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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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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3.2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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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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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쪽

152

DUMMY

베르그를 필두로 한 제국의 일원들과 공국의 공녀, 소베르비아 루 몬테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진형 간에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흐른다.


그리고 마지막, 자유 진형의 이스피리아.


물론 덤이다. 말이 좋아 자유 진형이지 그냥 깍두기나 다름없다. 감히 끼어들긴커녕 델리안과 눈인사를 한 다음에는 제발 불똥이 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런 간절함과 함께 마침내 대화가 시작됐다.


서두를 끊은 건 루비아였다.


그녀는 조금 차가운 눈으로 로즈린느를 한 번 보고는 곧장 베르그에게 물었다.



“그럼 아까의―― 귀국의 어린 황손이 떠들던 이야기를 마저 듣고 싶습니다만?”

“어리지 않습니다! 저는 벌써 5살. 한 사람의 몫을 하는 어엿한 황녀입니다!”

“쉿. 잠시 가만히 있거라, 로즈린느.”

“그, 그치만······”


대단하다. 저 루비아의 눈초리를 보고도 감히 바락바락 대들 수 있다니. 될성부른 묘목이다. 앞으로의 성장이 가히 두렵다.


하지만 베르그는 조카의 성장이 너무 이르다고 여겼는지 황급히 손을 내밀어 말을 끊어냈다.



“로즈린느, 더 이상의 무례는 용납하지 않는다. 내가 한 말을 잊은 게냐?”

“뭐, 뭘 말이죠?”

“후우······ 공주님 말이다. 저분은 루 몬테르 공국의 공녀. 네가 한 행동은 제국의 위신을 어지럽히는 짓이었다.”


황자도 있는 이 자리에 무작정 끼어들었을 때부터 루비아가 범상치 않은 신분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 그러나 아무래도 로즈린느가 알아차리기엔 조금 힘들었나 보다.


뒤늦게 사태를 인지하게 된 로즈린느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벌떡 일어났다.



“겨, 결례를 범했습니다.”

“흠. 뭐, 좋아요. 사과는 받아들이겠어요.”


과연 루비아. 저번 수도 외각 끝자락의 교회에서도 그랬지만 의외로 아이들에게는 상냥하고 무르다.


안심하고 있자니 로즈린느도 루비아의 분위기가 손바닥 뒤집듯 바뀐 것을 알고는 숙인 머리를 들고는 작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좋은 흐름이다. 이대로 서로 사이좋게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뭣 때문에 루비아 씨의 기분이 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걱정할 건 없다는 판단을 한 리아는 그렇게 저 홀로 느긋이 차와 다과를 즐겼다.


전생에서 노인이었던지라 홀로 가지는 티타임었음에도 전혀 사양이 없었다. 되려 적당히 이야깃거리도 오가는 게 좋은 안주가 되어 더욱 깊게 빠져들었다.


다툼 같은 건 없으리라. 루비아의 기분은 벌써 풀렸기에. 아마 평소처럼 엄청난 눈치로 무언가의 오해였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 예상처럼 두 진영의 대화는 처음 긴장감이 무색하게 느긋하고 평온하게 진행되었다.


분명 그러하였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너무 평온하게 흘러만 갔다.



“소베르비아 공주님! 관습이라든가, 전례를 무시하는 건 주지하고 있으나, 저는 꼭 이스피리아 님을 제국으로 데려가고 싶습니다!”

“흐음. 억지는 좋지 않습니다. 최종 결정은 리아에게 있는 거여요.”

“당연히 억지로 붙들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모두가 불행해지는 길이에요!”

“호······ 그럼 어찌 제국으로 데려가려 하시는 건가요?”

“제국이 어떤 곳인지 모르면 거주할 마음도 안 생기잖아요. 그러니 우리 제국을 보여주어 제국만의 매력을 느껴주셨으면 해요.”

“저―― 우리 공국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군요.”

“네. 서로 공평하게요!”


당돌한 로즈린느의 기개에 레스와 헤라드가 당혹스러워하고, 베르그는 대신 사과의 말을 올리려는 듯 입을 열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전에 루비아의 고개가 시원스럽게 상하로 움직였다.



“좋아요. 단, 몇 가지 조건이 있어요. 이를 받아들이신다면 저도 군말하지 않도록 하죠. 어떠하신가요?”


우려와는 달리 너무나 호의적인 이야기에 모두가 띵한 사이, 제안받은 로즈린느만이 밝은 미소를 보였다.











