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도자기
아버지가 출장을 간 사이, 아홉 살 순이가 큰일을 내고 말았습니다. 뒤로 걷는 장난을 하다가 그만 도자기를 건드린 겁니다.
‘턱!’ 소리에 눈을 딱 감은 순이는, 아버지가 얼마나 아끼는 도자기인지를 생각하고는 울음부터 터트렸습니다. “참 잘 생겼단 말이야!” 하며 틈틈이 쓰다듬어 주던 백자 항아리였습니다.
손녀의 울음소리를 듣고 할머니가 급히 들어왔습니다. 바닥에 뒹구는 도자기를 보고 할머니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습니다. 도자기의 허리 아래로 길다랗게 금이 가 있었습니다. 조각이 나지 않은 것만 해도 큰 다행입니다.
“이를 어째, 쯧쯧!”
할머니는 도자기를 요리조리 살피며 혀를 찼습니다.
다음날 출장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옷을 갈아입자마자 도자기를 찾았습니다. 한눈에 상처를 알아본 아버지가 큰소리로 순이를 불렀습니다. 풀 죽은 순이의 뒤를 따라 할머니가 들어왔습니다.
“순이야! 네가 한 짓이지?”
“아범아, 내가 먼지를 털다가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지 뭐냐.”
아버지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자신이 매일 닦아주는 도자기라 따로 먼지를 털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아버지는 할머니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순이에게 눈을 크게 부라렸지만 야단을 치지는 않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순이는 마음 속에 도자기보다 몇 배 소중한 사랑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난 후에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지금, 할머니만한 품으로 아이들의 잘못을 보듬어 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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