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4.10 19:10
연재수 :
259 회
조회수 :
29,907
추천수 :
315
글자수 :
3,609,859

작성
22.07.18 12:04
조회
69
추천
0
글자
28쪽

154

DUMMY

이곳은 전장. 자신을 위해 준비된 무대임과 동시에 친정처럼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었다.


둘러보는 시선에는 가득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전원 열기 어린 흥분을 내뿜고 있었다.


시끄럽게 함성이 울린다.


그 소리와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마치 지축이 뒤집히는 듯하다. 처음 이곳에 온 자라면 이 함성에 기가 죽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겐 너무나 익숙하고도 익숙한 일. 새삼스러운 것도 없다. 친근한 저 외침들은 가슴을 뜨겁게 했다.


다만······ 오늘은 좀 평소와 달랐다. 원형의 투기장을 메운 커다란 함성은 자신을 향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도 처음 들을 정도의 우렁찬 환호는 눈앞의 여성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겼다.”


도대체 얼마 만에 내는지도 모를 거친 숨소리를 뚫고 여성의 고운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여성도 상당히 지쳤다. 더듬더듬 힘겹게 연 입에서 나온 말은 알아듣기 힘들다.


그러나 딱히 들리지 않더라도 무얼 이야기하는지는 명확하다.


――본인의 승리를 알리는 것이라는 걸.


그랬다. 자신은 패배했다.


믿기지 않는 현실. 그렇지만 부정 따윈 할 수 없다. 싸움은 정정당당했고, 각자 가진 모든 걸 전력으로 부딪쳤다. 편법이나 꼼수 따윈 없는 순수한 힘과 힘의 대결이었다.


그렇게 승부가 갈려졌다.


결과는 보이는 대로다. 쓰러진 몸의 상체를 가까스로 일으키고 있는 자신과 그것을 새벽노을의, 여명의 빛이 아름다운 눈동자로 여성이 내려다보고 있다.


누가 여력이 남았는지, 누가 이 싸움의 승자인지는 제삼자가 보더라도 명확하다.


아니, 다른 사람의 판결을 기다릴 것도 없다. 직접 여성과 싸운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여성은 강하다. 자신보다도 훨씬······



“아아. 너의 승리를 축하하지, ――무왕, 이스피리아.”


생각보다도 더 담담하게 나온 말이 투기장에 설치된 마법에 의해 넓게 울려 퍼진다. 동시에 화답하듯 사람들은 열광했다.


――새로운 무왕의 탄생을.


하지만 열렬한 환호 따위는 관심도 없는 듯 여성은 호흡을 정돈하고는 말을 걸어온다.



“이봐, 설 수 있겠어?”

“무시하지 마라.”


아무리 결판이 났다지만 추한 모습을 보일 순 없다. 온 힘을 써 떨리는 무릎을 두들겨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애송이 같이 서두르는 그 모습이 재밌었던 모양이다. 여성―― 이스피리아는 조용히 웃었다.



“과연 전 무왕. 좋은 오기야. 하지만 당신의 팬이 많아. 저기 꺼이꺼이 울고 있지? 그들에게 넌 계속 멋진 모습으로 있어 줘야 하지 않겠어?”


그리 말한 이스피리아에게서 마력이 움직였다.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순간 경계했다. 그러나 적의는 없는 데다가, 이 여자가 기습 따위를 할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얌전히 서서 무엇을 할지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마력을 끌어올린 이스피리아가 한 것은······ 마법이었다.


여력이 남아있던 것인가 하고, 어딘가 분한 기분도 들었다. 자신은 만신창이였기에 더더욱.


하지만 그런 분함은 이스피리아가 쓴 마법을 보자 바로 사라졌다.



“어······? [치유]?! 뭐야, 댁, 성기사였어?!”


온몸을 말끔히 치유한 것은 분명 [치유]. 나름 깊은 상처도 있었다. 그런데 한순간에 모든 상처를 고친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근데 어째서 나와의 대결에서는 쓰지 않은 거냐?”


무심코 나온 물음에 이스피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성기사로 보여? 그리고 당신, 나에게 개발리고 싶었어?”

“뭐······?”

