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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3.25 12:00
연재수 :
360 회
조회수 :
215,052
추천수 :
6,585
글자수 :
1,973,077

작성
22.12.26 12:00
조회
309
추천
14
글자
12쪽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7

DUMMY

그때 저 반대편 두 사람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한 사람은 벽에 등을 대고 있고 한 사람은 지혈을 하는 듯 몸체를 누르고 있다. 벽에 등을 댄 사람은 괜찮다는 듯이 자꾸 뿌리치면서 팔을 접어 권총 총구를 하늘로 들고 있다. 그러면서 지혈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반복해서 계속 강조하고 있었다.


벽에 등을 댄 사람은 계급장을 달지 않았으나...중좌. 5대대장이다. 난 그 장면을 잠시 멈춰 한동안 바라보았다. 사람이 참... 사람이 참 대단하다. 누구나 똑같겠지만 대단하다. 저 5대대장, 체육대회에서 다른 대대장들은 발광하는데, 혼자 숙연히 앉아 지휘하면서 결국 종합우승을 가져갔고, 우승을 예상했던 우리 대대는 초상집이 되었었다.


‘이제 무슨 상관이냐. 지금은 내 직속상관이다.’


중좌의 모습을 보고 난 차분해졌다. 떨리고 춥지만 기분 나쁘지 않다. 준비? 그래... 그래... AK 탄창을 제거해 총알을 셌다. 세 개. 약실 포함 네 개. 내 정겨웠던 친구 특전조끼에서 마지막 탄창을 꺼낸다. 뺀 탄창에서 실탄을 꺼내 마지막 탄창에 세 발을 우겨넣었다.


떠오른다. 원한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담배, 그리고 더블백에 쑤셔 넣고 온 내 베레모. 베레모가 무엇이냐. 그냥 멋일 뿐이지. 이 현장이 베레모다... 무적의 사나이? 항복하지 않고 싸우면 누구나 무적이지. 죽어도 진 건 아니잖아?... 그럼 무적이지 뭐. 하하하... 웃기다. 맞아. 군대는 세뇌지. 군가 가사 대로 가는 거야. 그렇게 불러제꼈는데 그렇게 되는 거지 뭐. 불만 있어? 고독의 사나이...



저 밖에서 외치던 소리가 점차 조용해진다. 수상하다. 이제 다가온 시간. 공기가 어지럽게 교란하며 놈들이 온다. 다시 로켓이 무자비하게 쏟아지고 기관총이 불을 뿜어 공장 공간을 채우며 저 뒤로 날아간다. 내 눈 앞에 수평으로 선을 죽죽 그으며 날아가는 예광탄. 입이 벌어진다. 장관이다. 녹음해서 어디 쓰고 싶다. 기계톱 같은 저 소리. 탱크가 온 거야? 구경 엄청 굵다. 대공화기 아니면 탱크 동축기관총? 그림자들이 뛰어 들어온다. 다시 총구를 들어 조준... 조준...


그렇게 20초? 이제 알았다. 나 총알이 없다. 총이 가동을 멈추고 입을 헤~ 벌렸다. 몸에 더 이상 수류탄도 없다. 아무리 둘러봐도 떨어진 총이 없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총을 놓고 대검을 뽑는다.


그때, 내 인생에서 가장 처절한 절규의 음성을 들었다.


“뱀 사 골~~~!!!”


무분별하던 내 정신이 번쩍 뇌리에서 뭔가 끄집어 올린다.


뱀사골... 그건 5대대장이 하달한 작전계획 제일 마지막에 있었고,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생각하지 않고 흘려들었었다. 뱀사골... 이 상황을 너무나도 똑같이 규정하고 있었다. 5대대장이 규정한 명령어...


뱀사골은 [돌파. 도피탈출]로 기억하라 했다.


만약 우리가 내부 파괴에 성공하고 입구에서 돈좌되었을 때, 우리가 전멸이란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모든 것이 그렇게 그렇게 될 때를 위한 마지막 명령. 고함을 듣고 저 앞에 누군가 조용히 AK에 착검하는 게 보였다. 착검하고 싶지만 난 우리 대검에 AK, 궁합이 안 맞는다. 마지막으로 썼던 북한 총검 급해서 못 뽑고 그냥 왔다. 그 흔하던 아카보 총검 하나 없다니 씨.


“뱀! 사! 골~~~!!!”


가마골을 세 번째 외칠 때 모두 일어나 밖으로 뛰는 거다. 밖으로 나가면 각자 알아서 분산탈출이라고 5대대장은 전달했었다.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근처 산 하나만 재집결지로 규정했다. 그래. 가능할 수도 있다. 우린 모두 북한군복을 입었고 지금은 바깥은 밤이다. 밖은 안 보다 컴컴하고 북한군복이 뒤섞이는 거다.


