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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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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4.10 19:10
연재수 :
2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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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9,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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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6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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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162

DUMMY

“후우······”


리아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척이나 진이 빠진, 한탄에 가까운 한숨이었는데, 이 모습이 재밌었는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아니, 그게······”

“아아. 미안하군. 자꾸 상상이 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실례했네.”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제3 황자 베르그. 그러나 그는 이내 재차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님―― 폐하께선 자네가 실로 마음에 들었나 보세. 설마 이른 아침부터 직접 찾아가실 줄은······ 후후.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제법 곤욕스러웠겠어.”

“아뇨······ 무척이나 영광스럽기만 했는걸요.”


당연히 거짓말이다. 황제의 아들인 베르그의 앞이기에 예의상―― 제정신이 박힌 인간이라면 의례상 하는 말일 뿐이었다. 그만큼 아침 식사는······ 칼윈 황제가 갑자기 끼게 되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랬다. 루비아의 예측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즐거운 시간은 원래 금방 끝난다고는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다. 사용인도 보내지 않고 칼윈 스스로가 직접 찾아왔을 때는 정말 놀랐었다.


하지만 거기까진 괜찮았다. 이래저래 그가 올 것을 대비하고 있었으니.


다만 한 가지 오산이 있었다.


칼윈이 찾아왔을 때는 이미 한창 아침을 먹고 있는 도중이었다. 그래서 아쉬워하며 돌아갈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는 이 예상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유감이로군. 그럼 차라도 껴서 마셔도 되겠나?”


전혀 사양도, 주저도 없었다. 황제라는―― 일국의 권위조차도 염려하지 않고 남이 밥 먹는 자리에 끼어든다는, 막상 하려고 시도하기엔 무척이나 꺼려지는 일을 산뜻한 얼굴로 해냈다.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나 놀라운 건 레딧츠와 안네가 같이 자리해있음에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는 것이다. 내심 여타 귀족들답게 사용인과는 동석할 수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에르와 델리안 쪽도 신경 쓰지 않고.


‘그건 좋았지만······ 역시 좀 불편했지?’


원래부터 왁자지껄 떠들던 건 아니었지만, 칼윈이 끼게 된 아침 식사는 정말 묘한 기류가 흐르는 기분이었다. 당연한 거겠지만, 덕분에 천천히 맛을 음미하던 것도 잊고 서둘러 아침을 먹게 됐다.


식기를 정리한 이후로도 그러했다. 칼윈은 돌아가지 않고 리카드가 준 다즐링의 원산지까지 알아맞히며 함께 티타임을 즐기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제국은 마음에 들었냐는, 도대체 뭔지 모를 일상적인 회화는 베르그가 올 때까지 이어졌다.


‘정말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어색한 시간이었지.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꿋꿋이 나한테만 말을 거는 것도 그렇고.’


한 가지 의외는 어제 교회에서의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거다. 분명 로즈가 바로 찾아가서 신명 나게 떠들었을 텐데······


물론 추궁당하지 않아서 좋기야 했다. 그러나 뒤가 걸린달까, 칼윈이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워 자꾸만 꺼려진다.



“아. 몰라! 오늘은 다 잊고 즐기는 거야!”

“그렇다면 나도 기합을 넣어야겠군.”

“앗! 죄송해요. 부담을 주려던 건 아니었어요.”

“마음 쓰지 말게. 오늘은 벌충이 아닌가? 되도록 힘내 보도록 하지. 다만, 너무 크게 기대는 하지 말아주게. 보다시피······ 제국은 좀 삭막하지 않은가.”

“그래도 기대는 할게요. 그편이 더 즐거울 테니까요. 거기에 삭막해 보일지언정 사람들은 활기가 넘치던걸요? 반전 매력이랄까, 어제 로즈 씨랑 다니면서 꽤 놀랐어요. 좋은 나라에요.”

“그렇군······. 좋은 나라이지, 우리 제국은.”


잠시 놀란 눈이었던 베르그는 이내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얼굴은 너무나도 순수하여, 그가 얼마큼이나 제국을 사랑하는가가 잘 느껴졌다.



“자. 이만 가보세. 너무 늦어지면 둘러볼 곳이 적어질 거라네.”

“아, 네!”


기세 좋게 대답한 리아는 마차 옆에 서 있는 군청의 거대한 말, 비젠탈에게로 뛰어갔다.



“저, 비젠탈 씨, 혼자 괜찮으신가요?”