“알아듣기 어려웠나? 그럼 쉽게 얘기해서 처참하게 헌 걸레짝이 되고 싶었냐고.”

“그런 걸 묻는 게―― 아니, 됐다.”


어처구니가 없다. 자신에게 첫 패배를 안겨다 준 이 결투가 설마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니.


목숨을 건 싸움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도 다를 바 없는 무례.


그런데 어찌 된 건인지 무척이나 상쾌했다.



“다음에야말로 너의 전력을 끌어내도록 하지.”

“그래. 언제든지 도전 해. 쉽게 져줄 마음은 없지만.”

“당연하다! 내가 되갚기 전까지는 절대 뒤지지 말라고, ――무왕.”

“후후. 노력은 할게.”

“아앙?! 이럴 땐 확실히 대답하는 게 예의라는 거다! 이래서 여자란. 쯧.”


안식력 880년.


이것이 투기대회에서 만난 그녀―― 예선부터 일격에 승리하여 눈길을 끌었었던 이스피리아와의 악연이 시작되는 첫 만남이었다.


이후로는 그녀를 이기기 위한 단련의 나날이 이어졌다.


도시는 갑자기 나타나 무왕이 된 이스피리아에 대한 관심과 그녀의 제자로 들어가기 위한 소동 등으로 수도 전체가 떠들썩하였다. 특히 그녀의 문파는 어디냐는 것에 많은 논의가 있었다.


물론 그런 것에 관심을 둘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2년 후――


재차 도전한 투기대회에서 또다시 결승에서 만난 이스피리아에게 졌다.


처음과 마찬가지였다. 얼추 비등하게 싸운 모양새였지만 전력―― [치유]를 쓰게 하진 못하였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지만 이토록 단련에만 매진했는데도 부족했다.


분하다. 하지만 어떡하나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데. 그저 이쪽이 노력한 만큼 이스피리아도 노력했을 뿐이다.


거기에 어떻게 불만을 품을 수 있을까. 그럴 시간에 목표가 강해진 것에 감사하며 다음 도전을 대비하는 게 훨씬 유익하다.


다시금 시작된 단련.


인생에서 최고로 검에 매진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그리고 찾아온 두 번째 도전.


전까지는 행운이 따라주어 무왕으로 등극했다는 이야기도 간간이 들렸으나, 과연 2연속 자리를 지키니 더는 들리지 않는다. 거기에 투기대회 따윈 품위가 없다며, 거들떠보지도 않던 고류 문파들이 이번엔 관심을 보였다. 엉덩이가 무겁던 그들이 몇몇 사범들을 출전시킨 것이다.


왜 그랬는지는 알겠다.


그들도 나름 궁금했을 거다. 자신을 끌어내리고 제국을 들썩이게 만든 그녀의 실력이 어떠한지. 게다가 같은 문파라면 그녀의 명성을 이용해 먹으려는 속셈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너무 간을 봤다. 겨우 그따위의 녀석들로 자신을 이기려 들다니. 한 100년은 이르다.


그녀는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차례차례 모두 꺾고 올라온 결승전은 이스피리아와의 대전이었다. 그나마 들리는 말에 의하면 사범 녀석들 몇은 일격을 버텨냈다나 뭐라나. 워낙 실력 차이가 심해 정작 알아내고 싶었던 이스피리아의 문파는 알 겨를도 없었을 거다.


참고로 그녀가 싸우는 모습은 일부러 보지 않았다. 선입견이 생길뿐더러, 즐거운 건 마지막에 남겨둬야 하지 않겠는가.


흥이 깨지는 짓을 자진해서 하는 취미는 없다. 그녀의 문파가 뭔지는 관심도 없고.


그렇게 기대 가득하니 맞이한 두 번째 도전.


결과는 또 한 번의 패배로, 정말 너무나도 아쉽게 이번에도 그녀의 전력을 끄집어낼 순 없었다.



“굉장하구먼.”

“너도. 저번보다 꽤 괜찮아졌어.”

“겨우 괜찮아진 수준이냐.”

“엉.”


미소를 짓는 그녀의 말은 다분히 무시하는 발언처럼 들렸으나, 자신이 인정한 상대이기 때문인지 전혀 기분이 나빠지지 않았다.



