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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안개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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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안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4.19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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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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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비트 더 아이돌> 시즌 2의 마지막 화 방영일이자 생방송 촬영이 있는 날. 새벽이 짙게 깔린 시간부터 분주했던 일산 큐넷 스튜디오는, 한 차례 드라이 리허설을 마치고 짧은 휴식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새 정오에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끄응-!”


나유나가 크게 기지개를 켰다. 생방송인 만큼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촬영. 비록 이번 생방송에 오르는 무대는 최종 순위와는 관련이 없는 무대이긴 했지만. 모든 스태프의 신경은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지난주 방영되었던 7화의 시청률이 7.0%. 역대급 신화를 써 내려가는 <빗더돌> 시즌 2의 마지막 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방송 사고 없이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만 했다.


그리고.


“리허설을 본 소감은 어때 나 작가?”

“좋았어요. <빗더돌> 마지막 페이지에 어울리는 무대들··· 이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마지막 페이지라···. 그래, 맞아. 그리고, 첫 페이지이기도 하겠지.”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라도 이번 생방송은 중요했다. 나유나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드라이 리허설에서 보았던 도윤의 무대를 떠올린 탓이었다.


“마지막까지 그렇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하하. 또 단순히 새롭기만 한 것도 아니었지.”


굳이 누구에 관한 이야기인지를 밝힐 필요도 없었다. 무대 위에 덜렁 놓여있는 스탠드 마이크를 쥐었던 도윤의 모습. 그리고 그의 목소리. 그것은 다른 어떤 무대보다도 선명하게 스태프들의 머릿속에 각인 되었었다.


그렇게 나유나와 유한열이 평소처럼 도윤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는 때.


“유한열 피디님-!”


누군가가 다급하게 유한열을 불렀다.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스태프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다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허억-, 허억-. 그게, 허억-”

“일단 숨부터 좀 돌리고 이야기해도 돼.”


무릎을 짚고 빠르게 숨을 고른 스태프는 숙였던 허리를 벌떡 들었다.


“한철동 국장님이 오셨습니다. 유 피디님.”

“국장님이?”


유한열은 스태프 어깨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저 멀리, 세트장 입구의 인파를 가르며 위풍당당하게 걸음을 옮기는 인물, 희끗희끗한 머리의 중년인. 분명 한철동 국장이었다.


“다들 쓸데없이 인사하러 오지 말고, 자기 일들 하러 가! 오늘 생방송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다들 알고 있지?”


한철동은 우르르 모여든 스태프들을 향해 허허로운 웃음을 짓고선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국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이긴. 마지막 촬영이기도 하고, 생방송이기도 하니까 한 번 들린 거지. 또 내가 이렇게 한 번 찾아와 줘야 유 피디, 자네 면도 살고 말이야. 응?”

“하하하, 감사합니다.”


한철동 국장의 말처럼, 그가 촬영 현장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빗더돌> 시즌 2는 시즌 1을 넘어서는 흥행에 성공했으니까.


하지만, 유한열은 한철동 국장의 목적이 단순한 격려가 아니라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한철동과의 인사치레를 짧게 마친 유한열은 곧장 나유나를 향해 물었다.


“나 작가, 도윤 군 카메라 리허설 순서가 몇 번째지?”

“···음. 제일 첫 순서가 동호니까, 두 번째 일 거에요.”

“그럼, 지금 바로 대기실로 가서 첫 순서로 바꿔도 되겠는지 좀 물어봐 줘.”

“네?”

“하하하, 역시 유 피디군.”


당황하는 나유나와 만족스러운 웃음소리를 낸 한철동. 순간, 나유나 역시 한철동이 촬영 현장을 찾아온 이유를 깨닫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알겠어요. 그럼 바로 카메라 리허설 스탠바이 시키겠습니다.”

“부탁할게. 국장님 이야기는 꺼내지 말고. 알지?”

“그럼요.”


빠른 속도로 떠나가는 나유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한철동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드라이 때는 어땠는데, 유 피디.”


