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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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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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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88,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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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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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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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5

DUMMY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다시 방을 나와 이동한다. 무슨 소리들이 공기를 가르며 통과한다. 터널 입구가 보이는 중앙에 총알들이 수평으로 날고 있었다. 굽히며 중앙을 피해 기동했다. 중앙은 총알이 날고 측면은 총알들이 딱 따다닥 여기저기 때린다.


저 안 쪽에 먼저 진입한 조가 총을 쏘고 수류탄을 터트리고, 난 그때 천장을 보고 누운 사람을 지나쳤다. 앞사람이 지나쳤기에 나도 지나치는데 계급장 없는 군복에 얼굴이 검다. 아군! 다친 게 아니라 죽었다. 총과 실탄 누가 회수했다. 아는 사람인가 보려고 하지만 분간이 안 된다. 아무리 얼굴이 검었지만 표정은 평화로웠다.


잠시 멈춰 보니 내가 정말 힘겹게 헐떡이고 있다. 내 속에서 꺼억 꺼억 내장 긁는 소리가 올라온다. 먹을 거나 제대로 먹고 싸우게 하던가. 퍼진 놈처럼 출렁이는 다리로 다시 나는 간다.


터널 안쪽으로 계속 진행하는데 무릎과 발목이 불타는 것처럼 훅훅 열기가 뇌를 지진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저 앞에서 2조나 3조가 무척이나 갈기고 수류탄 터트린다. 문이 없는 섹터를 지나는데 지역대장이 날 보고 소리친다.


“저거 쏴!”


거기 탁자에 고가로 보이는 계측기와 실험장비들이 놓여 있었다. 단발로 놓고 장비들은 꼼꼼히 부분 부분 쏴 박살을 냈다. 속이 다 시원하다. 염병할 한 5천 만원 어치 부순 거냐? 1억이냐? ㅋㅋ.


기마자세로 웬만큼 부수고 다가가 손으로 탁자의 장비들 밀어버리고 AK 개머리판으로 조각을 냈다. 부품이 튀고 조각이 튀고.


다시 쩔뚝이며 가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계급장 달린 인민복 입은 놈들이 널려 있고 탄피들이 수두룩하다. 갑자기 실탄이 걱정된다. 하지만 우리에게 뭐가 걱정이야? 두려움 없다. 우리가 총알 합해서 3천 발은 가지고 있겠지, 1개 연대는 죽일 수 있어! 무서운 거 없어.


날 피식 하게 만드는 광경도 벌어졌다. 5대대 같은데, 기술자 같은 사람을 잡았다. 대원 하나가 대검을 뽑아 턱에 겨누고 멱살을 잡아 소리쳤다.


“너는 전공이 뭐야?”


주저하자 누군가 날아가서 이단 옆차기로 차버렸다.


“에레이 씨벌늠아, 말하면 진짜로 살려준다니까~~!!! 헤헤헤...”


대원 여럿이 웃었다. 우리가 술에 취했나 다들 이상하다.


“이 동네 정신병 맞어!”


“죽여달람 죽여뿌라!!!”




“여기서 뭐가 가장 중요한 건지 말하면 살려준다.”


그래도 말이 없다.


“죽은 놈 좆을 세워봐라... 시간 낭비야.”


누군가 웃다가 개머리판으로 늑골 여러 개 나갈 정도로 수평으로 뻥! 갈기고는 밀어버렸다. 기술자는 무너져 꼼짝하지 않았다. 지나가다 누가 또 싸커킥을 날렸지만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정신이 반 나간 거 같다.


“입이 악세사리냐.”


“고만해...”


안으로 들어가자 점차 적 징후가 줄어든다. 계속 들어가면서 주변에 부품이건 장비건 기계건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순다. 부술 수 없는 기계장치들이 문제다. 하기사 북한이 좋은 점 있잖아. 남한이면 고가 계측기 고장나며 일이 안 되면 이틀 안에 카드로 그어서라도 가져온다.


그런데 여기는? 서양서 존나 사서 존나 조선항공으로 실어야 돼... 뒤를 돌아보니 터널 입구에서 총격전 강해진다. 아무래도 돌아가서 지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명령이 없으니 일단 공장 끝까지 간다. 터널 바깥에서는 총 외에 큰 걸 날리지 않는다. 안에 중요한 것들이 있으니 포를 쏘거나 할 수도 없을 거다.


“총알 수류탄 아껴! 그냥 부술 수 있는 건 쇠파이프 같은 걸로 부숴!”



여기저기 펑펑 후다닥 탕탕탕. 난리가 난 통에 아마도 공장의 끝이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보였다. 직접 봤다.


