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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곡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천사들의 향유

천사들의 향유                          Attached Image

 

  어느 해 여름,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한 왕이 신하들을 데리고 온천 여행을 떠났습니다.

  평소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온 왕은, 특별한 것이 아니면 먹지도 입지도 않았습니다. 신하들은 날마다 새롭고 특별한 물건을 가져다 바쳤고 그런 신하에게는 벼슬을 높여주었습니다.

  어떤 신하는 온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보석과 밝기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보석 한 쌍을 바쳤고, 어떤 신하는 무슨 말이든 흉내 내는 앵무새를 바쳤습니다. 그 앵무새가 왕의 목소리로 부르면 신하들은 부리나케 왕에게로 달려가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신하들은 몇 번이나 그 앵무새에게 속았는지 모릅니다.

  마땅히 바칠 게 없는 한 신하는 귀가 셋 달린 하인을 바쳤습니다. 왕은 속으로 징그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보게 해준 신하에게 상을 내렸습니다.

 

  여행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왕이 탄 수레는 양쪽에 햇빛 가리개가 쳐져 있었지만 왕은 덥고 목이 말랐습니다. 왕이 목마르다고 말하자 가까이 있던 신하가 재빨리 달콤한 음료수를 가져다 바쳤습니다. 잠시 갈증이 가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왕은 다시 목이 말랐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신하가 백년이나 묵은 포도주를 바쳤습니다. 하지만 몸에 열이 나고 갈증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궁리 끝에 한 신하가 열두 가지 향이 나는 향수를 구해 왔습니다. 귀한 물건이라고 감탄하던 왕은 한꺼번에 향수를 벌컥 벌컥 다 들이켰습니다. 마실 때는 향기에 취해서 하늘로 오를 듯한 기분이었지만 오래지 않아 구역질이 나기 시작하더니 당장이라도 토할 듯 괴로워했습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늙은 신하가 근처에서 퍼온 맑은 샘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는 선대 왕이 아끼던 재상이었지만, 왕은 듣기 싫은 말을 잘하는 그를 멀리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이 샘물이 갈증을 풀어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왕은 너무 평범한 물인 걸 보고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왕은 입이 타들어가는 듯했고 아무것도 먹기가 싫었습니다. 모든 게 귀찮아진 왕은 여행을 멈추고 밤이나 낮이나 침대에서 지냈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나서는 신하가 없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어느 아침 늙은 신하는 아들에게 마을 뒷산에 가서 신선한 샘물을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그 샘물을 화려한 공작새 모양의 도자기에 담아 왕에게로 갔습니다.

 “지혜로운 왕이시여. 이 공작새 속에는 천사들이 마시는 향유가 들어 있습니다.”

  힘겹게 눈을 뜬 왕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샘물을 마셨습니다. 순간 입안에 청량감이 감돌았습니다. 어떤 향유보다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맛이었습니다. 천사가 되기라도 한 듯 기분이 좋아진 왕은 콧노래를 부르며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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