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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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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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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오이디푸스의 회상 2

DUMMY

오이디푸스의 회상



오이디푸스 : 부은 발. 그리스 테베의 왕



난 너희들을 비웃었어. 웃기니까. 누구나 자기 세상이 오리라 꿈을 꾸지. 사랑도 행운도 기대해. 아직도 그런 거 믿어? 너희는 폼을 잡다가도 댄스곡을 흥얼거리고, 가사라곤 사랑 이별 몸을 졸라 흔들어. 그럴 동안 난 내가 왜 태어났고 여기 있는지,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물었다. 중학교 1학년부터 진심으로 의문했어. 우주는 바깥이 있는가 의문했어. 빅뱅 이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존재하는 공간으로 만들며 팽창해 나간다는 것이 내 의문이었지. 왜? 그 팽창 안에 나도 있으니까. 현재.


아직 시작하다 만 것 같아. 장대위님. 강하고 믿을만한 분이지만 너무 인간적이셔. 6인 팀에서 네 명을 버리고 온 것에 죄책감. (뭘 버려. 그럼 대신 죽어?) 어차피 우린 비파곶부터 죽은 목숨이었어. 작전성공이 아직도 믿기지 않아. 비파곶 돌산에 두 명이 안착했을 때 난 꿈인가 생신가 했어. 접지 후에 곧바로 뒈지는 상상을 했으니까. 우리의 성공에 발맞춰 팀은 갈라졌고, 그건 팀장 책임이 아냐.


난 새롭게 고쳐지지 않아. 어려서부터 암각화처럼 조각돼 현재에 이르렀고, 바위는 모래로 흩어졌다가 다시 뭉쳐지지 않아. 40은 넘어서 볼 걸 어려서부터 봤어. 내 안의 악마는 항상 지금 같은 상황을 바랐지. 주먹이 폭력이면, 주먹으로 사람 때려죽여야 폭력이지. 진짜 폭력은 군인이지, 전쟁이지, 5대대를 보니 보름 만에 짐승이 됐어. 사람이 살기 위해 어떤 지랄도 할 수 있다는 거 믿어. 이제.


하나 남은 연막탄. 이걸 뭐 하러 달고 다녔지.


딱! 치이이이이익...


‘아 씨... 이거 딸 때 기분 좋아.’


몽실 몽실 회색 연기...


나도 깠다. 여깄다. 내가 보이냐.


이 몸이 가진 한 발을 너희들에게 쓰기로 결정했다.


마지막 발은 서서쏴로 간다.


너희들 엎드려. 은폐 엄폐로 크기를 줄여. 난 참외 만한 탄착점을 원한다. 큰 거 누가 못 맞춰! 인생은 쇼부를 치려해도 기회를 주지 않아. 주인공인 줄 알았더니 기승전결이 없어. 사필귀정은 장터국수로 말아 먹었나 없고. 결론 : 쇼부는 기다려서 안 온다. 내가 만들어야 한다.


뭐니 그게. 은폐 엄폐 몸 크기 줄여. 너무 큰 건 맞춰도 만족감이 없어. 거리 550, 자, 난 넓은 데로 걸어 나간다. 50m 이상 줄여준다! 니들이 7.62mm로 저격훈련 제대로 했으면 한 탄창으로 550을 못 맞춰? 드라구노프? 쏴. 난 급하게 안 한다. 내가 원하는 정자세 서서쏴로 참외를 고르겠다.


마지막 주황색 녀석. 삽탄, 마지막 볼트 액션. 총아 수고했다.


기계의 여러 모서리 걸리는 곳들이 철커덕 척척 소리를 내며 총알을 약실로, 총알로 약실에 안착했다는 느낌이 손에 온다.


연막 때문에 잘 안 보이냐?


그래 연막 앞으로 더 나가 줄게...

됐지?


스코프 상하좌우 레버 모두 중앙.


왼발 앞으로, 왼쪽 어깨는 표적을 향해, 적당한 보폭에 왼발 엄지도 목표 - 뒷발은 앞발에 45도 오른쪽. 골반을 앞으로 약간 밀면서 상체를 뒤로 밀어. 왼팔 접어 몸통에 붙이고, 왼손 주먹에서 엄지와 약지만 기립해 그 중간에 총열덮개를 껴. 개머리판 어깨 정위치. 오! 올림픽. 볼 살을 개머리판에 3회 좌우로 애무하면서 안착!


