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마른안개 님의 서재입니다.

부활하니 천재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마른안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4.19 08:17
최근연재일 :
2021.06.02 20:20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336,312
추천수 :
8,861
글자수 :
237,834

작성
21.05.14 20:20
조회
6,694
추천
201
글자
12쪽

도윤으로 (3)

DUMMY

도윤은 등받이를 조금 기울여 몸을 깊게 기댔다. 가만히 눈을 감은 채 편히 앉아있으니 자연히 입꼬리가 기분 좋은 호선을 그린다.


“응? 그래서. 그때 어땠는지 좀 다시 이야기해줘 봐, 도윤아.”


운전대를 잡은 우석의 들뜬 목소리. 그의 시선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도윤에게 착- 달라붙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흐흐. 벌써 몇 번째에요, 우석 형.”

“그게 지금 중요한가!? 어쨌든, 빨리 다시 이야기나 해줘.”


우석의 보챔에 도윤은 결국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각 팀 간의 관객 수 차이가 채 100명도 나지 않았던 치열한 경쟁. 그 속에서 도윤과 태오의 팀이 2위를 차지했던 순간을.


“크으-. 역시 몇 번을 들어도 좋아. 그러니까, 리아 씨도 그렇고 다른 참가자들도 다 인정을 했다는 거 아냐!”

“···맞아요. 그랬어요.”


정말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1군 아이돌 두 명이 모인 다른 팀들을 상대로 2위를 차지하게 될 줄이야. 리아가 자신과 태오를 호명하던 순간을 떠올리니 다시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단순히 2위를 차지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만큼 많은 팬이 자신과 태오의 무대를 보러 와주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했었기 때문이었다.


“1차 경연에서도 최종 2위였고, 게릴라 콘서트에서도 2위면···. 정말 도윤이 너, 최종 우승할 수 있는 거 아니야? 2차 경연 결과는 아직 안 나오긴 했지만, 일단 그것도 상위권은 확정이잖아!”


도윤은 흐뭇한 미소를 지우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게릴라 콘서트 순위는 최종 순위 산정에는 포함이 안 되는걸요. 그리고 1차 경연에서 저랑 같이 상위권이었던 참가자들이 그대로 2차 경연 상위권 후보가 됐으니까, 아직 최종 우승을 판단하기엔 이른 것 같아요.”


도윤이 논리정연하게 대답하니 우석은 어째선지 조금 심통이 난 목소리가 되었다.


“···크흠, 흠. 도윤이 너.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은근히 논리적이란 말이지. 오늘 같은 날은 그냥 좀 좋아해도 되는 거잖아. 킁!”

“하하, 저는 이미 충분히 좋아하고 있는데요?”

“아냐. 그걸로는 부족해. 조금 더 막-! 좋아할 필요가 있어! 안 그렇습니까, 형님?”

“···엉?”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하준의 멍한 대답. 우석은 다시 한번 열을 올리며 애어른 같은 도윤의 문제점을 꼽았다.


“···또 뭔 소린가 했네. 나는 그냥, 네가 먼저 좀 철이 들었으면 하는데. 우석아, 응?”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시큰둥한 반응뿐이었다. 우석은 얼굴 한가득 억울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하준는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고 다시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도윤은 그런 하준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유한열과 이야기를 나누러 간 뒤, 자신의 촬영이 시작할 때까지 대기실로 돌아오지 않았던 하준. 그런 그가 지금 상당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한열 피디님하고 나눴던 이야길 고민하시는 거예요, 사장님?”


우석이 물었던 때와는 달리. 하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도윤을 마주 보았다. 잠깐 아랫입술을 씹던 그는 이내 큰 한숨을 내쉬었다.


“하-. 맞아. 미안하다 도윤아. 좋은 날인데, 머리가 좀 복잡하네.”

“에이, 괜찮아요. 근데, 무슨 이야길 들으셨길래 그렇게 고민하세요?”

“으음-.”


그렇게 다시 한참을 고민한 하준은 끝내 말을 이었다.


“그게 사실은···.”


하준이 오래도록 고민하던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준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우석은 흥분한 목소리가 되어 입을 열었다.


“큐넷에서 리얼리티를 찍자고 했다고요? 그거 완전히 잘된 일 아닙니까, 형님! 당연히 하겠다고 해야죠!”

“아니, 우석아. 아직 확정된 건 아니야. 그리고-”

“흥. 그깟 최종 우승은 당연히 우리 도윤이가 할 텐데요, 뭐!”


그렇게 즉답을 내놓은 우석과 달리, 도윤은 조금 전의 하준처럼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한 가지의 문제점을 찾아냈다.


“그 리얼리티···, 비트원의 리얼리티가 아니라 제 개인 리얼리티인 거죠?”


흥분한 우석에게 설명을 이어가려던 하준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서, 지금까지 이 소식을 전할지 말지 고민했던 거고···.”

“······.”


