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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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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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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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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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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DUMMY

아무런 소리도 없이 열린 문이 닫히고, 샤라즈 공작은 방금 막 나간 전령을 통해 들은 소식을 알렸다.



“폐하, 이스피리아 공이 외출했다 합니다.”

“벌써 말인가? ······아쉽게도 만찬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군.”


실망했다는 기색을 대놓고 드러내는 칼윈.


이런 주군을 보며 샤라즈 공작은 말을 아꼈다.


그러나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었나 보다. 드물게도 칼윈이 능글맞게 물어왔다.



“공작도 아쉽지 않나? 모처럼 만난 며느리인데.”

“현재는 아닙니다. 거기에 그리 따진다면 그녀의 장인은 한둘이 아닐 터. 하물며 저 가베인조차도 그녀와 부부가 된 적이 있잖습니까?”

“후후. 그렇긴 하지. 역시 하얀 악몽답달까, 그녀만치 매번 다른 미래를 나아가는 존재도 달리 없었지.”

“예. 그건 상당히 놀랍습니다. 저희는 무얼 해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질 않았건만.”

“벗어나지 않는 게 아니다. 못 벗어나는 거다. 이 차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랬지요. 기껏 해봐야 모든 걸 망쳐놓는 짓밖에 할 수 없었죠.”


이는 분명 다르다. 제대로 미래를 나아가는 그녀와는······


칼윈도 동의한다는 듯 진지한 눈을 하였다.



“오직 그녀만이 이 정체된 시간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아합니다. 그녀가 벌써 초월자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초월자라······ 새삼스럽지만, 이 말뜻조차도 그녀로 인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었지. 그러나 문제는 없지 않은가? 그녀야말로 미래를 나아가는 자. 전과 다르더라도―― 하물며 여태 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나아가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


알겠다는 의미로 샤라즈 공작은 묵례로 예를 표했다.


하지만 내심 과연 그러려나 싶다. 솔직히 칼윈이 너무 과한 평을 하는 게 아닌가도 싶었다. 물론 저 나이에 초월자라는 점은 대단하고, 이전에 보인 행보들은 믿기 어려울 만큼 경탄스럽지만.


이러한 본심을 칼윈도 알아차렸으나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의 성격상 이해시키려 드는 것보다 직접 보여줄 것이다. 본인의 의견이 바르다는 걸.


‘그만큼 확신하고 있으시다는 건가?’


뭐가 됐든 좋다. 도대체 몇 번째일지 모르는 똑같은 일상. 차라리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다면 모를까, 떠올린 이상 어떻게든 이 악몽 같은 순환에서 벗어나고 싶기만 했다. 내일 마실 차가 어떤 것인지 아는 것만큼 지루한 인생도 달리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칼윈의 예상대로 그 열쇠가 그녀이기를 바라며 샤라즈 공작은 슬며시 두 손을 맞잡았다.


짧지만 진지하게 기도를 올린 샤라즈 공작은 마지막으로 하나 걸리던 것을 물어봤다.



“가베인은 괜찮은 겁니까? 보아하니 그도 떠올린 듯싶습니다만.”

“혹, 떠날 걸 걱정하나?”

“예.”

“확실히 모든 걸 떠올렸다면 가베인이 들고 있는 정보는 방대하겠지.”

“그렇습니다. 그는 한 때 군단장을 맡기도 했으니 말이죠. 자칫 거사에 차질이 있는 게 아닐지······”

“상관없다. 애당초 가베인과의 계약은 서로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었으니. 딱히 우리의 방해는 하지 않을 거다.”

“실례지만, 그 목적이라는 건?”

“뻔할 텐데? 세인트리안의 멸절이지. 그것 말고 달리 뭐가 있나.”

“과연······ 기억이 없었음에도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나 보군요.”

“그렇겠지. 아니면 달리 먼저 찾아올 이유가 없다. 그러니 가베인이 무얼 하든 내버려 둬라.”

“황실의 영향력에서―― 근위를 그만둔다고 해도 말이군요.”


잠시 고뇌했던 샤라즈 공작은 고개를 숙였다.



“폐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후후.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가베인이 우리에게서 떠나든, 떠나지 않던 이 순간 자체가 한 번도 없던 새로운 미래이니.”

