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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안개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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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안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4.19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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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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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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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삑삑삑삑, 띠로링-


느릿느릿 문이 열리고 현관에 불이 들어왔다.


“나왔어···.”


문틈 사이로 기어들어 오는 진이 다 빠진 목소리. 그 뒤를 따라 현관에 들어선 것은 추적추적 걸음을 옮기는 차연우였다.


긴 현관 너머에선 빼꼼- 얼굴 하나가 빠져나와 그녀를 맞이했다.


“어-, 쩝쩝. 왔어, 동생. 쩝쩝. 요즘 자주 늦네?”


욕심 그득한 다람쥐 마냥 양 볼을 부풀린 채 열심히 입을 움직이고 있는 남자. 별것도 아닌 말에, 차연우는 괜한 짜증이 스멀거리는 것을 느꼈다.


“후우-.”


신발을 벗어두고 들어가니 식탁 위에는 친구를 잃은 두 마리 치킨이 놓여있었다. 그 곁을 지키고 있는 빈 맥주캔은 덤.


치익-!


차연우에게 건성으로 인사를 건넸던 남자는 새 맥주캔을 까며 시시덕거렸다. TV는 오래전 종영한 예능을 내보내고 있었다.


“······.”


차연우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남자 옆에 앉아 젓가락으로 양념치킨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 매콤달콤한 감칠맛이 사르르 입안에 퍼지고, 그녀는 벌떡 일어나 냉장고에서 캔맥주 하나를 꺼내왔다.


치이익-!


이내 부글거리던 그녀의 마음 위로 시원한 맥주가 쏟아진다.


탁-!


“크아-.”


그렇게 단숨에 비워 버린 캔을 내려놓고 나서야, 차연우는 머리를 달구던 열기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치킨을 뒤적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퉁명스럽게 변했다.


“···왜 또 순살이야. 내가 치킨은 뼈라고 말했잖아.”

“뼈 치킨이 먹고 싶으면 네가 시켜 먹던가.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데 왜 네가 불평이냐. 먹기 싫으면 괜히 뺏어 먹지나 말아.”

“오빠 혼자 이걸 다 먹을 생각이었어?”

“어허-. 인제 그만 신경 끄시지요, 아우님.”


남자는 치킨 박스를 슬쩍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차연우는 남자를 슬쩍 흘겨보았다.


“하여튼, 차승우 치사한 건 내가 이해해야지.”

“어허! 오빠한테 차승우라니!”


차연우의 연년생 친오빠, 차승우는 TV에서 1mm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입만 열어 대꾸했고. 차연우도 미련 없이 일어나 곧장 샤워를 하러 갔다. 이 정도는 투덕거림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차 남매였다.


잠시 후. 모락모락 김을 피우며 차연우가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앉았다. 한동안 조용히 TV만을 보고 있던 차승우가 맥주를 마저 비우고선 차연우에게 물었다.


“요즘 일이 많은가?”


잠시 대답을 고민하던 차연우가 고개를 저었다. 일 때문에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것은 맞았지만. 일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은 적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한 명에게만 투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혹시, 그··· 도윤인가 하는 그 친구 때문이야?”


차연우는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차승우를 돌아보았다. 차승우는 여전히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

“뭐, 네가 한 달이 넘도록 매일같이 이야기했잖아. 도윤이가 어쩌고, 도윤이가 저쩌고. 모르기가 더 힘들지.”


어쩐지 뜨거워지는 낯. 차연우는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매일은 아냐, 매일은.”

“어쨌든. 그 도윤이란 친구가 어떻길래, 이렇게 항상 늦어? 네 말을 잘 안 듣나?”


차연우가 한 번 더 고개를 저었다. 도윤이 말을 안 듣는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도윤은 그녀의 트레이닝을 착실하게 따라왔다. 아니, 요즘은 착실히 따라오는 수준을 가뿐히 뛰어넘고 있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 정확하게 도윤을 위한 속담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도윤의 재능이 <빗더돌>을 전후로 갑자기 개화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졌다.