오, 쏘네!


이 흐린 날 동그랗게 번쩍이는 총구섬광 아름답네. 몇 개야 저게.


푸하하. 근접탄이 없어! 풍악을 울려라. 이 봐 동무들. 그거이 엄폐야? 머리 끝 손끝 군화 다 보인다. 각개전투 안 해봤어? 흙 무더기 뒤에서 태아처럼 완전히 오무려. 훈련이 아냐. 튀어나온 손과 발은 쏘고 싶지 않아. 한 발 남았다고. 머리통이 짜장면처럼 땡겨. 어리바리한 놈들. 꿩이 흙에 대가리 박고 제 눈이 안 보이면 상대도 못 볼 거라는 새대가리. 누구냐. 낮은 계급은 비켜봐.


제법 붕붕거리며 근접탄 오네. 배고프다. 이 북쪽 땅에서 평균 체중 이하로 떨어졌다. 따슨 밥에 고추참치 하나 따서 비벼 먹고 싶다. 며칠을 굶었나 모르겠다.


딱!

센데? 제법 가까워졌어.


7.62mm 탄두가 바로 옆의 벽이나 나무를 때리면 야구방망이로 갈기는 정도의 충격이 전달된다. 밀고 온 공기 파장과 운동에너지가 있다. 5.56mm도 많이 안 다르다. 조준경으로 내 탄두에 맞는 사람을 보면 확실히 살이 밀린다.


총에 맞자마자 죽어서 쓰러지는 게 아니다. 탄두의 운동에너지는 휘두르는 야구배트 정도 된다. 쓰러지는 것보다 탄이 치명적인 곳에 들어가야 한다. 어설피 맞았더라도 대동맥을 건드려 피를 뿜지만, 맞아 쓰러졌다가 종종 깨어나지. 그래서 확인사살이 필요한 거고, 폐나 머리 정확히 1발로. 내 탄두의 삽입이 잘 안 보였거나 탄착이 복부 한복판일 경우, 2탄이 가능하면 머리에 확인해주지. 특히 계급이 높을 때...


어? 쓸 만한데.


저놈이 일어섰어. 한 놈 더? 오예! 합이 셋.


조준경 달렸어. 정면이라 기종은 몰라도 저격총이네.


군관 명령이냐 자의적인 총력투쟁이냐. 뭐 어찌됐건.


셋 중, 누구!!!

누가 갈래???

좌로 번호 해봐.



‘처음에 정말 무서웠어. 스코프로 심장을 조준했을 때, 그리고 적중했을 때. 그전에는 몰랐어. 그냥 사격훈련 타켓보다 약간 갸름한 그림자였을 뿐. 그러나 상대 가슴의 양쪽을 구분해 심장을 노렸고, 적중했을 때. 처음으로 처음 느끼는 살인의 전율? 죄책감? 잔인? 그게 왔어. 날카로운 송곳이나 드라이버로 그 사람 심장을 내 손으로 쑤신 기분이야. 맞추고 걸으면서 정말 덜덜덜 떨었어. 걸음을 못 디딜 정도로. 혼자였으니 덜 창피해 다행이지.’


‘그러나, 또. 왔어. 무감각의 적응. 내가 이상한 놈이긴 한 가봐.’


이제 알 것 같다. 그녀는 기댈 것이 없었어. 반지하 작은 집. 큰 비가 와서 허리까지 침수가 되었던 청량리. 좁다란 서민들의 골목을 나와 길 따라 올라가면, 청량리역에서 나오는 열차가 밑으로 지나가는 다리. 내리막이라 신호만 풀리면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그 다리 위에서 춘천을 오가는 열차들을 바라봤다. 그때가 초딩 몇 학년이었지? 서울은 넓다던데 난 왜 이 우중충한 동네에서 맨날 왔다 갔다 하는 걸까.


이제 알 것 같다.

그녀는 무서웠다.


남편은 죽었고, 현실적으로 ‘두려운 가장’이 되었으며 어린 딸과 아들이 먹고 재워 달라 매달린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세상에 겁이 많았다. 서른 갓 넘어 과부이자 두 아이의 엄마란 짐. 고향이 영남의 전통 도시, 옛일곱은 되는 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선천적으로 총명하면서 예민했다. 그런 그녀가 받은 짐은 어마어마했다.