“그래도 부디 좋게 끝났으면 합니다.”

“그건 그렇지. 드디어 흘러갈 시간에 제물이 되긴 싫으니 말이야. 살아야 이다음에 어찌 되는지도 알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지난―― 하얀 악몽이 일궈놓은 것의 끝을 보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쉽더군.”

“분란의 종식······”


무심코 나온 말에 칼윈은 깊고 진한 신음을 흘렸다.



“분명 끝은 있었겠지만, 대륙 내의, 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분란을 없앤―― 꿈에서나 가능할 법한 위대한 그 업적 볼 수 없었다는 게 천추의 한이었지.”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것만큼은 칼윈과 의견을 같이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망상 같은 일을 본인의 힘만으로 이루어 낸 것이니까.


개인적으로는 하얀 악몽이라 불리던 이때의 그녀가 성인으로 추앙받던 이스피리아 자인 디바오러 때보다도 훨씬 위대하고 ――강대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짐작하시기로 어찌 끝맺었을 것 같습니까?”

“모르겠군. 하얀 악몽이 바라는 대로 됐을는지는. 확실한 건 그녀는 발판을 완벽히 다져놨다는 거다. ――아니, 짐이 볼 땐 절대 깨부술 수 없으리라 판단한다. 반드시 원하는 바를 이루었을 거야.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그럼에도······ 실패했다는 겁니까?”

“아직 이 시간대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로 보자면 말이지. 당최 이 시간대를 벗어나기 위한 조건이 뭔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닥쳐 목적을 이루지 못했을지도.”

“이러나저러나 어찌 보면 다행이군요. 일단 이렇게 살아있기는 하니.”

“그러하다. 이번에야말로 살아서 이 시간대의 끝을 봤으면 하는군.”


어쩐지 칼윈의 태도가 좀 의아하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확신하시는 듯합니다? 이번에는 시간이 흐를 거라고.”

“그야 그렇지. 오히려 이번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우린 영원히 이 시간대를 반복해야만 할 것이야.”

“도대체 무슨 근거이길래 그리도 희망적인 관측을 하십니까?”

“뭘 새삼스레 묻는군, 자네답지 않게. 그만큼 정신이 없었나?”

“······예?”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자 칼윈은 작게 숨을 토해냈다.



“우선 그녀에 대해 정리하자면, 알다시피 벌써 초월자에 진입했지. 이전 경험들로 미루어보아 필시 앞으로 더욱 성장하겠지.”


샤라즈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견은 없다. 하얀 악몽이라 불릴 때의 그녀는 단 3년 만에 초월자에 당도하여 홀로 한 나라를 상대할 수 있게 되었고, 1년이 더 지났을 때는 삼국을 상대할 수준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 성장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으리라. 분명 그녀는 지금보다 더욱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주의 깊게 칼윈의 다음 말을 들었다.



“나머지는 그녀의 주변을 보면 알 수 있다.”

“주변······ 소베르비아 공주와 리벨리타스 영애 말입니까?”

“그 둘도 그러하지만, 그보단 사용인이랍시고 따라온 자들 말이다. 그들의 이름을 어디서 들어보지 못했나?”

“분명 찬크에르와 델리안······ 아!”


확인하듯 쳐다보니 칼윈은 눈을 감는 것으로 긍정한다.



“갈라사르의 마녀······ 그, 그럼 벨루디스에서 느껴졌던 마력의 파동은······”

“이 시간대에 그만한 강자는 달리 없다. 분명 여섯 영웅이라 불리던 이들 중 하나였겠지. 벨루디스의 발표대로 사룡은 아니었을 거야.”

“갈라사르의 마녀였을 리는······ 없겠군요.”

“그러하겠지. 같이 있었으니.”

“죽었을까요?”

“아니. 능히 제압해냈겠지. 굳이 죽일 필요도 없이.”


단언하는 칼윈.


이 자신감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있다. 더불어 이것 때문에 갈라사르의 마녀라 단언하는 칼윈의 말도 믿을 수 있었다.



“보셨던 겁니까?”

