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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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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4.10 19:10
연재수 :
2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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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609,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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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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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160

DUMMY

“이야기를 돌리자면, 내가 경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나저러나 지상은 그대들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 말일세.”


어떻게든 가벼워지려는 분위기를 떨쳐낸 리아의 말에 루시아스는 순식간에 진지한 눈이 되었다.



『누차 말씀드립니다만, 저희는 지상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 솔직해지는 게 어떻겠는가?”


움찔······


루시아스의 눈썹이 꿈틀댔다. 차분히 바라보는 시선은 이쪽을 평가하는 듯싶다.


꿀릴 건 없다. 리아는 지지 않고 똑바로 루시아스의 눈을 쳐다봤다.



『과연. 그렇기에 거짓말이라 하신 겁니까?』

“그러하다네. 확실히 개입할 의도가 없었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말했듯 이 지상은 그대들의 마력이 가득하네. 이다음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터.”

『마력이란 본디 존재의 일부니까요. 품고 있던 자의 의지가 실리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죠.』

“그래서겠지. 지상에서는 상대에게 마력을 내뿜는 행위를 적대 행위로 간주한다. 물론 조금은 의미가 다르지만 말이야. 하지만 또 모르지. 감이라든가, 무언갈 느껴서 그런 걸 정했을지도.”

『대단하시네요.』

“정확히 알아차린 건 이곳에 막 오고 나서라네. 그전까지는 얼추 그러지 않을까 추측했을 뿐이지. 그러니 칭찬을 들을 정도는 아닐세.”

『그렇군요······.』


말을 흘린 루시아스의 시선은 이쪽이 아닌,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하였다. 그러다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네요. 당신의 과거를 둘러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네요.』


이 여신은 도대체 무슨 짓거릴 하려 했나. 프라이버시라는 말도 모른단 말인가.


‘허나, 아무 접촉도 안 느껴졌어. 이런 게 가능하단 건가······’


무려 신이나 되는 존재를 만만히 본다는 건방진 생각은 조금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조금 쉽게 봤을 수도 있었겠다는 기분이 든다. 이토록 소리소문없이 접촉할 수 있으니 말이다.


리아는 너무나도 발칙하고, 불온하기 짝이 없는 여신의 행동을 경계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괜한 짓이었나 보다. 슬쩍 마력을 끌어올리는 이쪽의 기척을 알아차린 루시아스가 당황하여 손사래 친다.



『아뇨아뇨. 그게 아니에요.』

“응? 그게 아니라니?”

『과거를 본다는 거요. 당신을 읽은 게 아니라, 당신 주변인을 통해 보려고 한 것이었어요. 함께 있으니 그들의 눈에 비친 당신이 있을 거 아녜요? 그걸로 알아보려고 했죠. 근데 실패에요. 당신이 나타나는 순간―― 하물며 목소리라도 들리라치면 뿌옇게 되더라고요. 이런 적은 처음인데······ 도대체 정체가 뭔가요?』

“그걸 나에게 물으면 어찌하나? 조물주인 그대가 모르는데.”

『그, 그렇죠······』


살짝 움츠러들고는 어색하게 웃는 루시아스.


뭔가······ 얼빵하다. 신이란 존재의 환상을 깰 만큼.


하지만 능력만큼은 부정할 수도 없이 진짜다. 한순간에 다른 주변인들을 읽는다니······. 낌새로 보자면 아마 만났던 모든 사람의 기억 같은 것을 읽은 듯싶다.


‘그야말로 전지전능이야.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 듯해서 뭔가 미묘하지만.’


기왕이면 어디까지 간섭이 가능한지 확실하게 하고 싶으나, 그걸 증명할 시간은 없을 것 같다.


다시는 없을지도 모를 신과의 만남. 이 기회를 놓치는 건 너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어쨌든 궁금한 게 있다면 직접 물어봐 주지 않겠나? 멋대로 읽는 건 기분 나쁘니 말이야.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아, 네. 그럼······ 계기는 뭐였나요? 마력에 의지가 깃든다고 생각한 계기요.』

“그런 게 궁금했나? 모든 사람은 아니겠지만, 학자 같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해볼 상상이 아닌가?”

