시고요···. 방이 많이 더러워요. 두 분 정도 있어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제 동생이 몸이 많이 아픈데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서진은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썼다.

테이블에 5만원 권 두 장을 놓고 하우스키퍼와 직원을 기다렸다.


이윽고 호텔 직원이 방에 들어와 슈를 업었고 둘은 함께 로비로 내려갔다.


작가의말

어제 29화 예약을 걸어놓고 확인을 못했는데

처음 부분이 (약 2200자) 누락된 채 업로드 된 것을 30화 업로드 예약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29화에 누락된 부분을 삽입하려 했으나, 29화를 이미 18분이나 보셨고 이분들이 다시 뒤로 가기 하시는 것도 좀 아닌 것 같아 고민 끝에 30화 뒤에 붙입니다. 


누락된 부분은 스토리 진행 상 독자님들께서 아셔야 되는 부분이라 이렇게 알립니다.

혼선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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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화. 추격 (1) 21.06.06 91 2 16쪽
» 30화. 채수영 경위 21.06.05 86 2 19쪽
29 29화. 남서부 강력팀 21.06.04 101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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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화. Lacri Dei 오리지널 (1) 21.06.02 11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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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마법사 (4) 21.05.29 140 6 9쪽
22 22화. 마법사 (3) 21.05.28 153 2 13쪽
21 21화. 마법사 (2) 21.05.27 151 6 13쪽
20 20화. 마법사 (1) <-- 소제목 변경 21.05.26 156 6 15쪽
19 19화. 도박장 (4) 21.05.25 157 6 13쪽
18 18화. 도박장 (3) +1 21.05.24 154 6 12쪽
17 17화. 도박장 (2) 21.05.23 166 3 12쪽
16 16화. 도박장 (1) 21.05.22 167 6 13쪽
15 15화. 엔조정밀 (4) 21.05.21 178 4 14쪽
14 14화. 엔조정밀 (3) 21.05.20 183 4 14쪽
13 13화. 엔조정밀 (2) 21.05.20 202 4 15쪽
12 12화. 엔조정밀 (1) 21.05.19 232 6 13쪽
11 11화. 야바위 21.05.18 249 6 16쪽
10 10화. 소년은 자라지 않는다. (4) +2 21.05.17 316 9 17쪽
9 9화. 소년은 자라지 않는다. (3) 21.05.16 324 9 12쪽
8 8화. 소년은 자라지 않는다. (2) +1 21.05.15 362 10 13쪽
7 7화. 소년은 자라지 않는다. (1) 21.05.15 465 11 12쪽
6 6화. 13년 전: 뒤바뀐 아이 (5) +1 21.05.14 469 16 13쪽
5 5화. 13년 전: 뒤바뀐 아이 (4) 21.05.13 488 14 16쪽
4 4화. 13년 전 (3) 21.05.13 498 14 14쪽
3 3화. 13년 전 (2) 21.05.12 610 15 13쪽
2 2화. 13년 전(1) 21.05.12 921 22 16쪽
1 1화. 전생의 파편 +2 21.05.12 1,437 4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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