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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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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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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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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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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4

DUMMY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마지막으로 우리 조가 모였다. 지역대장도 시커멓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북한군의 컬러 계급장을 다 뜯어냈기 때문에, 지역대는 이름 모를 군대가 되었다. 같은 북한군 복장에서 식별은 하나, 우린 계급장이 없다. 적과 혼전이 되었을 때 뒤는 모르지만 앞을 보면 식별된다.


장교들이 썼던 군관모의 컬러 색 잡다한 걸 대검으로 뜯어냈기 때문에 계급의 평등이 왔다. 우린 이제 아무 것도 아니다. 적을 공격하는 부대일 뿐. 소속도 계급도 없다. 하사도 중사도 소령도 중령도 동일하다. 북한 군관복에서 모든 걸 다 떼 내면 사실 인민복이다. 인민복에 기초한 군복이다. 그걸 다 떼고 나니 지역대장은 모택동 인민모를 써야 어울릴 것 같다.


지역대장은 긴말 하지 않았다. 작전은 노력이 반, 운이 반이다. 물론 노력과 훈련은 그 운을 넘어서 99%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역대장의 입에서 나온 첫 글자, 첫 세 글자가 우리를 핵폭탄처럼 정치-사상-총화시킨다.


“한두현... 이충우. 이상식. 강경석. 김진... 박... 서... 손...... 그리고 나, 홍규형...”


지역대장은 우리의 이름을 모두 불러주었다.


“먼저 간 전우들, 지역대원들을 위해 묵념하자. 우리가 두려움에 물러서지 않도록. 우리가 위험 앞에 초라하지 않도록... 도와주기를... 묵념.”


모두 고개를 숙였다. 많은 사람이 떠오른다. 그러나 가족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하면 나약해진다. 그리고 가족은 저 남에 살아 있지 않은가. 이제 추모란 이름을 떠올릴 건 우리가 아니라 가족이다. 그들은 우리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바로 지금 기억해야 하는 것은 먼저 간 전우로, 지역대장 말대로 그들이 용감하게 싸우다 죽었듯이 우리도 그들의 길을 따르며 바보가 되지 않길 바란다. 서로 어깨에 손을 얹는다. 좀 못 뛰던 사람도 있고, 잘 쏘지 못하던 사람도 있고, 턱걸이 평행봉 잘 못하던 사람도 있으며, 잘 걷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 상관없다. 여단 특전용사 이런 거 다 필요 없다. 적을 향해 야수의 심장으로 총을 쏘고 칼을 지를 상황에 처해있고, 그걸 잘하면 된다. 우리의 현재 위치와 상대와 해야 할 일. 그걸 잘하면 세계최고 용사다. 우린 그걸 원하고 바란다.


어느 순간 스크럼에서 눈을 떴다.


“들어라. 이 안에 소령도 대위도 상사 중사 하사도 있다. 허나 이 순간 우린 동등하다. 우리 힘을 합쳐 국민들을 공포와 파괴로 몰고 갈 걸 다 때려 부수자. 가루로 만들어 다시는 그런 거 만들지도 못하도록 하자. 저 안은 오늘 폐업이다. 이제 우리의 모토를 진짜로 해야 할 시간이 왔다. 그렇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안 되는 걸 되게 한다. 모두 마음속으로 되새겨라... 지역대! 모두 사랑한다. 두려워말고 길을 가자. 아무도 못 알아주더라도 우린 간다. 이상. 결사 지역대 파이팅.”


모두 말없이 주먹을 쥐어 공중에 흔들며 파이팅 했다...


서로를 바라보는데 치아로, 올 들어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대한민국 만세!!!...”



싸우다 보면 죽을 수도 있다

달아나면 당분간은 살 수 있지만

세월이 흘러 죽게 되었을 때

그때의 시간을 맞바꾸고 싶어 질 거요


이 단 한 번의 기회를 다시 얻어

적들에게 외치고 싶을 거요

우리의 목숨을 앗아갈 수는 있지만

우리의 자유는 못 뺏을 것이라고


- 브레이브 하트




첫 번째로 아찔한 생각이 내려가면서 떠올랐다. 이런 상태라면 우리가 오지 않아도 레이저 유도 벙커버스터로 충분히 관통해 내려가 아래를 부술 수 있다. 환기구들은 위장되어 있었고, 아니 환기구 근처는 잡풀 제거를 아예 하지 않았다. 여기에 우리가 표식을 하고 항폭유도를 했다면... 그런 생각이 스쳤다. 이미 늦었다.