‘···그러니,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내 쪽에 있는 거겠지.’


도윤에게 어울리는 곡을 아직까지 찾아내지 못했다. 그 짐이 차연우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빗더돌>을 통해 도윤이 보여 주었던 퍼포먼스들이 너무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탓일까. 차연우의 머릿속에는 ‘보컬에 집중하고 싶다.’라는 도윤의 바람을 이뤄줄 최선의 곡이 도무지 떠오르지를 않았다.


도윤이 제시했던 몇몇 곡들은 꽤 그럴싸하게 들리긴 했었지만. 도윤이 피워낸 재능에 어울리는 더 좋은 곡이 있을 것이란 느낌이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다.


“그럼 뭔데, 일단 이야기를 좀 해봐. 들어줄 수는 있으니까.”


담담하게 말을 잇는 차승우의 목소리. 차연우는 결국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차승우의 말마따나, 그냥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흠. 제자가 너무 뛰어나서 생긴 고민이라니, 행복한 고민이잖아?”


차승우의 명료한 요약에 차연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꼬집을 곳 하나 없는 완벽한 정리였다. 그녀가 느끼는 부담감은 분명 도윤에 대한 기대감에 기인하고 있었으니까.


“하하, 오빠 말이 맞네···. 뭐, 그러니 결국, 내가 더 열심히 고민해 보는 수밖에 없겠지.”


새삼스레 깨달은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조금 편안히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차승우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음···.”

“아, 괜히 오빠까지 따라서 고민할 필요는 없어. 나도 그냥 답답해서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

“···저기, 동생아.”


침음성 끝에 이어지는 차승우의 부름. 차연우는 다급히 늘어놓던 말을 멈추곤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떠오른 거긴 한데. 그 도윤이란 친구가 지금까지 들려줬던 목소리를 생각해보면, 나는 왠지 이 노래가 잘 어울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


차승우는 식탁에 내려뒀던 핸드폰으로 너튜브에 무언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차연우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이상한 점을 깨닫고는 그에게 물었다.


“···아니 잠깐만. 도윤이가 지금까지 들려줬던 목소리라니? 그럼 오빠가 도윤이 무대라도 봤다는 이야기야?”


차승우는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답했다. 이전과는 달리 조금 머뭇거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네가 그렇게 매일 같이 이야기하니까···, 안 궁금하기가 더 힘들지 않겠냐. 그래서 쉬는 시간에 한 번 찾아봤더니 꽤 잘하는 친구더라고···.”


평생 아이돌에는 관심이라곤 주지 않았던 차승우. 그가 도윤의 영상을 찾아봤다는 이야기는, 차연우로서는 도무지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게다가 ‘꽤 잘하는 친구’라니. 그녀는 저 표현이 차승우 표 최상급 칭찬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차연우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멍하니 차승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녀가 인지부조화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이. 차승우는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여 하나의 영상을 찾아냈다.


“이 노래야.”


차승우의 핸드폰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감성적인 보컬로 시작된 노래에 어쿠스틱 기타가 더해지고 이내 느릿한 드럼연주가 이어진다. 먼 곳에서부터 파도치듯 들려오는 감각적인 스트링이 비어있는 공간을 채운다.


그리고, 노래를 들은 순간. 차연우의 머리에 번개가 쳤다. 발라드인 동시에 댄스 팝인 노래. 00년대의 향수를 일으키는 그 노래에는 아련함과 청량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 노래다. 그 생각 하나만이 차연우의 머릿속을 순식간에 채워버렸다.


“···정말로, 갑자기 생각나서 이야기해본 거니까-”

“고마워, 오빠!”


차연우는 차승우의 말을 끊고는 벌떡 일어서서 자신의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내 방안에서는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차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잠시 닫힌 차연우의 방문을 바라보던 차승우. 그는 TV를 끄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



이튿날 오전, 보컬 학원 ‘The Voice’의 트레이닝 실.


