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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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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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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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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6

DUMMY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생각난다. 갱상도 여자 답게 말은 거의 군대 명령처럼 강한 단발에 성격 터프한데 된장국은 압권이야. 딱 된장국만 그래. 내는 씨부럴탱탱구리 산만한 놈이었어. 입대해서 정신 차렸지.


이 놈은 정말 어떤 놈일까. 대체 핵심이 없어. 줄기가 없어. 미래를 경시해. 난 뭐일까? 총 쏘는 사람? 그거 말고. 난 뭐야... 그건 알아! 난 완벽하지 않아. 우린 각자 완벽할 수 없는 존재야. 서로가 뭉쳐 그 빈 조각들을 채워주는 수밖에. 내가 뭐냐고 묻는 것부터 잘못되었어. 지금 뭐하고 있느냐 묻는 게 더 나아. 인간이 뭘 알고 한단 말야? 하고 있는 그 자체가 훌륭하고 의미가 있는 거야. 아 술 마시고 싶다. 떡이 되도록.



몰려온다. 그래 니들 돌격은 잘하지. 조준간 들어. 놓치면 안 돼. 여기는 부대 사격장이다. 단 1발에 측정점수 까먹는다. 정확히 쏜다. 약간이라도 빗겨나가는 건 당기지 마라. 내가 60발 가졌으면 60명 적중시켜야 해. 안 그럼 컴컴한 체육관에서 고참에게 개맞는 거야. 다 맞추면 우리가... 이겨. 이겨. 믿어. 우리가 이겨.


사방에서 쏘기 시작한다. 우리 총이 남아 조준경으로 응대했으면 진짜 다 죽이는 건데. 난 이 보총으로 멀리 쏜 적이 없다. 영점 모른다. 헌데 뭐 대충 중간에 있으면 50미터는 다 맞어... 50미터까지는 어떤 총이든 가늠자 중간에 있으면 실력과 집중력으로 가능해. 총은 총이야. 총알은 나가고 니들 몸을 뚫어.


상체에 힘 빼고, 마음은 차분하고 도도하게, 몰려오는 거 겁내지 말고 내가 맞출 놈만 조준간에 얹어. 나머지는 전우들이 쏴준다. 오른손에 너무 힘주지 말고. 호흡 편하게. 훈련처럼 사격장처럼. 그래 너! 후~~~~~읍.


이 쌕꺄!!!


어, 반동 세다.


어디 갔어? 넝가진나?


총구 떨어트리지 마. 힘이 없어 그런가? 다음. 너, 그래 먹어.


개~쌔액끼야!!!


후~~~~읍. 좋아 적중. 소리 지르네! 그래 질러. 변하지 않아. 북조선 돌격은 소리를 질러야지. 다음 너... 홈에 걸린다. 그럼 넌 죽은 거지. 후~~~~읍. 당겨. 퇘!!! 후... 갔어. 또 누구! 그래 너. 좌로 움직이네. 약간 앞을 쏴? 그래 해보자. 조금... 앞을... 이이... 읍.


딱 한 방 맞고도 죽고 여러 방 맞고 안 죽는 놈 있지. 이유 나도 몰라. 하지만 사람은 죽는다고 생각하면 죽어. 그게 진리야. 맞아도 기는 놈은 기어. 그래. 너! 죽지도 않았는데 엎어져 있네. 좀 더럽지만 네가 엎드려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골통이다. 후~~~~~ 너 이제 기상나팔 없다. 평생 퍼자라.


공기가 가벼워진다. 물체들이 줄어든다.


잠잠해진다. 이 자식아 좀 무섭게 해봐. 겁 좀 나게 해 봐. 김일성광장 열병식처럼 해 봐. 니들도 겁은 먹어? 군관이 너무 많이 쓰러지니까 공격 중단이야? 놀랍네. 왜 갑자기 사람처럼 굴어. 총폭탄정신으로 들어와! 안 그러니까 우리가 놀라잖아. 어긋나니 당황되잖아.


우리 다 죽을 때까지 너희들 많이 죽을 걸? 우린 지금 몇 명이 살았어? 몰라. 엄폐하고 있어 안 보여. 그냥 난 내 조준간에 들어온 놈만 잡는다. 하느님 죄송하지만 맞춰서 쓰러트리는 건 정말 짜릿해요. 재밌어요. 이건 타깃이 아니라 움직이는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그게 쏘면 넘어가요. 오, 최고예요. 이거 어쩌나. 내가 이런 놈이었나. 이런 놈이건 저런 놈이건 쏜다. 쏘는 거 밖에 할 게 없어...



우는 소리가 들려.


입구 앞쪽에 쓰러진 북한군 같다. 어디 어떻게 맞았는지 모르나 중간에 끼어 울고 있다. 구슬프다 어쩐 게 아니라, 압정에 찔린 아이가 엄마 품에서 닭똥 같은 눈물 죽죽 흘리며 우는 것 같다. 굉장히 가녀리고 천연의 그대로 운다.


