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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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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4.10 19:10
연재수 :
2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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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9,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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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5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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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159

DUMMY

어떠한―― 아주 사소한 부정적인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그런 것은 아예 존재조차 할 수 없지 않을까. 만약 있었더라도 정말 한순간에 정화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 낙원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이곳을 말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런 꿈 같은 곳에 있는 여성.


확실하다. 이 감각. 어딜 어떻게 봐도 진짜다.


――100% 자연산 미인이다.


‘속눈썹 봐. 쭉쭉 뻗은 게 엄청나네. 이목구비도 황금비라고 하던가? 어디 하나 모자람이 없네. 피부는 말할 것도 없이 꿀피부 저리 가라고. 순정만화야 뭐야? 혼자 장르가 다르잖아.’


황금빛의 머리카락과 마찬가지로 황금빛의 눈동자. 맑고 투명한 그 눈은 한 점의 더러움도 없어 이쪽을 꿰뚫어 보는 듯한 안력이 있는 것 같다. 입고 있는 의복도 새하얀 가운에 하늘하늘, 실크 원단의 느낌이 도는 황금의 숄을 둘러 신비로운 느낌을 더욱 부각했다.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진 여성은 가히 신의 조각 같았던 델리안과도 견줄 수 있지 않나 싶다.


특히 어마어마한 밀도의 신력이 산란하여 금빛 무리가 오라처럼 주위를 돌고 있는 게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것만큼은 델리안조차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화장도 안 하고 잘도 저런 색조와 윤기를 내네. 부럽게시리―― 응?’


······아니다. 전혀 부럽다는 기분이 안 든다. 그러긴커녕 감정 자체가 옅어진 듯하다.



“뭐지? 이 익숙한 느낌은······”


――이래서야 마치 전생의 자신 같지 않은가.


어딘가 뿌옇던 머리도 안개가 개인 듯 깨끗하다. 시뮬레이션을 종료한 것과는 다르다. 근본적으로 막힘이 없는 듯한 기분이다. 어딘가 맞물리지 않는 위화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애당초 시뮬레이션의 존재 자체가―― 아이가 느껴지지 않아.’



『정신만 따로 왔기 때문이에요. 영혼과 육체의 괴리가 없어진 것인데······ 쉽게 말하면 육체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다는 거예요.』


아까도 들었던――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정답을 알려준다.


리아는 정면의 여성을 쳐다봤다.



“이른바 유아 퇴행이라는 거로군.”

『의사도 묻지 않고 초대해서 미안해요. 제 신전에 오시는 게 드물 거란 생각에 조급하게 굴었어요.』


사뿐히 묵례하는 여성. 단순한 동작임에도 뭐라 형용하기 힘든 기척이 느껴진다.


잠시 지켜보던 리아는 말을 걸었다. 다만 그 목소리는 감정이 담기지 않아 무미건조하였다. 나오는 말도 육체의 영향이 없던 탓인지 대단히 가벼웠다.



“그래서, 날 부른 이유는 뭐지?”

『제가 누구인지는 묻지 않으셔도 되나요?』

“뻔하지 않나. 정황상으로도 그렇고, 당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력―― 의식하지 않아도 새어 나오는 그 어마어마한 신력을 보고 달리 누구라 생각할 수 있다는 겐가? ――생명의 신, 루시아스여.”

『그것도 그러네요. 제 신전이라고도 했고요.』


가볍게 대답한 여성은 불경하게도 느껴질 언행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입가를 가리며 즐거이 웃었다.


그렇다. 이쪽의 말을 부정하지 않는 이 여성의 정체는 생명의 신, 루시아스였다.


의심의 여지는 없다. 이 신기한 현상을 일으킨 것도 그러하고, 무엇보다 이 세상 자체인 듯한―― 측정조차 할 길이 없는 엄청난 양의 신력을 보노라면 달리 생각할 여지는 없다.


‘에르의 격려 덕에 붙었던 자신감도 좀 사라지는군.’



『계속 서 계시는 것도 그런데 와서 앉으시죠?』


그리 말하며 루시아스는 본인이 앉은 맞은편을 가리켰다.