거대한 것. 어디서 많이 보던 것. 아주 크고 동그란 원통들. 우리가 목숨을 걸만했던 것들.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을 수천수만 죽을 수 있는 거. 북한 과학자들이 하얀 요리사 모자 쓰고 자랑하던 거. 저런 개 같은 인류의 자멸적 창조물! 알고 보면 북한 전투력을 급하강 시킨 애물단지. 저걸 어떻게 부수나. 그때 5대대 누군가 소리쳤다.


“통 안에 수류탄!!!”


그 친구는 북한제 대인지뢰를 들고 안전핀을 빼고 있었다. 보자마자 모두 그 원통 중심선을 잽싸게 벗어나 피한다. 바로 던졌다. 안 터지는 거 아냐? 불안했다...


기우였다. 대원은 삼발이가 혹시 안 걸릴까봐 구르다 보면 걸릴 거라고 로켓 원통 위쪽을 향해 던졌다. 던지고 나서 바로 원통 구멍에서 피했는데, 그건 보기 좋게 터졌다.


소리 엄청 컸고 쇠나 스테인레스 같은 게 찢어지는 파열음 같은 게 있었다. 꽈릉!!! 펏 슉슉슉 따다다다닥 휭 총알처럼 파편들이 그 통이 놓인 방향으로 크레모어처럼 피욱 피욱 날아간다. 확신이 들자 다시 통 안에 수류탄! 고함을 지르고 안에 또 던진다. 지랄 맞은 게 또 터지고 난 구석에 바짝 웅크려 얼굴까지 가리고 파편을 피했다.


어허...


귀가 멍멍멍 거리고... 여긴 소리 빠져나갈 데가 입구 밖에 없다. 이렇게 터지다 터널 붕괴되는 거 아닌지 불안하다. 내가 보기에 터널을 파고 깎여진 면들에 단도리가 안 되어 있다. 가루나 조각이 떨어지지 않도록 완충제를 발라 굳히던지 공구리를 바르던지. 하여간 이 동네는 죄다 대충대충이야.


무슨 철거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고개를 돌리니 3조가 컴퓨터들을 부수고 있었다. 인터넷 스페이드나 지뢰찾기 깔렸냐? ㅋㅋㅋ. 장교로 추정되는 양반들이 수북한 서류들 이것저것 보고 있다. 결론 간단했다.


“춥다. 저 로켓 안에 싸그리 넣고 태워!”


종이를 박스 채 들어다 원통 안에 들이 붓는다. 참 인생 다이나믹하다. 그 와중에 서류에 불붙이다 담배 피우는 놈이 있다. 내 군침이 꿀꺽 넘어간다. 저 멀리 5대대장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이제 5대대 병력은 터널 입구에 버티는 1조를 지원하겠다고 뛰었고, 우린 구석구석 더 뒤지기 시작했다. 작은 창고에 자재가 쌓여 있어 불을 지른다. 휴게실인지 침실인지 걍 불 질러버린다. 노란색 불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니미 이러다 질식하는 거 아냐?”


젠장 뒤져도 먹을 건 없다. 내가 갑자기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염병 복부가 딴딴했다. 난 사타구니 단추를 풀고 로켓에 오줌을 갈긴다. 몸이 휘청휘청.


‘아, 씨. 정말 힘드네.’


오줌빨이 나가자 드디어 굳었던 몸이 스르르 풀린다.


‘으, 살겠다.. 어 추워.’



하지만 그때, 생각이 있는 몇 명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지역대장의 표정을 본 나 역시 깨달았다. 미쳤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에게 두 번째 아찔한 현실이 다가왔다. 정보는 오류다. 잘못되었다. 로켓은 발사하기 위해 조립된 상태가 아니었다. 로켓 통 안에 연료통도 장착되어 있지 않았다. 여기에 안 올 필요도 없지만, ‘지금’ 꼭 올 필요가 없는 거였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시야가 아찔했다. 이런 젠장...



이 세상 아무데도 없어요. 정말 없어요.

살며시 두 눈 떠 봐요. 밤하늘 바라봐요.

어두운 넓은 세상 반짝이는 작은 별

이 밤을 지키는 우리...

힘겨운 공장의 밤.


- 이 세상 어딘 가에. 김민기



우리가 만든 혼돈. 동굴에 타오르는 불. 부서진 자재들. 공간을 지속적으로 꽉 채워 진동하는 총소리와 폭발. 우리의 마지막. 목전에 무엇이 있건 속은 시원하다. 이제 우리도 부술 만큼 부쉈고 무거운 발걸음, 터널 입구로 향한다. 난 총구를 세우고 터벅터벅 걸었다. 대원들이 여기저기 불을 지르고 있고, 저 터널 앞에서 5대대가 밖에 소리치고 있다.


“들어와! 와... 들어와!!!”


“오라고 새끼들아~~!!!”