목소리는 대대장이 아니었다. 대대장이 누구에게 명령을 수행시킨 것이다. 뱀사골 두 번. 5대대장 쪽을 보니 당신은 못 일어난다. 권총을 수평으로 들고 있고, 옆에 지혈하던 사람도 AK에 착검하고 무릎쏴 자세, 대대장이 왼손을 그 사람 어깨에 얹고 있다.


다다다다다다 기관총과 펑펑펑펑 로켓과 수류탄. 북한군이 공격 직전 마지막 사격을 퍼붓는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리고 이어 발자국 소리들이 들리더니 북한군이 돌격해 들어오기 시작한다. 사방에서 강렬한 반딧불이 수도 없이 번쩍이고, 뛰는 그림자가 날 통과한다. 명령어를 구령한 사람은 바로 대대장을 지혈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일어나면서 마지막으로 커다란 고함을 지른다.


“뱀~삿~꼴~! 가자~~~!!!”


그림자들이 밖에서 뛰어 들어오고 총성과 폭음이 가득 찬 가운데, 갑자기 우리 주변에서도 그림자들이 일어나 밖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가자~~~!!!”


“가자고~~~!!!”


“돌격 앞으로~~~!!!”


"가자, 공수의~ 건달들아!!!"


내 뒤쪽에서도 앞으로 나간다. 그림자 두 종류,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서로 교차하고 있었다.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그림자들 손에 들린 총에는 착검. 그것 외에 양쪽 그림자는 동일한 군복과 총 때문에 똑같다. 뛰는 방향으로 피아 아를 구분할 뿐. 총성과 함께 고함 비명과 절규의 욕설들... 마음 같아서는 나도 일어나 뛰면서 교차하는 한 놈 대검으로 박아주고 밖에 나가고 싶다. 다리가 안 된다. 분하다. 그리고 난 빌었다. 뛸 수 있는 사람은 뛰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나가! 제발... 하나라도 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뛰지는 못해도 그래, 나도 일어서자. 일어서자. 다짐하며 상체를 앞으로 굽히며 용을 썼다. 그리고 다음 순간, 교차해서 들어온 그림자 하나가 바로 내 앞을 지나치다 멈췄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선형이 아닌 정말 동그란 대형 섬광이 내 눈 앞에서 펑펑펑펑 터진다. 사진관인가? 눈이 멀고 내 앞에서 갈긴 놈의 그림자가 안 보인다. 나에게 맞은 놈도 이런 걸 봤겠지...


맞았다.


한두 발이 아니다.


드디어 나도 맞는구나.


몸이 뒤로 확 밀리며 머리가 텅! 천장이 보인다. 내가 떠들기 시작했다. 내가 입으로 뭔가 떠들고 있으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내가 떠들고 내가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 방언처럼 떠드는 날 내가 보고 있다. 따스하다. 모처럼 따스하다. 산중의 고독과 허기와 추위...


오늘은 저 뒤에 큰 불, 전쟁이 길어진걸 뭐 어쩌랴. 짜장면에 소주 한 병 불었으면 좋겠다. 별 거지 같은 나라를 상대로 싸우다가 산중에서 우리도 이 놈들과 같은 거지가 되었다. 원 더러워서.


나는 맞았고 떠들고 있다. 안면에 힘을 안 주는 걸 보니 욕은 아닌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난 무슨 말을 떠들고 있는가. 한스러운가 인생이? 인생이란 말이 인간이 만들어낸 말 중에서 가장 개 같은 말이야. 자꾸 의미를 찾으라고 날 압박해. 인생이란 단어가 여간 좋지 않아. 앞에 쓰러진 놈은 인생 아니고 나만 인생이냐? 자각은 못해도 벌레 역시 인생은 있어.


따스했다. 그러나 이제 추워진다. 얼굴 피부와 어깨 하나 정도 외에 감각이 없고 춥다. 고개를 돌려 대검 쥔 손을 보니 그대로 있다. 그러나 그립의 감각이 없다. 팔을 움직일 수 없다. 치아가 다다다다닥 아래위로 때린다. 어디서 내 피가 새나가고 있는 거다. 소리가 멀어진다. 섬광은 보이는데 음향이 없어 무성영화처럼 보인다. 몸을 돌리고 싶은데 말을 안 듣는다. 천장. 거기서 두 명이 아래를 향해 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막 수류탄까지 밑으로 투하한다.


‘흐흐 새끼들... 너희도 이제 로프 타고 나가라고...’


