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꼬마작가하안 님의 서재입니다.

협객지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독특하안
작품등록일 :
2021.07.26 15:39
최근연재일 :
2021.08.24 06:00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27,012
추천수 :
492
글자수 :
217,572

작성
21.08.01 10:00
조회
1,041
추천
19
글자
19쪽

6화 만독파(萬毒派)

DUMMY

천아와 비슷한 키인 6척 장신에 덩치는 자신보다 더 큰 남자를 위시로 십여 명의 무리들이 몰려왔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얼굴에 수염이 수북하고, 머리도 산발인 것이 흡사 녹림패인 것 같아 보였다.


“네 놈이 감히 만독파를 건든 놈이더냐?”


제법 기개가 있어 보이지만, 내공이 충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무공을 잘 모르는 천아라지만 그는 목소리만 큰 것이지 일신의 기운이 충만하진 않다는 걸 왠지 모르게 느낄 수 있었다.


“영업 끝났는데 남의 영업장에 와서 깽판 친대? 왜 그쪽도 혼 좀 나보고 싶어서 그래?”


평생을 사창가에서 시정잡배들과 실랑이 다툼을 하며 살아온 천아였다. 비록 나이가 많진 않지만, 이쪽 분야에선 나름 잔뼈가 굵은 편이다. 모든 싸움에서 기세가 중요하다지만, 특히 이런 싸움에선 주먹보다 기세가 우선인 법이다.


“네 이놈.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내가 바로 그 유명한 만독파의 장문인인 만독신괴 왕불선님이시다. 하하하.”


그는 양 손을 자신의 옆구리에 갖다 대며 과장된 웃음을 날렸다.


‘만독신괴? 수염은 제법 많다지만, 자세히 보니 얼굴은 뭐 끽해봐야 서른이나 됐을까 싶네. 예전에 할배한테 들은 바에 의하면 만독신괴 체격도 그렇고 느낌도 그렇고 저런 놈은 아닌 것 같단 말이야. 걸음걸이만 봐도 내공도 미비한 것 같고, 무공도 형편없어 보이는 게 내가 이길 것 같은데.’


천아는 귀청을 파서 불었다.


“그쪽이 만독신괴면 나는 그 할애비겠군. 어이, 얘야, 할애비한테 왔음 큰 절부터 할 생각을 해야지, 요즘 것들, 배워먹은 버르장머리하고는!”


딱 봐도 십대 후반 정도 밖에 안 돼 보이는 청년이 비이냥거리자 화가 치솟아 올랐다.


“이놈이 어서 주워 배운 발재간 하나 믿고 까부나 본데 저, 정녕 만독신공 맛을 보고 싶은 게냐?”


천아가 바닥을 발로 툭하고 치자, 자갈 몇 개가 튀어 올랐다. 이어 이아명이 사용했던 수법을 따라해 그 자리에서 바로 뒤돌려 차버렸다. 말은 이렇다지만, 사실 그들은 천아가 자갈을 차는 걸 똑바로 볼 세도 없었다. 바닥을 발로 차는 것 같긴 했는데, 이후엔 이미 자신들이 자갈을 맞고 난 뒤였던 것이다. 그중 특히 자신이 만독신괴라고 밝힌 자는 얼굴을 맞았는데, 볼이 살짝 찢겨나가 피까지 베어 나왔다.


“으, 윽! 피? 피다. 피!! 야, 나 피났다고. 야, 니들 뭐해? 얼른 한꺼번에 쳐라.”


무리가 일시에 덤비려는 걸 본 천아는 잽싸게 방금 전과 같은 수법을 연달아 취했다.


파바바바박.


정말 전광석화와도 같은 솜씨였다. 만독파 무리가 순식간에 당한 것이다. 뒤로 나가떨어지질 않나, 코피가 나질 않나, 얼굴이 찢기질 않나... 그것도 천아가 공격한 무기는 정식 병기도 아닌 자그마한 자갈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아직 당하지 않은 무리들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오기 시작한다.


“왜 더 해보게?”


만독신괴가 잽싸게 무릎을 꿇었다.


“아이고. 천하의 소협님을 못 알아봬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천아가 코를 파며 말했다.