욕 할 수가 없다. 작은 새끼 새가 어미를 찾으며 떨면서 우는 것 같다. 네 울음은 어머니를 찾는 것 같아. 어머니는 없어. 너도 인간이냐? 인간이지 뭐. 허지만 인간이 대단해? 어쩔 수 없어.


너희들은 우리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잖아. 남조선 괴뢰군? 그러다 총 맞으니 인간적 되는 거야? 미안하지만 존나 짜증난다. 우리도 죽고 너희도 죽어. 헌데 다치는 건 좀 거지같네. 난 다쳐서 너처럼 불쌍하게 우느니 죽겠다. 의무병이라도 와서 끌고 나가던지. 안 쏠 테니 좀 데려가.


“쟤 좀 어떻게 해 봐. 끌어내던지, 거 못 듣겠다.”


“내가 조준해서 보낼 수는 있는데, 쪽팔려서 못 쏘겠어!”


“나도 맞았어. 뭐가 쿡쿡 찌르는 거 같애. 참는 거야.”


“어이 총폭탄! 좀 끌고 가 이것들이 짜증나게!!!”



여기 와서 알았다.


여기 와서 엄청나게 쏘면서 알았다.


총은 운전과 같다는 걸.


처음에는 미지의 괴물 차 위에 얹혀서 간이 쪼그라들어 차를 몰지만, 초보가 지나면 차와 몸이 하나가 되어 차는 내 생각의 부산물처럼 알아서 움직인다. 생각하면 손과 발은 움직이고 이미 차는 생각대로 가고 있다. 생각과 동시에 차가 알아서 몸과 하나 되어 움직인다.


군인은 총을 겁내면 안 된다. 많이 쏴야 한다. 병장으로 제대해도 총 발포가 무섭다고 느끼면 총을 덜 쏘게 한 거다.


어느 순간 운전처럼, 저 놈을 쏴야겠다고 생각할 때 알아서 모든 게 움직여 놈이 넘어가야 한다. 그 중간과정이 복잡하고 생각과 몸이 서로 타협하면 이미 늦은 거다. 보면 벌써 쐈고 상대는 쓰러져 있어야 한다. 사격장에서 방아쇠에 부담이 가면 그건 사격이 아니다. 운전처럼 판단하면 벌써 잘 조준하고 당기고 있어야 한다. 총은 군인의 제3의 팔이다. 보는 순간 적은 죽어야 한다. 생각과 명중 그 중간에 총이 끼어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맞는 순간 푹 엎어지고,


어떤 사람은 맞고도 서서히 무너진다.


나도 저 놈처럼 구슬피 꺼이꺼이 우는 거야?


내 알 바 아냐. 죽는 건 똑같은데 자기 성격대로 가는 게 뭐가 이상해. 죽는 놈이 애써 감출 필요도 없잖아. 그래 울어라. 니 성격에 맞게, 니 인생에 맞게 울어. 죽는 데 위선 차릴 놈이 어딨냐. 사람 총 맞아 죽을 때 보면 사후세계 진심으로 믿는 놈이 하나도 없는 거 같애.


뭐가 그리 슬퍼. 천당 갈 텐데, 윤회 될 텐데, 왜 울어!!! 기독교 국가인 미군들은 하느님 품으로 간다 어쩌고 죽던데. 그러니까 그들이 저돌적이고 강한 거야. 우린 종교가 니미 이거저거 너무 잡다해. 잡다하게 종류 별로 잘도 밥 먹고 살아. 포교의 왕국이야. 저리 슬피 우는 거 보면 장군님도 유일신은 아닌가보다.


웃어야지. 넌 공화국 영웅이야. 웃어! 환희를 느껴! 우리가 공화국영웅을 만들어 주잖아. 뒤에 놈들은 영웅들이 죽어가는 걸 보고 춤을 춰. 먼저 못 죽은 게 한이 되어 땅을 치고 통곡하며 다음번 공격에서 꼭 죽겠다고 다짐해. 아니면 자기 종교가 거짓이었다며 손들고 항복하던가. 우리가 누군지 몰라? 우리가 누군지 모르지? 우리도 몰라.


‘우린 정체불명이야!...’



“푸앙~~!!!”


갑자기 천장에서 총소리가 난다. 뭘까? 고개를 드니 누군가 천장에서 쏘고 있다. 어? 어! 총소리가 달라! 이런 미친 놈들을 봤나...


밖에 있으라던 저격수들이 환기구로 들어왔다.


쟤들이 중간 정도만 내려오면 터널 입구에는 적이 서지도 못할 거야. 이 정도 거리면 머리 어깨 무릎 팔 맞추고 싶은 데 맞추니까. 그냥 가지 왜 들어왔냐. 이미 불났어. 다 타버릴 거야. 이 공장 폐업이야. 귀신들만 왔다 갔다 하는 참혹한 귀신의 집이 될 거야. 그냥 힘 있을 때 나가서 도망쳐. 로프타고 오르기 존나게 했잖아! 이 정도면 됐어. 너희도 할 만큼 한 거야. 살아서 여기서 있었던 일을 증언해. 차라리 우리에겐 그게 필요해.