《괜찮다.》


푸르렁 소리를 내는 비젠탈의 어조엔 불만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담긴 감정도 잠잠하고.


그렇지만 마음에 걸린다. 왜냐하면 이번 외출에서 그는 혼자 걷기 때문이다.


물론 마차를 끌 때도 혼자인 건 매한가지긴 하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다르다.


어제와 같은 구성원이라면 그냥 걸어도 상관없었다. 다들 체력이야 온종일 걸어도 전혀 지치지 않으니 말이다. 페리는······ 잘 모르겠지만, 야생 고양이니 나름대로 체력이 있을 거다. 그러니 로즈가 지친다면 안고 가든, 페리 위에 태우는 걸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외출은 루비아와 라프리트, 레스와 헤라드, 베르그와 로즈, 그 외에도 호위인 유즈라와 가베인 등 제국에서 온 일행 모두가 참여했다.


다들 신분이 신분이니 아무래도 그냥 걷기엔 무리가 있었고, 상당한 인원수다 보니 마차의 존재는 필수였다.


다만 이 마차를 끄는 건 비젠탈이 아니었다.


당연했다. 비젠탈은 이쪽의 부탁으로 제국에 온 것이었다. 그에게도 휴식과 즐기는 시간이 있어야지 아니겠는가? 그러니 놀러 나갈 뿐인 일에 마차를 끌어달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베르그도 적극적으로 찬성해줬다. 제국을 오고 가고야 어쩔 수 없이 비젠탈이 끌어야 하지만, 될 수 있으면 무리시키지 않고 싶다고 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특히 루비아는 아무래도 좋다며,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란 바로 말이다. 모두가 탈 수 있도록 배려한 큰 마차는――어쩐지 루비아의 입김도 있을 듯싶다―― 두 필의 말이 끌었는데, 건장한 군마들은 비젠탈을 보자 잔뜩 굳어 꼼짝하지 않던 것이다.


마부도 당황하여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봤으나 소용없었다. 하염없이 비젠탈의 눈치만을 보았다.


그대로는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비젠탈은 시야에 보이지 않는 마차의 뒤에서 따라오게 되었다.


제국의 수도인 린드그라드의 도로는 널찍하고 잘 포장되어 있었으나, 덩치가 상당한 비젠탈이 마차의 옆에서 걸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그러므로 어찌 보면 타당했다.


그렇지만 잘 쉬고 있던 그에게 같이 가자고 권한 건 다름 아닌 자신이다. 암만 본인이 괜찮다며 승낙하였다고는 하나 정말 미안했다.



“다, 다음에! 다음에 만회할게요!”

《그러지 않아도 된다. 나 또한 이 대지에 찾아온 것은 오랜만. 상당히 달라진 이곳을 천천히 둘러볼 여유가 생겨서 좋다. 불러줘서 고맙다.》

“어라? 여기 오신 적이 있었어요?”

《오래전에 벗인 디안과 온 적이 있었다.》

“그렇군요.”


디안이라는 건 분명 벨루디스의 초대 건국왕을 말하는 것이리라. 내심 옛날에 여긴 어땠는지도 좀 궁금하다.


‘근데 왜 디안? 초대왕님의 성함은 인비트 아닌가? 아니, 애칭이려나?’


리아는 거기서 그만 생각을 멈추었다. 이러나저러나 땅으로 돌아간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건 내키지 않으니.



“혹시 불편하시거든 바로 말씀해 주세요. 알았죠? 참지 마시고요.”

《알았다.》


미안함에 계속 신경이 쓰인다. 그러나 이래선 끝이 안 난다. 기다리는 사람도 있으니 정성스레 갈기를 쓰다듬는 것으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는 몸을 돌렸다.


출발 준비는 이미 끝났었다. 뻗어주는 에르의 손을 잡고 빠르게 올라타자 바로 경쾌한 발굽 소리와 함께 마차가 움직였다.


자리에 앉아 도대체 얼마가 들었을까 싶은 호화로운 실내를 둘러보고 있으니 말소리가 들린다.



“작은 아버님, 먼저 어디로 가실 건가요?”

“우선 투기장으로 가볼까 한단다. 제국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고, 처음 온 사람에겐 좋은 볼거리지 않겠느냐?”

“좋은 생각이세요! 투기장의 웅장함에 반드시 반하실 거예요!”


생글생글, 확신하는 듯한 로즈의 말에 레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말씀대로. 다른 나라엔 없는 곳이니 말이죠. 그 투쟁심으로 가득한 뜨거운 열기를 한 번이라도 맛본다면 분명 빠져들 겁니다.”


