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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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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4.10 19:10
연재수 :
2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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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9,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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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6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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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150

DUMMY

“어서 오세요, 리아 양.”

“네. 안녕하세요, 부 학원장님. 오늘은 계셨네요.”

“다행히 일찍 끝났습니다.”


환대해주는 세리오를 지나 일과로서 찾아온 학원장실에 리아는 발을 들였다.


이전 온갖 서류들로 난잡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실내는 깔끔했다. 하려면 할 수 있었던 그곳에서 리아는 비어있는 집무실 책상을 봤다.


아마 평소대로 일과 중인가 보다.


약속까지 시간은 남았으니 기다리기로 한 리아는 응접용 소파에 앉았다. 물론 소파에 잔뜩 쌓아져 있던 서류도 몽땅 치웠는지 깔끔한 상태다.


요즘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진 세리오도 맞은편에 앉고, 잠시 같이 티타임을 가지며 시간을 보냈다.


조금은 어색함이 남아있었던 그녀와의 사이는 최근 급격히 줄어들어 서로 편하게 안부를 주고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애칭 또한 허락해주어 편히 리아라 부르게 됐다.


그렇게 한동안 화기애애 떠들고 있으니 한쪽 구석에 있던 연구실의 문이 열렸다.



“응? 리아 양? 일찍 오셨군요.”

“그게······ 오늘은 조금 내키지 않아서 모임은 쉬었어요.”

“그러신가요?”


대충 짐작되었는지 리카드는 기분 좋게 웃으며 곧장 세리오의 옆에 앉았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훈련은 잘됐나요?”

“예. 오늘의 분량을 끝내고도 시간이 남아 잠시 연구도 진행했습니다.”

“근데 용케 시간에 맞춰 나오셨네요.”

“슬슬 시간 정도는 맞춰야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후후. 세리오 씨께 잔뜩 혼날 테고요.”

“누가 들으면 제가 잔소리꾼인지 알겠어요.”

“하하. 죄송합니다.”


‘응??’


자신은 내버려 두고 사이좋게 떠드는 둘.


뭔가 사이가 좋다. 볼 때마다 더욱.


알콩달콩 쌉싸름하달까. 볼을 부풀린 세리오와 손사랫짓하는 리카드, 이 둘에게 끼어들 틈 같은 건 보이질 않는다.



“저······ 두 분, 무슨 일 있으셨나요?”


언제까지고 놔둘 순 없어 조심스럽게 묻자 그제야 자신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나 보다. 둘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더니 화들짝 떨며 서로 거리를 살짝 벌렸다.



“어쩐지 거동이 수상하시네요.”

“아뇨······ 그게 말입니다.”


우물쭈물, 익숙한 반응을 보이던 리카드. 그러나 돌연 늠름하게 가슴을 피고는 진지한 시선을 보내온다.


갑작스러운 변모에 흠칫하고 있으니 리카드가 무거운 분위기로 말을 걸어왔다.



“실은 리아 양께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에게요?”

“예.”


고개를 끄덕이는 리카드의 옆에서 세리오가 덩달아 쑥스러워한다.


도대체 뭘까.


궁금해하는 리아의 귀에 당당히 외치는 리카드의 말이 들려왔다.



“세리오 씨와 약혼을 맺었습니다.”

“약혼······? 누가요?”

“접니다.”

“리카드 씨가 세리오 씨와 약혼을 맺었다라······. ――엥?! 자, 잠깐! 지, 진짜요?!”

“그렇습니다.”

“마, 말도 안 돼. 어, 언제 그렇게나 진도를!?”


명실상부 쭉정이 중의 쭉정이라 할 수 있는 그 리카드라고는 믿기지 않을 과감한 행동력이다.


어쩐지 사이가 좋아 보이더라니. 이래서 온갖 무게를 잡았던 것인가.


정말 믿기지 않는다.


에르 또한 꽤 의외였는지 드물게 감탄하는 시선으로 리카드를 보았다.


‘도, 도대체 뭐가 리카드 씨를 이렇게―― 아, 그건가? 으음. 다른 쪽의 경험이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이렇게나 바로······ 아니면 거기서 세리오 씨의 매력을 확인했었나?’