『아뇨. 그러한 것과는 달라요. 그대는 확실한 실감을 하고 있죠. 필시 어딘가에서 그리 판단한 근거가 있으셨을 터. 제가 묻는 건 그것입니다.』

“근거라······ 확실히 있긴 하지.”


그 당시를 회상하며 리아는 턱을 쓰다듬었다.



“수련을 위해 마을――아. 내 고향 말일세. 그곳을 떠나 산속 깊은 곳으로 잠시 이주했지. 거기서 난 우선적으로 마력을 몸에 쌓았지.”

『어째서요?』

“당연히 강해지기 위해서라네. 그거 말고 뭐가 더 있겠나?”


마력이란 초상적인 힘을 키울 수 있는 기본이자 바탕이다. 상식이라 봐도 무방한 이러한 것을 묻는 그 의도를 모르겠다.


하지만 개의치도 않는지 루시아스는 재차 물어왔다.



『······그렇군요. 그래서요?』

“응? 아아. 마력을 쌓는다고 무한정 쌓이는 게 아니지 않은가?”

『예. 상당수의 마력은 정착하지 못하고 밖으로 배출되죠.』

“그러하다네. 덕분에 내가 있던 근방에는 그 마력들로 가득 들어차게 됐지. 결계를 펼쳐놓았거든. 그리고 보게 되었지. 밖으로 빠져나간 마력들이 아이리스에게 흡수되는걸.”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나요? 그 아이는 당신의 혼이 섞여 있으니까요.』

“단방에 알아볼 수 있나 보군.”

『조물주이니 말이죠.』


뿌듯한 듯 루시아스는 빙긋 웃었다.



“아니꼽지만 역시로군. 뭐······ 그대의 말대로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바로 다음에 벌어진 일이 참 기묘했다. 왜인지 흡수된 나의 마력이 멋대로 변환하더군. ――아이리스가 인간으로 변할 수 있게끔 말이야.”


그건 분명 기묘한 현상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나는 주위에 눈을 둘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리스에게 흡수되었는지도 몰랐지. 다른 말로는 그때 내가 무언가 할 상황은 아니었다는 소리일세. 즉, 나와는 무관한 현상이라는 거지. 하지만 그럼에도 마력은 움직였다. 그래, 마치 나의 의지가 깃든 것처럼.”

『흐음. 그러한가요······』


묘한 낌새를 보이며 작게 신음을 흘리는 루시아스.


그 모습을 보며 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 외에도 세스의―― 녀석의 하렘들이 마력의 양도 비슷 것을 하는 걸 봤었지. 그때 분명 타인의 마력임에도 세스에게 부작용 따윈 없었네. 그리고 세스를 돕겠다는 그녀들의 의지에 따라 변환되었지. 하지만 정확히 이 위화감을 눈치챈 건 지금일세.”

『육체의 영향이 없어진 덕이군요.』

“내 이리도 정신이 또렷한 적은 처음이지 않을까 싶으니. 그 탓에 여태 그냥 넘어간 것도 되짚어볼 수 있었지. 이 점 하나만큼은 고맙게 됐네.”

『후후. 참 희한한 감사도 다 받아보네요.』


정말 별의별 감사를 다 받아봤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루시아스는 웃었다.


그렇게나 재밌느냐 싶으나 아무래도 좋다. 적당히 만족해 보이니까.



“이걸로 된 건가?”

『네.』

“그러면 이제 내 차례로군.”

『편하신 대로 물어보시죠. 성실히 답해주신 만큼 저도 최대한 당신의 궁금증을 풀어드리도록 할게요.』


사양하지 말라며 권하는 여신.


그 배려를 받아들여 리아는 간 보는 것도 없이 대놓고 물었다.



“이계―― 지구에 대해 알고 있나?”

『······.』


만난 이후 단 한 번도 막힌 적이 없었던 루시아스의 입이 다물어졌다. 알고 있다는 건 명명백백하다.



“으음. 무리한 질문이었나?”

『아, 아뇨.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신이 말인가?”

『우우! 신도 생각은 한다구요!』

“어, 어. 알겠네. 딱히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구려.”


이쪽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루시아스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정말로 인간다운 면이 많네.’


어딘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 같달까. 개성적인 성격이다.