이상하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이세계에서 온 용사. 그 용사인 거다. 소위 치트라 불리는 능력을 지녀 온갖 모험을 통해 명성을 쌓고 하렘을 이룩하여 유유자적 생활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올바르다. 적어도 지구에서 보아온 여러 소설과 만화 속에서는 그러하였다.


물론 자신은 공상과 현실을 구분도 못 하는 머저리가 아니다.


그렇지만 실제 이세계 소환이라는 사건에 휘말렸다 보니 소설의 내용을 아주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긴 힘들었다. 굳이 자신이 아니라 하더라도 소설과 같은 내용을 기대하는 건 무리가 아니리라.


덕택에 앞으로의 생활이 상당히 기대되기도 했었다.


그러한데······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모험은커녕 도시 밖을 벗어난 적조차도 없다. 오히려 핸드폰이 없는 허전함이나, 인터넷을 할 수 없는 환경에 지루함만이 늘어갔다.


마법이 있다는 사실에 들뜨기도 했지만, 자신은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자 곧바로 시들해졌다.


여러 삽질 끝에 유일하게 검에 적성이 넘친다는 사실을 알긴 했다. 그렇지만 솔직히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마법이 없었다면 모를까, 기껏 마법이 멀쩡히 존재하는 세계에서의 검이란 그리 설렐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나마 마력이 있어 비약적으로 높아진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만화 같은 몸놀림을 취할 수 있는 건 좋았지만······ 그것도 막상 해보니 힘들어서 의욕만이 떨어질 뿐이다.



“레벨이 쭉쭉 오르는 것도 아니고. 만화에서는 스텟 보정이니, 경험치 획득률 상승 같은 치트가 줄줄이 달려있는데 말이야. 근데 언어와 검술만 주다니······ 완전 망겜이네.”


베르다드에 오고 나선 혹여 자신의 능력치나 칭호, 잠재 능력 같은 걸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세계에 온다면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는 ‘스테이터스 오픈’을 외쳐보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수치심만이 전부로, 기묘한 놈을 보는 듯했던 리카드의 눈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상태 창이라던가 하는 건 나타나지 않았다.


다양한 방법으로 알고 있는 모든 걸 외쳐서 확인한 것이니 확실하다. 이세계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는 것이다.


거기서부터는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심 마법기사가 되어 무쌍을 찍는 상상을 버릴 수 없었는데, 그 실낱같은 희망도 허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이세계물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학원으로의 입학만큼은 나름 설레기는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여전히 마법을 쓸 방법은 찾질 못한데다가, 눈에 띄는 활약상을 통해 용사로서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지도 못하였다. 만화와는 완전 다른 처지이다.


대신 그 자리는 한낱 엑스트라에 불과한 꼬맹이가 차지해버렸다. 주제 파악도 하지 못하고 발칙하게 말이다.


거기에다가 여기 교수들도 마음에 들진 않았다.


주인공답게 이곳 수준의 미천함을 알고 2학기의 수업은 이전 초급에서 몇 단계를 건너뛴, 검술 최상급반의 수강을 호기롭게 신청했건만, 투기술이나 제대로 연습하라면서 퇴짜를 놓아버리다니.


몸소 찾아갔는데 저따위의 대답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주 건방지게도. 눈이 썩어도 저리 썩을 수 있나 싶었다.



“여기 와서 좋은 건 여자들 뿐인가······”


그건 확실히 좋았다. 다들 지구에서는 만나보기 힘든 레벨들인지라 눈요깃거리로는 질릴 틈이 없었다. ······남자까지도 높은 건 그다지 반갑진 않지만.


그러나 이쁘다고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는 정조 관념.


지구의 중세와 비슷한 문명 수준으로 보이건만, 정조 관념만큼은 조선 시대를 따르는 것인지 철벽도 이런 철벽이 없다. 하하, 호호, 즐겁게 떠들기만 할 뿐, 그러한 분위기로는 절대 넘어가질 않는다.


학원 내이기 때문이란 것도 있겠지만 그 정도가 상상 이상이다. 듣기로는 어지간한 직위의 아이라면 약혼자도 있다는 듯하고.


최근 들어서는 왠지 발걸음도 뜸한 기분까지도 들었다.



“지금 와서 든 생각이지만 다들 어느 정도 신분이 있어서 더 그런 거 같기도 하네. 뭐······ 워낙 어린 꼬마들이라 별로 관심도 없지만. 하지만······ 그렇다는 건 밖은 좀 다를지도 모른다는 소리 아냐?”


솔직히 사창가라든가 호기심이 생기긴 한다. 미녀가 즐비한 세계이니 더욱.