“뭐, 다시 도전하는 수밖에 없겠지.”


환호가 울리는 투기장을 떠나 다시 훈련에 매진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수도 외곽에서 밤늦도록 검만을 휘두르는 나날.


최근 수년째 이어지던 일과에 돌아갔을 때였다.


자신의 검에서 울리는 소리만 들려오는 만족스러운 적막감을 깨며―― 이스피리아가 나타났다.



“이런 데에 있었던 거야? 어지간히도 멀리서 훈련하네. 나보다 더하는데?”


갑작스럽게 등장한 그녀는 마치 자신을 찾기라도 한 것 같이 말하였는데, 허튼 상상은 아니었는지 주위의 흔적들을 살피며 느긋하게 다가왔다.



“여긴 어쩐 일이냐?”

“으음. 역시 훌륭해.”

“응?”


저 혼자 중얼거린 그녀는 대뜸 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같이 훈련하자.”

“뭐?”

“같이 훈련하자고.”

“내가 왜?”


당연한 의문이다. 애당초 외곽에서 혼자 훈련한 이유는 그게 편해서였다. 주변에 피해를 끼칠 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다가 넌 내가 꺾을 상대야. 같이 훈련한다는 게 말이나 돼?”


2년간 수련을 쌓고 만나는 투기대회 결승은 나름대로 그녀의 성장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그걸 버린다는 것도 영 내키지 않는다.



“으음. 기술이라든가 알려지는 걸 꺼리는 걸까나······”

“헹. 내가 문파의 고리타분한 녀석들도 아니고 그런 걸 신경 쓸까 보냐.”

“그럼 같이해도 되네?!”

“그런 말이 아닌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왜 그렇게 나랑 훈련하려 드는 거야?”

“그게······”


이스피리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막혔거든.”

“막혀?”

“응. 훈련의 방향이 안 잡힌다고 해야 하나, 뭘 훈련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아~ 그런 거냐.”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자신 또한 실력을 쌓아가며 비슷한 경험을 수도 없이 했으니까.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 너도 스승은 없는 거냐?”

“으음······ 나름대로 기초를 알려준 선생님은 있었어. 나 베르다드에 다녔었거든.”

“너 벨루디스 사람이었어?”

“아니. 베르다드에 다녔을 뿐이야. 그 나라 사람은 아냐.”

“아하~ 그럼 내전이 싫어서 제국에 온 거냐?”


정답이었는지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어지간히도 길어야지. 계속 끝도 없이 치고받고 싸우는데 잘 수가 있어야지 원. 그나마 라프리트 때문에 여태 남아있었지만······ 이젠 질렸어! 정말. 이래저래 귀찮게 굴기나 하고.”

“라프리트는 또 누구냐?”

“친구······ 비슷한 사람이려나? 귀족 집안의 아가씨인데 얼마 전에 결혼했거든. 받은 만큼은 돌려줬으니 이젠 빠질 때라는 거지.”

“그렇군······. 근데 투기대회는 왜 참가한 거냐? 조용히 살려는 게 아니었어?”

“뭘 당연한 걸 물어?”


이스피리아가 한심한 듯이 쳐다본다.



“당연히 돈 때문이지. 급하게 도망치듯 나오느라 땡전 한 푼도 없었거든. 먹고는 살아야 할 거 아냐.”

“쉽게 벌 수 있으니까 참가했다는 거지?”

“그거 말고 뭐가 있겠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런 거밖에 없고 말이야.”

“······.”


설마 그런 이유로 참가했을 줄이야.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녀 말고도 비슷한 이유로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도 적진 않을 테니.


하지만 이스피리아는 대회 자체를 즐기는 모습처럼 보였던지라 너무나 뜻밖의 대답이었다. 선생님이라도 되는 양 너스레를 떠는 꼬락서니도 의외의 모습이고.



“나름대로 소질이 있을지도.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좋아. 같이 훈련하자.”

“정말?!”

“그래. 실은 나도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조금 막막했거든. 때마침 이라는 거지. 활로도 찾을 겸 잠시 같이 있어 보는 것도 괜찮겠지······”

“응!”


마치 아이 같이 순수한 미소를 짓는 이스피리아. 새삼 무안해지는 말을 꺼냈다는 걸 인식하고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었다.


