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창문 너머에선 잿빛 강이 흘렀다. 김도윤은 창가에 턱을 괴고서 그 강을 가만히 내려보았다. 반짝이며 흘러가는 강 위로는 선명한 기억들이 방울져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꽤 오랜 시간 그렇게 강을 바라보았다.
똑똑-.
누군가가 도윤이 머무르는 객실의 문을 두드렸다. 도윤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깔끔한 정장을 빼입은 여자였다. 평범한 체격에 새까맣게 올려 묶은 머리. 잡티 하나 없이 새하얀 피부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특징은 없었다.
“잠시, 검표하겠습니다.”
여자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공손하게 손을 내밀었다. 도윤은 가슴에 달린 조그만 주머니에서 표를 꺼내 건넸다. 여자는 잠시 표를 살핀 뒤 물었다.
“생년월일은 1996년 7월 16일, 탄생 시각은 새벽 5시 28분 34초. 향년 82세. 김도윤 씨 맞으십니까?”
머릿속으로 직접 파고드는 듯한 오묘한 목소리. 도윤은 그 목소리를 잠시 음미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나요?”
새하얀 여자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기억하고 계셨군요.”
“어떻게 잊겠습니까.”
“여행은 즐거우셨습니까?”
“그럼요. 덕분에 정말 즐거웠습니다. 고마워요.”
여자는 조용히 문을 닫고 도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렇게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멈춘 때. 여자는 도윤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럼 잠깐만 이야기를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김도윤 씨가 어떤 여행을 했는지요.”
“···짧은 이야기는 아닐 텐데요.”
“괜찮습니다. 이제 시간은 많으니까요. 그리고, 이건 제 유일한 취미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변화가 적은 곳이다 보니 말입니다.”
“하하하-”
시원스레 웃은 도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창밖을 향했다. 창 너머에는 여전히 잿빛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방울져 떠오르는 기억 중 하나에 시선을 고정한 도윤이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부활한 직후에 저는, 처음 보는 병원의 침대에-”
잿빛 강 위를 달리는 기차 안. 도윤과 여자의 대화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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