그렇지만 자신은 용사. 그러한 자가 그런 곳을 어슬렁거린다는 소문이 퍼진다는 건 치욕이다.


자신이 생각하더라도 그건 좀 아니다. 아쉽지만 접어둘 수밖에.



“그런데 이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돼 먹은 거야? 겉보기엔 중세인 주제에 문명 자체는 근대와도 닮은 점이 많지 않아?”


몇몇 부분에서는 오히려 지구보다도 뛰어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마법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상상하던 것과는 너무 달라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특히 생활마법은 기초라는 말이 무색하게 물과 불을 만들어 내는 데다, 온갖 더러움도 손쉽게 씻어내릴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전공 지식을 활용해 병의 예방을 위한 조언조차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일반 서민들을 비롯하여 모든 인간이 한순간에 몸을 씻을 수 있는데 필요나 하겠는가. 어이없게도 모든 병을 치료한다는 [정화]도 있다는데. 그야말로 허황한 꿈이다.


덕분에 소설의 단골 주제인 비누를 만들어 이세계에 보급한다는 계획도 자동으로 무용지물로 돌아갔다.


물론 비누는 여러 향기를 첨가하여 고급품으로 만들어도 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사치품이다.


살 수 있는 사람은 상당한 재력가라는 소리인데, 그런 인간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물건이 어디 뚝딱 만들어지겠는가. 꼭 필요한 물품이 아닌지라 평가의 기준이 엄격할 텐데.


그딴 일이 가능하다면 그건 만화에서나 가능할 일일 것이다. 실제로는 비누를 만드는 데에만 허송세월 시간을 보낼 거다. 벌써 시도해보았기에 절대 녹록지 않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비슷한 게 이미 존재했다.


그렇다. 이 세계는 소설처럼 문명이 미개하거나, 주인공을 띄워주기 위해 모두가 바보, 멍청이란 설정 따윈 전혀 없는 것이다.


심한 만화에서는 단순 산수도 못 하여 나누기에도 쩔쩔매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곳에 있는 놈들은 아니었다. 모두 머리가 비상하여 4자리의 곱셈을 암산으로 1초도 안 되어서 풀어낸다.


학원 학생이라면 모를까, 딱 보기에도 허름해 보이는 일반 서민이 말이다.


믿기지 않아 둘러본 무기점이나 방어구점, 마도구점, 심지어는 길가를 지나다니는 꼬마에게까지도 물어보았으나 변함없었다. 겨우 막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의 아이였음에도 3자리 곱셈 정도는 어렵지 않게 풀어냈다.


그러한 놈들이 득실대는 것이다. 정교함의 차이는 있겠지만 정말 어지간한 물건은 다 있을 거다.



“또 하나의 단골 소재인 오셀로도 어림도 없었지.”


처음 들려주었던 리카드는 이런 게 재밌냐며 어처구니없어했고, 후에 달라붙는 영애들에게 제안해 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한두 살 아이들의 놀이용으로는 훌륭하다는, 누가 보더라도 입에 발린 소리를 할 뿐이었다.


내심 기대하던 것은 무참히 깨지고, 다음 날 영애들이 들고 온 것은 체스와 고류 장기가 섞인―― 꽤 머리를 써야 하는 보드게임이었다.


자신은 말끼리 쌓기도 하는 룰을 따라가기도 벅찼는데, 그녀들이 말해주기로는 국민 게임으로 귀족, 서민 가릴 것 없이 모두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인기도 대단하여 여러 규모의 대회도 종종 개최된다고도 했다.


이런 복잡한 게임을 즐기는 놈들인 거다. 오셀로같이―― 일정 패턴만 기억해두면 필승도 가능한 쉬운 게임이 재밌을 리도 없다. 리카드의 반응도 이해가 간다.


그 외에도 갖가지 이세계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해보았으나 전부 결과는 변변치 않았다.



“이 방에 왔을 때 먼저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괜히 시간만 버렸어.”


공기청정기처럼 방의 공기를 순환하는 시키는 것도 모자라, 일정 온도 유지해주며 은은한 향기도 내는 에어컨. 사람이 오면 자동으로 감지해 빛을 내는 마도구 등등 최첨단이다.


문명의 수준이 그리 뒤처지지 않았다는 건 일목요연했다. 솔직하게 말해 지구에 있던 자신의 방보다도 훨씬 쾌적하다.


이곳에 없는 거라고는 찬란한 인류 문명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와 핸드폰 등의 고부가 전기제품뿐일 거다.