하지만 어울린다. 델리안보다 더한―― 장르마저 다른 게 아닐까 싶은 생김새인지라, 귀여운 표정을 짓든 화난 표정을 짓든, 무리 없이 소화해낸다. 하물며 정반대 속성의, 남심을 도발하는 듯한 고혹적인 미소 또한 어울리지 않을까.


‘다만 보여줄 사람이 그리 없다는 게 또 재밌는 포인트구먼.’


그런 불경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정리를 마쳤나 보다. 루시아스의 삐쭉 나온 입이 들어가더니 재차 벌어졌다.



『당신이 지구에 대해 안 건 이계에서 온 인간―― 최진우 때문이로군요.』

“최진우······? 그게 누구인 겐가? 아서 알펜리트라면 알고 있다만.”

『그 본인 입니다. 아서 알펜리트는 이쪽에 넘어와서 쓰게 된 가명이죠.』

“허허. 제법 구수한 이름이구려. 그대로 써도 괜찮―― 아니. 눈에 띈다고 생각했나? 어쨌든 그가 떠들고 다닌 덕에 이계의 존재를 알게 됐지.”


되도록 자연스럽게 말한 리아는 루시아스의 눈치를 살폈다.


‘진짜 모르는 건가? 내 기억을 읽었다면 거짓이라는 건 단박에 알아차렸을 텐데.’


재차 유의 깊게 살펴봐도 루시아스가 뭔가 알아차렸다는 기색은 없었다. 애당초 신의 기색을 살펴본다는 게 가당키나 한지 의문이지만.


이러나저러나 유의하도록 하면서 루시아스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솔직히 말씀드려 지구 쪽 세계에 대해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왜 거기에 관심을 두시는지요? 당신과는 무관한 것이 아닙니까?』

“지식욕이라네. 세계를 넘나드는 그런 대마법엔 아무래도 관심이 가니 말일세. 부끄럽지만 나의 꿈이 [전이]―― 공간이동이기도 하고.”

『어라? 아직 못 하시나요?』

“뚝딱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응?! 잠깐! 어째 가능하단 소리로 들리네만?!”

『예에······ 당신 정도라면 이미 하셨어도 이상이 없을 거라 판단되네요. 되려 못 하신다는 게 더 놀랍네요.』

“어,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리아는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내밀었다. 눈앞에 있는 상대가 신이라는 것도 완전히 잊어 버렸다.


이런 간절함에 루시아스는 살짝 당황하면서도 팔짱을 껴 생각에 잠겼다.


농담도 없이 리아는 얌전히 기다렸다.


이윽고 감았던 루시아스의 눈이 떠졌다.



『아쉽지만 제가 직접 가르쳐드리는 건 힘들겠어요. 말씀드렸죠? 저흰 지상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그걸 어찌 좀 안 되겠나? 이렇게 서로 안면도 트고, 같이 커피도 마신 사이이지 않은가?”


감정의 변동이 적은 이 상태임에도 놀랍도록 간절했다. 정말 어찌나 간절했으면 양손을 맞잡고는 비굴하게 비비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처럼의 친구들 덕분에 자제할 수 있게 되었건만.


그러나 창피함은 없다. 고향 마을인 나트알을 한순간에 오갈 수 있는 것이다. 그딴 감정은 가망성을 본 순간 머나먼 우주 저편으로 던져버렸다.


이런 변모가 황당한지 루시아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보든 상관없다. 이 기회를 놓칠 순 없는 것이다. 내심 해보고 싶었던 공짜 해외여행을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손을 비볐다.


그리고 마침내 루시아스가 결단을 내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는 당연히 허락――



『――안 돼요. 더군다나 당신이라면 더더욱.』


뜻밖의 선언에 리아는 더듬거리며 말하였다.



“무, 뭣이?! 왜 나만?! 아, 아니. 그러지 말고 아름다운 여신님답게 자비를 베풀어주게나.”

『그리 말씀하셔도 안 되는 건 안 돼요. 저희도 지킬 도리가 있어요. 함부로 굴 순 없는 거예요.』

“치사하다! 그대의 신도들이 민폐 끼친 값을 해라!”

『제가 지시한 것도 아닌데 그런 요구는 들어줄 수 없네요~』

“쪼잔하다! 그러고도 여신인 겐가?!”