무심한 한철동의 목소리에 한 줄기 기대감이 섞여 있는 것처럼 들렸다. 유한열은 한쪽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리며 답했다.


“하하, 이제 곧 보게 되실 텐데 굳이 말씀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난 책을 살 때도 말이야, 맨 마지막 장을 먼저 읽어보고 사는 사람이야. 유 피디도 알잖아, 응?”

“그럼, 차라리 최종 순위를 알려드릴까요?”

“······.”


3차 경연의 시청자 평가단 점수와 1주일간의 온라인 투표 점수를 합산한 최종 순위. 그 결과는 이미 나와 있는 상태였다.


물론, 극한의 보안을 위해 최종 순위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적었고. 심지어 유한열과 나유나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


그러나, 한철동이 원한다면 충분히 먼저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국장님께서 원하신다면, 담당 스태프를 바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고민하는 듯하던 한철동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유한열에게서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아냐, 됐어. 조금 있다 리허설 시작할 때 다시 보자고.”

“알겠습니다. 국장님.”


멀어지는 한철동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인 유한열. 그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번져있었다.


‘하여간, 애 같은 구석이 있다니까.’


아닌 척해도, 오랜 기간 그와 함께 일했던 유한열의 눈에는 빤히 보였다. 한철동이 도윤에게 걸고 있는 기대감이 단순히 사업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가볍게 고개를 저은 유한열은 자신과 한철동을 향해있던 시선들을 향해 외쳤다.


“자, 다들 이야기 들었지? 바로 카메라 리허설 준비하자고!”



**



“일단, 오겠다고 해서 오긴 했지만···. 딱히 해줄 말이 없네, 도윤아.”

“정말요?”

“그래, 카메라 리허설이나 생방 때도 아까 했던 것처럼만 하면 될 것 같아.”

“하하, 감사해요. 연우 쌤.”


일산 큐넷 스튜디오, 도윤의 대기실 안. 생방송을 앞둔 그 공간에는 긴장감이 아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드라이 리허설에서 보여준 도윤의 보컬 퍼포먼스는 완벽에 가까웠다. 대략 1주간의 짧은 연습뿐이었지만, 도윤은 차연우가 가르치는 모든 것을 빠르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완벽한 R&B 감성을 살려내지 않고 자신의 음색에 맞게 창법을 변용해 버린 것.


‘처음엔 이렇게까지 노래와 잘 맞는 창법으로 성장할지는 몰랐는데···.’


정석적인 창법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Blue Ocean’과 너무나도 잘 들어맞는 탓에, 차연우는 도윤이 그 특유의 창법을 사용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뭐, 그래도 아직 기회는 많으니까.’


아이돌치곤 어린 편은 아니어도, 도윤은 젊었다. 그리고, 그의 재능은 단순히 아이돌에만 머물러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도윤은 이제 막 첫걸음을 떼는 중이었다.


“이제 카메라 리허설에서 너무 무리하지 말고, 생방 때까지 목 관리만 잘하면-”


벌컥-


갑자기 열린 대기실의 문. 그곳엔 가볍게 숨을 헐떡이는 나유나가 있었다.


“나 작가님?”

“아, 이런. 차연우 트레이너님도 계셨네요. 죄송해요, 노크를 했었어야 했는데.”

“아뇨, 괜찮아요.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중은 아니었으니까요.”

“하하, 다행이네요.”


미소와 함께 잠시 한숨을 돌린 나유나는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밝혔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도윤이 나유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 저 우선 카메라 리허설부터 마치고 올게요. 그다음에 다시 나머지 코칭 부탁드려도 될까요?”


더 이상 건드릴 부분이 없다고 말했음에도, 다시 한번 코칭을 부탁하는 도윤의 모습. 그 모습에 차연우는 자연히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 작가님 보니까 시간도 촉박한 것 같은데 먼저 가. 나도 곧 갈게.”