하지만 그런 걸 어찌 만들 수 있겠는가. 나노 단위의 부품―― 반도체가 들어가는데 말이다. 개발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지구에서 떵떵거리면서 살았을 거다.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족족 의미가 없음에 침대에 드러누워 있던 아서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동 수단의 구현도 글러 먹었지.”


인류 문명을 확장하게 한 탈것의 존재.


비행기까지는 무리더라도 최소한 기차나 자동차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름대로 기술의 수준이 높았으니까. 자신은 그저 제안만 하여 인센티브만을 챙기더라도 그럭저럭 수익이 날 거라고 봤다.


하지만 이 세계는 도대체 어찌 생겨 먹은 것인지. 평범한 일반 말이 최소 140km 이상의 속도를 낸다. 상당량의 무게를 실은 짐마차를 끌어도 70km 정도의 속력을 냈다.


한 필의 말이.


더군다나 기마의 종류는 한 가지가 아니었다. 판타지 세상답게 랩터처럼 생긴 공룡이나 뭔지 모를 덩치의 도마뱀, 또 커다란 덩치의 개와 늑대, 하물며 거대 타조 같은 생물 등등 다양했다.


그것들의 속도는 빠르면 250km에 육박한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최초의 증기기관차는 평균 20km의 속력에 불과했다.


이후 성능의 향상이 있어 최대 160km 근처까지 가긴 했지만, 이곳의 기마들보단 느리다. 개발한다면 최소 초고속 열차 수준은 되어야 이점이 생길 것이다.


자동차는······ 포뮬러 수준엔 도달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이곳 기마들은 빨리 지치는 것도 아니어서 능히 5일은 최고 속력으로 계속 달릴 수 있는 미친 성능을 자랑했다. 회복조차도 한 서너 시간이면 족해서 바로 다시 5일간은 쭉 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연비가 가장 정신이 나갔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성인이 일 일 먹는 양만으로 5일을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어냈다. 어느 덩치이고 간에 큰 차이 없이······


지금 생각해봐도 헛웃음이 나오는 연비다.



“그나마 물량의 적재만큼은 기차가 확실히 더 뛰어날 테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건 또 달랐지.”


우선 초기 자금.


선로를 깔 부지의 확보 및 기차의 개발에는 들어갈 돈이 막대하다. 완성됐다 한들 유지 비용을 충당하는 점도 고려해야만 했다.


게다가 기껏 만든 기차 노선을 적들에게 노획당하는 것에 따른 위험성 등, 소설에서도 자주 나오던 문제점을 이 나라의 임금님은 제안을 듣자마자 바로 지적하였다.


개인적으로는 그따위의 것들은 완공만 된다면 이후 얻을 이점에 비하면 사소해 보였지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재상이 바로 꺾어버렸다.


재상은 툴툴거리는 자신을 이끌고 가서 보여줬던 거다.


이곳의 상단이 어떠한지를.


수도의 성벽에 서서 들어오는 상단을 봤을 땐 얼마나 놀랐는지.


군대의 행군 때나 보았던 끝없이 이어지던 행렬. 아무리 못해도 170km는 될 법한 속도로 이동하던 상단의 모습은 다시금 떠올려봐도 장관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대차게 착각하고 있던 거다. 이곳의 물류는 현대 지구까지는 아니더라도 근대 지구에는 다다른 것이다.


연비에 따른 물류량을 계산해보면 아마 현대의 지구마저도 넘지 않았을까······.


인구수 대비 물류의 운송량은 차고 넘치겠지.


그러하니 안정성이나 자금이 드는 철도의 개발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굳이 지금의 형태를 바꿀 정도의 가치는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망겜도 이런 망겜이 또 없겠지. 하드코어 모드잖아. 뭐 이딴 세계에 떨어진 거람. 교회는 성검도 들고 오지 않고. 마법을 쓸 수 있다면 그냥 혼자서라도 분발했을 테지만······. 하아······ 만화에서는 부하들에게 이런 걸 던져놓으면 알아서 척척 만들어서 승승장구하던데 말이야. ――응? 잠깐. 부하?”


갑자기 든 생각에 아서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래, 부하야! 만화에서도 그러잖아, 첫 여행에서 ‘우연찮게’ 구한 사람이 공주님이든가 해서 든든한 뒷배가 생기잖아? 그걸 시작으로 부하들도 줄줄이 생겨나고. 그래! 그거야!”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의 나이스한 아이디어다.


왜 이걸 이제야 깨달은 걸까. 마침 제국에서 온 황자와 황녀도 있었다. 하늘이 자신을 돕는 기분마저 든다.