그곳엔 분명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양, 루시아스가 앉아 있는 것과 같은 흰 나무줄기의 의자가 나타났다.


‘과연 신. 뭔가 느껴진 건 없었어. 으음. 어렵게 생각할 거 없나? 이 장소부터가 나에겐 묘한 곳이니.’


가볍게 의문을 떨쳐낸 리아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안 그래도 원하던 만남이었다. 응하지 않으면 손해이리라.


하지만 한 발짝 내딛는 시점에서 멈춰 서게 됐다. 시야의 끝에 매끈한 맨다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루시아스는 분명 말한 것이다.


정신만이 왔다고······


즉, 에르가 만들어준 작품 같은 옷은 몸이 걸치고 있고, 이쪽은 말 그대로 홀딱 벗겨진 원시 상태라는 것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사태에 리아는 몸을 내려다봤다.


‘그나마 전생의 정신과 비슷해서 다행이로군. 동성이라지만 알몸을 보이는 건 부끄러워 난리를 쳤을 테니.’


제법 편하다고 생각한 리아는 냉철하게 상황을 정리하고는 슬쩍 손을 저었다.


머리가 맑게 갠 탓인지 어려움은 없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다는 양 정신에 벽을 새우듯 옷을 덮어썼다.


형태는 가장 먼저 떠오른 익숙한 전통 복장.


왜 이런 걸 먼저 떠올렸는지는 모르겠다. 여자의 옷인데도 불구하고 아무 어려움도 없이······


‘하지만 나쁘진 않군.’


매화가 그려진 흰 저고리와 푸른 치마의 개량 한복. 거기에 더해, 루시아스의 흰 가운을 닮은 겉옷을 만족스럽게 보고 리아는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그렇게 루시아스가 마련해준 의자에 앉았다.


신과 마주한다는 것에 별다른 감흥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 느낌도 없었달까, 이쪽도 용건이 있지 않았다면 귀찮아서 대충 안면만 트고 돌아갔을 것이다.


‘내가 봐도 난 참 느긋하구먼.’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막상 눈앞에 둔 신은 머릿속에서 그렸던 것보단 훨씬 가벼운 기분이 들었으니······. 도리어 왠지 모르게 익숙한 만남처럼 여겨졌다.


그런 그리운 감각을 느끼며 리아는 손잡이에 팔을 세워 턱을 괬다.



“먼저 그쪽의 용건을 들어보지.”

『그렇게 급하시지 않아도 돼요. 지상에 비해 시간이 100배 느리게 흘러갈 테니까요. 시차는 없을 거예요. 물론 당신이 제 초대를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면 힘들었겠지만요.』


유구한 세월 동안 존재했을 신답게 느긋하게 말한 루시아스는 사근사근하게 웃었다. 동시에 본인과 리아의 앞에 찻잔이 나타났다.


루시아스는 오만불손한 이쪽의 태도를 딱히 지적하지도 않고 친절하니 손을 내밀어 권하였다.



“너무 시간을 잡아먹지 않는다면야.”


일부러 신과 척질 이유는 없다. 모처럼 우호적으로 나오는데 따르는 것도 상책이리라.


타산적인 계산을 끝낸 리아는 갑자기 나타난 찻잔을 들었다.


찻잔 안에는······ 의외로 평범하게 커피가 담겨 있었다.



『좋아하신다고 들어서요.』

“배려해줘서 고맙군. 잘 마시도록 하지.”


정신뿐인데 과연 마실 수 있는 건가 싶었다만, 예상외로 입가로 가져간 찻잔에선 진하고 깊은 커피의 향이 물씬 풍긴다. 아마 마실 수도 있을 듯하다.


‘이런 부분은 판타지답다고 해야 하려나.’



“만화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응? 맛있다······? 원두 자체가 좋았겠지만 물 조절이 기가 막히군.”

『입맛에 맞아서 다행이네요.』

“음. 실로 훌륭하다. 역시 신이라는 겐가? 사람다운 짓도 잘 해내는구려.”

『개인적인 취미일 뿐이지만······ 칭찬해주셔서 고맙네요. 하지만 걱정은 안 되시는 건가요?』

“뭘 말인가?”

