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마법사 (4)
점심식사 시간으로 붐벼대는 학교 식당의 다른 공간과 달리, 동오가 앉아있는 한 쪽 구석은 한적하다 못해 적막감까지 감돌 정도였다.
동오의 자리엔 아이들이 손수 떠 온 물컵과 매점에서 사온 음료수를 비롯, 각종 간식거리들이 식판 옆에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한 여학생이 식판을 들고 다가왔다.
“동오, 여기 앉아도 돼?”
“···.”
동오가 아무말 않자, 여학생은 스스럼 없이 옆자리에 앉았다. 반찬으로 나온 새우튀김을 집어 동오의 식판에 올려놓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어제 왜 전화 안받았어? 학교에서도 그렇게 빨리 가고···.”
“···.”
“바쁜 일 있었던 거야? 문자로 연락 좀 하라했는데 전화도 안하고···, 어제 좀 실망이었어.”
“···.”
“그리고 저번에 이야기했던 스터디모임···, 생각해봤는데 굳이 다른 애들도 함께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그냥 우리 둘만 해도 되지 않을···.”
“야.”
“응?”
“그냥 네가 빠져라. 스터디.”
“···?”
“너 아니라도 들어올 사람 많아.”
여학생은 순간 당황했는지 말문이 막혀있다가,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이~, 왜그래? 화났어? 으휴, 내가 미안해. 이번엔 내가 양보할께.”
“아니, 그냥 네가 완전히 빠지는 걸로 하자. 네 꽁냥질 받아주는 것도 이제 지쳤으니까.”
“뭐?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젊은 애가 벌써 귓구멍이 막혔냐? 너 이제 지겹다고. 그만 가라고.”
여학생은 동오의 말을 듣자, 수치심으로 달아 올랐는지 얼굴을 붉게 상기시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그러자, 하아.. 한숨을 쉬더니, 놀리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여학생을 비스듬히 쳐다봤다.
“네가 뭔데?”
“···.”
“네가 도대체 뭔데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없어?”
“···!”
“그동안 예뻐해줬으면 알아서 조신하게 지내야지, 왜 네가 뭐라도 된 것마냥 이래라 저래라야?”
여학생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동오는 그런 모습이 익숙한 듯, 작게 혀를 한 번 차더니 고개를 돌려 식사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다시는 안그럴께.”
“하아, 시발···.”
“...?”
“얼굴만 믿고 들이대던 돌대가리년들 지겨워, 그나마 공부 좀 하는 년은 어떨까 싶었는데, 똑같네. 야, 추한 꼴 보이지 말고 그만 가라.”
그 때, 재호와 상필이 식판을 들고 동오에게 다가왔다. 맞은 편 자리에 앉으려다 옆자리에 앉아 눈물을 찍고 있는 여학생을 보더니, 둘의 얼굴에 비웃음이 드러난다.
“내 친구들 왔으니 이만 가라. 좋은 말 하는 것도 여기까지야.”
“흑···, 내가 잘못했어. 다시 한 번만 나에게 기회를 줘.”
그러자 재호가 끼어들었다.
“크흠, 저기 대화 중에 미안한데, 이제 그만 가보는게 어때? 우리 중요한 얘기를 해야 하거든?”
“···.”
“그만 울고. 저기···, 이걸로 닦아.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재호가 중학생 답지 않게 안주머니에서 실크 손수건을 꺼내 여학생에게 건네 주었다.
그걸 옆에서 보던 상필이 혀를 차더니,
“야이, 씨발년아! 그만 처울고 당장 꺼져!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더러운 궁둥이를 뭉기적 대?!”
상필의 외침에 식당이 한순간 조용해지더니, 동오네 식탁으로 시선이 모였다가 다시 흩어졌다.
평소 점잖아보이던 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상상할 수 없을 욕설에 당황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동오와 재호를 쳐다보았다. 상필의 거친 언행에 주변 누구도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
“왜? 한 달동안 동오 여친 노릇하니까 우리도 머슴으로 보였냐? 큭, 미친년! 그동안 마나님처럼 대우해 줬더니 눈에 뵈는게 없었지? 그러게 근본도 없는 년이 왜 자꾸 설쳐대? 짜증나게. 헛된 망상 품지 말고 주제 파악이나 해라, 알겠냐?”
결국 자신에게 쏠린 학생들의 시선을 감당하지 못했는지, 여학생은 울면서 식당 밖으로 달려 나갔다. 재호가 준 손수건은 꼭 쥔 채.
재호가 식판을 내려놓으며 상필을 나무랐다.
“야,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한테 씨발년이 뭐냐? 품위 떨어지게.”
“지랄하네. 내가 네 꿍꿍이를 모를까봐? 얼굴 반반한 여자애들한테나 상냥한 척···, 게다가 그 손수건은 또 뭐야? 어우, 토쏠려.”
“새끼, 매너 없기는. 전교에서 도도하기로 소문났던 앤데, 나도 좀···. 흐흐.”
그런 시덥잖은 대화를 하며 재호와 상필이 자리에 앉자 동오가 입을 열었다.
“유도부 애들이 잡혀갔다고?”