그리 말하며 레스는 기대된다는 양 리아를 쳐다봤다.


아마 꼭 그렇게 될 것처럼 여기는 모양인데······ 안타깝게도 그 생각은 틀렸을 거라고 본다.


‘그야······ 투기장이잖아? 선혈이 낭자 하는 그 투기장. 뭐가 좋다고 그런 데에 빠져들어? 그리고 로즈 씨는 어제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알리지 않았나? 다들 언급이 없네.’


여기저기 다 말하고 다녔을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러진 않았나 보다.


‘아니. 어쩌면 황제 씨가 떠들고 다니지 않도록 막아줬나?’


단순히 해 본 생각이지만 꽤 그럴듯하다. 칼윈의 호감은 이상하리만치 높았으니. 어쩌면 문제가 되지 않게 그가 사전에 차단한 게 아닐까 싶다.


뭐, 이쪽이야 번거로운 소란에 휘말리지만 않으면 좋다. 무슨 의도이건 간에.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염화]의 연결 신호가 왔다.


꽤 드물다. 아니, 드문 정도가 아니라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


연결을 수락하면서 리아는 놀란 눈으로 [염화]를 건 상대―― 루비아를 쳐다봤다.



『야, 너무 빤히 보지 마. 다 들키잖냐. 대충 이야기를 듣는 척이나 해.』

『아, 넵.』


리아는 지시대로 들썩이는 마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 떠들고 있는 베르그들에게 집중하는 척했다. 그다지 의미 없는 짓이었지만······



『언제 염화를 익힌 거예요?』

『네가 술식을 줬잖냐. 그거 따라 그려보면서 대충 감을 잡았지.』

『아하. 마력의 압축을 연습할 때 같이 하셨나 보네요. 근데 애초에 제가 준 술식은 완전한 게 아니에요. 나름 잘하셨지만, 아직 숙련도도 부족하시고요.』


그렇다. 정신계로 분류되는 [염화]는 본디 상당히 어려운 술식이다. 마음을 연결하는 게 쉬운 게 아니니.


이래선 누구나가 쓸 수 없다. 그래서 루비아가 강탈해간 [염화]는 마음의 연결이 아닌, 단순히 말만을 전달하도록 난이도를 대폭 낮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3급 수준에 이르는 마법이라고 하며, 통달하기엔 상당한 시일이 소비될 것이 자명하다.


――제아무리 심상마법을 쓸 줄 아는 루비아라 하더라도.


의미가 없다는 건 이 뜻이었다. 마력의 흔들림을 눈치채지 못한 건 로즈뿐, 이야기하는 베르그를 비롯하여 모두가 마법을 쓴 것을 알아차렸다. 호위인 유즈라와 가베인은 말할 것도 없다. 하물며 바로 앞에 눕듯 앉은 페리는 루비아가 마력을 움직인 순간에 곧장 눈길을 줬다.


그렇지만 루비아도 이를 알고 있었나 보다. 심드렁하니 대꾸한다.



『이 내가 그런 것도 모르겠냐? 다 계산하고 한 거야. 봐봐, 따지지 않잖아?』

『그렇긴 한데······ 무슨 일로 [염화]를 쓰신 거예요?』

『뭐긴 몇 가지 주의를 좀 주려고 한 거지. 사실 아까 말해두고 싶었는데, 칼윈 때문에 그럴 틈이 없었어. 노인네가 할 일도 없나, 황제 주제에 뭘 배웅까지 하는 거야?』

『그, 그리 말씀하실 것까진······ 마음 써서 배웅해주셨는데······』


솔직히 부담의 끝판왕인 격이라 불만이기는 했다. 그러나 막상 루비아의 저 폭언을 들으니 이쪽의 간이 다 벌렁거린다.



『어, 어쨌든, 주의요?』

『아, 그래. 너 말이야. 만능언어 쓸 수 있는 거 들키지 않게 조심 좀 해. 비젠탈이야 워낙 유명한 마수이니 다들 그러려니 하는데, 보통 마수는 지능이 낮다는 게 정설이거든? 그러니까 함부로 쫄래쫄래 가서 말 걸고 그러지 마.』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별로 조심하지도 않았다.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인지라 리아는 얼른 알았다며 대답했다.