차연우의 축객령에 도윤과 나유나가 먼저 대기실을 나서고. 차연우는 자신의 대기실로 걸음을 옮겼다. 리허설 준비란 것도 눈 깜짝할 사이 끝날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도착한 트레이너 대기실. 그 안쪽에서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김인석 트레이너님 같은 훌륭한 보컬 트레이너가 우리 평가단을 맡아준 덕에 <빗더돌> 시즌 2가 흥행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하,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모두 <빗더돌> 참가자들이 잘해 준 덕분이겠죠.”


한쪽은 김인석의 목소리임이 분명했는데, 다른 한쪽의 목소리는 그녀에겐 조금 낯선 것이었다. 그녀는 짧은 고민을 마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만면에 미소를 띤 김인석과 희끗희끗한 백발이 섞인 뒷머리. 차연우는 그 백발을 보자고 나서야 낯선 목소리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한철동 국장님!”


그녀의 들뜬 부름에 고개를 돌리는 한철동. 그의 얼굴에도 반가움이 가득 어려있었다.


“오! 오셨군요, 차 트레이너님!”


차연우와 한철동은 차연우가 트레이너로 출연했던 프로그램, <마이돌 프로듀싱>으로부터 인연이 이어진 관계였다.


“국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하하, 방송국 간판 프로그램의 마지막 화인데 한 번 얼굴을 비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나저나, 차 트레이너님은 어디 있다 오셨습니까?”

“아, 그게···.”

“차 트레이너는 도윤 군 대기실에 있다 왔습니다, 국장님! 이거, 판정단하고 참가자 사이에 이런 유착이 있어도 되는 겁니까!?”


한철동의 말을 이어받은 것은 흥분한 목소리의 김인석이었다. 그는 차연우가 도윤의 보컬 코칭을 맡았다는 굉장히 부러워하고 있었다.


“···오, 그랬나요? 그런 줄은 몰랐군요.”

“그렇다니까요, 국장님! 이건 국장님께서 꼭-”

“그럼 이렇게 된 김에 차연우 트레이너님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미소 지은 얼굴 사이로 일순 번뜩이는 듯한 한철동의 눈빛. 차연우는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게 물어봐 주세요, 국장님.”

“···차 트레이너님이 보기에 도윤 군은 어땠습니까? 여기 김인석 트레이너는 도윤 군 칭찬을 아주 입이 마르도록 하던데, 차 트레이너님도 같은 의견인가요?”

“음···.”


차연우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큐넷의 국장인 한철동이 갑작스레 내비친 도윤에 관한 관심. 이 질문에는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 의문은 깨끗이 씻겨나가 버리고 말았다.


“혹시, 대답하기 곤란한 부분이라도 있는-”

“제가 지금껏 가르쳐본 아이돌 중엔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 라고 하면 될까요?”


오래전부터 그녀가 보아왔던 도윤. 그리고, <빗더돌>의 무대들과 지난 1주일간의 연습 속에서 도윤이 보여주었던 재능. 그 무엇 하나 떳떳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것도, 현재 상태를 두고 말씀드린 거고···, 발전 가능성까지 본다면 비교할 대상을 찾기 힘들 것 같아요.”

“으음···, 차 트레이너님이 그렇게까지 확신에 차 말해주니 더욱 기대되네요.”

“그리고, 단순히 재능만 뛰어난 게 아니라···”


혹시 어떤 도움이라도 될까 싶은 마음이 차연우의 입을 계속 움직이게 했다. 오래전 처음 만났던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도윤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한철동의 얼굴엔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그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하하,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차 트레이너님. 그럼 이제, 그 도윤 군의 무대를 직접 보러 갈 시간이 된 것 같은데, 두 분은 같이 가시겠습니까?”

“좋습니다.”

“같이 가시죠.”


세 사람은 대기실을 빠져나와 세트장으로 향했고. 그곳에는 스탠드 마이크를 쥐고 무대에 서 있는 도윤이 리허설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웅웅-


“카메라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이내 시작되는 도윤의 노래. 그 노래를 듣는 한철동의 얼굴은 환히 반짝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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