“노래는 좀 불러봤니? 어때, 이전의 다른 노래들보다 좀 더 괜찮은 것 같아?”


조심스러운 차연우의 질문에 악보를 내려다보고 있던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뇨.”

“아···.”


아쉬움에 흠뻑 젖은 차연우의 탄식. 연이어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맞다 생각해도, 도윤이 아니라고 하면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흘러넘치는 진한 아쉬움을 간신히 부여잡고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지, 그럼 오늘도 일단 가볍게 목부터 풀고-”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어요.”

“응?”


키보드를 향해 있던 그녀의 시선이 도윤에게로 옮겨갔다. 도윤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차연우의 눈매도 서서히 가늘어졌다.


“저, 꼭 이 노래로 하고 싶어요. 연우 쌤.”

“···요게, 선생님을 가지고 장난을 쳐!?”


덜컥-!


벌떡 일어선 차연우의 다리에 걸린 키보드가 도윤을 향해 기울었다. 도윤은 재빠르게 몸을 낮춰 키보드를 받쳐 들며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니. 연우 쌤이 괜찮냐고 물어보셨잖아요! 근데, 저는 진짜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고요! 쌤한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잖아요!”


그제야 차연우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도윤은 키보드를 원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크흠. 이번만이야, 알겠지?”

“헤헤. 네. 죄송해요, 연우 쌤. 근데 진짜 노래가 너무 좋아서 그랬어요. 어제랑 오늘 아침에 연습 삼아 좀 불러봤는데, 정말 제 목소리랑 딱 맞는 것 같더라고요.”


도윤은 문득, 어젯밤 차연우에게서 전화를 받았던 때를 떠올렸다.


‘노래 제목을 전해 듣자마자 바로 느낌이 왔었지.’


도윤이 채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발매되었던 노래였지만. 순간 머릿속으로 선명하게 멜로디가 재생되는 것 같았었다.


그리고, 그 오랜 기억 속의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는 것만으로도 도윤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 이 노래가 아니면 안 되겠어요.”

“···그렇게까지 말해주니 오히려 내가 고맙네.”

“그런데, 이 노래를 저에게 추천해주신 게 연우 쌤의 오빠분이시라고요?”

“아, 응. 맞아. 우리 오빠가 네 목소리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더라고.”

“혹시, 오빠분도 음악을 하세요?”

“우리 오빠가? 아니! 전혀 아니야!”


차연우는 신이 나서 차승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평생 아이돌에겐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었다는 이야기부터, 지금은 도윤의 <빗더돌> 영상을 모두 챙겨봤다는 이야기까지.


이내 한참 이야기를 늘어놓던 차연우는, 시계를 보며 깜짝 놀라곤 도윤을 향해 말을 이었다.


“아, 미안 도윤아. 이제 연습 시작하자.”

“하하하. 아녜요. 재미있었어요. 연우 쌤. 그럼 바로 목부터 풀까요?”

“그래.”


그렇게 잠시 간단한 발성 스케일을 마친 후.


“시작할게요, 연우 쌤.”

“응. 언제든 준비되면 시작해.”


도윤과 차연우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 노래를 여는 것은 바로 보컬. 보컬이 가장 먼저 도입의 한 마디를 부른 이후 악기가 들어서는 구조였다.


도윤은 발 박자를 구르며 마음으로 박자를 셌다. 서서히, 파도가 밀려 들어오듯. 저릿한 감각이 도윤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감각이었고. 그것은 마치 도윤이 부를 노래를 알고 있는 것처럼 도윤을 재촉했다.


도윤은 그 감각을 한계의 한계까지 참아내며 끌어모았다. 그리고, 더 이상 담아둘 수가 없게 되었을 때.


“언제나, 널 보면 내 맘엔 파도가 쳐-”


노래의 첫 소절을 내뱉었다.



그 뒤로 이어져야 할 차연우의 연주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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