그렇게 그녀는 매일 자신이 훈련하는 외곽의 공터로 찾아왔다.


그녀와의 훈련은 꽤 도움이 되었다. 적어도 성장한 그녀의 모습을 본다는 즐거움을 포기한 만큼의 값어치는 했다.


이스피리아도 그러했다. ······아니, 그녀는 더욱 얻어가는 것이 많았다.


너무나 실력 차이가 났기에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었지만, 제법 맞붙으며 함께 지내기까지 한 자신만은 안다.


그녀의 검술은 주위의 모든 걸 흡수한 자기류였다. 그녀는 필요한 것이라면 어느 문파 따질 것 없이 모두 가져다가 자신에게 맞는 것으로 바꿔 활용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사람끼리 같이 훈련했던 덕일까, 그녀는 날이 갈수록 눈부시게 발전해갔다. 여태 제대로 된 스승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그 속도는 시샘이 날 정도였다.


그렇다고 질투 따윈 하지 않는다. 식사도 잊을 정도로 열중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어찌 질투 따위를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자극받아 자신도 더욱 검을 열심히 휘둘렀다.


그러한 나날이 이어질 때였다.


어느 날 그녀는 양손 가득 커다란 짐을 진 채로 나타났다. 등에도 짐이 한가득하다.



“어이, 이스피리아. 어디 이사가?”

“응. 그러니까 안내해.”

“어딜 안내해?”

“어디긴 어디야. 당신 집이지.”

“······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쳐다보는 이스피리아의 눈은 어디까지고 진지했다. 절대 농담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자, 잠깐······. 이해를 못 하겠는데. 왜 우리 집으로 이사하겠다는 거야?”

“뭘 당연한 걸 또 물어? 같이 훈련하니까 그렇지. 당신 묘한 부분에서 자주 멍청해지더라?”

“아니······ 네가 엉뚱해서 그런 거야. 내 이해력이 달린 듯이 말하지 마.”

“아아, 됐어. 그보다 빨리 안내나 해. 이거 의외로 무거워.”


그녀의 고집은 대단했다.


――아니다. 그냥 남의 말을 잘 듣질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영문을 몰라 한사코 거절하는 이쪽의 말은 흘려들으며 그녀는 쌍심지를 켜고는 눈을 부라렸다.



“여기까지 오는 데 심심하잖아! 어차피 맨날 같이 있는데 같이 사는 게 뭐 어때서! 남자가 쪼잔하게 이러쿵저러쿵하지 마!”


자신은 말싸움이 약했던 걸까. 겨우 저런 이유로 같이 산다고 하건만 뭐라 변변찮은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 새로운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고, 정신이 들어보니 어느새 그녀와 함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억지로 떠넘긴 짐도 반 나눠 들고는······


하지만――



“헤에······ 의외로 검소하게 사네. 응. 마음에 들어.”


수도 중심부에서 먼, 주변에 있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집을 만족스럽게 올려다보는 그녀를 보니 아무래도 좋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앞으로 잘 부탁해.”

“나야말로. 왜 이렇게 된 건지는 진짜 모르겠지만 잘 부탁한다, 이스피리아.”


뜻하게 시작된 그녀와의 생활은······ 솔직하게 말해 좋았다. 스스로도 의외였지만.


보이는 대로 털털한 그녀는 요리도, 집안일도 그다지 잘 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머리가 굳어있는 이곳 사람들과는 달리 말이 잘 통해 함께 지내는 내내 꽤 즐거웠다. 자신이 이렇게 크게 웃을 수도 있는 거냐며 놀라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스피리아는 본인이 여자이고, 미인이라는 자각이 전혀 없는 건지. 너무 털털하게 지내는 탓에 가끔 난처해지는 일이 생겨났다.


그런 사건 사고가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하지만 큰 문젯거리는 아니었다.


솔직히 눈이 호강할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 모든 것을 포함하여 그녀와의 동거 자체는 무탈하게 흘러갔다. 훈련도 함께 공터로 향한다는 것과 도시락을 싸게 됐다는 것 말고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집안에서 그녀를 보는 것도 익숙해졌을 무렵, 3번째 도전의 날을 맞이했다.