희희낙락한 아서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출발하려 했다.



“어이~! 페네리로! 나갈 거야!”


부르는 말에 부엌에 있던 페네리로는 바로 다가와 고개를 조아렸다.



“행선지는 어디입니까?”

“제국의 황자랑 황녀가 왔다잖아. 거기로 갈 거야.”

“······.”

“아아! 그 꼬맹이한테 가는 것도 아니잖아. 괜한 소리 할 생각 말고 얼른 준비나 해!”

“······알겠습니다.”


최근엔 별 탈 없이 얌전히 있었다. 페네리로도 그 점을 고려했는지 미덥지 않은 눈치였지만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갔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니 페네리로가 나왔다.



“왜 이렇게 굼뜬 거야? 빨리 가자.”

“그전에. 아서 님, 이걸.”

“또 뭔데?”


짜증스럽게 뒤를 돌아보니 페네리로는 무언가를 건네왔다.



“슬슬 더운데 웬 카디건이야?”

“지금은 환절기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감기에 걸리기 쉽습니다. 몸이 차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니, 덥다니까―― 에휴. 됐다.”


여기서 페네리로랑 투덕거리는 시간이 아깝다. 회색빛의 무난한 디자인의 카디건을 낚아채듯 뺏고는 대충 걸쳐 입었다.



“단추도 채우셔야지요.”

“내가 무슨 어린애냐? 그런 걸 일일이――”


됐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페네리로는 말릴 틈도 없이 앞으로 돌아와 빠르게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


뿌리치려고도 했으나 페네리로는 기어코 단추를 채우려 할 터. 성가실 테니 그냥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뒀다.


‘그건 그렇고 정말 묘하게 현대 지구와 비슷한 부분이 많네. 디자인이라든가 감촉도 나쁘지 않고. 귀족들의 정장이라든가 드레스는 묘하게 과한 판타지풍이면서.’


세계관이 짬뽕 됐다며 투덜거린 아서는 모든 단추를 채우자마자 바로 움직였다.



“이제 됐지? 빨리 가기나 하자.”

“예. 안내하겠습니다.”


열어주는 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아서는 앞장서는 페네리로를 따라 복도를 나아갔다. 그러다 코너를 돈 건너편―― 그 짜증 나는 꼬맹이, 이스피리아의 방을 째려보고는 서쪽 기숙사를 나왔다.



“뭐야, 황자들은 이쪽 기숙사에 있는 게 아니었어?”

“아닙니다. 그분들께선 멀지 않은 곳에 마련된 귀빈관에 머물고 계십니다.”

“그런 곳이 있었어?”


나름 돌아다녀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장소는 듣질 못했었다. 조금은 호기심을 품고 페네리로의 뒤를 따랐다.


귀빈관은 여러 건물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멀지 않은 곳이라는 것과는 달리 15분쯤을 걸어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베르다드의 부지도 그렇지만 정말 더럽게 넓다. 하지만 아무도 넓다는 소릴 하지 않으니 이곳 사람들의 감각이 이상하다고 여겨야 할 것이다.


속으로 그런 불만을 토로하면서 아서는 건물의 전경을 살펴보았다.


꽤 멀리 다른 건물과는 거리를 둔 탓에 처음 보지만 이래저래 유럽에 온 듯한 외관은 화려한 것이 훌륭하다. 귀빈관이라 불리는 값은 한다.



“내부도 외관 정도는 하려나?”


그런 말을 하며 귀빈관으로 들어섰다.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인물은 상위 계층으로 한정되어있다. 애당초 견학 자체가 쉽게 허가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니까. 하지만 높으신 양반들은 어지간한 사치가 아닌 한 만족하지 못할 거다. 그게 일상이니.


그러한 수요에 충족해주려는 듯 들어서자마자 값비싸 보이는 커다란 샹들리에가 반겨주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 이를 필두로 여기저기 치장에 상당한 공을 기울인 게 느껴진다.


이 넓이를 모두 이런 식으로 치장했다면 얼마나 돈이 들었을까.


큐빅 같은 가짜 보석을 사용하진 않았을 테니 가볍게 서울의 건물 한 채 값 이상은 할 거란 짐작만이 가능했다.



“내가 쓰는 방도 그렇지만 징그럽게 사치스럽네. 아니면 이게 평균인 건가?”

“그렇진 않습니다.”

“나도 알아. 그냥 한 말이었어. 일일이 대꾸하지 않아도 되니까 어서 안내하기나 해.”

“알겠습니다.”