“정확히는 볼 마음이 없어도 보였다고 해야겠군. 그만큼 엄청난 존재감이었다. 이전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다. 곁에 있던 남자 사용인도 그랬었지. 하얀 악몽 때의 그녀보다도 존재감이 확연했다.”

“사, 사용인조차도······. 혹여 누구인지 감이 잡히십니까?”

“유감스러우나 모르겠군. 얼추 대상을 좁힐 수는 있지만.”


날카롭게 눈을 번뜩이는 칼윈.


놀랍기만 한 그 내용이 대충 짐작이 갔던 샤라즈 공작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기에 이번에야말로 뛰어넘으리라 예측하시는 거군요.”

“이처럼 선택이 자유로운 그녀는 둘도 없을 테니. 하지만 마음을 놓아선 안 될 것이야. 언제나 그랬지만 지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는 것이 좋을 터다.”

“폐하의 권한을 나눠드린 것도 이를 위한 것이었습니까?”

“반은 진심이었다. 나의 제국을 그녀가 이어받기를 원하였지. 뭐, 바로 거절당했지만.”

“전 제법 안심했습니다.”

“하핫! 그럴 테지.”


도대체 언제 본지도 모를 모습의 칼윈. 그는 정말 즐겁다는 듯이 쾌활하게 웃었다.


이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니 잠시 내버려 두고 싶었으나, 신하로서 한마디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다.



“웃으실 게 아닙니다. 여기저기 반발이 일어나는 건 당연지사. 잘못하면 제국이 쪼개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럴 가능성은 크긴 하지. 하지만 그건 억지로 떠맡았을 때다. 그녀가―― 하얀 악몽이 한다고 마음먹었다면 걱정 없다. 하고자 했으면 반드시 이룰 거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암. 그렇고말고. 공작도 보고 느꼈을 텐데.”

“솔직히 전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순식간에 최후가 왔던 터라. 무력이 굉장했다는 것은 알겠다만, 과연 그것만으로 폐하의 말씀대로 종식을 이루어냈을지는······”

“믿을 수 없는 것도 공감은 한다. 결국 우린 아무것도 본 게 없으니. 그러니 눈앞에서 본 것에만 신경 써라. 그대의 경우엔 아들에 대한 것이겠지. 그녀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가. 계속 머뭇거릴 게 아니야.”

“······선처하겠습니다.”


이를 끝으로 칼윈은 공무에 들어갔다.


갑작스러웠지만 하루 이틀 모셔 왔던 게 아니다. 혼자 일하는 스타일의 황제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예를 올리고는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이후 근위들에게도 철저하게 경계하라는 지령을 내린 뒤에야 샤라즈 공작은 몸을 돌렸다.


그가 향하는 곳은 모처럼 왔다는 아들이 있는 방이었다. 칼윈의 조언을 따르는 건 아니지만, 기껏 왔으니 만나는 게 도리일 것이다.


그런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샤라즈 공작은 긴장되는 몸을 풀었다.


결코 아들을 만나러 가는 모습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당연했다. 아들―― 헤라드 벨렌 샤라즈는 사람의 형태를 한 이질적인 무언가였으니.


가족으로서, 아버지로서 최대한 평범히 대하려고는 해봤다. 하지만 그 공허한 눈동자―― 지금에 이르러서는 뭔가 꾸민 듯한 눈동자를 보노라면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후······”


배려받아 황성에 머물게 된 아들의 방문 앞에서 샤라즈 공작은 길게 숨을 토해내고는 직접 문을 두드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온 마실은 덩치가 큰 비젠탈 때문에 시선이 쏠렸었다. 그러나 많이 다녔다는 로즈답게 시민들 대다수가 황손이란 걸 알아봐 아무 방해도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골돌품 같은 가게부터 군것질하는 가게, 여러 무기점을 비롯한 도구점들까지. 도중 로즈가 지치기도 하였으나, 그때마다 페리 위에 태워 움직이기도 한 덕분에 별문제도 없었다.


이때 페리는 당연히 싫다며 저항했다. 그렇지만 역시 식탐이 많은 고양이에 불과하다. 이쪽의 곰보 코코넛 3개를 건네주는 것으로 어떻게든 합의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평온한 마실은 의외로 금방 끝났다.