『아. 그리고 되도록 침착해라?』

『응? 침착하라고요?』

『그래. 신경에 꽤 거슬릴 수도 있거든. 전부 악의는 없지만 말이야. 그냥 대충 제국의 호전성 정도로만 받아들여. 네 남편이 알아서 도와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고.』

『언제 에르랑 그런 걸 짠 거예요?』

『짰겠냐? 그냥 눈치로 안다는 소리지. 네 남편이 너냐?』


한 마디 더 많긴 했지만, 토를 달 수 없을 만큼 매우 일리가 있었다.



『어······ 일단 알겠어요. 그리고 저도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뭐?』

『마차요. 이렇게 다 함께 타도 괜찮은 거예요. 저번에 오해를 부른다고 했잖아요.』

『너 진짜 기억력은 좋긴 하나 보네. 지나가는 투로 알려줬던 건데 용케 까먹지도 않고. 어쨌든 그 오해를 만들려고 하는 거니까 괜찮아. 너, 대충 알고 있었잖아?』


여전히 남의 마음속을 훤히도 꿰뚫는다.



『그렇긴 한데, 뭘 위해서인가 해서요.』

『뭐긴. 해충들 괴롭히려고 하는 거지. 그거 말고 뭐가 있겠냐? 자세한 건 묻지 말고. [염화]가 너무 길어지면 베르그들에게 말 그대로 괜한 오해를 받을 테니까.』


루비아는 그리 일방적으로 전하고는 [염화]를 해제했다.


왜 그런지는 다 들어 알게 됐으나 역시나 좀 불만스럽다. 기왕 알려주는 거 더 자세히 알려줘도 될 텐데.


‘어디 덧나는 것도 아니고.’


속으로 툴툴거린 리아는 의무적으로 추임새를 넣던 입을 멈추고 로즈가 눈치채지 못하게 살짝 머리를 숙였다.


딴짓을 한 것에 대한 사과였는데, 베르그는 별말 없이 미소로 받아 주었다.


‘역시 전혀 사과조차 하지 않는 누구랑은 달라. ――악!’


옆구리에서 화악~ 하고 올라오는 통증.


이리도 사정없이 꼬집는 사람은······ 말해 무얼 하나. 한 명밖에 없지. 사용인 역할인지라 에르가 옆자리가 아닌 것이 제법 한스럽다. 양손의 꽃은 환영이지만.


‘으으. 쓸데없이 연기력만 좋아서. 어떻게 바로 옆에서 꼬집는데도 아무도 모르게 할 수가 있지? 아니, 그게 공주에게 필요한 덕목인가?’


그렇게 또다시 옆구리를 꼬집힌 리아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사이에도 마차는 계속 나아갔다.






이따금 밖에서 감탄과 놀람의 외침들이 들려오기를 20여 분.


마차가 서서히 속력을 줄이더니 완전히 멈추어 섰다. 잠시 정차한 건 아니었는지 도착을 알리는 마부의 목소리가 울린다. 생각보다 빠르다.


과연 황가의 깃발이 가진 위력이랄까. 이러한 왕권이 있는 세계에서는 그 권위가 막강하다는 것이 실감 난다.


‘감히 앞을 막는 장애물 같은 건 있지도 않겠지. 실제로 꽤 빨리 달리기도 했고. 덕분에 승차감은 좀 별로였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신음 같은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역시······”

“루비아 씨?”

“아냐. 아무것도. 그보다 슬슬 나가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루비아는 잠시 리아의 눈을 빤히 쳐다본 다음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아하긴 하나 가만히 있을 순 없다. 루비아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나가 안전을 살핀 가베인의 신호에 차례차례 마차에서 내렸는데, 나가는 것에 순서라도 있나 보다. 직급이 낮은 레스와 헤라드가 먼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황성에 온 이후 따라오게 된 둘의 사용인들이 바짝 붙었다. 아마 내리는 순간을 노린 기습을 염려하는 것이 아닐까.


이들의 다음으로는 라프리트, 로즈, 루비아, 베르그 순이었다. 근위인 유즈라는 앞선 때와 마찬가지로 베르그의 뒤를 바짝 붙어 내렸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은 리아였다. 아니, 정확히는 등 뒤에 선 델리안이랄까······. 그게 그거지만.


‘왜······? 어째서 내가 마지막?’


심상치 않은 황당함을 느끼며 리아는 탈 때와 마찬가지로 에르의 손을 잡고 땅에 내려섰다.


‘오호라. 저게 투기장이었구나.’


정면에 보이는 아파트 10층 높이의 벽―― 원만한 곡선을 이룬 원형의 거대한 건물은 상당히 눈에 익었다. 어제는 물론, 황성에서도 잘 보였으니 말이다.