지난번 참가했던 문파들은 자신들의 추태를 만회하려던 것인지, 상위 사범들을 대거 참가시키는 등 호화로운 인원들로 구성되어있었다.


하지만 멀었다. 이전이었다면 나름 고전했을 상대도 몇 있었으나, 이스피리아와 단련한 지금의 자신에겐 그리 위협적인 적수가 아니다.


별 고전도 없이 모두 이겨나가 쉽게 결승전에 올랐다.


결승전의 상대는 이스피리아였다. 세간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예측할 지경이니 놀라운 것도 없다.


나중에 들어보니 우리들의 승리는 너무 당연하다 보니 돈을 거는 사람이 없어 내기의 배당금이 거의 본전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덕분에 상대 쪽은 근 천 배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배당금이 됐고.


물론 그녀와 만나는 이 결승전은 다르다. 6:4로, 그녀 쪽이 높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내기다운 내기가 형성됐다.



“안 봐줄 거야.”

“그 말을 들어서 안심이야. 만약 봐줬으면 집에서 내쫓을 생각이었거든.”

“그건 싫으니······ 최선을 다해 때려눕혀 줄게.”

“기대한다고, 리아.”


호기롭게 외치며 달려든 3번째 도전. 투기장에 설치된 보호막도 깨뜨리는 등 엄청난 격전에 사람들이 환호를 지른다.


그러나 결말은 완패로, 이번에도 땅에 누워있는 것은 자신이었다.


또한 그녀의 전력을 여전히 끌어내지도 못하였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네.”

“응. 열심히 하자. 이번엔 아슬아슬했으니 다음엔 가능할지도 몰라.”

“그래. 긴장해두라고.”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다음 대회를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그렇게 또 1년이 흐르고, 도시에서는 언제나 함께 다니는 자신과 그녀를 보고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냐는 소문이 흐르게 됐다.


같이 식료품을 사러 나와 시장의 점주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듣게 된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거야?”

“네가 나한테 물으면 어쩌자는 거냐.”

“그럼 아니야?”

“······.”


무안함에 차마 대답하진 못했다. 함께 사는 것도 모자라, 재산까지도 합친 자신들은 어딜 어떻게 봐도 부부와 비슷하지 않냐는 생각을 가끔 했기 때문에.


그렇지만 이를 순순히 인정하기엔 어쩐지 부끄럽다. 비슷한 소리를 들을 때면 대충 흐지부지 그 자리를 넘겼다.


하지만 한 번 의식하니 계속 그녀에 관한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결국 훈련에 마저 영향을 끼치게 됐다.



“요즘 왜 그런 거야?”


역시나 전혀 집중하지 못하자 대련하고 있던 그녀도 금방 눈치채고 물었다.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우물쭈물하며 뭐라 하진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집안에서 그녀와 마주쳐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알긴 했지만,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근데 그 시간이 조금 길었나 보다. 4번째 도전할 날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지금에 와서 보면 참으로 미안한 짓을 했지만, 돌이키면 그러한 순간이 있었기에 그녀에 대한 마음을 확실히 할 수 있었던 것도 같았다.


이러나저러나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녀와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산 나날들은.



“······.”


매번 시작하기 전 짧게나마 대화를 나누었건만.


당연하다는 듯 올라온 이번 결승전은 서로 아무 말도 없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공세는 다른 때보다도 매서웠다. 분노도 느껴지는 공격들은 여태 그녀가 생각보다도 더 많이 봐줬음을 느끼게 하였다.


하지만 후회를 남길 순 없다. 힘겹지만 그녀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맞서 나갔다.


무수히 많은 공방, 그리고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 속에 마침내 4번째 도전의 결판이 났다.


힘이 다해 무릎을 꿇은 자신과 늠름한 자태로 검을 겨누고 있는 그녀.


그렇다. 이번에도 해내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이겼어.”

“그렇네. 또 져버렸어.”

“응. 그러니까······”


어쩐지 울먹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가 말을 흐린다.


한두 살 먹은 애송이도 아니고 참으로 몹쓸 짓을 했다. 그렇지만 덕분에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마음은 확고해졌다.


――저런 그녀의 얼굴은 보고 싶지 않다고.