만약 그렇다면 조금 반칙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남녀의 관계는 역시 스스로 깨닫고 용기를 내는 게 좋아 보이거늘. 상당히 편법이 아닌가.


하지만 기뻐하는 세리오를 보니······ 반칙이든 뭐든 간에 괜찮지 않냐는 기분도 든다. 이전의 쭉정이 리카드였다면 호호 할머니가 된 다음에나 사랑이 이뤄졌을 테니.



“그나저나 나도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게 됐어.”

“예?”

“아뇨. 커닝은 나쁘다고요.”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서로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둘.


호흡이 딱딱 맞는 그 모습에 리아는 미소 지었다.



“혼인은 언제 하실 건가요?”

“정세가 안정되고 나면 할 예정입니다. 리아 양께는 팔찌도 그렇고, 여러모로 신세를 졌기에 우선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런가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마음 써줘서 고마워요. 그렇지만 세리오 씨를 너무 기다리시게 하면 안 돼요?”

“예. 불안하지 않게끔 최대한 서둘러야지요. 만약 식을 연다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나쁘지 않은 대답이다.


리아는 만족스럽게 깍지 끼고는 얼굴을 붉힌 둘을 한동안 따스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왠지 오늘의 차가 더욱 달달한 기분이다.



“자. 그럼, 원래는 나중에 보여드리려고 했지만, 경사이니 선물 겸 먼저 공개할게요.”


찻잔을 내려놓으며 리아는 옆자리에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에르는 미리 준비했던 물건을 [차원수납]에서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꺼낸 물건은 한 장의 종이로, 한눈에 보기에도 복잡한―― 비견 될만한 거라고는 [공간이동] 관련 술식 정도뿐인 복잡한 도형이 그려져 있었다.


이를 본 리카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꽤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리오도 상당히 놀라며 리카드 옆에 바짝 붙어 종이를 뚫어져라 보았다. 다만 그녀는 리카드와 달리 눈으로 보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슬쩍 마력을 움직여 술식을 그려보기도 하였다.


이윽고 결과가 났는지 세리오는 작게 탄성을 냈다.



“굉장히 정밀한 술식이네요. 잘은 모르겠지만······ 느껴지기로는 추출? ······아니다, 뭔가를 제거하는 건가요?”

“비슷해요. 심상마법에 상당히 익숙해지셨네요.”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쑥스러운 듯 세리오는 겸손을 떨었으나, 비슷하기는커녕 대충 알아볼 수나 있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싶은 것이었다. 저 술식은.


그런데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필시 리카드를 도우려 엄청난 연습을 했기 때문일 거다. 술식을 그리는 것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노력의 산물이지 않을까 싶다.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하구먼.’


분명 세리오는 좋은 아내가 되겠지.



“음음.”


참한 모습의 세리오를 그린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껏 의식하지 않으려 다른 생각들을 하였으나,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듯하다. 술식을 봤을 때부터 눈을 빛내는 리카드의 시선이 따갑게 박힌다.


조금이지만 괜히 경사라며 흥분한 게 후회됐다. 돌아가기 전에 줬다면 시간상 붙들릴 일도 없을 텐데.


하지만 이미 일은 벌였다. 되도록 짧길 바라며 리아는 입을 열었다.



“이거······ [정화]의 술식이에요.”

“네?! 저, 정화요?! 그 [정화] 말씀인가요?!”


[정화]에 대해선 아직 들은 바가 없었는지 세리오가 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리카드는······ 그녀와는 대조되게 침착했다.


‘웬일······이시지? 평소처럼 눈을 까뒤집을 줄 알았는데.’


예상밖에 반응에 도리어 당황한 리아는 차분하게 술식을 보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별로 안 놀라시네요.”

“응? 아아. 아닙니다. 매우 놀라고 있습니다. [정화]는 전설 속의 마법이니 말이죠. 그 실물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다만······”


살짝 주저하는 리카드.



“말씀하세요.”

“실례지만······ 혹여 미완성인 건 아닌지요?”


리아는 눈을 크게 떴다.



“굉장하시네요. 어떻게 아셨나요?”