“야, 너 뭐라고? 만독신괴? 천하에 만독신괴가 다 얼어죽었냐? 뭐 별 것도 아니구만.”

“아이고, 저 따위가 무슨 만, 만독신괴겠습니까요. 그냥 그렇게 말하면 겁먹을 줄 알고 흉내 내본 것이죠.”


사실 그들은 동네 삼류 양아치에 불과하다. 우두머리인 자는 과거 타지방을 유랑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만독파를 본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들이 약을 파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따라한 것이었다. 나름 잘 먹혀서 벌이가 꽤나 짭짭하던 참에 천아에게 딱 걸린 것이다.


천아 역시 과거 그들보다 딱히 낫다고 할 것 없는 인생을 살아온 소년이다. 밑바닥 인생에서 확실히 우위를 잡은 이런 기회를 그냥 넘길 리는 만무했다.


“아,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내 기분 다 잡쳐놓고 그냥 넘어갈 수야 없지.”


천아가 돈을 내라는 듯이 손바닥을 내밀고는 흔들어댄다. 그들 역시 그 행동이 뜻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다. 우두머리인 자가 잽싸게 다가와 동전 꾸러미 하나를 건넨다. 그걸 받은 천아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아, 아니 왜 그러십니까요? 소협님.”


천아는 천상살명수와 똑같은 손 모양을 만들어 그의 머리통을 가볍게 내리친다. 퍽 하는 강력한 타격음과 함께 우두머리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수법을 본 일행들은 일제히 놀람을 금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상 더욱 놀란 건 천아, 자신이었다.


‘헐~ 난 그 원수 년이 사용한 내공법도 몰라서 동작만 따라한 건데, 언제부터 내 힘이 이렇게 좋아진 거지?’


사실 봉래산에서 산열매를 먹은 다음부터 엄청나게 기운이 넘친단 느낌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시험해본 적도 없고, 꼴랑 산열매 몇 개 먹었다고 없던 힘이 생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알고 보면 그가 먹은 산열매는 평범한 산열매가 아니었다. 한 개만 먹어도 상당한 공력을 얻을 수 있는 신과(神果)였던 것이다.


아무튼 결과적으론 자신조차 생각지 못한 강력한 위력으로 인해 기대 이상의 반응이 나오게 된 것이다. 나머지 무리들은 자신의 속옷 안에 숨겨뒀던 비상금까지 다 털어서 갖다 바쳤다.


‘헐~ 요것들 봐라. 숨겨 놓은 위치들도 그렇고. 이 바닥에서 어지간히 놀아본 솜씨가 아닌데?’


“그니까 앞으로 까불지들 말고, 썩 꺼져.”


의도치 않게 크게 다친 우두머리를 질질 끌고 가는 걸 보니 순간 측은한 마음이 인다.


“에잇, 의원이라도 데려가라.”


천아는 진료를 받을 정도의 돈 몇 푼을 던져줬다.


‘원래 이런데서 마음 약해지면 안 되는 법인데. 양 장로님, 그 할배 만나고 나서부터 내가 좀 바뀐 것 같기도 하고.’


제법 큰돈을 번 천아는 나름 괜찮아 보이는 객잔을 찾아가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태어나서 처음 먹는 진수성찬이었다.


‘이야, 이 집 내가 있던 기천루하곤 비교도 안 되잖아? 기천루에서 파는 고급 음식조차도 손님이 남긴 거 주워 먹거나, 주방에 몰래 들어가 훔쳐 먹어본 게 전부인데. 히히히.’


신나게 폭풍흡입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툭 치고 간다.


‘아, 뭐야. 한참 맛나게 먹고 있는데.’


복장을 보니 무림인 같아 보였다. 나이는 한 20대 중후반 정도? 단체석으로 보이는 곳으로 가더니 선배인 것 같은 자에게 한참을 깨진다.


‘쳇, 신경 쓰지 말자.’


“여기 홍소육 한 접시 더요.”