『독 말이에요.』

“신이나 돼서 굳이 그런 구차한 짓 따위를 하겠나?”

『말씀대로 저흰 신이에요. 지상에는 없는 강력한 독 같은 것도 만들 수 있죠. 조금은 유의 하시는 게 좋아요.』

“흠······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나에게 독 같은 게 통한다고?”


슬쩍 눈을 가늘게 하여 묻는 말에 루시아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당신에겐 독은 통하지 않겠죠. 영혼이 이리도 강대하니. 되려 육체 쪽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겠네요.』

“육체가 정신을 못 따라간다는 뜻인지?”

『네. 내면을 읽을 수 있기는커녕 당신에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죠. 솔직히 인간에게서 파생한 영혼인지조차 의심돼요.』


‘그러고 보니 생각을 읽을 수도 있었겠구먼.’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신의 단골 능력인데 경계가 미흡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다. 읽지 못한다는 걸 알았으니 걱정을 덜어도 되리라.


다만 완전히 마음을 놓아선 안 될 것이다. 보아하니 ‘이쪽’이 눈치채지 못하게 읽지 못한다는 거지, 들킬 걸 가정하에 읽으려 들면 가능은 할 것이란 판단이 든다.


‘상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도 어리석으니. 근데 영혼이 강대하다는 건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죽을 둥 살 둥 애써서 도달한 마력레벨 999―― 곧 있으면 1000에 달할 육체보다도 더 강대하다니······ 딱히 영혼을 단련한 것도 없는데.’


그 이전에 영혼의 단련이란 거 자체가 가능한지나 모르겠다.


여러 의문을 품은 채 리아는 잠시 루시아스―― 무려 신과 함께하는 티타임을 잠시 즐겼다.


이 믿기 힘든 티타임은 서로 말도 없이 조용했다. 그저 서로 자신의 담긴 차만을 마셨다.



“자. 기껏 초대해준 건 고맙지만 나도 마냥 죽치고 보낼 순 없다. 이제 적당히 본론으로 넘어가도 되겠나?”


조용히 잔을 내려놓고 하는 말에 루시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여태까지 대하기 편했던 분위기가 반전했다.


정면에 앉아 있는 건 그야말로 신. 오엘문리아―― 세계를 창조했다는 오대신만이 존재하였다.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것만 같은 엄청난 압박감.


‘이게 신의 본심이라는 건가······’


생각 이상이란 평가와 함께 리아는 살짝 눈가를 찡그렸다.



『이스피리아여.』


루시아스는 옷자락을 살짝 흔들리며 차분히―― 하지만 거역하기 힘든 무언가를 풍겼다. 등 뒤에도 루시아스를 상징하는, 원 안에 정십자 2개가 교차한 문양이 금빛을 뿜어내며 떠올랐다.


각각의 신마다 상징하는 문양들이 있길래 무엇을 기준으로 정하였는지 내심 궁금했는데, 진실은 이것이었나 보다. 신들이 직접 보여주는 것으로.


그렇게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있자니 루시아스의 목소리가 재차 울렸다.



『나, 루시아스가 묻습니다. ――그대는 세계의 균형을 무너뜨릴 그 힘을 지니고 무엇을 할 생각입니까?』

“지금 뭐라고······?”

『나의 성지에서 당신을 봤습니다. 그렇기에 듣고 싶어졌습니다. 당신은 무얼 바라고, 무엇을 이루기 위해, 지상의 존재로서는 처음으로 전천후의 경지에 당도한 것인지요?』


리아는 말문을 잃었다.


정말 너무나 예상 밖의 질문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정신과 육체를 분리한다는―― 뭔지도 모를 엄청난 일을 했으면서 기껏 묻는다는 게 이런 거라니······’


설마 레이드안―― 인간과 똑같은 질문을 할 줄이야.


내심 긴장한 게 손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신은 진짜로 할 일이 없나 싶기까지 하다.


오죽했으면 축복이니 치유니, 세인트리안에서 주장하던 것들이 전부 사실이 아닌가 의심마저 된다. 그야 할 일이 없다면 그들의 말처럼 사사건건 개입할 시간도 많지 않겠는가?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다. 그러나 너무 티를 내는 것도 좋지 않으니 최대한 진정을 꾀했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나를, 내 머릿속을 읽지 못한다는 건 확실해졌잖아? 그래서 내 전생이라던가, 지구에 관한 이야기도 없었던 거겠고.’