“역시 그렇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 리카드는 제법 그립다는 듯이 알아낸 이유를 말하였다.



“술식들 중에서는 단순히 마력의 주입만으로는 발동시킬 수 없는 술식이 있지 않습니까? 그 술식들은 대부분이 지극히도 높은 수준의 고난도 마법이었죠.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1급임에도 이와 같은 특성을 보인 예외가 있기도 합니다만. 그리고 리아 양이 주신 이 술식에서도 그러한 특성이 보입니다.”

“언제 그런 연구를······”

“이전―― 조금 예전에 했었습니다, 세리오 씨.”

“그랬나요.”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기척을 내며 리카드는 눈을 가늘게 하였다.


저 그리움이 물씬 느껴지는 그를 보니 지금 말한 연구라는 게 ‘언제’ 있었던 일인지 대충은 예상이 간다.


덕분에 도움은 받을 수 있을 거 같다. 아직도 신기하기 짝이 없는 괴현상처럼 느껴지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시 치사하다는 생각과 완전 사기라는―― 부러운 마음이 주체가 되질 않는다.


‘――그야 복권이나 경마에서 1등을 고르는 것 따윈 완전 낙승일 거 아냐.’


델리안의 임금을 벌어야 하는 처지인 리아로서는 꽤나 구미가 당기는―― 여차하면 리카드를 꼬드겨 경마장으로 향하고 싶기까지 했다. 참고로, 말만 참가하는 건 아니지만 경마장이 있다는 것은 이미 확인해두었다.


돈은 이쪽이 지불하고, 리카드는 정보 제공자로서 8:2 정도로 소정의 수고료를 지급하면 서로 손해도 없고, 윈윈이 아닐까······


리카드를 학원에서 데리고 나가는 것부터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며 리아는 입을 열었다.


문뜩 리카드 혼자 가서 배당금을 모두 독차지해도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으나, 그건 가볍게 넘겨버렸다.



“이번 주말에 경마장 안 가실래요?”

“······예?”

“아, 아니, 말이 헛나왔어요. 그게 아니라――”


헛기침으로 진정을 꾀한 리아는 다시금 시선으로 에르에게 신호를 보냈다.


바로 알겠다며 에르는 허공에 손을 넣었는데······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던 리아는 미소 짓는 에르를 보지 않으려 애먼 창밖을 쳐다봤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니 에르는 종이 다발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이것들은······”


흥미롭게 종이 다발을 보는 리카드. 그러나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지 금세 스스로 정답을 발표했다.



“전부 [정화]로군요.”

“맞아요. 근데 어떻게 알았어요?”


새롭게 꺼낸 술식들은 에인샤론드가 매고 있던 이동식 집―― 그곳의 변기에 부여된 마법에서 착안점을 얻어 새롭게 만들어 낸 [정화]들이었다.


그리 큰 차이는 없어도 확실하게 다른 술식들을―― 되려 더욱 복잡한 술식이건만 한눈에 알아차릴 줄이야. 상당히 놀랍다.



“이곳을 보십시오.”


리카드는 가장 가까이 있는 종이에 그려진 도형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종이에 그려진 도형 중 가장 복잡하게 그려진 곳이었는데, 리카드는 그 부분을 다른 구역으로 나누듯 작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겹쳐있는 다른 도형 때문에 알기는 힘들지만, 이 부분이 모두 공통되게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정화]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어, 정말이네.”


주면서도 몰랐는데, 확실히 그가 가리킨 대로 겹친 부분을 쳐내니까 모두 같은 도형이 들어가 있음을 알게 됐다.


아니, 오히려 암만 겹쳐있었다지만 술식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는 면적인데 몰랐다는 게 신기하다.


‘내, 내세울 건 기억력뿐인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알았을 텐데.


살짝 암울한 기분이 든다. 그렇지만 곧 만회하고자 떨쳐내고 술식을 쳐다봤다.



“저게 [정화]의 핵심이구나. 그런데 저 도형은 뭘 의미하는 거지?”

“――소멸을 의미합니다.”

“오호. 소멸이었나요?”

“알고 계신 겁니까?”


대답 대신 보여주는 게 빠르리라. 술식도 확인해볼 겸.