『네네. 부디 스스로 습득하시길~』


아무런 타격도 없었다. 무슨 소리를 해도 루시아스는 여유로웠다. 신답게 멘탈이 강하다.



『흐음~ 향이 좋네요. 저도 앞으로 자주 즐길까 봐요.』


아니다. 여유가 넘치다 못해 어느새 채워놓은 커피를 마시기까지 했다.


――우드드득.


분함에 리아는 의자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하지만 과연 신이 만든 물건이랄까, 아무 가감도 없이 온 힘을 다했음에도 삐걱거리기만 할 뿐 부서지지 않는다. 아마 오리진만큼의 강도를 자랑할 듯싶다. 한낱 나무임에도.



『그, 그래도 오래 걸리진 않으실 거예요. 하나 조언해드리자면······ 리카드 디안 클로디아노, 그와 함께 연구를 하시는 거 같은데. 그걸 계속하시면 될 거예요.』


분한 것도 잊고 리아는 바로 달려들었다. 뭔가 다급해 보였던 루시아스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 역시 내 짐작이 맞았던 겐가?!”

『당신의 생각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공간을 이동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제대로 짚으셨네요. 그건 분명 공간에 관련된 것이니까요.』


헛다리 짚은 게 아니었다니.


제대로 성과가 있었다는 신의 확증. 기쁨에 젖은 리아는 활짝 웃었다. 루시아스만 없었다면 팔짝팔짝 춤이라도 추었을 거다. 루비아에게 댄스 강습도 받았으니 추한 꼴이 되지도 않을 거고.


그 기분 그대로 리아는 물었다.


아주아주 차갑게······



“차원 이동은 어떠한가? 왜―― 운명의 신은 리카드에게 개입하여 이계의 존재를 불러낸 거지?”

『······.』


기뻐하던 이쪽의 모습을 보고 슬쩍 인자하게 웃던 루시아스의 미소가 굳었다.


이번에도 리아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잠시 후 루시아스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빤히 쳐다보는데, 그 눈빛은 이전 본심을 보였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진지하고······ 차분하니 가라앉아 있었다. 아까의 얼빵한 여신이라고는 볼 수 없다.


‘문양을 띄우던 건 단순히 무게를 잡기 위함이었나? 켁. 신 주제에 시답잖게 구는구먼. 아니다. 성가신 건가?’


가볍게 불평했지만 루시아스에게서 몰아치는 압박감은 진짜 엄청났다. 자칫 압도되어 무심코 공격해 버릴 정도로······


그렇지만 여기서 진짜 공격해 버리면 대화고 뭐고 다 틀어진다. 제멋대로 나갈 것만 같은 몸을 어떻게든 달래보았다.


그렇게 보이지 않게 이를 악물고 있으니 루시아스에게서 발해지는 압박감이 옅어졌다.



『찬크에르레이에게 들었나 보군요.』


딱히 불온하게 흘러가지는 않을 듯하다.


리아는 작게 안도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그 점에 대해선 정말 면목이 없군요. 지상엔 관여하지 않는다고 몇 차례나 말했거늘.』

“그렇다면 역시······”


루시아스는 다시금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예. 운명의 신, 글로디아가 지상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설마 했던 게 사실로 판명 났다.


리아는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당신의 본래 목적은 이를 알아내기 위함이었군요.』

“내가 힘을 기른 것도 같은 연유지. 운명의 신이 존재한다. 그렇다는 건 이 세계엔 ‘운명’이란 정체 모를 것이 있다는 소리이고, 언제 어디서든 운명에 의해 유린당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 말일세.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큼 달리 무서운 것도 없지 않은가.”


그리 말한 리아는 저 멀리 새의 지저귐이 들리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르른 천공은 아무 근심도 없는 양 맑기만 하였다. 애초에 이곳에 흐린 날이 있기나 한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온 거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세. 운명의 여신―― 글로디아가 지상에 개입하는 목적은 뭔가?”

『죄송하지만······ 모릅니다.』

“뭐······? 그대들의 철칙을 어긴 거다.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지당한 소리입니다만 그 전에 우선, 당신들이 천상이라 부르는 이곳―― 신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 서두를 땐 루시아스는 신계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리아는 자리에 앉아 하나하나 차분히 들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어처구니가 없음에 다시 벌떡 일어나 소리를 높였다.