잠시 멈췄던 발걸음을 움직여 페네리로는 막힘없이 쭉쭉 나아갔다.


‘이러나저러나 얜 꽤 유능하네. 언제 방을 또 알아뒀다냐.’


그렇게 살짝 감탄하며 페네리로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귀빈관은 총 2층으로 구성되어있었는데, 동시에 여러 방문자를 수용하는 것도 고려해놨는지 커다란 구획으로 나뉜 각각의 방이 존재하였다.


개수는 전부 6개. 층마다 3개씩이었다.


그중에서 페네리로는 1층의 오른쪽 끝자락으로 안내했다.



“이 정도라면 어림잡아도 200평은 될 거 같은데······ 실제 내부는 더 넓다 치면 한 300평 가까이인가? 여긴 진짜 땅덩어리를 넓게 넓게 쓰네.”

“아서 님?”

“아아. 있나 확인해줘.”


아서는 둘러보던 것을 멈추고 집중했다.


똑똑.


살며시 울리는 노크 소리.



“······.”


잠잠했다.


못 들었을 경우도 있으니 페네리로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아까보다도 더 크게 울리는 노크 소리.


이번에도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잘못 온 거 아니야?”

“아닙니다. 어디에 머무르시는지 확실하게 조사해두었습니다.”

“틀렸을 수도 있잖아.”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국은 아서 님께 관심을 보였던 곳. 위로 올라가기 위한 디딤돌이 어디에 있는지 소홀히 살피진 않았습니다.”

“오······ 너도 제법 눈치가 생겼데?”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없는 거야?”

“······다시 방문을 알려보겠습니다.”


무표정인 채였지만 페네리로는 다급한 낌새를 풍기며 재차 문을 두드렸다.


그렇지만 여전히 변함은 없었다. 여러 차례 반복되는 노크에도 불구하고 안에서는 어떠한 기척도 존재하지 않았다.


안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조금은 다시 보게 되었는데.


굉장한 실망감으로 아서는 떨떠름하게 쳐다봤다.


기색을 느꼈는지 드물게 당황한 티를 낸 페네리로는 재차 문을 두드렸으나······ 사람이 나올 일은 없었다.



“하아. 됐어. 리카드에게 물어보러나――”

“――응? 자네들은?”


말을 끊고 갑자기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젊은 남성의 목소리였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음성에 아서는 목소리가 난 방향―― 귀빈관의 입구 쪽을 보았다.


거기엔 인디아와 그의 일행들이 있었는데, 아마 밖으로 나가려다가 이쪽을 발견하고는 말을 걸었으리라 추측된다.


다만······ 즉시 혀를 차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마침 잘 됐군.”


도움의 손길이 제 발로 걸어왔다.


바로 인디아들에게로 향했다. 쓸모없던 페네리로도 황급히 뒤에 따라붙었다.



“오랜만이야, 주교님. 학원에 있는데도 보기가 힘들어.”

“뭐어······ 그렇군.”


이 인디아 라는 꼬맹이도 참 기묘하다. 자신보다도 5살은 어려 보이는 외모로 주교라니. 그래서 반말하지만, 그 직급 때문에 매번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세인트리안은 종교 국가라고 들어 딱딱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의외로 신앙심이나 실력을 위주로 평가하는가 봐?’


그렇게 짧은 대화를 마친 아서는 곧장······ 뒤에 있는 여성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니, 실은 인디아에게 말을 걸면서도 슬쩍 훔쳐보고 있었다. 뒤에 멀대 같은 남자 둘이 더 있긴 했지만 같은 선상에 있음에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래의 목적도 잃고 밝히는 놈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다.


남자라면―― 특정 소수를 제외한다면 모두가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녀에게 시선을 주고 있을 것이다.


――저렇게나 이쁘다면 말이다.


다른 수식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보랏빛의 머리카락과 음침한 듯하면서도 원래의 얌전한 성격 탓인지 움츠러드는 모습은 그 외모와 더불어 엄청난 보호욕과 소유욕을 동시에 자아냈다.


쉽게 말해 미녀들이 많은 이곳에서 더욱 눈에 띄는 외모다.


이러한 여자를 앞에 두고 남정내와―― 그것도 미소년과 떠들고 앉아있는 건 언어도단. 사타구니에 있는 그것을 떼야 할 것이다. 특히 신관복 위로도 알 수 있을 정도의 고혹적인 저 몸매는 너무나도 발칙하다.


‘신관인 주제에 말이야.’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성스러워야 할 그것과는 동떨어진 성적 매력. 이 둘의 언밸런스함에 묘한 감정이 든 아서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리블리지도 오랜만.”