아는 게 나와 만회하려던 것도 잊고 리아는 비어있는 찻잔에 물을 채워 테이블의 가운데에 옮겨놨다.


그러고는 짧게 손가락을 튕겼다.



“마력의 연비가 진짜 별로인지라 영 쓰기 안 좋은 마법이에요.”


증발이나 다른 현상으로 사라진 게 아닌, 그 어떤 작용도 없이 사라진 물.


평범한 방법이 아님을 직감했는지 세리오가 환성을 지른다. 그와는 대조되게 작은 물기 하나 남지 않은 찻잔을 들여다보던 리카드는 차분히 물었다.



“술식은 어떻게 됩니까?”

“마찬가지로······ 들어가 있네요. 하지만 주변의 술식들은 완벽하게 똑같진 않아요.”


대답하며 리아는 에르에게 종이를 받아 술식을 그려줬다.


도장을 찍듯 단숨에 그려진 술식은 소멸의 도형이 들어가 있기는 하나, 다른 도형들이 겹쳐 알아보기 힘들게 되어 있었다.


――마치 앞선 [정화]들처럼.



“어라. 설마?”


무심코 나온 말에 술식을 보던 리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것도 [정화]입니다.”

“헤에······ 그런가요? 어쩌면 [정화]라는 건――”

“――목표를 없애는 마법이겠죠. 같은 [정화]라도 술식이 이리 다양한 건 소멸시킬 대상을 지정하기에 벌어진 현상일 겁니다.”

“그러면, 대중에 알려진 [정화]는 온갖 병을 치료한다는 만병통치의 마법이 아니라, 온갖 질병의 근원이 되는 병균을 소멸시키는 마법이라는 거죠?”

“결과적으로는 병이 낫는 것이니 만병통치라 부르지 못할 건 아니지만요.”

“과연. 이제 [정화]의 원리가 이해되네요.”


지금의 이야기대로라면 병을 낫게 하는 것보다 물을 없애는 데에 마력이 훨씬 더 많이 드는 것도 설명이 된다.


병균이란 현미경―― 그중에서도 고성능의 것으로 겨우 볼 수 있을 만큼 작다. 제아무리 전신에 다 퍼져있다고 한들 찻잔에 담긴 물보다 한참이나 적으리라.


즉, 없애는 양이 많으니 마력이 많이 드는 게 당연하다는 뜻이다.


맨눈으로는 보기도 힘든 병균이길래 너무 어렵게 생각나 보다. 이 [정화]라는 마법의 연비는 단순히 부피와 질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거늘.



“알고는 있었지만 [정화]도 성스러운 것과는 정말 거리가 멀구나. 그냥 [소멸]의 한 분류인 마법이고. 이름부터 바꿔야 할지 모르겠네. ······하지만 역시 마법이랄까? 지정했다지만 용케 병균만을 정확히 없애버릴 수가 있네. 정말 엄청나구먼······.”

“그렇긴 하나, 아직 문제가 산재해있습니다.”


펼쳐진 술식들을 하나하나 면밀히 보던 리카드의 목소리는 진중하기 그지없다.



“뭐, 그렇겠네요.”


그렇다. 이 술식들은 미완성이다. 지금의 상태로는 아무나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애당초 이 문제를 인식하고는 있었다. 그래서 해결을 한 다음에 리카드에게 줄 예정이었지만 술식에 관해서는 생초짜이다 보니 진척이 더뎠다.


――아니, 진척은커녕 절찬리 제자리걸음 중이다.


그래서 혼자서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차라리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좋지 않겠냐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금도 보여주자마자 바로 조언을 얻기도 했으니 잘한 판단으로 보인다.


때마침 [치유] 건도 루비아가 맡아주기로 했고, 리카드의 훈련도 슬슬 자리를 잡아갔다. 새로운 안건을 던져주기에 좋은 시기이지 않을까 한다.


‘원래는 졸업할 때까지 느긋하게 직접 해명하고 싶었지만······ 주변 상황이 여의찮으니 고집을 부릴 순 없겠지.’