이렇게 못할 줄 알았다. 무서워서 도망갈 줄 알았다. 똥을 한 바가지 쌀 줄 알았다. 삽질하다 총 맞아 뒤질 줄 알았다. 그러나 사람이 하긴 하는구나. 아무리 막아도 할 거는 있구나. 사람이란 참 바쁜 존재야. 뭘 안 하면 사람들이 자꾸 물어봐. 왜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냐고.


꼭 뭘 하고 있어야 돼?


꼭 꿈이 있어야 돼?


되지도 않을 꿈을 하나씩 품고 존나 삽질하는 게 우습지 않아? 난 꿈 없어. 내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바로 지금의 꿈이야. 우리 일상이 기쁨이고 꿈일 뿐이야. 더 큰 건, 그걸 갖고 싶은 더럽고 악랄한 놈들에게 맡겨. 그들이 그걸 위해 자기를 부정하는 걸 보는 재미로.


난 30초 뒤를 꿈꾸고 30초 지나면 이룩해. 내 꿈은 30초마다 새롭게 살아 생성돼. 내가 짱이야. 내가 지존이야. 내가 홀로 고독한 길을 가는 인간의 표상이야.


알았냐 이 자식들아.


나와 상대했다는 것이 너희들 평생의 자랑이 될 것이다. 차렷! 받들어 총!... 해봐! 니들 하는 거 있잖아! 턱 도도하게 들고 눈물 질질 흘리면서


받들어~~~총!...


바로 이게 너희들과 다른 민주주의 자본주의야. 우린 자본주의 타락을 즐기는 날날이 영혼들이지. 우린 높은 그 어떤 놈도 존경하지 않아! 우린 우리 각자가 대통령이자 어떤 어머니의 아들이야. 우린 하나하나 귀중해! 부럽지!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대인 같은 불쌍한 빠가야로들아, 바기나로 담배나 빨아라 삽질...


춥다. 떨린다. 소리가 귀에서 페이드아웃... 멀어지고, 천장에서 쏘는 섬광이 시야에서 번진다. 나는 누구일까. 난 누구야. 어디로 가는지는 궁금하진 않지만 내가 누군지는 아무리 바빠도 궁금해. 이대로 존재가 끝이라면 그런 존재들 더 못 죽인 게 한이다.


블랙아웃이 내 시야 동그란 가장자리에서 번져 안으로 물들어 온다. 기분 좀 더럽다. 한 마디라도 내뱉고 싶다...


거대한 폭음이 마지막으로 울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가늘게 한쪽 눈을 떴더니 파란 하늘이 보인다.


고요하다. 간간히 말소리만 들린다.


눈동자도 움직이기 힘들다.


눈을 떠 지속할 힘도 더 이상 없다.


모자 신발 조끼 총 대검 모든 게 내 몸에 없다.




난 누워 있다. 내 옆에도 누가 누워있다.


그런데 내 옆에 붙은 사람은 얼음장처럼 차갑다.


옆 사람 때문에 붙어 있는 내 몸이 얼 것 같다.




난 아직... 인가? 곧... 인가?


다시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건가.


나도 모르게 다시 눈이 감긴다.


미련 없다. 즐거웠다. 좆도.




한 명이 뛰었다.

두 명이 뛰었다.

삼삼오오 뛰었다.

대위도 뛰고 하사도 뛰었다.

소령도 뛰었다.


가는 목적지에 분명 거대한 무엇이 있다는 걸 안다. 그 거대한 것이 사령부 최후명령일지 모르지만 바삐 발을 옮기며 뛰었다. 2개 대대 합해서 사실 100명은 넘었을 것이나, 이 명령을 모르는 사람도 존재했다. 나중에 알게 되면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겠지만, 어쩌면, 그들도 다른 방식으로 싸우다 어차피 요단강 건너 만날 것이다.


게릴라들은 무엇을 정확히 하라고 할 때가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만족스럽다. 그게 없이 지속될 때 너무 힘들다. 그 누구보다 게릴라는 전황이 궁금하다. 누구보다 게릴라는 전쟁의 승패를 원한다. 지지부진하게 습격하고 그걸로 먹고 총알 채우면서 기분 더러웠다. 그래서 이들은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뛴다.


스산한 날씨에 우연히 뒤집은 무인포스트에서 글귀! 가슴 설레는 뭔가를 보았다. 전문을 받은 사람들은 뛰었다. 산새도 나무도 그들이 왜 뛰는지 몰랐다. 하긴, 인간이란 놈들이 어디 머무는 존재는 아니니까. 그렇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다...


그리고......




정든 우리 헤어져도


다시 만날 그 날까지


자아,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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