그런 생각이 들자 몸이 저절로 움직여 품속에 넣어놨던 물건을 찾아 꺼냈다.


미리 준비해놨던 그 물건은 반지로, 벨루디스에서는 그리 유행하지 않는 풍습에 그녀는 의아하게 쳐다본다.



“뭐야 그게.”

“보면 몰라? 반지지. 당연한 걸 묻고 그러네.”


평소와는 반대의 상황에 돌연 기분이 팍 상했는지 애처롭게 내려갔던 그녀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누가 몰라서 그래? 갑자기 왜 그런 걸 들이대냐고.”

“왜긴.”


오늘도 진창 후들거리는 다리.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절대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순 없다. 이를 꽉 물어 평온을 유지한다.


겨우 간신히 안타깝지만은 않게 되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살며시 손을 잡아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자신이 무얼 하려는지 안 제국의 사람―― 관객들은 숨을 삼키고는 소리를 높였다.



“뭐······ 하는 거야?”

“딱 맞네. 눈대중이었는데 맞아서 다행이야.”


제아무리 눈치가 없는 그녀라도 뭔가 이상함을 알았나 보다. 화를 내던 것도 잊고 손에 끼워진 반지와 이쪽을 번갈아 쳐다본다.


사랑스럽다.


그 소중한 마음을 품고 한쪽 무릎을 꿇어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등에 입맞춤했다.



“결혼해줘, 리아. 나와 함께 살아가 줬으면 해.”


마침내 꺼낼 수 있었던 말에 관객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숨을 죽여 그녀의 대답이 어떠할지를 지켜보았다.


마찬가지로 떨리는 마음으로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그녀는 놀라며 주위를 둘러봤다.


한동안 우왕좌왕하던 그녀는 이윽고 현재 상황을 깨달았는지 차분하게 시선을 내려 쳐다보았다.


천천히, 그녀의 다물어져 있던 입이 움직였다.



“싫어.”

“고마워. 반드시 행복하게―― 응?”


설마 거절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같이 지낸 기간이 있기에 더더욱. 관객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째서?!” 라고 부르짖으며 그녀의 대답에 의구심을 표출했다.


멍한 머리는 잘못 들었겠거니, 장난이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얼빠진 소리를 내며 올려다본 그녀의 눈은 진지했다.



“그, 그렇지만 난 약속을 지키지도 못하는 남자는 싫은걸.”

“약속?”

“언젠가 날 꺾는다고, 전력을 내게 하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부부가 되면 은근슬쩍 힘을 뺄 거 같아. 당신 그런 부분에선 묘하게 마음이 약하니까.”

“그래서······ 거절한 거야?”

“응. 몇 년간이나 노력했잖아. 난 당신이 제대로 목표를 이뤘으면 싶어. 아니면 여기서······ 끝낼 거야?”


모르겠다. 예전이라면 어땠을지.


하지만 지금의 자신에겐 그녀야말로 삶의 목표다. 그 기대감을 저버리는 짓은 차마 할 수 없었다.



“2년······. 2년만 기다려줘. 금방 끝내고 맞이하러 올게.”

“알았어. 반지는······ 맡아두고 있을게. 하지만 너무 기다리게 하진 말아줘. 질려서 다른 사람에게 눈 둘지도 모르니까.”

“그건 끔찍하니 죽을힘을 다해야겠네.”


그렇게 4번째 도전은 끝이 났다.


투기장에서는 보기 힘든 애틋한 사랑 이야기에 한동안 수도는 시끌시끌해졌다.


이번 투기대회의 결과 같은 건 뒷전으로 안중에도 없었다. 당사자인 자신과 그녀는 한동안 화제의 중심으로 시장을 다니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들뜰 시간은 없다.


여전히 집을 나가지 않고 같이 생활하는 그녀가 새삼 어색했지만, 하루하루 허투루 보내지 않고 수련에 열중했다. 필요하다면 대련도 마다치 않았다. 그녀를 얻기 위해 그 본인에게 대련해달라는 것이 조금 웃기긴 했지만.


그런 식으로 눈을 뜨면 바로 나가서 밤늦게까지 검만을 휘두르던 나날이 이어졌다.


