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자운곡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할머니와 도자기



할머니와 도자기


  아버지가 출장을 간 사이, 아홉 살 순이가 큰일을 내고 말았습니다. 뒤로 걷는 장난을 하다가 그만 도자기를 건드린 겁니다.

 ‘턱!’ 소리에 눈을 딱 감은 순이는, 아버지가 얼마나 아끼는 도자기인지를 생각하고는 울음부터 터트렸습니다. “참 잘 생겼단 말이야!” 하며 틈틈이 쓰다듬어 주던 백자 항아리였습니다.

 

  손녀의 울음소리를 듣고 할머니가 급히 들어왔습니다. 바닥에 뒹구는 도자기를 보고 할머니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습니다. 도자기의 허리 아래로 길다랗게 금이 가 있었습니다. 조각이 나지 않은 것만 해도 큰 다행입니다.


“이를 어째, 쯧쯧!” 


할머니는 도자기를 요리조리 살피며 혀를 찼습니다.


  다음날 출장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옷을 갈아입자마자 도자기를 찾았습니다. 한눈에 상처를 알아본 아버지가 큰소리로 순이를 불렀습니다. 풀 죽은 순이의 뒤를 따라 할머니가 들어왔습니다.


 “순이야! 네가 한 짓이지?” 

 “아범아, 내가 먼지를 털다가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지 뭐냐.”


  아버지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자신이 매일 닦아주는 도자기라 따로 먼지를 털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아버지는 할머니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순이에게 눈을 크게 부라렸지만 야단을 치지는 않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순이는 마음 속에 도자기보다 몇 배 소중한 사랑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난 후에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지금, 할머니만한 품으로 아이들의 잘못을 보듬어 안습니다.



댓글 0

  •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글목록
번호 제목 작성일
25 내 일상 | 필명 '손님온다'로 변경했어요 23-03-28
24 내 일상 | 이게 눈물 날 일이 아닌가 *2 19-10-15
23 내 일상 | 시끄럽지만 더 듣고 싶은 소리 18-02-26
22 내 일상 | 왕파리 17-04-26
21 내 일상 | 3일 간의 만남 17-04-01
20 내 일상 | 랠리 이어가기 17-03-21
» 내 일상 | 할머니와 도자기 17-03-15
18 내 일상 | 이별하다 17-03-11
17 내 일상 | 천사들의 향유 17-03-07
16 내 일상 | 꼬리로 말하기 17-03-02
15 내 일상 | 함부로 힘을 주지 마라 17-02-24
14 내 일상 | 오해의 깊이 17-02-22
13 내 일상 | 자이언트의 행복 찾기 17-02-18
12 내 일상 | 영선이의 비밀 17-02-15
11 내 일상 | 어머니의 열무김치 17-02-09
10 내 일상 | 문득 드는 생각 16-10-21
9 내 일상 | 눈꼽 떼어주기, 그걸 내가 하고 있다 16-06-22
8 내 일상 | 돈들이지 않고 간단하게 바퀴 잡는 법 16-03-07
7 내 일상 | 잡초를 키우며 15-11-23
6 내 일상 | 함께 15-10-05

비밀번호 입력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