“예······ 안녕하십니까, 용사 공.”

“용사 공이라니. 너무 딱딱하게 굴지 않아도 돼. 편하게 아서라고 불러줘.”

“모처럼의 권유는 감사하오나, 함부로 남성에게 친근히 굴 수는 없는지라······”

“성직자로서의 관념 같은 건가. 아쉽네. 아! 그럼 시간이 나면 내 방으로 놀러 올래? 요즘 들어 심심하던 차인데.”

“――아서 님.”

“알고 있어.”


눈치를 주는 페네리로에게 한껏 짜증을 낸 아서는 본론인 제국의 황자들이 어디로 갔는지를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전에――


짧지만 강렬한 무언가가 몸 전체를 휩쓸고 지나갔다.


부르르.


의사를 무시하고 온몸이 떨린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입은커녕 옴짝달싹할 수도 없다. 거기에 딱딱거리는 소리가 더럽게 신경에 거슬린다.


그러한 알 수 없는 현상에 혼란할 때였다. 짧게 “호오······”라고 중얼거린 인디아의 말과 함께 갑자기 몸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왜 그런가? 휘청거리고 있지 않나.”

“어······ 크윽. 아, 아니, 잠깐 어지러워졌나 봐.”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한 아서는 그제야 딱딱거리는 소리의 출처를 알게 됐다.


이 소리는 본인의 이가 부딪히며 만들어 낸 것이라는 걸.



“흠.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면 의무실에 들르게. 내가 [치유]를 써줘도 되겠지만 혹여 안 좋은 병일 수도 있지 않겠나.”

“아, 응. 고마워.”

“후후. 뭘 그런 걸로. 도리어 감사를 받는다는 게 웃긴 일이지.”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인디아는 보기와 달리 꽤 어른스럽다.


그렇지만 행동거지가 어떻든 꼬맹이는 꼬맹이다. 게다가 리블리지도 있다. 낑낑거리는 꼴사나운 모습 따윈 보일 수 없기에 몸 상태를 점검하는 척 굳은 근육을 풀어냈다.


잠시 그렇게 몸을 푼 아서는 잠자코 기다려 준 인디아에게 물었다.



“저기 말이야. 물어볼 게 있는데, 제국에서 왔다는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

“아하~ 그러고 보니 그들의 방 앞에 있었지. 볼 일이 있었던 건가.”


페네리로가 잘못 안 줄 알았지만 제대로 찾아오긴 한 모양이다. 마침 떠올랐다는 듯한 인디아는 아니꼽지만 도움은 되리라.


그러나 뒤이어 나온 인디아의 말은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잔뜩 부풀었던 기대감은 단숨에 박살이 났다.



“주교님, 아까 건 지나치셨어요.”

“윽. 그, 그렇지만······.”


저벅저벅.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리블리지와 인디아의 대화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하지만 너무 큰 충격을 받았던 아서는 멍하니 서서 귀빈관을 나서는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내가 아니라 그 녀석들과······”


한동안 넋이 나가 있던 아서는 살며시 자신을 부르는 페네리로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서 님······”

“됐어. 기분 잡쳤으니까 돌아갈래.”

“예.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한마디의 대화도 없이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드러누웠다.


조용하다······


페네리로도 자신의 방에 돌아가고, 열어둔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학생들의 화기애애 떠드는 소리만이 전부인 방안에서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을 무료하게 시간을 보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불금인데 방에 짱박혀 있긴 좀 그러네.”


더군다나 그 빌어먹을 꼬맹이 때문에 이 귀중한 날을 그냥 보낸다는 게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 재수 없는 건 다 잊고 놀면 되잖아?”


예쁜 여자애들이랑 놀다 보면 다 풀어지겠지.


고민은 짧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아서는 곧장 사용인의 방, 페네리로에게로 향했다.



“야! 페네리로······”


벌컥 문을 열자 보이는 건 페네리로가 무언가―― 아마 과자로 보이는 걸 먹는 광경.


드문 상황에 쳐다만 보자 페네리로는 황급히 서랍에 쑤셔 넣듯 접시째로 과자를 넣어버렸다. 조금 놀란 듯도 한데, 아무리 정신이 없다지만 함께 있던 차까지 넣어버리는 얼빵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리를 정리한 페네리로는 빠르게 다가와 머리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아니, 괜찮은데······ 그냥 나와서 먹지 그랬냐. 그리고 배고프면 말을 하라니까. 식사 좀 일찍 한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배려는 정말 마음속 깊이 감사드리지만, 사용인으로서――”

“――차질 없이 준비하는 것도 역할이라는 거지? 지겹도록 들었어. 됐으니까 다음번에는 꼭 말해두라고. 식당에 가는 게 뭐 어렵다고 말을 안 듣는 거야? ――아니, 주인의 명을 따르는 것도 사용인의 일 아냐? 쫑알거리지 말고 시키는 대로 좀 해라.”