우석 역시 하준이 고민하던 이유를 깨달은 듯 잠잠해졌다. 세 사람은 저마다 깊은 생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아이돌 리얼리티, 시청률은 높지 않아도 팬덤의 기반을 닦는데 가장 효과적인 프로그램. 특히, <빗더돌>을 통해 도윤에게 엄청난 규모의 팬이 유입된 지금. 리얼리티는 분명 그 유입 팬들의 정착을 돕는 최고의 방법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팬들은 도윤의 팬으로 남을 뿐, 비트원의 팬이 되지 않으리란 것 역시 분명했다.


무명이던 비트원에서 홀로 엄청난 개인 팬을 얻게 된 도윤.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이미 연예계에는 비슷한 선례가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다.


부르릉-, 차가 나아가는 소리만이 이어지던 중.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도윤이었다.


“제가 직접 유 피디님과 한 번 이야기해 볼게요.”


그의 두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



<빗더돌>이 마지막 3차 경연 촬영만을 남겨놓은 시기. 프로그램의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큐넷 직원들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빗더돌>의 총괄 피디인 유한열의 시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 진짜 오늘 4화의 도윤이는 레전드 그 자체.

ㄴ 죽어도 여한이 없음. 행복한 삶이었다···.

ㄴ 저기요. 가기 전에 투표는 하고 가셔야죠;

ㄴ 이미 내 동생이 대신해주기로 했음.

ㄴ ㅇㅋ. 멀리 안 나감. 잘 가셈.


- 1차 경연 때는 청량미, 게릴라 콘서트에선 퇴폐미, 그리고 2차 경연에선 청량에 으른미···?

ㄴ 도윤이 자아 대체 몇 개임? 어떻게 저게 다 똑같은 사람일 수 있냐고 ㅋㅋ.

ㄴ ㅋㅋ 진짜 컨셉 소화력은 탈 아이돌급인 듯.


- 난 솔직히 지난주에 태오 무대 보고, 분명 2차 경연은 태오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었음 ㅋㅋ.

ㄴ 아니 근데 태오 무대도, 도윤이가 퍼포먼스 중간에 나래이션 넣으라고 했던 거잖음;

ㄴ ㄹㅇ. 태오한테 나래이션 파트 알려줄 땐 왜 저러나 싶었는데, 본인은 더한 걸 준비해 옴 ㅋㅋ.


3화의 방송이 끝난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4화의 방송까지 끝나있는 상황. 그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는 유한열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유 피디님도 좋으시죠?”


어느샌가 등 뒤까지 다가온 나유나. 은근히 놀리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유한열은 다급히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흠흠. 당연하지. 우리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나 작가라면 안 좋아할 수 있겠어?”

“그죠, 그죠. 그 출연자가 단 4화 만에 시청률 5%를 돌파하게 만든 주역이라면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없겠죠.”


어젯밤 방영되었던 <빗더돌> 4화의 시청률은 5.2%. 시청률의 성장세는 좀 줄어들긴 했지만, 케이블 예능이 4화 만에 시청률 5%를 넘겼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 시청률의 주역은 누가 보더라도 뻔했다.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나유나는, 문득 떠오르는 게 있는 듯 유한열에게 물었다.


“근데, 오늘 도윤 씨랑 만나기로 했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응. 연락은 저번 촬영 다음 날 받았었는데, 그나마 시간이 비는 날이 본방이 끝난 오늘이니까.”

“뭐 때문에 만나는 건데요?”

“···흠. 있어 그런 게.”


아직 도윤의 리얼리티 촬영은 백지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한철동 국장이 내건 조건은 ‘도윤의 <빗더돌> 최종 우승’. 즉 3차 경연을 채 시작하지도 않은 지금,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기엔 시기상조란 말이었다.


“아- 뭔데 그래요, 유 피디님! 저번에 도윤이 영상 받았을 때는 제가 제일 먼저 봐야 할 것 같다고 하셨으면서, 지금 와서 갑자기 이렇게 숨기기는 게 어디 있어요!”


그녀답지 않게 고집을 부리는 모습에도 유한열은 단호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니까 나 작가는 2차 경연 온라인 투표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게 좋겠어. 오늘 저녁부터 시작인데다, 기간도 이틀밖에 안 되잖아. 분명 엄청나게 시청자들이 몰릴 거야. 중요한 투표인만큼 실수가 있으면 안 되는 거, 나 작가도 잘 알고 있지?”


한 마디도 틀린 것 없는 유한열의 말에 나유나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크흠. 그럼 어쨌든, 나는 약속 시간이 다 돼서 이만. 수고해, 나 작가.”


유한열은 그런 나유나를 뒤로하고 급히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



“안녕하세요, 유한열 피디님!”

“아, 기다리게 했네요, 도윤 군. 미안해요.”

“아니에요, 피디님. 저도 방금 도착했어요.”


밝은 목소리로 힘차게 대답하는 도윤의 얼굴엔 해맑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유한열은 저도 모르게 도윤을 따라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도윤에겐 그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마력이 있었다.