홍소육은 기천루에서도 취급하던 음식이다. 그런데 대체 고기질이 다른 건지, 양념이 다른 건지 모르겠지만 기천루와는 비교도 안 되게 맛이 좋았다. 장사가 잘 돼서 미리 만들어놓기라도 한 건지 금세 나온다. 군침을 삼키며 입에 넣는 순간, 아까 자신을 치고 간 자가 다시 한 번 툭 쳐서 떨기고 말았다.


“이, 이런. 내 홍소육. 내 홍소육! 야, 너 아까도 나 치고 간 거 참았는데, 감히 내 홍소육을 땅바닥에 떨기게 해?”


천아를 치고 간 무사가 매서운 눈으로 노려본다.


“어린놈이 어디서 남의 돈이라도 훔친 모양이지? 이런 곳에서 비싼 음식을 잔뜩 시켜놓고 먹게?”

“참 나, 남이사. 왜 부러워서 그래? 원래 부러우면 지는 거라던데.”

“뭐, 이 자식이!”


검을 빼어 들려하자, 그의 옆에 있던 동료가 제지했다.


“사제, 그만해. 사형과 사부님도 계신데. 그리고 이보게. 젊은 친구. 거 어서 난 돈인진 모르겠는데, 혼자 그렇게 잔뜩 시켜놓고 다 먹을 수나 있겠어?”

“다 먹지. 그럼. 왜 내가 못 먹을 것 같아? 이거 다 내 돈 내고 내가 시킨 거라고. 괜히 남 먹는데 방해나 하지 말고 꺼지라고.”


그들이 검을 빼어 들려고 해도 겁이 나지 않았다. 일신에서 풍기는 기운이 자기만 못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검을 빼어들려던 이가 다시 검집으로 손을 가져갔다.


“사제, 그만! 그만가지. 어린 친구. 다음에 우리 눈에 안 띠게 조심하라고. 가지, 사제.”


보아하니 그들보다 서열이 높아 보이는 이들은 자신 못지않게 풍족한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후배들을 한참이나 깨놓고 한 점 맛보란 소리도 없이 보낸 것이다.


‘쳇, 뭐하는 집단인지 싸가지가 바가지구만. 하긴 내가 저 놈 입장이었어도 배 아프긴 했겠네. 그건 그렇다고 해도 왜 나한테 화풀이야. 동쪽에서 뺨 맞고 서쪽에서 화풀이한다더니······. 내가 진짜 오늘 생각보다 돈 많이 벌어서 참는다. 아우!’


그날 밤 천아는 뒷간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는지 몰랐다. 한동안 든든히 먹지도 못하다가 갑자기 배에 기름칠을 한데다 그것도 원래 먹을 수 있는 양의 몇 배를 한꺼번에 먹었더니 탈이 난 모양이었다. 뒷간을 드나들다 보니 낯익은 이들이 연초를 흡입하며 담소를 나누는 게 눈에 띤다. 저녁 때 자신의 홍소육을 떨어뜨리게 한 놈의 선배 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거만한 표정으로 짝다리를 짚고 연초를 흡입하는 중이었다.


“하~ 요즘 살 맛 나네. 진짜 영업만 잘해도 대우가 좋아진다니깐. 이런 고급 객잔에서 맛난 음식도 실컷 먹고 말이야.”

“그러게. 꼭 무공이 아니더라도 입만 잘 털어도 대우 받을 수 있으니 여기가 지상낙원이지. 하하하.”


그들 역시 영업을 하는 모양이었다. 천아는 자기하고 상관없는 일이라 신경 끄고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날이 밝자 천아는 전날 밤을 생각하며 음식을 적당히 시켜 먹었다. 이어진 행로는 시장이었다. 자루 하나와 병을 여러 개를 샀다. 어제 길에서 주운 병보다 훨씬 고급스러워 보이는 병이다. 또다시 인근 냇가로 발길을 옮긴다. 정성스레 물을 담은 천아는 한 보따리를 들고 어제 영업을 했던 위치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한편 어제 천아가 약을 팔았던 장소에선 이미 다른 이들이 약을 팔고 있는 중이었다.


“자, 자, 여러분. 이 약만 먹으면 천하제일의 공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요. 저희가 바로 그 유명한 만독파의 제자입니다.”


분위기는 어제 사기꾼들이 호객행위를 할 때보다 못한 상황이다.