“예······ 죄송합니다.”

“뭘 또 사과까지 하고 그러냐.”


조금 무안했던 아서는 까칠하게 말하고는 과자를 넣어놨던 서랍을 열었는데······


어쩐지 페네리로가 미소 짓고 있었던 거 같았다.


깜짝 놀란 아서는 빠르게 돌아보았으나, 거기에 있는 건 평소와 다름없는 페네리로가 전부였다. 무표정의 차가운 인형 말이다.


‘쯧. 그럴 리가 없지. 뭔가 요즘 들어 계속 착각하는 기분이지만.’


지난번과 마찬가지라고 넘긴 아서는 열어둔 서랍의 안을 보았다.


서랍 안은 생각 없이 막 집어넣은 탓인지 산개한 과자 부스러기들로 엉망진창이다. 다행히 반짇고리와 화장품 같은 뭔가의 병 등, 들어있는 물건이 적긴 하다. 그러나 청소기도 없는 이곳에선 치우려면 꽤 번거로울 거 같다.



“아니다. 마법으로 어떻게든 하려나?”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해. 먹던 중이었잖아.”


그리 말한 아서는 접시를 들고 방을 나와 거실에 있는 테이블에 놨다.



“자, 너도 여기 앉아서 먹어. 혼자 꿍쳐둬서 먹지 말고.”

“알겠습니다.”


뒤를 따라왔던 페네리로는 대답과 함께 다시 몸을 돌리고는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뭘 하나 싶었는데 방에서 나온 페네리로의 손엔 컵이 들려있었다. 아까 마시던 차이니라. 철두철미하게도 제대로 휴식 시간을 가지려는 모양이다.


내심 황당하게 보던 아서는 조심스럽게 옆에 앉는 페네리로를 무시하고 먼저 과자를 먹어봤다.



“윽?! 뭐야 이거?! 더럽게 맛없잖아! 딱딱하기도 하고. 설탕은 들어가 있긴 한 거야?”

“거의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단순히 영양분을 채우는 데 우선한 것으로, 맛에 대한 건 그리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왜?! 설탕은 별로 비싸지도 않다며?”


그랬었다. 설탕을 비롯하여 온갖 종류의 향식료가 싸게 널리 공급되어 있다. 듣기만 했을 뿐이지만 절대 서민이라고 구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덕분에 만화처럼 요리 혁명을 일구어내어 떵떵거리는 것도 무참히 좌절되었건만 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설명이 짧았습니다. 이 과자는 설탕조차 구할 수 없는 빈민들이 살림을 털어 만드는 그러한 것입니다.”

“흠······ 여기도 그런 사람들은 있구나. 근데 돈이 없는데 이런 거에 써도 되는 거야? 차리리 밥을 먹는 게 낫지 않아?”

“예. 최소한의 영양분을 챙기긴 했지만 엄연한 기호품. 기왕이면 제대로 된 요리를 먹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런데 왜?”

“저도 잘은 모르지만 아마 아이들을 위해서일 겁니다. 과자를 먹는 기분이라도 내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 그런 거야? 뭐, 대충 알겠어. 그래서 넌 왜 이런 걸 먹는데? 공작님의 집사람이니 어느 정도 사치를 부릴 돈 정도는 받을 거 아냐?”


절약이라도 하려는 건가, 아니면 보기보다 여유로울 정도의 급여는 아닌 것인가.


잔뜩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보니 페네리로는 드물게 말을 흐렸다.



“말하기 싫으면 됐어. 그보다 넌 이게 맛있냐?”

“솔직히······ 별로 즐길 맛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이게 맛있다면 그놈은 분명 미각이 이상한 녀석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 건 조금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냐? 평소엔 도대체 얼마나 맛없길래. 어쨌든 다 먹고 나면 나갈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네리로의 말을 들으며 아서는 한가로이 앉아 잠자코 시간을 죽였다. 하지만 그 머릿속은 작금의 사태―― 자신을 내버려 두고 나간 제국의 황자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왜 하필 그 망할 꼬마랑······’


작가의말

용사의 하드코어 모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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