거기다 판도 이상하리만치 커졌다. 위험해질 수도 있다, 아니다를 따지기도 새삼스러우니 맘 편히 넘겨도 될 것이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팔찌도 만들어줬다. 저게 있다면 어지간한 일에는 문제가 없으리라.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가능할 거 같나요?”


팔짱을 끼고 턱에 손을 올린 리카드는 고심하다 답했다.



“아마······ 가능은 하리라 예상합니다.”

“에?! 진짜요?”


큰 기대는 하지 않았건만 이렇게나 산뜻하게 할 수 있다는 답변이 나올 줄이야. 과연 학원장이다. 지식의 깊이가 다르다.


흥분한 리아는 벌떡 일어나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반대로 그게 부담스러웠는지 리카드는 몸을 뉘어 거리를 벌리고는 곤혹스러워했다.



“무, 문제점은 마력의 주입만으로 마법이 발동하지 않는 건데, 그건 술자에게 아직 많은 부분 의지하는 점이 있어서일 겁니다. 술식에서부터도 그렇지만, 실제 발동되는 효과들이 다름에도 모두 [정화]에 속해 있다는 게 그 증거죠. 분류 범위가 넓은 겁니다.”

“쉽게 말하면요?!”

“좀 더 잘게 세분화하는 것으로 술자에게 의지하는 부분―― 이미지를 구축하는 과정을 줄이면 될 것이라고 봅니다.”

“더 쉽게요!”

“감기라면 감기약, 각각에 1:1로 대응하게끔 술식을 전문화하면 됩니다!”

“오오.”


함축된 진한 감탄사를 남기며 리아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세리오도 황홀한 표정으로 조만간 남편이 될 그를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보았다.


‘이게 뇌섹남이라는 건가. 과연 멋지긴 하네.’


TV에서 어려운 문제를 풀자 꺅꺅거리던 사람들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리아는 지금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았다.



“실제 그 단순화 작업은 오래 걸리겠지. 백방 고난의 연속일 거야. 그렇지만 완성된다면······ [치유]와 더불어 널리 전파해두면 병이나 다쳐서 죽는 사람은 현격히 적어지겠지.”

“분명 그렇게 되겠지요. ······하지만 [정화]를 전파하는 건 조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으응?”


예상하지도 못했던 의견에 들떴던 기분이 싹 가라앉았다. 하지만 리카드가 아무 의미 없이 반대하진 않았을 터.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궁금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으니 잠시 후 고심하던 그의 입이 열렸다.



“리아 양. 리아 양께서도 아셨다시피, [정화]의 주 원리는 소멸입니다.”


거기까지 들으니 무얼 말하려는지는 뻔했다.



“악용을······ 걱정하시는 건가요?”

“예. 그저 병을 고치는 것이었다면 괜찮았을 겁니다. 하지만 아까 시범을 보였던 것처럼 물체를 없애시기도 했습니다. 공표된 술식을 토대로 새로운 술식을 만들어 내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터. 물론 무척이나 어려운 마법이니 절대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자꾸 노파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군요.”


지당한 의견이다. 발전에 있어 어두운 면이 따라오는 건 기정사실 같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확실히 신중히 접근해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통제요인이라고 하던가? 기왕이면 문제가 발생할 변수는 남기지 않는 편이 좋기야 하겠지.’


그러기 위해서 일단 확인해보자.


리아는 짧게 손가락을 튕겼다. 지금의 마법은 말 그대로 확인을 위한 것, 평소와 달리 마력의 길을 만들어 술식을 그려 나갔다.


찰나에 그려진 술식은 [정화]의 속에 있던 [소멸]이었다.


마법은 문제없이 발동되었고, 머리 위 허공에 작게 손바닥만 한 구멍이 뚫렸다.


이전에 본 델리안의 [공간절개]와도 비슷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것과 달리 주변을 빨아들이거나 하진 않았다. 스케치북에 구멍을 뚫은 듯 아무 빛도 보이지 않는 동그란 구멍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게 순수한 [소멸]인가······ 무지하게 위험한 마법이네.”


공기를 비롯하여 지정한 공간에 있는 모든 게 사라진 소멸. 과장도 없이 공간 그 자체가 도려졌다.