“에이. 어제도 어떤 놈들이 만독파 사칭하면서 약 팔다가 젊은 친구한테 혼쭐이 나던데?”


약장수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히 어떤 놈들이 저희 파 이름을 팔고 다닌답니까?”


약장수 일행 중 한 명이 발끈한 동료를 말린다.


“그만, 그만. 자, 그딴 거 저희는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그냥 마셔보면 압니다. 벌써 느낌부터 달라지니깐요.”


너무 당당한 태도에 구경꾼들이 갸우뚱거린다. 그러다 구경꾼 중 한 명이 구매를 하고 바로 들이켰다.


“어, 진자 뭔가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도는 것 같은데? 어제 그 젊은 친구 약보다도 효과가 빠른가 봐.”

“진짜?”


약장수들의 얼굴에 미소가 만면해진다.


“거 보세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잡것들한테 속지 마시고, 진짜 만독파의 약을 복용하셔야죠.”


이때 먼발치서 얼굴이 검푸르게 뜬 남자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이, 이거 사기야. 내가 어제 저쪽에서 이 친구들한테 사서 먹었는데 이게 뭐냐고?”


약장수들은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없이 다른 약을 내밀었다.


“손님, 그럼 천하제일의 내공을 아무나 쉽게 얻을 수 있겠어요? 보아하니 내공이 다소 부족하셔서 첫 번째 약의 효능을 감당하지 못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럴 땐 이 보완제를 이용하면 첫 번째 약을 먹은 것에 두 배의 효과가 일어납니다. 헤헤.”

“그, 그렇다고?”


그들은 직접 약을 먹어서 확인까지 시켜준다. 하마터면 흐트러질 뻔했던 구경꾼들의 이목이 다시 집중된다.

사실 그들이 1차적으로 판매한 약은 공력을 길러주는 약이 아니라 미량의 독이 들어 있는 약이었다. 그 독을 흡입한 후에 다시 독을 제거할 약을 더욱 비싼 값으로 판매하는 전략을 구사하던 것이다. 결국 중독된 이들은 큰돈을 내고 추가적인 약을 구매하거나 아니면 공짜로 구입 후에 자신들의 밑으로 들어와서 그 빚을 갚을 때까지 약을 팔아서 갚아야 하는 것이다.


이때, 한 청년이 냉큼 달려와 탁자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자, 여기까지.”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천아였다. 사실 천아는 이곳에 사람들이 몰린 걸 보고 처음에는 어제 그 사기꾼 무리들이 다시 온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와 보니 그들이 아닌 것이다. 지금 영업을 하고 있는 이들은 어젯밤 객잔에서 봤던 무리들이었다. 그 중 뒷간을 드나들 때 흡연을 하던 이들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나 참, 만독파가 유명하긴 한가 보네. 어제 놈들 이어서 또 사기꾼이야? 여러분, 어제 저 보신 분들 계신가요?”

“아, 나 봤지. 저 친구. 저 친구가 제대로더만.”

“아, 나도 봤어. 난 어제 약도 한 병 샀는걸. 이제 한 삼일만 지남 엄청난 신속함을 얻을 수 있다고. 하하하.”


어제 천아를 본 이들이 호응을 했다. 그럴수록 약장수들의 미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이, 이놈은. 어제 일미객잔에서 봤던 그 놈이로구나.”


천아 역시 그들이 누군지 알아본 터라 찡긋하고 윙크를 날렸다.


“거 내가 쪽은 안 드릴 테니 조용히 가슈. 여기 내 영업장이니까 방해하지 마시고.”


약장수 일행이 일제히 검을 빼어 들었다.


“뭐라? 감히 만독파에게 대항하겠다는 것이냐?”

“하... 나 참. 거 만독파 좀 그만 팔아먹읍시다. 이건 뭐 개나 소나 다 만독파래.”


약장수 중 한 명이 손에 들은 검을 신속하게 뻗었다. 천아 역시 생각 외로 예리한 공격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선다.


“어제 놈들하곤 다르네. 나름 그래도 뭐 좀 배웠다 이건가? 좋아. 내가 제대로 좀 보여주지. 여러분, 오늘 제가 어제보다 더한 것을 보여드리죠. 대신 약값이 오늘은 어제의 두 배예요.”