제일 염려하던 부분이 해소됐다. 신을 상대로 바라지도 않던 정보를 얻어간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 하리라.


······하지만 참으로 맥이 빠진다.


참을 생각이었지만 상상을 초월한 황당함에 리아는 지금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심드렁하니 대꾸해버렸다.



“뭐 하자는 짓인지 모르겠군, 루시아스여.”

『무엇이······?』

“다 알면서 물어보는 그 심보 말이다. 그댄 내가 커피를 좋아한다는 걸 들었다고 했다. 헌데, 내가 그 이야기를 한 건 세인트리안에서 뿐이다. 그런데다가 그대는 나를 보았다고 했다. 처음부터 사도를 자칭한다고도 했고. 물론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예. 그때 분명히 보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그대의 입으로 듣고 싶군요.』


여전히 신으로서의 위상을 드러낸 채 루시아스는 어디까지고 진지했다.


‘내 저의가 그렇게 궁금했나?’


확실히 신이라면 읽진 못하더라도 진심을 판별할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뒤가 구린 건 하나도 없다.


찔릴 것도 없으니 리아는 당당한 태도를 내비쳤다.



“내가 바라는 건 평온한 나의 일상이다. 힘을 기른 것도 그 때문이지. 그대들―― 신들에게 좌지우지되지 않기 위해. 힘이 있다고 뭔가 할 거란 편협한 상상은 그만둬줬으면 하는군. 애도 아니고.”

『하지만 저흰 지상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하아······ 신이 거짓말 따위를 해서 신성한 이미지를 깨지 말아주게. 진심으로 농담이길 빈다네.”

『어찌 그리 생각하십니까?』

“끝까지 모른 척할 셈인가?”


루시아스는 대답 대신 빤히 쳐다봤다. 그 눈에 담긴 감정을 읽기란 어려웠다.


아무래도 직접 밝히기 전까지 모르쇠를 유지할 셈인가 보다.


‘하는 수 없지.’


한숨을 푹 쉰 리아는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그 손에 담기는 건 마력. 정신뿐이라지만 육체와 연결은 되어있는지 마력은 거리낌 없이 방출되었다.


리아는 방출한 마력을 손바닥 위에 모았다.


아직 부족하다. 체감상으로는 지금 이 정도로도 가능은 할 듯싶지만, 완전히 안정화를 이룰 때까지 무리는 엄금이다. 서두르지 않고 재차 마력을 방출하는 것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꾼다.


조금씩 양을 늘린 마력은 어느새 세스의 마력량과 비등할 정도가 되었다.


이젠 손 위라 표현하기도 애매한, 농구공 400개는 가뿐히 넘길듯한 마력의 덩어리가 펼친 손바닥에 응집해있다. 덕분에 앞으로 펼친 손도 머리 위로 들 수밖에 없었다.



“흠. 그대에겐 딱히 필요는 없겠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해설도 곁들도록 할까?”


그리 중얼거린 리아는 마력을 조작했다.


후웅.


단숨에 마력을 안쪽으로 조작하자 묘한 진동음과 함께 마력은 그 크기가 상당히 줄어 아까의 1/3 정도로 작아졌다.



“알다시피 이게 마력의 압축이다. 그리고 이 최소로 압축된 상태를 난 ‘1단계 마력’이라 부르지. 직관적이고 좋지 않나?”

『······.』


반응이 없는 루시아스를 놔두고 리아는 재차 마력을 조작했다.


투웅.


아까보다도 묵직한 진동음을 남기며 마력은 다시금 크기가 줄어 농구공 10개 분량 정도가 되었다.



“이게 ‘2단계 마력’. 그리고――”


파지지직――


마치 스파크가 치는 것처럼 일렁이는 마력의 덩어리.


여기서부턴 중요하다.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고난이도 작업. 신중해야만 한다. 차마 신의 면전에서 ‘펑’을 할 수는 없으니 온 신경을 집중했다.


번쩍――!