물론 힘들었다. 더는 배기지 않을 거라고 봤던 굳은살도 살이 까지고 더욱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모든 건 그녀를 위해서라는 마음으로 이겨냈다.


또 2년이 지나, 결전의 그 날이 다가왔을 때 거울에 비친 몸은 군살도 하나 없이 오로지 전투를 위해 잘 다져지게 됐다. 지난 몇 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판이하다. 인생의 절정기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솔직히 다시 이 위치에 도달할 자신이 전혀 없었다.


그 정도로 준비는 완벽했다. 하지만 자만 따윈 하지 않았다.


상대는 그녀다. 그런 어설픈 마음가짐은 필요 없었다. 도리어 아직도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만이 감돌았다.



“이제 갈까.”


씻고 나와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홀로 준비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한편으로는 아직 오지 않았으면 싶었던 그 날. 마지막으로 차분히 정신을 통일하고는 집을 나섰다.


그리고 만나러 갔다. 먼저 출발하여 기다리고 있을 그녀에게로.


잦아들었던 자신과 그녀와의 화제는 다시금 불이 지펴져, 투기장으로 가는 도중 알아본 사람들이 힘내라며 응원을 보낸다.


투기대회에 접수할 때는 인생을 통틀어 이렇게 떨어본 적이 있나 싶기도 하였다.


그렇게 낯선 자기 모습에 웃기도 하는 등, 여지까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5번째―― 아니, 마지막으로 끝낼 도전이 시작되었다.


일주일 동안 치러지는 대회 기간 중 어려움은 없었다. 상대의 수준이 기존 대회보다 좀 오른 듯싶었지만, 적수는 아니다. 손쉽게 승수를 쌓아갔다.


의외였던 것은 각 문파의 참가자로, 그들은 여지까지의 폐쇄적인 관습을 버리고 각 문파의 단점을 보완했다. 아직은 그 수준에 있어서는 괄목할 정도는 아니지만, 후에 시간이 흐른다면 분명 제대로 된 성과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더불어 그들을 포함, 자신에게 진 자들이 모두 힘내라며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뜻밖의 응원에 놀라움을 느끼며 올라간 결승. 그곳에는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할까?”

“응.”


많은 말 없이 전투는 시작됐다.


관객들은 2년 전의 약속을 기억하고는 저마다 응원을―― 대다수는 지지 말라며 외쳤지만, 소수의 사람은 져서 차이라는 저주를 퍼부어댔다. 그녀는 자기에게 맞기라는 분에 넘치는 헛소리를 지껄여대며.


악담을 퍼부은 녀석들에겐 울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이내 그들 따위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강하다. 그 맹공에 한눈을 팔 겨를은 없다. 어떤 양상으로 흘러가는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오로지 그녀를 이기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무아지경으로 이어지는 공방.


관객과 해설자들조차도 침묵한 투기장은 무시무시한 금속음만이 울려 퍼진다. 앞서 펼쳐진 준결승과는 급을 달리한다.


그러나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수준의 전투이다 보니 결판은 오히려 금세 났다.


핑!


세차게 밀린 검이 기세 좋게 날아가 투기장의 벽에 꽂힌다. 동시에 관객들의 우렁찬 환호가 울린다.


――드디어, 드디어 해냈다.


겨누고 있던 검을 집어던지고는 그녀에게로 갔다. 검은 자신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였으나 지금만큼은 거추장스러웠다.


끊어질 듯 멈추지 않는 거친 숨이 몰아치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로지 쓰러진 채 몸을 뉘어 올려다보는 그녀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단 두 걸음뿐이지만 너무나 먼 그 길을 힘겹게 도착하여, 검상의 아픔에 인상을 쓰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주저할 틈은 없다.


곧장 그녀의 손을 잡고는 쓰러지듯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아. 정말 멋없구먼. 저번처럼 폼을 좀 잡고 싶었는데.”

“아니야. 멋있어. 그때보다도 훨씬. 관객들도 좋아하잖아.”


확실히 슬슬 잦아드는 함성과 기대로 눈을 빛내는 관객들이 보인다. 해설자도 승리의 선언을 외치지 않고 즐겁게 어찌 될지를 보고 있다.