매일 무서웠다. 부모 오빠 언니들로부터 막내로 귀염 받고 자란 여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가장. 나가서 뭐라도 해야 한다. 집 밖에선 강해야 한다.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녀는 선천적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지 누굴 지킬 강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다닥다닥 붙은 서민들의 열 평도 안 될 집들의 와중에 그 ‘집’. 도둑도 있고 술주정 소리가 들리는 밤이면 그녀는 무서웠다. 내 발을 만지는 건 그녀의 인고였다. 공포의 감내였다. 처음에는 누나 발도 만졌으나 어느 틈에 내 발을 주로 만졌다. 그래도 아들이라고...


그녀는 아예 세상이 무서웠다. 그럴 때 내 발을 잡는다. 어루만진다. 작고 아담한 내 발에 얼굴을 대고 공포를 잊는다. 가끔은, 발에 닿은 그녀의 얼굴이 흔들리고 습기로 차갑다. 이불이 크게 들썩일 때도 있었다. 다가오는 공포를 어둠 속 내 발이 버텨주고 있었다. 발, 자식의 발. 아들의 발.


한번은 잠결에 그녀의 읊조리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내 발을 만지며 하는 소리였다.

“듬직해...”



내 발을 매만지던 손. 그걸 내가 그리워하나?... 뭐 기억은 나니까. 그건 그녀에게 어떤 것이었을까... 만지던 사람 말을 들어봐야 어떤 건지 알겠지. 그리스 희곡의 오이디푸스는 ‘부어오른 발’이란 뜻이다. 온종일 돌아다니며 부어오른 발이 내 발을 만지나? 내가 그 부은 발을 만져줬어야 했어. 단 한 번이라도 주무르고 싶다. 그녀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갑자기 인생이 아름답네. 더럽게 아름다운 꿈이야. 내 안의 악마가 천사로 옷을 갈아입고.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가 나만 비춘다. 다른 등장인물은 하나도 없이 나만의 무대. 모든 사람이 꿈꾸는 걸 지금 내가 이룬다. 짙은 화약 연기를 내는 커스텀 총질은 아니지만, 내가 대지에 서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내가 숨 쉬고 심장이 쿨럭대는 것이 창조다. 내가 오이디푸스다. 나는 고난의 인간이며, 고로 세상에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이다. 위험에 직면하기 꺼려 하는 너희들이나 행복 졸라 개 빨아라. 지금 대지를 디딘 내 발은, 나 처음 형성되어 들어가 있던 자궁의 주인이 애지중지하고 듬직해 하는 발이다. 그건 나에게 우주였다. 제길,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다니. 아름다운 건 역시 통속적인 것이 아니지 않아.


“태양이 내 뒤에 있어서 안 보이냐? 미안하다. 습관적으로 등에 해를 졌다.’


서서쏴..

눈 껌뻑이지 말아.


근육에 불필요한 힘주지 말고, 온도와 냄새를 받아들여. 나는 양강도의 오이디푸스. 왕족은 아랫것들 총구 섬광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래, 그림을 완성한다. 보고 있을 뿐 방아쇠를 느끼지 않는다. 당기는 건 구령으로 하는 게 아냐. 언제 당겨지는지 나도 모르고. 절차만 수행할 뿐, 방아쇠를 당기는 건 초보나 하는 거다. 과정에 들어서면 알아서 나간다.


그래. 용감한 너희들 중에 중앙. 너!


550이야 이, 뭐하냐. 경운기 모냐. 날 막아봐. 가운데 있는 너의 총구 화염을 보고 나서 내 총이 나갈 거야. 명주실 같이 가느다란 숨으로 기다려주지. 커스텀을 완성할 마지막 기회를 너에게 주마. 너 아직 늦지 않았어. 엎드리고 싶으면 해! 나도 늦지 않았지. 도피-탈출해도 돼. 하지만 난 안 가. 이유. 그냥...


차암 나란 인간 말 존나 많어. 뭔 감성팔이야. 수송기 타는 순간 우리가 죽는 거 모르는 놈도 있었나? 막상 닥치니 살고 싶나? 몰라 씨. 내가 뭐 하러 날 평가해!

늦지 않았어. 다만 늦지 않았어.


Our life......

together...

Is so precious,

together.

We have grown,

we have gro~~wn...


Although our love,

is still special.

Let's take a chance and fly away

Somewhere alone...


Starting over.

Starting over.


섬광. 고마워.


You gonna die

Fucking, Starting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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