상당히 크다 싶었는데 여기가 투기장이었나 보다.


VIP들만 오는 곳인지, 그냥 사람을 물린 것인지 주변엔 아무도 없이 텅텅 비었다.



“어서 오십시오, 황자 전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내리고 마부가 맨 뒤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곧 누군가가 인사를 건네왔다. 미리 연락하고 왔었나, 상당한 신속함이었다.



“환영 감사하네. 바쁠 텐데 당주가 직접 나와주고.”


부드럽게 건네는 베르그의 말에 인사를 건넸던 사내―― 이 투기장을 관리하는 총책임자가 넉살 좋게 웃었다. 그는 마른 살집의 어설픈 귀족식 의복을 입고 있었는데, 암갈색의 짧은 스포츠머리와 이마의 일자로 깊게 파인 주름이 인상적이었다.


당주의 곁에는 울긋불긋 체격 좋은 남자 둘이 따랐다. 아마 호위이지 않을까 싶다.



“황가의 분들께서 오신 것이지 않습니까. 당연한 일에 황송한 말씀을 해주셔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요.”

“후후. 그리 사양하지 않아도 괜찮네.”


그리 서두를 끊은 둘은 간단하게 안부를 물으며 잡담이 이어졌다.


‘호. 아는 사이이신가 보네. 그럼 난 이 틈에······’



“리아 양, 어디에 가시는 거죠?”


슬쩍 뒤로 빠지는 걸 라프리트에게 들키고 말았다. 근처에 있어 말이 들렸던 루비아도 눈동자만 돌려 쳐다본다.


리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잠시 비젠탈 씨에게 다녀오려고요. 혼자 심심하게 걸어오셨잖아요.”

“아······”


조금 고민하던 라프리트는 베르그와 당주를 번갈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둘러 다녀오세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네.”


루비아도 별말이 없다. 기다리는 게 짜증 나 보이기도 하지만.


여하튼 허락도 얻었겠다, 리아는 맘 놓고 비젠탈을 만나러 발걸음을 옮겼다. 걱정됐는지 델리안에게 살짝 눈짓한 에르도 따라왔다. 걸어가는 뒷모습을 한동안 쳐다보고 있던 페리도 조금 시차를 뒀다가 쫓아왔다.


비젠탈은 마차의 뒤편에 서서 투기장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다가오자 시선을 내렸다.



“옛날에도 투기장이 있었나요?”


말문을 틀 셈으로 물으니 비젠탈이 가벼운 어조로 답했다. 모처럼 추억이 있는 장소를 둘러보았던 탓이겠지만, 왠지 친밀해진 것도 같아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아니. 이전엔 그저 민가―― 전쟁의 여파로 폐허가 되었던 곳이었다. 지금은 투기장이 들어섰나 보군.》


수도에까지 피해가 있었다라······


대전쟁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걸 듣긴 했지만, 정말 거대하긴 했나 보다. 정작 전쟁의 양상 같은 건 어디에도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시내는 어땠어요? 많이 달라졌나요?”

《제법 달라졌다. 이전엔 지금처럼 실용적인 위주의 집들만 있진 않았었다. 저기―― 성도 새로 생겨났고.》

“오호라. 황성은 신축 건물이었군요! 하지만······ 으음. 기왕 새로 짓는 거 내부 인테리어에도 좀 신경을 쓰지. 저래선 냉난방이 잘 안될 텐데. 지금의 빈티지스러운 것도 나름 괜찮지만. 아니다. 의외로 내벽 안쪽에 단열재 같은 게 들어갔으려나?”


분명 심심했을 비젠탈의 기분을 풀어주려 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리아는 제법 진지하게 황성의 냉난방에 대해 고찰했다. 완전히 주객이 전도되었다. 비젠탈이 성격이 좋아 다행이지. 정말 몹쓸 짓이었다.


그때 페리의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게 느껴졌다.


왜 그런 건가 싶어 감각을 넓히니 다가오는 기척이 있었다.


작가의말

제법 느리긴 하지만 지금처럼 업로드 속도를 유지하려 합니다.


너무 빠르게 하려니 내용도 부실해지는 것 같고, 여러모로 건강에도 적신호가 찾아오더군요.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집필하기 위해서라도 죄송하지만 이대로 가려고 합니다


아 그래도 한 번 업로드시 2화 내지 3화가 올라갈 테니 너무 노여워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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