“에이, 그건 너무 비싼 거 아닌가?”

“그래요? 내일이면 또다시 두 배로 뛸 건데요? 비싸다 싶음 빨리 사셔야죠.”

약장수들은 천아가 자신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자 일제히 검을 날린다. 구경꾼들은 잽싸게 뒤로 물러섰다. 천아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빠른 몸놀림으로 자루 안에 들어있던 약병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약장수들이 올려놓았던 약병들은 다 치워버리고.


“이런 미친. 지금 이게 얼마치인데. 죽고 싶냐?”

“글쎄.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겠지?”


천아는 포대자루를 들고 현란하게 움직였다. 이는 바로 양지운의 독문절기인 수조공의 수법이었다.


“꼴랑 무기가 포대자루더냐? 세상에 포대자루를 무기로 쓴다는 소린 들어본 적이 없다.”


실제로 무림 천하에 다양한 무기가 있다지만 포대자루를 무기로 쓰는 이는 전무하다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아직 무림 견문이 짧네. 짧아. 개방의 4대 장로라고 들어는 보셨나?”


약장수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


“그러고 보니 4대 장로 중 한 명이 무슨 포대자루인가를 쓴다고 하는 것 같긴 하던데.”

“야, 그렇다고 쟤가 4대 장로겠냐? 딱 봐도 많아 봐야 스물도 안 되겠구만.”

“하긴 그렇지 뭐. 요즘 하도 사기꾼도 많고 하니.”


천아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거 싸우려는 사람들 다 어디 가셨나? 솜씨야 겨뤄보면 알 거고.”


천아는 최근 자신감이 충만해있었다. 양지운의 수조공을 직접 시험해볼 수 있는 첫 실전이라 기대감 또한 더욱 높았다. 약장수 무리 중 한 명이 선공을 취해왔다. 날카로운 검이 예기를 뿜으며 뻗어온다. 천아는 오른 손으로 포대를 크게 휘둘러 상대를 한쪽으로 몰은 뒤, 왼 손은 갈고리 모양으로 만들어 파고들었다. 이는 수조공의 맹호격수(猛虎擊手)라는 초식이다. 원래대로라면 포대는 상대를 한 쪽으로 모는 용도였는데, 어찌나 빠른지 피할 새도 없이 포대에도 맞고, 왼 손에까지 맞고 말았다. 천아에게 가슴팍의 전중혈을 부근을 강타 당한 것이다. 만약 정확히 전중혈을 맞았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상황이었다. 천아가 정식으로 무공을 배운 적이 없기에 정확히 전중혈을 노리지 못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는 그런 줄도 모르고 천아가 손에 사정을 둔 것이라고 착각하고 만다.


이어 두 명이 덤벼드는데, 포대자루가 조금 전보다 더욱 빠르고 현란하게 난무하기 시작했다. 난무유인(亂舞誘引)이라는 수법으로 포대가 현란하게 움직이며 상대를 유인하는 수법이다. 이는 양지운이 이아명을 상대하며 반격을 시도할 때 사용했던 초식으로 수조공의 3대 절초 중 하나다. 현란한 포대의 움직임에 놀아나 어쩔 줄 몰라 하자, 남은 한 명이 동료를 돕고자 검을 뻗어 들어온다. 천아는 이어서 팔공칠허(八攻七虛))라는 초식으로 세 명을 상대로 8개의 변초를 날렸다. 원래는 여덟 개의 변초 중 일곱 개의 허초와 한 개의 진초가 있는 것인데, 워낙 실력 차가 나다보니 이들은 여덟 개의 변초에 모두 당하고 말았다.

네 명이 모두 쓰러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구경꾼들로 하여금 천아에게 찬사가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당연히 오늘 판매는 대박, 매진이다. 하다못해 천아의 솜씨를 본 구경꾼 중 한 명은 그 포대자루를 자기한테 팔라고까지 했다. 이건 미처 천아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내가 사기치려는 것도 아니고, 비싼 돈 주고 굳이 사고 싶다는데 안 팔 것까지야 뭐. 히히.’