“――이것이 ‘3단계의 마력’이지.”


성공적이었다. 손 위에는 처음의 덩치가 무색할 정도로 작은, 새끼손톱 크기의 진한 은빛을 발하는 마력의 구슬이 존재했다.


리아는 잘 보라는 양, 손을 내밀었다.



『굉장하시네요. 여기까지 도달한 이는 정말 극소수이거늘.』

“솔직히 나도 놀랐다. 불안정한 육체가 없어서 그런지 아싸리 만들어졌거든.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그렇지 않나, 생명의 신이여?”


대꾸 없이 쳐다만 보는 루시아스.


그런 여신을 보며 리아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은가? 내 눈엔 그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마력―― ‘신력’처럼 보이는데.”

『그러하군요. 제 눈에도 대단히도 안정된 신력으로 보입니다.』


이젠 더는 모르쇠로 일관할 수 없었는지 드디어 긍정하는 루시아스다. 분위기도 처음처럼 가벼워지더니 등 뒤에 있던 문양도 사라졌다.



『알고 계셨나요?』


리아는 손에 모았던 신력을 흐트러뜨리고 답했다.



“짐작만 하고 있었을 뿐일세. 에르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유추하지도 못했을 테지만.”

『그렇군요. 찬크에르레이, 그가······』

“흠. 평소에 내 쪽을 지켜보거나 하진 않았나 보군.”

『아, 예. 지상을 둘러보긴 합니다만 자주 보는 건 아닌지라. 당신을 뵌 건 성지에 방문했을 때입니다.』

“그러한가······”


솔직히 옛날에 지켜보던 두 시선 중 하나는 루시아스인 줄 알았는데 잘못 짚었나 보다.


‘달리 속셈이 있어 보이진 않아. 단순히 세인트리안에서의 사건으로 인해 관심을 가진 건가? 그러하다 마침 교회에 온 김에 불러들였다 정도가 되려나.’


뜻하지 않게 묘한 만남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 이야기는 제대로 끝맺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안하지만 마냥 여유가 있는 건 아닌지라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지.”


고개를 끄덕이는 루시아스를 보며 리아는 입을 열었다.



“그대가 말했지. 신은 지상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방금 보여줬다시피 세계는 그대들의 잔재인 신력―― 마력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다. 뭐, 당연한 거겠지. 애초에 세계를 만든 건 그대들이니. 영향을 안 받았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해.”

『정론이네요. 그래서 저희를 경계한다는 건가요?』

“······본심을 터도 괜찮겠나?”

『편하신 대로.』

“그리 허락해주니 내 숨김없이 말하도록 하지.”


주저 없는 대답에 리아는 살짝 안심했다. 암만 편히 대해준다고 하더라도 신은 신이니 말이다. 자칫 수틀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흠흠. 그럼 우선 묻네만, 신력을 내뿜고 있는 이유는 뭔가? 그대들에 비하면 벼룩 같아 보일 나라도 하나 흘리지 않고 제어할 수 있네. 그러한데 제아무리 끝없는 신력이라 할지라도 엄연히 신이거늘 그리 흘린다는 건 이상하군.”

『벼룩은 좀 과한 것 같습니다만······ 그리 묻는 당신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왜 신력을 흘리거라 보십니까?』

“질문에 질문은 좀 그러나······ 아무래도 좋겠지. 그럼 답하네만, 혹시 지상―― 오엘문리아라 불리는 세계를 위해서가 아닐까 싶네.”


에르에게 들었던 세상의 구조를 떠올렸다.



“분명 지상엔 에르와 같은 용과 정령이 있긴 하네. 그러나 그들의 사명은 관리다. ‘유지’가 아니야. 마력은 순환한다고는 하나, 각종 현상을 일으킨 마력이 돌아오거나 하진 않아. 하물며 식수마법부터 생성마법 등 다양한 마법은 아예 물체로서 남아있지. 나만 해도 그렇다. 무지막지하게 마력을 빨아들였음에도 티끌만 한 티도 나지 않았어. 도대체 그 마력들은 어디서 보충되는 걸까?”


리아는 묵묵히 있는 루시아스를 보았다.



