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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개드립


[개드립] 쓰지 않는 이유

왜 쓰지 않는 건데?!”

 

…….”

 

또 뭘 했는데. 뭐 다른 거 봤어?”

 

…….”

 

그는 얌전히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쉬며 시선을 피한다.

 

나는 말이야, 재밌는 얘기를 쓰고 싶어.”

 

그래, 쓰면 되잖아.”

 

그게, 재미가 없거든.”

 

무슨 소리야.”

 

그는 퀭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술담배를 하지 않는 그이지만 무언가에 취한 듯 정상이 아닌 그런 눈빛에 나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내가 쓰는 건 재밌어. 내 안의 세계에서, 사람들을 만들고, 친구들을 만들고, 배경이라던가 역사라던가. ‘세계관 이라고 하지, 그런 걸. 그런 것 만들면서 글을 쓰는 건 참 재밌어.”

 

그래, 그럼 그렇게 쓰면 되잖아.”

 

그게 뭐!”

 

……!”

 









그는 길게 말할 때엔 방긋 웃으며 쉬지 않고 단숨에 말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자신의 성과물을 자랑스럽게 설명하듯. 비록 퀭한 눈이지만, 그 때만큼은 빛나는 눈이다. 그러나 그 빛은 금세 가라앉고, 그는 소리쳤다.

 

그딴 거 만들어서 뭐. 누가 쳐다나 봐?”

 

…….”

 

내가 스스로 세계를 만들고 하는 행위는, 그저 어린 아이가 모래성을 쌓고 집에 갈 때가 돼서 다시 부수는 그런 거랑 다를 바가 없어.”

 

…….”

 

그 모래성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짓을 하고 있지만 너도 알잖아, 세상에 칭찬 받을 만한 모래성이 몇 개나 있을지.”

 

세상엔 모래성을 쌓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말 별처럼 많아. 나조차도, 주위 사람들에게 늘 말하는걸.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고. 그래, 근데 그게 문제지.”

 

나는 내 글이 정말 재미있어. 세상 사람들이 내 글을 많이 많이 읽어줬으면 좋겠어. 글로써 돈을 벌거나 입신양명을 하겠다는 게 아니야. 그걸로 호의호식하며 잘 살겠다는 게 아니야. 글로 돈을 벌다니, 무슨 사치야. 그 정도로 내 글은 가치가 있지 않아. 다만 단 하나, 이 모래성을 쌓는 어린아이 같은 행동이 적어도 공염불은 아니라는 걸, 허공에 헛손질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그걸 증명받고 싶은 거야.”

 

…….”

 

나도, 알아, 비교해봤자 소용 없다는 걸. 누군가는 나보다 편도 적게 올리고, 내용도 훨씬 적게 올렸어. 양이 중요한 건 절대 아니지만, 나는 한 편을 8000자까지 올리는데 3년이 걸렸어, 3년이!”

 

그의 눈에는 어느덧 분노를 넘어서 채념의 빛이 쓰여있다. 그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계속 말한다.

 

처음에 여기 왔을 때엔, 굉장히 큰 기대를 했지. 조회수 1000, 2000인 사람들이 수두룩 했거든. 화려한 배너 광고에는 이 곳에서 연재를 하던 사람들이 출판을 했다는 거야. 나도 그런 꿈을 갖고 연재를 했어. 나도 인기를 많이 얻으면 언젠가 기적처럼 출판사에서 전화가 오겠지! 하는 어리석은 꿈을 꾸면서.”

 

하지만 깨달은 건 그거 하나지. 정말로, 무관심이란 게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 그리고 이어지는 열등감, 다른 글들에는 추천이 50, 100! 댓글도 몇백개가 달리는데! 아니, 몇 백개 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내 글에 달리는 댓글은 없는 건 태반이고 하나 아니면 두 개!”

 

그딴 게 무슨 소용인데, 알잖아!”

 

내가 더 잘 알아!”

 

그 말에 반박하려는 내 말을 가로채서,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그의 눈은 이제 채념도 아닌 광기로 빛나고 있었다.

 

조회수나 추천이 중요한 게 아니란 건 알아 그러나, 세상에 반증하는 건. 세상에 증명하는 건 그런 수치가 아닌가? 결국 우리네 세대가 그렇게 스펙이니 자격증이니에 목을 메는 건 1이라도 자기 능력치를, 자기를 평가하는 수치를 높게 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

 

나도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어 모두에게 인정받는 누구라도 본다면 폭소는 하지 못할지라도 그 재치에 씨익 헛웃음이라도 지을 수 있게 만드는, 그런 글을. 하다못해, 아무 쓸모도 없더라도 시간 떼우기용이라도 쓸 수 있는 글이라도 만들고 싶어. 이야기를 펼치고 싶어.”

 

…….”

 

더 슬픈 건 뭔 지 알아? 내 자식과도 같은 이 캐릭터들, 내 분신이나 다름 없는 이 녀석들은 무슨 죄인데. 글 쓰는 사람이 똥 같다고 캐릭터들까지 똥 같은 건 아니잖아. 다른 누군가가 썼다면 틀림없이 더 예쁘고 빛이 났을 녀석들이라고. 내 쓰는 실력이 모자라다고 이 녀석들까지 같이 폄하당한다면, 이 녀석들까지 같이 잊혀진다면! 나야, 사람이니까 어떻게든 현실의 세계에서 살겠지만 가상의 존재인 이 녀석들은!”

 

…….”

 

…….”

 

그의 말은 거기서 멈추었다. 그는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다시금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눈치를 보며 마찬가지로 말없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죽어 시들은 나무처럼 몸을 푹 수그리고 아무 말도 없다. 그러다 슬며시, 고개를 든다.

 

써야지, 다시금 써야지.”

 

……어떤 이유로?”

 

……읽어 주는 사람이 있거든. 2명 정도는

 

“2명이라, 많네.”

 

하하, 많지. 3년동안 노력해서 2명의 독자를 얻었다면.”

 

많아, 아주 많아.”

 

하하하하

 

하하하.”

 

그거 알아? 2명 중에 1명은 전작까지 읽었었어. 2년 전에 쓴 건데도

 

대단하네. 골수팬 아니야?”

 

무슨 개소리야, 그냥 지나가다 읽는 거지,

 

으응, 그렇지

 

…….”

 

그래도, 열심히 써 줬으면 좋겠어.”

 

……그렇지.”

 

누가 뭐래도, 어찌됐든 거기에 세상은 있으니까.”

 

내 말에 그는 힘없이 미소를 짓는다. 나는 다시금 빛으로 돌아가, 그의 눈 앞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없어진 게 아니다. 그가 연필을 들고 공책에 마주 댔을 때, 그 순간에 다시 반짝 하고 나타나니까. 그와는 그렇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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