“어휴! 내가 아까 그 전화 받고 어처구니가 없었다니까? 무슨 조폭 소굴이었는지 열댓 명이 달려들어 아주 그냥 다구리를 놨다더라.”
“깡돌은?”
“그 놈이 전화했어. 애들은 저항을 심하게 해서 많이 맞은 모양이야.”
그러자 상필이 비아냥 대듯 말을 보탰다.
“그 새낀 멀쩡했나보네? 분명 애들 돕지도 않고 제 안위만 걱정했을거야. 기생충 같은 새끼.”
밥이 반쯤 남아있는 식판에 수저를 놓은 동오가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럼 서진이나 시우는 못 찾은 건가?”
“공장 사람들이 걔네들 얼굴 알고 있는 듯 했대. 뭔가 관련이 있어.”
“흠···. 그냥 충돌이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갈 텐데, 납치라니···, 어이가 없어. 상필, 이거 지검에서 힘 좀 써주셔야 겠는데?”
“그렇지 않아도 방금 아빠 밑에 있는 부장검사한테 전화했지. 나랑 친해. 그 검사님 말이, 미성년자 폭행 건으로 공장 압수수색 영장 발부하려 했는데···. 와, 씨···, 어젯 밤에 남부지검에서 이미 누가 신청했다는 거야, 거길.”
“남부지검에선 무엇 때문에?”
“신고가 들어와서 경찰들이 갔는데 수상한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대. 근데 법원에서 기각됐다나봐.”
“왜?”
“그 공장 안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위에서 덮은거지. 그 윗선이 법원 쪽이라던데···, 어떻게 할까? 파워게임 한 번 해?”
재호도 옆에서 상필에게 의문을 나타냈다.
“아니, 폐공장이라며? 망한 회사가 무슨 힘이 그리 쎄?”
“나도 아직까진 모르지. 겉만 폐공장이고, 다른 뭔가 큰게 있을지도. 동오, 어떻게 할까?”
동오는 말없이 캔 음료수를 이리저리 흔들다, 캔뚜껑을 따며 말했다.
“일단 우리애들 건드린 값은 받아야겠지?”
“그럼. 그래야 우리 체면이 살지. 애들 풀려나면 위로비조로 좀 쥐어주고.”
“그래. 지검 통해서 다시 한 번 건드려 봐봐. 청소년 폭행 및 납치로. 그리고 나서 서진이 건으로 압수수색까지. 만약 그래도 막히면 내가 할아버지한테 얘기해 볼께. 뭐하는 놈들인지 한 번 보자.”
* * *
블랙박스에 녹화된 영상엔 주사위가 든 종이컵을 아이들이 돌리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서진의 모습이 정면에 드러나 있다.
“야바위에 속임수는 안보이는데요?”
“그런데도 돈을 계속 따는군···. 음?”
어떠한 속임수도 없는데 돈을 따고 있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 뿐이다.
단장이 급하게 지부장을 돌아봤다.
“지부장, 아까 도박장 카운터 잠겨있었던 거 확실하지?
“예. 안 차장이 자물쇠까지 걸어뒀었습니다.”
“금고 문은 어떻게 열렸다고?”
“시건되는 원판들이 밖에 빠져나와 있었습니다. 금고는 그대로고요.”
밤비노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단장을 바라보았다.
“단장님, 이거 혹시···.”
“그래. 자네가 예상하고 있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나 보군. 지부장, 도박장 집무실에 고글 있지?”
“네. 서랍에 잘 있습니다.”
“안 차장 시켜서 고글 좀 가져오라고 해.”
“단장님!”
그 때 비서로 보이는 남성이 노크도 없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방금 전 남서울지부에서 연락이 왔는데, 직원들이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3명과 충돌했다고 합니다.”
지부장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뭔소리야? 애들하고 왜 충돌을 해?”
“처음엔 공장 앞을 기웃거리더니, 소년과 소녀 사진을 보이며 공장에 들어오려 실랑이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찾는 애들이 얘네들?”
지부장이 손가락으로 태블릿에 나온 서진과 슈를 가리켰다.
“예, 학생들도 우리가 본 그 남자아이를 찾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근데 더 중요한건, 그녀석들이 이곳 본사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를 알고 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처음엔 공장으로 들어오려 하다 전화를 받더니 학생의 입에서 벨라차오 용역이 나왔답니다. 배후가 누군지 알아야 될 것 같아, 안 차장이 일단 제압해 놨습니다.”
단장의 얼굴이 굳어가자, 변호사가 물었다.
“걔네들은 또 뭐야?”
“여기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 휴대폰···.”
조금 전 깡돌의 통화를 받고나서 전원을 꺼버린 서진의 휴대폰을 바라봤다.
“그럼 휴대폰을 추적했다는 뜻인데, 그정도의 조직력을 갖출 정도면 어디가 있겠습니까?”
“일단 그녀석들 뒤에 누가 있는지 가서 알아보자고, 어차피 고글도 사용해야 되니.”
변호사가 안경을 고쳐쓰고 일어서며 말했다.
“차 대기 시켜 놓겠습니다!”
- 작가의말
Ep. 7 마법사 끝.
오늘은 분량이 좀 적습니다.
비축분은 더 있는데 처음 쓰는 소설이다보니 장면전환이라던가 퇴고가 꽤 어렵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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