천아에게 당한 일당들은 분했지만 그래도 천아가 손에 사정을 두어 급소를 피해줬단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가, 강한 녀석이지만, 그래도 인의를 아는 녀석인 것 같아.”

“그, 그러게. 난 아까 전중혈 맞았으면 이미 세상 떴을 지도······.”


오늘의 매상은 어제의 열 배도 넘었다.


‘이야, 이거 복수고 뭐고 그냥 장사나 하면서 편하게 놀고먹고 지낼까? 이런 식으로만 장사 되면 하루, 이틀 일하고선도 한 몇 달씩은 맛난 거 먹고, 좋은 거 입으면서 놀기만 해도 돈이 남아돌겠는데?’


천아의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갔다. 돈뭉치만 한 보따리라 정리하는데도 한 세월이다. 행복한 노동이란 이런 것일까? 아마도 자영업을 해본 이들은 알 것이다. 장사가 대박 난 날.


한참을 정신없이 돈 정리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어떤 놈이 감히 우리 만독파의 영업을 방해하는 게냐?”


‘이건 또 뭐야? 어제랑 똑같은 상황이잖아. 하여튼 봐주면 안 돼. 원래 아예 병신을 만들어버리라는 말도 있는데, 내가 마음이 약해서 탈이라니깐. 근데 이건 뭐지?’


온몸에 진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7척에 가까운 키에 250근은 나갈 것 같은 큰 체격의 남자가 눈에 띤다.

그 남자의 한 손에는 자신에게 당한 네 명이 들려 있었다.


***


작가의말

무명 작가에게 선작, 추천,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협객지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시즌 1 종료 예정 +2 21.08.21 319 0 -
35 14화 영혼동자술 (4) +4 21.08.24 465 5 13쪽
34 14화 영혼동자술 (3) +2 21.08.23 400 4 13쪽
33 14화 영혼동자술 (2) +4 21.08.22 435 7 12쪽
32 14화 영혼동자술 (1) +2 21.08.21 445 8 15쪽
31 13화 엇갈림 (4) +4 21.08.20 444 9 11쪽
30 13화 엇갈림 (3) +2 21.08.19 433 9 12쪽
29 13화 엇갈림 (2) +2 21.08.18 462 8 11쪽
28 13화 엇갈림 (1) 21.08.17 466 7 16쪽
27 12화 오해 (4) +4 21.08.16 496 8 13쪽
26 12화 오해 (3) +4 21.08.15 519 10 14쪽
25 12화 오해 (2) +2 21.08.14 522 9 12쪽
24 12화 오해 (1) +4 21.08.13 541 11 12쪽
23 11화 얼음 소녀와의 재회 (4) +2 21.08.12 544 12 15쪽
22 11화 얼음 소녀와의 재회 (3) +2 21.08.12 556 11 13쪽
21 11화 얼음 소녀와의 재회 (2) +5 21.08.11 574 13 13쪽
20 11화 얼음 소녀와의 재회 (1) +4 21.08.11 592 12 15쪽
19 10화 개방 방주 살인 사건 (5) +1 21.08.10 588 13 12쪽
18 10화 개방 방주 살인 사건 (4) +4 21.08.10 607 15 12쪽
17 10화 개방 방주 살인 사건 (3) 21.08.09 672 11 12쪽
16 10화 개방 방주 살인 사건 (2) +2 21.08.09 646 12 14쪽
15 10화 개방 방주 살인 사건 (1) +2 21.08.08 708 14 12쪽
14 9화 추녀와의 악연(?) (3) +4 21.08.08 722 14 14쪽
13 9화 추녀와의 악연(?) (2) +4 21.08.07 771 11 18쪽
12 9화 추녀와의 악연(?) (1) +8 21.08.06 802 15 14쪽
11 8화 동상삼몽(同牀三夢) +10 21.08.05 802 14 13쪽
10 7화 입문? (3) +8 21.08.04 811 16 18쪽
9 7화 입문? (2) +2 21.08.03 839 16 12쪽
8 7화 입문? (1) +8 21.08.02 942 19 14쪽
» 6화 만독파(萬毒派) +10 21.08.01 1,042 19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