“그렇군······. 광대가 된 기분이라 영 별로지만 나쁘진 않아. 네게도 멋지다는 소릴 들었고. 하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또 차이긴 질색인데 말이야. 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

“목표는 이룬 거야?”

“아아. 드디어 리아, 널 받아들일 준비가 됐어.”

“흐흥. 어쩔 수 없네. 약속했으니까. 여자가 내뺄 순 없겠지.”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말하였지만, 그녀의 입가엔 이 세상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환한 미소가 매달려있었다.


덕분에 재차 말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던 것도 잊고 외쳤다.



“나와 결혼해줘, 리아. 반드시 행복하게 해줄게.”

“힘들지 않겠어? 나 이래저래 살림도 잘못하고 기분파인데?”

“무얼. 목표는 어려울수록 불타는 법이잖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난 말한 건 이루는 남자 거든.”

“정말 믿어도 돼? 남자는 늑대라잖아. 바람 같은 거 안 피울 거야?”

“그건 너무나 쉬운 주문이잖아. 세상에서 가장 예쁜 네가 곁에 있는데 어떻게 다른 여자에게 눈길이 가겠냐?”

“우우. 그런 점이 조금 바람둥이 같아.”

“그래서, 대답은?”

“오늘따라 서두르네.”

“오래 기다려왔던 거니 당연하지. 거기에 많은 사람이 쳐다보고 있잖아. 솔직히 조금 근질거려.”

“그게 지금 할 말이야?”


한숨을 푹 쉰 그녀는 품속에 손을 넣더니 무언갈 던지듯 건넸다.


얼떨결에 받고 보니 들려진 건 2년 전 자신이 건네준 반지였다.



“뭐해. 창피하다며. 얼른 끝내야지 않겠어?”

“그, 그럼?!”

“응. ――앞으로 잘 부탁해, 서방님.”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는 그녀와 승낙의 말.


이후의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쁨에 정신이 나갔는지, 투기장이 떠나가라 외치는 사람들의 환호와 아픈 몸인데도 그녀를 안아 들고 미쳐 날뛰는 자신만이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었다.


안식력 890년.


10년이 된 악연은 그렇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바뀌었다.



“――가베인 경, 도착했어요. 그만 일어나세요.”


너무나도 달콤했던 꿈을 깨부수는 유즈라의 목소리.


가베인은 아쉽게······ 정말 아쉽게 재차 떠오르는 이스피리아의 모습을 뒤로한 채 현실로 돌아왔다.


작가의말

어? 쟤들 그런 관계였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렙 히로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다들 연말 잘 보내세요! 23.12.26 8 0 -
259 219-2 24.04.10 7 0 13쪽
258 219 24.04.10 32 0 42쪽
257 218 +2 24.03.25 29 1 43쪽
256 217 +2 24.03.14 18 0 50쪽
255 216 +2 24.03.01 28 0 40쪽
254 215 +2 24.02.22 34 0 40쪽
253 214 +2 24.02.15 29 0 45쪽
252 213 +2 24.02.01 38 0 48쪽
251 212-2 +2 24.01.22 23 0 21쪽
250 212 +2 24.01.22 29 0 33쪽
249 211-2 +2 24.01.03 33 0 20쪽
248 211 +2 24.01.03 64 0 43쪽
247 210 +2 23.12.03 103 0 45쪽
246 209 +2 23.12.03 38 0 41쪽
245 208 +2 23.11.11 44 0 55쪽
244 207 +2 23.10.29 69 0 42쪽
243 206 +2 23.10.21 49 0 50쪽
242 205-2 +2 23.10.11 60 0 21쪽
241 205 +2 23.10.11 69 0 37쪽
240 204 +2 23.09.30 67 0 40쪽
239 203 +2 23.09.14 61 0 39쪽
238 202 +2 23.09.14 92 0 36쪽
237 201-2 +2 23.09.02 66 0 18쪽
236 201 +2 23.09.02 71 0 35쪽
235 200 +2 23.08.22 86 0 47쪽
234 199 +2 23.08.14 72 0 42쪽
233 198 +2 23.08.04 85 1 39쪽
232 197 +2 23.07.27 79 0 42쪽
231 196-2 +2 23.07.19 51 0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