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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및 연예 리뷰


[방송 및 연예 리뷰] 자녀, 아이에게 죄책감을 강요하는 한국문화-슈퍼맨이 돌아왔다 훈장님

슈퍼맨이 돌아왔다 재방송 하는 걸 아주 잠깐 우연히 보다가 깜놀했다.


추성훈 집에 훈장님이 방문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여기서 훈장님이 무려 사랑이에게 아버지에게 잘못한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고, 이에 사랑이는 회초리를 보며 겁먹은 표정을 짓는 장면...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한국문화 저변에는 약자에게 죄책감을 강요하는 정서가 굉장히 강하게 흐르는데 그것이 아직도 효(孝)라는 유교사회 시절의 봉건적 지배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고작 만4세의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얼마나 저질렀다고 부모에게 잘못한 게 없냐고 묻는 것일까?


결국 한국인들의 아이를 대하는 이러한 태도에는 매우 폭력적인 죄책감의 강요가 있어서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젊은층이나 국민에 대한 질타로까지 이어진다.


바로 젊은이가, 그리고 국민이 노오력이 부족하고 놀기만 좋아해서 취직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애도 낳지 못하는 것이라는 질타 말이다.


아이들, 젊은층, 그리고 더 나아가 국민은 늘 노력을 하지 않는, 즉 도덕적 타락과 나태에 빠져 있을 것이라는 의심에 시달려야 한다.


결과적으로 부모라는 강자가 자녀라는 약자에 대해 의심과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도덕적 타락과 나태에 빠져 있는 아이를 응징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바른 길로 이끄는 계도로까지 추앙받게 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아동학대라는 개념 자체가 지금까지도 거의 없고, 부모의 학대로 아이가 사망해도 부모들은 늘 아이가 자꾸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는 일탈을 저질러서 이를 훈계하다보니 죽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한다.


턱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수준의 이러한 변명이 21세기 문명국가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아무리 미화를 한다한들 유교사회라는 봉건적 사회에서 자녀를 비롯한 피지배 계층은 늘 죄책감을 강요받았고 이는 지배 계층의 권력을 공고화하는데 크게 기여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하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의 역사를 톨털어 죄는 늘 윗사람이, 그리고 우리의 조상들이 더 많이 저질렀다.


120~130년전 우리의 조상들은 무능했고 나태했고 심지어 그놈의 잘난 노오력이 부족해서 근대화의 실패라는 대역죄를 저질렀고, 그래서 후손들을 식민지배 받도록 만들었다.


죄가 있다면 나라도 못지킨 조상들에게 있고, 그래서 정치와 경제, 문화 모든 영역이 21세기인 지금에까지 왜곡되어 청년들이 고통을 받는 것이다.


봉건 사회도 타파하지 못해서 식민지배를 받은 무능하고 나태하고 노오력이 부족했던 구한말의 조상들과 21세기의 대한민국 청년들. 과연 누가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그 답은 너무도 명백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이제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강요하는 작태를 최소한 TV에서만이라도 안 봤으면 좋겠다.


한국인에게 가정은 누가 뭐래도 ‘생산기지’다.


한국인에게 가정의 존재 가치는 철저히 ‘공장’이 되어 무언가를 생산해내야 하는 물리적, 정신적 공간인 것이다.


이러한 생산기지의 공간에서 자녀는 공장 노동자의 입장이 되어 사장님인 부모를 위해 착취를 당해야 하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들은 출세를 해야 하고, 돈 많은 부모를 둔 아이들은 부모가 일군 막대한 부(富)를 상속받음으로써 부모의 재산을 대대손손 백년 천년 세습해나가야 한다.


이렇게 한국의 가정은 철저히 생산 기지가 되었으니 친척끼리 만나도 관심사는 늘 생산 기지의 노동자들이 제대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지에 집중된다.


명절날 친척끼리의 대면 자리에서 공부 잘하니, 대학 어디가니, 취직 했니, 결혼 했니, 애는 언제 낳을 거니, 라는 말들이 무한 반복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의 가정의 역할은 오로지 생산 기지로 시작해 생산 기지로 끝나니 늘 관심사는 제대로 제품이 생산되느냐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 과정에서 어려서부터 주입된 죄책감의 강요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조금이라도 생산에 기여하지 못하는 자녀는 바로 불량품 취급을 받고 죄책감을 강요받으며 엄청난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물론 가정에서의 이러한 구도는 국가와 국민, 회사와 직원 등등의 사회 전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말이다.


뭐 한국사회가 극악한 이러한 사회 구조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체념을 할지라도...


그래도 죄책감이라는 아이들의 정서에 극도로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부정적인 감정까지 강요하는 모습은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다.



덧1

아이에게 죄책감을 강요하는 이러한 한국인들의 문화는 명백한 아동학대이다.


또한 편안해야할 가정까지도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억압할 수 있는지를 무려 수백년 이상 연구하고 실행해온 정치적 공간으로 전락시키는 행동이기도 하다.


최근 송강호와 유아인이 주연한 영화 사도가 이것을 어느 정도 보여줬는데, 이제서야 겨우 한국인들도 이것을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너무 늦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인들이 여기까지 오는데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하고 무려 140년이 흘렀으니 말이다.(심지어 저 위에 북한 사람들은 아직도 이것을 전혀 인지조차 못하고 있고)


그리고 더 개탄스러운 것은 아직도 한국인들의 갈 길이 멀고도 멀다는 거다.


요즘 인문학을 사회 곳곳에서 외치고는 있지만 그러함에도 아직 멀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서구의 인문학과 비교해볼 때 한국인들의 수준은 100년 이상의 격차가 있다고 해야될 것 같다.



덧2

최근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를 읽고 있는 중이다.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저절로 탄식이 나온다.


새삼 구한말을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커다란 죄를 저질렀는지 깨닫게 해준다.




덧3

최근 한국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면밀히 관찰해 보건대, 앞으로는 친일파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것 같다.


특히 을사5적, 심지어 만고의 역적으로까지 지탄받는 이완용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10년쯤 후에 이완용은 근대주의자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다.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개념을 지우고 근대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완용이란 인물은 명백히 근대주의자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에겐 국가나 민족보다도 근대화가 더욱 시급한 과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당시 역사의 흐름에서 지식인이 선택할 수 있는 올바른 길이었을 수도 있고...


2015년 한국인의 기준에서는 열불나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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