“이게 내 답일세. 그대들이야말로 세계이며, 오엘문리아는 독립된 완성품이 아닌, 그대들의 영향력 아래 굴러가는 불완전한 곳이라는 게 내 결론이지. 어떠한가? 틀렸나?”

『아뇨. 틀림없습니다. 분명 지상은 저희들의 신력이 흘러가 마력으로서 변환되어 유지되고 있죠.』


역시나 지구인으로서는 수수께끼였던 마력의 정체는 바로 오대신들의 신력이었던 것. 지상에 흘러온 이들의 신력이 연해져 마력으로 불리고 있었던 거다.


거의 확신하고 있었던 의문이 풀렸다.


이에 따라 또 하나 우려하고 있던―― 제일 걱정거리였던 문제가 엄청난 현실성을 띠게 됐다.


그렇게 제법 진지해졌을 때였다.



『근데 그렇게나 불완전하게 보였습니까? 다 같이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지상을 만들었는데······』


힘없는 말과 함께 루시아스의 눈썹이 애처롭게 내려갔다.


리아는 당황했다. 설마 신이나 돼서 이런 걸로 토라질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그것도 본인이 속을 터놔도 좋다 해놓고는.


그러나 불만은 나중이다. 놀라고 있을 틈은 없는 것이다. 천벌만은 안 된다. 어떻게 해서든 달래야만 한다.


――라고, 평소엔 이리 허둥댔을 것이다.


하지만 루시아스에게는 안타깝게도 현재의 자신은 전생 때의 사고방식과 매우 흡사한 상태였다.


어설픈 배려 따윈 없다. 용서 없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입에 담았다. 원래부터도 신에게―― 루시아스에게 호감이 없던 터라 주저도 없었다.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전력의 공급 없이 유지되지도 못하는 세계가 어찌 완전하겠나. 그런 주제에 관리인만 거창하게 들여놓고 말일세. 마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않았으면 솔직히 인력 낭비처럼 보이네.”

『그, 그렇게나······』


두둥――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루시아스의 어깨가 축 처졌다. 마치 인간처럼 희로애락이 확실하다.


그러나 신다운 기품이랄까······ 형용하기 어려운 기척은 그대로인지라 저 꼬락서니임에도 함부로 보긴 어려웠다.


‘거참. 신님이란 편하게 살 수 있겠구먼. 암만 우스꽝스러운 짓을 해도 만만히 보이지 않을 테니.’


이것만큼은 조금 부럽다. 원체 체구가 작은 터라 아이처럼 대해지는 게 일상이니.



“그나저나 그만 좀 울적 대게.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네.”

『으우······ 네. 말씀해보셔요.』


기분 탓인가. 왠지 누군가가 연상된다.


도대체 신의 오라가 흘러넘쳤던 첫인상은 어디로 간 것이란 말인가.


‘이렇게나 빨리 첫인상이 바뀐 신은 영원히 안 나타날 거 같은데. 아니아니. 여기까지 하자. 저래 보여도 신이니 말이야.’


읽지 못한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너무 불경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어 잡념을 떨쳐낸 리아는 마저 본론을 꺼냈다.


작가의말

루시아스 : 너무해.


(죄송합니다 오타 엄청 많아서 수정 작업 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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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210 +2 23.12.03 98 0 45쪽
246 209 +2 23.12.03 38 0 41쪽
245 208 +2 23.11.11 44 0 55쪽
244 207 +2 23.10.29 69 0 42쪽
243 206 +2 23.10.21 49 0 50쪽
242 205-2 +2 23.10.11 60 0 21쪽
241 205 +2 23.10.11 69 0 37쪽
240 204 +2 23.09.30 67 0 40쪽
239 203 +2 23.09.14 61 0 39쪽
238 202 +2 23.09.14 92 0 36쪽
237 201-2 +2 23.09.02 66 0 18쪽
236 201 +2 23.09.02 71 0 35쪽
235 200 +2 23.08.22 86 0 47쪽
234 199 +2 23.08.14 72 0 42쪽
233 198 +2 23.08.04 85 1 39쪽
232 197 +2 23.07.27 79 0 42쪽
231 196-2 +2 23.07.19 51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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