“요즘은 좀 어때요, 도윤 군. 여러모로 많이 변했을 텐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크게 실감을 못 하고 있었는데, 게릴라 콘서트가 끝나고 나니까 좀 체감이 되더라고요. 정말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게 변했다는 게요. 모두 유 피디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유 피디님.”

“하하. 제 덕분은요. 도윤 군이 원래 그럴 자격을 지니고 있었을 뿐이죠.”


도윤의 이야기는 진솔했고, 또 겸손했다. 안 그래도 훈훈하던 마음에, 흐뭇함 한 스푼이 더해진다. 외모면 외모, 실력이면 실력, 거기다 인성까지 완벽한 도윤. 그런 도윤의 모습에 유한열은 오히려 미약한 괴리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순수해 보이면서도, 그런 영리한 무대 전략을 모두 직접 생각해 낸단 말이지···.’


1, 2차 경연과 파트너 게릴라 콘서트. 그 모든 무대에서 도윤은 언제나 최고의 결과만을 만들어냈다. 춤과 노래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윤에겐 ‘무대를 구성하는’ 재능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도윤에게 있어서 그 ‘무대’란, 단순히 춤과 노래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파트너 게릴라 콘서트에서 도윤이 보여주었던 퍼포먼스. 그것은 그를 향해 있던 대중의 날 선 관심을 단번에 뒤집어버리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어디서든 자신을 가장 효과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법을 알고 있어.’


쉽게 말해 아이돌을 넘어선 ‘스타’로서의 재능이었다.


그렇기에 유한열은 오늘의 만남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도윤이 과연 ‘리얼리티’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꺼낼 것인가. 아직 제작이 확정된 것도 아니건만, 유한열은 기대감이 차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 도윤 군이 ‘리얼리티’에 관해 저에게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뭘까요?”


조금 망설이는 듯 보이는 도윤. 이내 그가 깊게 한번 호흡하고는 입을 열었다.


“아직 최종 우승을 한 것도 아니면서 이런 이야길 꺼내는 게 좀 건방져 보일 수 있겠지만···. 저는 유한열 피디님께서 말씀하신 리얼리티가 저만을 위한 것이 아닌, 비트원의 것이었으면 합니다, 유한열 피디님.”

“···응?”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버린 유한열을 향해, 도윤이 다시 한번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섞여 있지 않았다.


“저는 비트원의 리얼리티가 아니라면, 리얼리티를 찍지 않겠습니다, 피디님.”


작가의말

2NE1 TV나 와일드 바니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부활하니 천재였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 +7 21.06.01 2,056 0 -
공지 21.05.29 (토) 휴재 공지. 21.05.29 244 0 -
공지 제목 변경 공지. +2 21.05.26 406 0 -
공지 21.05.18 (화) 휴재 공지. 21.05.18 571 0 -
공지 21.05.15 (토) 휴재 공지 +1 21.05.15 449 0 -
공지 연재 시각이 오후 8시 15분 -> 오후 8시 20분으로 변경 되었습니다. 21.04.20 7,686 0 -
43 에필로그 +16 21.06.02 1,996 86 3쪽
42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5) +9 21.06.01 2,823 130 12쪽
41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4) +6 21.05.30 3,285 154 12쪽
40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3) +5 21.05.28 3,798 174 12쪽
39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2) +7 21.05.27 4,031 175 12쪽
38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1) +8 21.05.26 4,652 168 12쪽
37 해후 (3) +13 21.05.25 4,635 211 12쪽
36 해후 (2) +17 21.05.24 4,970 182 13쪽
35 해후 (1) +12 21.05.23 5,245 205 12쪽
34 BeatONE is Back!! (5) +9 21.05.22 5,574 220 14쪽
33 BeatONE is Back!! (4) +10 21.05.21 5,531 192 12쪽
32 BeatONE is Back!! (3) +6 21.05.20 5,701 190 12쪽
31 BeatONE is Back!! (2) +8 21.05.19 5,827 186 13쪽
30 BeatONE is Back!! (1) +6 21.05.17 6,311 179 13쪽
29 도윤으로 (4) +6 21.05.16 6,285 173 15쪽
» 도윤으로 (3) +5 21.05.14 6,695 201 12쪽
27 도윤으로 (2) +9 21.05.13 6,881 197 12쪽
26 도윤으로 (1) +7 21.05.12 7,167 202 12쪽
25 만인의 차애에서 (5) +10 21.05.11 7,238 216 15쪽
24 만인의 차애에서 (4) +8 21.05.10 7,150 200 12쪽
23 만인의 차애에서 (3) +8 21.05.09 7,266 207 12쪽
22 만인의 차애에서 (2) +13 21.05.08 7,595 211 12쪽
21 만인의 차애에서 (1) +15 21.05.07 7,945 193 12쪽
20 주인공은 마지막에 (4) +10 21.05.06 8,036 19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