“야! 나가! 왜 들어오고 지랄이야!”


여기저기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천장에서 고함이 들려온다.


“안이 조온~~~나게 궁금하잖아!!!”



누군가 다시 소리친다.


“저거 저거 정찰대 조은솔 아냐?”


“가 이 자식아 그냥 나가~~!!!”


대답 없이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그 굵은 총소리만 이어진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사육제가 치닫고 있었다. 우리 편이 얼마나 쓰러졌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 각종 구조물 사이로 총구를 내밀어 조준하고 있고, 류탄과 로켓에 많이 다치고 쓰러졌지만 자기가 숫자에서 마이너스 되는 걸 거부하는 듯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다쳐도 참고 입을 다문다.


“총알 아껴!”


“총알 다 쏴도 놈들 다 못 죽인다니까.”


“어이, 우리들! 포로는 없다.”


“고문당하고 쪽팔려!”


“난 다리 나갔어! 평생 짐 되고 싶지 않아!”


그때 입구 저 멀리서 스피커가 틱! 켜진다. 뭐락뭐락 떠든다. 항복하라나보다. 아무리 북한말 연습해도 확실한 건 역시 억양이다. 저게 만주 말이야 조선말이야. 제주도 촌에 와 있는 것 같다. 진짜 비슷하다.


“어이! 북조선 인민군~~!!! 담배나 좀 줘봐!”



지리한 말이 이어지더니, 효과도 없이 방송이 사라졌다.


휴... 이제 뭐가 오겠나...



“저놈들이 이제 여기 포기했다!!!”


정적을 깨고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이어서... 충격. 폭발. 이제 놈들이 큰 걸 쏜다. 안이 파괴되더라도 우릴 잡겠다고 마음먹었다. 류탄발사기 쏘고 RPG도 쏜다. 웅크리니 내 가슴 심장박동이 다가온다. 나라는 숨 쉬는 물체. 참 대단하다. 아직도 살아서 숨 쉰다. 자욱하고 파편이 총알처럼 날아가고 뜨거운 폭풍이 퍽퍽 내 몸을 친다. 함마드릴 소리. 기관총. 그래. 이제 이 안에 거는 포기한 거야?


시작에 불과했다. 가장 두려운 것들이 우박처럼 쏟아진다. 셀 수가 없다. 셀 수가... 놀란 입이 벌어저 진정되지 않는다. 박스 채로 문 앞에 가져왔나보다. 직사 류탄과 로켓만으로 안 된다는 걸 애들이 깨달았다.


터널 입구로 차륜형 장갑차가 두 대가 질주해와 막아서더니, 이어 새카만 검은 점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까마득히 공중으로 날아온다.


수류탄. 눈 감고 벽으로 몸을 밀착해 웅크렸다. 어느 순간 비명을 지르는데, 그건 ‘나’였다. 계속 뜨겁고 둔한 충격이 마구잡이로 터지고 몸이 밀리고 작은 것들이 날 친다. 끝도 없이 터진다. 포물선으로 날아와 구르면서 사방 아무데나 터진다. 끝났나 싶으면 또 터진다.


몸은 콘크리트 벽을 뚫고 나갈 것처럼 밀어 웅크리고 또 터진다. 피와 살점이 나에게 날아온다. 내 건지 누구 건지 모른다. 팔과 등에 무엇이 찔렀다. 체력, 골절, 인대, 파편, 수류탄, 수류탄 파편. 점입가경.


단절된 시간의 흐름. 어느 순간, 몸이 우는 것처럼 떨린다. 이제 안 터진다. 뒤에서 나오는 화염의 빛으로 엄폐물 뒤의 다른 사람들이 보인다. 웅크리고 나자빠지고, 손으로 몸을 누르고, 부들부들 떨고, 입 벌리고 멍하니, 뭘 생각하는데 안 떠오르는 표정, 초점 잃고 무방비로 멈춘 눈,


누워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너무 아파 구르고, 저게 내 모습인가? 세상이 미쳤다. 다 미쳤다. 참을 수 없는 더럽고 검은 연기까지 저 안에서 뿜어져온다. 저 앞 사람이 뒤를 돌아보고 버프를 올린다. 저건 사람 죽이는 연기다. 그냥 연기가 아냐...


저 앞사람이 수전증처럼 손을 떨며 총을 잡는다. 나도 더듬는다. 내 총! 총! 쏴야지. 맞춰야지... 철 덩어리 총이 잡힌다. 아! 아! 오른팔? 뭐지? 뭐가 뚫고 들어왔다. 군복이 찢어지고 살이 꽃 봉우리처럼 까져 피가 흐른다. 이게 아픈 건가? 총 잡아. 손이 왜 이리 떨려. 아 힘이 모자라. 안 돼. 총 들어야 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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