물론 들른 가게나 명소는 제법 되었다. 하지만 바로 옆집이라든지, 근방이었던지라 멀리 갈 필요가 없어 같이 둘러보면 됐다.


당연했다. 로즈는 몰래 나온 것이니. 말도 없는 어린아이가 걸어봤자 어디까지 갈 수 있겠는가. 그나마 빠져나온 횟수가 많았는지 황성 주변 곳곳은 다 돌아본 느낌이다.


‘그래도 제법 만족스러웠어.’


그만큼 어두침침한 첫인상과 달리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아무런 근심도 없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 따윈 없었으며, 활기만이 가득하였다. 여태 보아온 사람들에게선 웃음꽃이 가시질 않았었다.


전체를 둘러본 것이 아니니 단정 지을 순 없겠지만, 확실히 오면서 보았던 느낌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를 보면 황제는 의외로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게 아닌가도 싶다.


‘느낌으론 좀 더 꾸릿꾸릿한 뭔가가 있을 듯싶었는데.’



“응. 별 기대 없었는데 제법 기운을 얻어간 듯하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였다. 도시를 둘러봤기 때문인지, 황성을 빠져나왔기 때문인지 기운이 넘치는 로즈가 바짝 다가왔다.



“리아 님! 이제 마지막이에요! 얼른 가봐요!”

“아. 네네.”


손을 잡아끄는 재촉에 못 이긴 리아는 웃는 얼굴로 로즈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지붕이 우뚝 솟은 건물의 앞. 주변에 다른 건물은 없다. 잔디가 깔린 넓은 부지에, 그에 못지않은 거대한 백색의 건물만이 있을 뿐이었다.


고딕 양식을 닮은 건축물을 보며 리아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교, 교회에 볼일이 있으셨나요?”

“네. 오늘 몫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거든요! 거기에 여기 린드그라드의 교회는 대성당 못지않게 장엄하니 둘러보시면 좋을 거예요!”

“그, 그렇군요.”

“아······ 혹시 루시아스 교의 신도가 아니셔서 불편한가요······?”


로즈의 표정이 흐려졌다.


어린아이의 기대를 저버리는 잔혹한 어른이 될 수는 없다. 리아는 황급히 표정을 다잡았다.


“괘, 괜찮아요.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오히려 교회 내부를 제대로 둘러본 적이 없어서 흥분되는걸요?”

“정말요?!”

“네. 무척 기대되네요.”

“헤헤.”


정말로 안심했다는 양 로즈가 밝아진다.


‘그, 그러고 보니 이 아이 독실한 신자라고 했던가. 으응······ 원래도 할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교회를 불태웠다는 얘기는 무덤까지 갖고 가야겠네.’


혹시 몰라 세인트리안과 감정이 있는 델리안이나 에르의 눈치도 보았는데, 둘은 그다지 교회가 싫은 건 아니었는지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반대도 없고, 다 함께 교회의 정문으로 향했다.


교회는 바깥에서도 보았듯 사람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장엄했다.


천장과 창문에 내리쬐는, 교회 특유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발하는 빛은 무심코 경건한 마음이 들게 하였으며, 드넓기 그지없는 내부는 도대체 어떻게 세웠는지 궁금한 거대한 기둥들이 늘어선 것이 장관이었다. 더불어 신실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함부로 경거망동하면 안 되겠다는 기분을 들게 하였다.


과연 로즈가 자랑할만하다고 할까. 대성당을 들어가 보진 못했으나, 이 정도라면 비견할 수도 있어 보인다.



“굉장하죠?”

“네.”


리아는 순수하게 긍정했다. 세인트리안의 대한 감정은 차치하고, 분명 굉장한 노력이 들었을 이 모습엔 절로 감탄이 일었다.


하지만 둘러보는 건 여기까지다.


일행엔 상당한 덩치의 비젠탈과 페리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내부로 들어가기엔 그렇다. 주변 사람들도 다 쳐다보고 있고.



“로즈 씨, 기도드리고 오세요. 저흰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


그제야 로즈도 일행 모두가 들어가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나 보다. 당혹스러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본다.



“함께 다녀오시지요, 이스피리아 님.”


권유하는 말에 리아는 돌아봤다.