“하~아? 구역을 나눠 생활하고 있다고? 왕래도 없이??”

『아, 아뇨. 왕래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자주는 아니지만, 용건이 있으면 상대의 구역에 찾아가기도 해요.』

“그러면 뭐 해! 틀어박히면 만날 수조차 없는데!!”

『히익. 저, 저기 진정하세요. 아! 그래요. 커, 커피. 커피 좀 드실래요?』


허둥대는 루시아스와 함께 찻잔엔 커피가 나타났다.


눈을 부라리던 리아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털썩 자리에 앉았다.



“하아······ 미안하네. 조금 이성을 잃었네. 하지만 그대들도 문제다. 가족이 아닌가? 오래 틀어박혔으면 억지로라도 만나봐야지. 우르르 가면 신이니 어떻게든 될 텐데. 걱정되지도 않나? 후······ 어쨌거나 뭣 때문에 관여하는지는 여전히 미궁이로군.”

『······.』

“응?”


이상함에 내렸던 시선을 올리니 루시아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게 보였다. 왠지 기묘한 것을 봤다는 느낌이다······



“왜 그런가?”

『아뇨······.』


시원찮은 대답에 리아는 고개를 꼬았다.



『진짜 아무것도 아녜요. 그보다 너무 염려하시지 않아도 돼요. 최근 다 모여 의견을 나누었거든요.』

“호. 막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네. 앞으로 글로디아가 지상으로 관여할 시 영향이 가지 않게 막기로 했어요.』

“그건 좋은 소식이지만, 신뢰는 하지 않네. 만약 개입하려 든다면 사정없이 치우도록 하지.”

『본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니 뜻대로 하세요.』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잠깐 대화를 멈춘 리아는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음미했다.



“이래저래 제법 특별한 경험이었네. 신에게 불려보기도 하고.”

『저도 이리 즐겁게 대화하긴 오랜만이었어요. 후후. 면전에서 성내는 인간은 또 처음이고요. 아. 모든 존재를 통틀어서 처음인가······?』

“윽. 그건 넘어가 주게.”

『어쩔 수 없죠. 신다운 넓은 아량으로 넘어가 드릴게요.』

“······그대도 제법 유쾌한 성격이구먼.”


피식 웃는 리아를 따라 루시아스도 즐거이 웃었다.



『다이탈로스가 왜 당신에게 가호를 내렸는지 알 것도 같네요.』

“다이탈로스? 혹시 다이로스를 말하는 겐가?”

『맞아요.』

“오호. 그게 본명이었나 보군. 근데 가호? 딱히 가호받은 적은······ 설마 날 무서워 하지 않게 해준 그걸 말하는 건가?”

『당신을 무서워 한다고요? 아하. 그래서······』

“뭔가 알고 있나?”


이 체질에 대해 알고 있다니. 역시 대단하다.


하지만 이것에 관해 물을 순 없었다. 시간이 다 된 것이다. 반짝반짝 빛이 나면서 몸이 흐려진다.


리아는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찻잔을 내려놨다.



“여기까지인가 보구먼.”

『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지만 더 지체되면 지상에서도 이변을 알 거거든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 중요한 건 아니니 다음에 듣도록 하지. 물론 별로 만나고 싶진 않지만.”

『말씀이 너무하시네요.』

“신의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순 없잖은가?”

『으으······ 확 진짜 사도로 임명해버리는 수가 있어요.』

“흥. 전력으로 거절하도록 하지. 신의 사도라니 소름이 돋아.”


정말로 소름이 돋는다는 양 리아는 팔을 문질렀다. 동시에 의식이 떨어진다.



“아! 갑자기 생각났는데, 다른 시간대―― 미래에 대한 건 혹시 알고 있나?”

『즐거웠어요. 제법 마음에 들었답니다. 그래서 저도 축복을 내려드릴까 해요.』

“뭣?! 그딴 건 됐다. 그보다 대답이나 해라!”

『그딴 거라니 진짜 너무하시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받으세요~』


하트가 떠다닐 듯 교태가 섞인 루시아스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린다.


참 성격 한번 괜찮은 여신이다. 일방적으로 제 할 말만 하다니······ 하늘 높은 줄 모를 신답게 오만하다.