조금 섬뜩함을 느끼고 있자니 수복하듯 구멍이 금세 메워진다. 원리는 잘 모르겠다. 마법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함께 지켜보던 리카드도 위험하단 것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리아 양, 감상을 들어도 되겠습니까?”

“방금 [소멸]이요? 음······ 일단 쓰기가 엄청 어려워요. 술자의 역량이 많이 요구되거든요. 마력 조작이라든가, 감각이나 이미지 같은 것들이요. 그냥 심상마법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니 술식만으로는 누구나가 쓸 순 없을 거예요. 그리고 마력도 엄청나게 들어요.”

“대략 어느 정도였습니까?”

“학원장님 마력의 10배는 들었을 거예요.”

“그런가요······. 작은 범위임에도 마력의 소모가――”

“――에엑?!”


세리오다. 갑자기 끼어든 그녀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리아와 리카드를 번갈아 보았다.



“아, 아무것도 안 느껴졌는데 그만한 마력을 쓰셨다고요? 그리고 리아 양은 학원장님보다 마력레벨이―― 아니아니, 그전에 그런 마력이 소비된 대마법을 저리 쉽게······ 전혀 지치지도 않으셨잖아요?”

“아······.”


요즘은 마력량이라든가, 마력레벨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다 보니 실수했다. 엄연히 감추고 있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밝혀야 하나? 세리오라면 괜찮아도 보인다.


고민하는 리아에게 도움의 말이 들렸다.



“마력레벨과 마력량은 정비례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세리오 씨. 사람에 따라 마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의 차이가 존재하죠.”

“그, 그런가요?”

“예. 분명 리아 양께선 저보다 훨씬 그릇이 크신 거겠죠. 마법도······ 워낙 실력이 탁월하시니 손쉽게 하셨겠죠. [정화]도 쓰시니까요.”

“서, 성녀······니임?!”

“아뇨. 지금까지 설명을 들으셨던 대로 [정화]는 이해의 범주에 있는 마법입니다. 신의 기적이라는 건 세인트리안의 프로파간다입니다.”

“그, 그렇슴까?”


사랑하는 남자의 말이라서 그런가, 조금 납득이 안 되는 듯도 싶었지만 세리오는 별말 없이 수긍해줬다. 멍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그렇지만 리카드 씨······ 아무래도 내가 마력레벨을 속인 걸 눈치채셨나 보네.’


뭐, 알려지더라도 별 상관은 없다. 애당초 과도한 관심이 싫었을 뿐이니.


거기에 리카드라면 딱히 떠벌리고 다니지도 않을 터. 어차피 주목은 받기 시작했으니 지금처럼 지내도 될 것이다. 정확한 수치를 드러내지만 않게 조심한다면.


끊어서 미안하다는 세리오의 사과를 받고 리아는 이어서 말하였다.



“잠깐 딴 길로 샜지만, 정리하자면 특정 물체만을 지정해서 없애던―― 제가 원래 알고 있던 [소멸]이나 [정화]는 여러 제약을 걸어 사용하기 쉽게 만든 느낌이에요.”

“그렇다면 역시······”

“네. 이 [소멸]을 베이스로 새로운 술식을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거 같아요. 실제로 저도 비슷하게 여러 개를 만들었고요.”

“제약을 더 걸면 누구나가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술식의 개발도 해낼 수······ 아니,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시행착오를 반복하겠지만. 그리고 만약 생물, 인간에게만 한정한다면――”

“――강력한 대인 마법이 되겠네요.”


리카드는 깊게 한숨을 토해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마냥 무기력하게 당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금세 상응하는 대응책을 만들어 내겠죠.”

“하지만 발견해낼 때까지―― 대응책이 준비될 때까지 속수무책이라는 거죠?”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겠지요. 가령, 은밀한―― 시체조차 남기지 않는 완전 범죄 등에 이용된다면 오랜 세월 존재를 들키지 않고 활약할 겁니다. 그리고 존재가 발각된 이후도 문제입니다.”

“그런가요?”

“예. 분명 현 마법전의 판도가 바뀔 겁니다. 기존의 방벽 같은 건 무시하는 만능의 공격 마법이니 말이죠. 유일한 대응법은 마법이 완성되기 전에 저지하는 건데······ 말처럼 쉽진 않겠지요.”