“제가 비젠탈 공과 남도록 하겠습니다.”


차분하게 예를 보이는 가베인.


배려는 고마우나 여러 문제가 있던 터라 리아는 물었다.



“페리는 괜찮을까요? 그리고 가베인 씨는 로즈 씨의 호위시잖아요.”


그가 빠지면 로즈를 호위하는 인물이 전혀 없다. 그러나 문제없다는 듯이 가베인은 살짝 웃어 보였다.



“슈페리얼 래퍼드라고는 하나 지금처럼 얌전히 있다면 괜찮을 겁니다. 여차하실 땐 황제께서 주신 신분증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로즈린느 님의 안전은······”


말을 끊은 가베인은 고개를 돌렸다.



“찬크에르 공. 실례지만 귀공에게 부탁해도 될는지?”


잠시 의도를 읽으려 한 것인지 조용히 쳐다보던 에르는 이윽고 묵례로 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이를 본 로즈는 신이나 희희낙락 들어가자며 이끌었다.


하지만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 리아는 가베인을 쳐다봤는데, 그는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만을 남기고 비젠탈에게로 향했다.


‘어쩔 수 없으려나.’


옆 길가로 빠지는 둘을 보며 최소한의 예의로 비젠탈에게 [염화]로 미안함을 전하고는 리아는 발걸음을 옮겼다.


교회 내부로 들어서자 줄곧 주시하고 있던 신관 한 명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 신관은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페리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지구에서도 교회에 고양이를 출입하게 두는 곳은 없을 테니 이곳도 아마 그러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안녕하세요, 신관님!”


전혀 미안한 기색도 없는 로즈가 밝게 인사하니 한 방에 해결됐다.


정말 자주 왔는지 로즈를 알아본 신관은 차마 무어라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어서 오라며 환영의 말을 건넸다.


역시 황손. 최고 권력자의 손녀답다고 할까, 막강한 파워다.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이 신관의 직책이 높았던 건지 아무런 만류도 없이 루시아스의 신상이 있는 곳과 제일 가까운 자리까지 오게 됐다.


융단이 깔린 자리에서 로즈는 곧장 무릎을 꿇고 진지하게 기도를 올렸다.


멀뚱히 서서 리아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따라온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페리는 지겹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고, 에르와 델리안은 멋들어진 기색으로 제자리를 고수하였다.


근데 시선이 몰린다.


가만히 서 있는 탓은 아니겠지만 근질근질해진다.


참지 못한 리아는 뭐라도 하자는 생각에 루시아스의 신상을 올려다봤다.


루시아스의 신상은 획일적으로 만들어지는지 아네픽시르 외곽에 있던 교회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똑같이 여성이 자애로운 미소로 손을 뻗고 있는 형태였다.


‘얼굴도 상당히 비슷한가? 뭐, 기왕 온 김에 인사는 해야겠지. 그게 예의이고 하니까. 별로 하고 싶진 않지만······’



“제대로 인사드리긴 처음이네요. 이스피리아라고 해요.”


꾸벅.


라프리트에게 배운 대로 양 치마의 끝자락을 잡고 리아는 사뿐히 머리를 숙였다.


공손히 예를 보이긴 했지만 분명 평범한 인사였다.


그런데······


――뭔가 알 수 없는 힘이 몸을 엄습했다.



『저도 반갑답니다, 이스피리아.』


저항하긴 무척이나 어려웠던 힘이 덮치고,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함에 숙였던 머리를 들고 앞을 바라보니 그곳엔 웬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색색의 처음 보는 꽃들이 즐비한 아름다운 정원이다. 그리고 목소리가 난 방향이랄까, 정면엔 흰 나무줄기가 엮어 만들어진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여성이 있었다.


여성의 얼굴은 굉장히 낯이 익었다.


――그야 방금까지 봤던 신상의 얼굴과 비슷하니 말이다.


완전히 닮진 않았다. 그러나 분명 부분부분 닮은 포인트가 있었다. 입가에 있는 자애로운 미소라든지.


그 여성―― 신상을 닮은 그녀는 차분히 있는 리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나의 사도―― 아니죠. 나의 사도를 자칭한 이스피리아여.』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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