그뿐이라면 그나마 약과다. 쓸데없이 행동력도 좋다. 이쪽의 의사는 무시한 채 신력을 보내버렸다.


‘됐다고 했거늘!’


집요하게 달라붙는 신력에 더는 참지 못하게 된 리아는 손을 뻗었다.



“필요 없다고―― 했잖아요!!”


거센 외침과 함께 리아는 억지로 신력을 잡아떼어내 팔을 휘둘렀다.


마하를 아득히 뛰어넘는 속도로 팔이 지나가고, 신력은 깔끔하게 두 동강이 났다.


‘어라? 두 동강? 팔을 휘둘렀을 뿐인데?’


뭔가 말이 안 됨에 리아는 고개를 내려 팔을 쳐다봤다. 그곳엔······ 3단계 마력을 듬뿍 머금고 있어 발광하듯 번쩍이는 은빛 대검이 있었다.


자신의 전용인 이 대검은 귀걸이 안에 있던 것이다.


루시아스의 초대로 간 건 분명 정신뿐.


그런데 들고 있다는 건······ 어느새 육체로 돌아왔다는 소리였다. 더불어 루시아스의 신력을 베어낸 효과로 인해 황금빛의 무리가 주위를 맴돌듯 반짝거리고 있었다.


‘잘렸음에도 무지하게 집요하네. ――앗!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리아?!”


어지간해선 듣기 힘든 에르의 다급한 목소리.


리아는 천천히 옆을 쳐다봤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에르는 어느새 곁에 와 있었는데, 역시나 흩날려 있는 루시아스의 신력을 느낀 것인지 주변을 경계함과 동시에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괜찮아요, 에르.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거지?”

“네. 잠시 대화만 하고 왔어요.”

“――둘 다 잠시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리아야, 우선 검부터 집어넣거라.”


어딘가 다급하게 끼어드는 델리안.


그 의아한 모습에 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좌우엔 스테인드글라스 특유의 알록달록한 빛이 내리쬐는, 제법 묘한 감정이 들게끔 하는 넓은 정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정면에는 오기 전에 보았던 루시아스의 신상이 있었다.


‘다시 보니 재현율이 별로네. 코도 덜 오뚝하고. 전체적으로 그냥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인데? 으음. 하다못해 최소한 눈썹만이라도 더 길게 했으면. 저래선 순정만화에 도달할 수 없다고?’



“그게 아니지 참.”


잠시 현실에서 도피했지만 리아는 본인이 어디에 있는지 받아들이고는 작게 심호흡했다. 델리안의 말대로 설명은 나중이다. 머리가 멍한 기분이지만 대체로 기억하고 있다.



『죄송합니다, 시전자―― 이스피리아.』


갑자기 머릿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순간 또 루시아스인 줄 알고 리아는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내 확실히 느껴지는 존재감에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고, 반가움에 슬쩍 미소 지었다.



‘아냐. 알고 있잖아? 일부러 응했다는 거. 내 억지에 따라줘서 고마워, 아이.’


대답은 없었지만 크게 안도하는 아이가 느껴진다.


그렇게 진정되고 나서 리아는 뻣뻣하게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바로 원위치시킴과 동시에 재빠르게 대검을 귀걸이에 넣었다.


‘으응?? 내가 뭘 본 거지······?’


착각인가 싶어 다시 돌아봤다. 그러나 변한 건 없었다. 등 뒤엔 사람들이 주욱 늘어서서 무릎을 꿇고 격렬히 기도드리고 있었다. 감격에 겨운 듯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드물지 않았다. 노여움을 풀라는―― 뭔지 모를 사죄를 하면서.


그리고 그 대열엔 로즈도 있었다. 분명 바로 옆에 있었는데······


너무나 황당무계한 상황에 환각이 아닌가도 싶었다. 무려 신을 만났으니 지칠 법도 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잘못 보진 않았다. 일단 옆에 없거니와 그녀의 곁엔 귀엽디귀여운 아들, 아이리스가 어색한 미소로 페리와 서 있었으니까. 지쳤다고 아들도 못 알아볼 엄마는 없는 것이다.


‘아, 아이. 미안한데 내가 없는 동안의 사정 좀 설명해줄래? 덤으로 이 사태를 빠져나갈 지혜를 빌려줘. 제발······’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오늘이나 내일 -2로 올릴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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