“으음······ 저지할 수 있는 보호막 같은 게 나중에 개발돼도 문제가 있겠네요.”


사람을 위한다는 것이 반대로 사람에게 해를 끼칠 무언가로 연결될 수도 있다. 그런 위험성이 있는 한 경솔히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마법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오명을 쓰고 싶지도 않고.’


너무 호들갑이 아닌 듯도 싶었다. 그러나 공간조차 집어삼키는 [소멸]을 직접 목격하니 신중해서 나쁠 건 없어 보인다. 오로지 사람에게만 맞춘 전문화를 하지 않는다는 법도 없고.


특히 리카드. 그는 어딘가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절대 허튼소리가 아니라고.



“아무래도 [정화]는 잠시 보류하는 쪽으로 해야겠네요. 세상엔 정신 나간 사람도 있기야 하니까요. 세인트리안이 떠올라서 내키지도 않고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연하죠. 악용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그만두는 편이 좋잖아요? 차라리 처음부터 접근을―― [소멸]이 들어가지 않는 방향으로 만들어보도록 하죠. 애당초 혼자서는 답도 안 나왔으니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확실히······ [정화] 또한 일개 마법. 분명 효과만 비슷한, 새로운 술식을 개발할 수 있을 겁니다.”


고개를 한번 끄덕인 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자. 오늘 몫의 연구를 하도록 하죠. 새로운 [정화]의 개발은······ 내일부터 하도록 하죠. 준비할 것도 있을 테니.”

“알겠습니다. 근데, 리아 양? 이 술식들은······”

“참고용으로 보셔요. 나름 여러 방법으로 [정화]를 구현했으니 연구에 도움이 되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책임지고 다른 데에 새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리카드는 펼쳐놓은 종이들을 잘 정리하여―― 허공 속에 넣었다.



“엇! [차, 차원수납]?!”

“아뇨, 닮았을 뿐인 [수납]입니다. 제 그림자를 매개로 공간을 확장, 연결한 것이지요. 최근 개량해서 대충 90톤 정도의 용량은 될 겁니다.”


그런 말을 하며 리카드는 로브를 열어 가슴팍에 달린 브로치를 보여줬다.


은빛을 띤 브로치는 버클러 방패 같은 원형의 문양이 있었는데, 기억하기로는 아마 클로디아노 자작 가를 상징하는 문장이었을 것이다.


‘집안의 가보인가? 근데 잘도 개량했네. 분명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


즐겨 찾는 정자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리아는 흥미진진하게 브로치를 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에르도 비슷하게 할 수 있다고 했었지. 이게 그거구나. 흠흠. 과연······”

“리, 리아 양?”

“미안해요.”


조금 흥분했다. 리아는 어느새 테이블을 돌아 리카드의 가슴팍을 뚫어져라 봤던 얼굴을 되돌렸다. 초조하게 보던 세리오에게도 사과했다.


――그리고 머리를 올리는 리아의 입가엔 득의양양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수납]의 술식······ 겟이닷!!’



“드, 드디어······”


그렇게나 바랬던 공간에 관련된 술식. 조금만 방심하면 음흉한 웃음을 흘릴 것만 같다.


물론 여태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델리안의 마법이나 에르가 준 귀걸이도 공간에 관련된 마법이기는 했으니.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심상마법인데다가 이해조차 안 될 어려운 마법들 뿐이었다. 한마디로 해석하기엔 난항이라는 거다.


그에 비해 지금 본 이 술식은 열화 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술식 자체는 정교하고 복잡하나 분석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생각 이상의 시간 단축이 있으리라 판단된다.


‘모자란 건 지식인가? 여차하면 그냥 술식 그대로 베끼어 감을 익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겠어. 다행히도 이건 영 가망이 없어 보이진 않아.’


룰루랄라 춤이라도 추고 싶다.


그렇게 무척 기분이 좋아진 리아는 일과인 리카드의 연구에 손을 빌려주었다.


다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흥얼거리는 콧노래는 작아지고 울상이 되어 이제 그만이라며 앓는 소리를 내게 되었다.


작가의말

이번화도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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