지친다. 무릎이 아프고 분명 뭐가 잘못되었다. 하지만 별로 드럽지 않다. 뭐 어때. 아직 살아 있고 총을 쏠 수 있다. 어쩔 거냐? 우리 같이 싸우면서 이 공장을 다 때려 부수자. 부수려고 싸우는 거 아닌가?


순간 순간 정신이 나가는 거 같다.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북한에 넘어온 순간부터 모든 게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그리 쉬이 죽어나가고 나도 사람을 죽인다. 죽여도 가책은 책에나 있나보다.


사람은 못 되도 괴물은 되지 말자고?


그건 캠퍼스 도서관에서 떠들 이야기지. 우린 모두 괴물이었어. 여기선 칼로 목을 베고 혀를 자르는 정도가 돼야 괴물이야. 대검으로 눈깔을 파야 괴물 정도라고 칭해질 거야. 아주 인디언이나 몽골처럼 가죽을 벗겨? ㅋㅋㅋ. 사타구니에 푹 찔러 도려내야 사람은 못 되도 괴물이 되지. 이래저래 죽는 거 똑같아. 염은 인간이 치루지 하느님이 해주냐? 이 몸 걸레가 돼도 하느님이 우리들 민사법정에서 재결합해 피고석에 앉히겠지. 걸레 조각으로 앉히진 않을 거 아냐...


정신 혼미하다. 나도 이제 너무 지쳤나보다. 지치고 지치고 굶주리고 산타고 또 지치고 쪽잠 자고 도망치고 개 지랄, 니기미 씨부럴 재미 없다. 난 몇 발 남았나? 한두 탄창 되나? 사람. 사람을 쏴야지. 아군을 쏠 놈을 우리가 먼저 쏘는 거야. 그게 우리 임무야. 많이 죽여야 우리가 이겨. 이겨. 우리가. 이겨...



앞으로 나가니 입구에 무수한 계급장 달린 고깃덩어리들이 쓰러져 있고, 양 옆으로 엄폐한 5대대가 보인다. 우리도 들어올 때의 인원이 이제 아니다. 여기저기 쓰러진 계급장 없는 인민복에 검은 얼굴들. 다쳐서 등을 기대 가쁜 숨 몰아쉬는 동료들. 검은 얼굴들이 치아를 보이며 고통을 참고 헐떡인다.


‘새끼들... 아직도 못 들어왔어? 니미 존나 힘드네. 총 들 기운도 가물가물해. 나도 이제 체력 바닥이야. 식당 짬밥 한 끼만 먹었으면 좋겠네. 쇠밥이라도. 그래도 또 맞춰야지. 골통도 맞추고, 폐도 맞추고, 내장도 뚫어주고, 팔도 자르고 다리도 자르고. 아 지친다...’


5대대가 보이는 후방 철제 구조물 옆에 엄폐해 거총한다. 앞이 꽤나 잘 보인다. 저 앞에 웅크린 5대대보다 더 잘 보인다. 보총 사거리 단자 좁히고이... 자물쇠 단발 확인. 이제 정확히 쏜다. 총알 낭비하면 안 된다. 전자제품 타는 냄새가 코를 찔러. 허? 와 뒤에 불이 장난 아니네. 화재야 화재. 그래 모두 다 타라. 장군님의 1호 병기 홀라당 타버려라. 다 녹아서 엿이 되버려라.


저 앞에 웅크린 대원이 작대기로 쓰러진 놈들 보총을 긁으려 한다. 그러자 총이


태~~~앵!


날아와 때린다.


‘존나 매몰차네 자식들. 흐흐흐 남조선 손님한테 병신아...’



옛날 옛적, 물이 흐르던 초록 짙은 곳의 여름. 어른들에게 지겹고 애들에겐 즐거운 장마. 삼각 그물로 냇물을 쑤시면서 나가면 물고기들이 몸부림치며 올라오고. 옷은 젖었지만 자랑스럽게 들고 가던 물고기. 그 살겠다고 미끌미끌 온 몸을 비틀던 미꾸라지가 신기했다.


어머니에게 자랑하고 싶었지. 어디서 뒹굴고 왔다고 타박하며 엉덩이를 냅다 갈기던 어머니. 담배만 피우며 인상 쓰고 거 애들 고만 닦달하라던 아버지. 그래도 평생 농사지으신 아버지에게 갑바 식스팩 좋은 몸 물려받았다. 휴대폰 게임하다 새벽에 뒤지게 맞고, 또 룰루랄라 미친놈처럼 친구들 만나러 빗길에 등교하고. 햄버거 라면 묵고. 우유 먹으면 살찐다고 미개인 소리 들어가며 개 마시고.


여선생님 짝사랑하고. 공부 못해서 부실한 전문대 들어가 매일 술 마시고, 온갖 아부 다 떨어가며 까이 하나 건져서 존나게 떡치고 당구 치고, 오토바이 타고 경찰 피해 도망가고. 아무리 뭐래도 그거 아냐?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된장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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