내 발이 아직 공중에 2미터 떠 있을 때, 침투 5시간, 막힌 공간을 깨트리는 첫 총성이 내 발 아래서 울렸다. 말폐공간이라 반향 무척 컸다. 소리가 나자마자 내 발끝이 찌리릿 전기가 감전되고 나도 모르게 발버둥쳤다. 동작을 반복하며 내려가는데 탕! 타다당! 총성이 울렸고, 잠시 후 누가 내 허벅지를 퍽 쳐서 다 내려왔음을 알려줘 뛰어내렸다.


뛰어내려 구르고 나서 처음 본 건 다시 어둠이었다. 그 어둠 속 저 아래 플래시 터지듯 번쩍번쩍한다. 정신을 차리니 격앙된 눈동자가 날 본다.


그 눈이 방향을 지시하고 그리로 웅크려 이동한다. 총 자물쇠를 풀고 시선을 들어 내 뒤로 내려오는 사람을 본다. 아직 시야 적응이 안 된다. 저 아래 우리 쪽 총소리들이 입구 방향으로 향한다.


그리고 좀 적응했다 싶은데 퍽! 몸이 먼저 반응하고


꽝~!!


수류탄이 터졌다. 내 몸이 놀라 출렁했다. 심장 진정시키며 위를 보니 열심히 내려온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래서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철제 구조물을 팅 텅 딱 총알이 때리고 웅웅거리며 통과한다.


나 역시 다 내려왔을 무렵 일어서 윗사람 다리를 퍽 쳤다. 그러자 부팀도 점프했고, 난 방향 지시하고 앞사람이 간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웅크리지 않고 비틀비틀 걸어갔다. 구부린다고 더 안전할 게 없었고, 숨이 너무 벅차서 웅크려 갈 기운도 없었다. 어차피 밑에서 보기에는 총알 맞을 면적 똑같다. 계속 총알이 텅! 텅! 튀긴다. 높이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다리가 후들거린다. 순간순간 어둠 속에 중심을 잃어 휘청거린다. 난간이라고 1미터도 되지 않는다.


‘떨어지면 뒤져...’


내가 이동한 곳은 철제 다리와 같은 공중에 뜬 좁은 통로였다. 총구섬광이 터질 때 아래를 나려다보니 막타워 두 배는 되는 거 같다. 일단 그 난간을 떠나 공간이 나와야 우리 4조가 모이거나 어쩔 것 같다. 발을 내딛는데 내가 100m 뛴 것처럼 벌써 기운이 없다.


밑에 적의 섬광이 보이지만 쏠 수 없다. 만약 쏘면 내 총구섬광으로 인해 총알이 더 날아와 우리 조원들이 맞을 것 같다. 단 몇 초 안에 분명히 총 맞을 것 같다. 다리가 아니길 빌었다. 당장 수류탄을 까서 밑으로 던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숨은 거친데 속에서 욕이 치솟아 오른다.



그렇게 사선으로 10미터 하강해 본격적인 공장 구조물로 들어서는데 발에 뭐가 물컹 걸린다. 허, 사람이다. 여긴 당연히 아군이다. 쓰러진 아군. 검은 얼굴이 경련하고 있었고 바로 내 앞에 그 사람이었다는 걸 눈빛으로 알았다. 친분 없는 5대대.


“어디야!” 내가 물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손짓으로 가라고 했다. 이제 압박붕대니 지혈대니 거즈니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냥 놔두면 죽을 것 같다. 그 순간에도 총알은 날아와 텅텅 딱딱 때리고 곧 이어 내 뒷사람이 내 등에 몸을 붙여 상황을 묻는다. 내가 쓰러진 사람 몸을 뒤졌으나 그 사람은 몸 만지는 걸 거부했다. 자기 손은 복부를 짚고 있었으나, 내가 손을 대니 내 손을 밀어버린다.


“가, 이 새끼야. 나 대위야... 빨리 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어쩔 수 없이 우린 그를 넘어서야 했고, 그 순간 내 다음다음 사람까지 밀어닥쳐 통로는 막힌다.


“가라고! 빨리 내려가서 때려 부숴.”


내가 대위님을 넘어 이동했고 뒷사람들이 따른다. 10미터를 더 가자 위험한 공간에 들어섰다. 환기구로 올라오던 고각 철제 난간은 끝났다. 공장 내벽에 다다라 수평 발판이 나왔고 거기 내려가기 위한 수직 사다리가 있었는데, 완전히 노출된 구조다.


아니, 앞에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안 들키고 시간을 끈 건지 추측이 안 간다. 밑을 보니 먼저 내려간 대원들이 의탁으로 총을 쏘는데, 저 터널 입구에서 응사하고 상황 복잡했다. 내 발이 섬칫 멈춘다.


우리 위치를 북한군이 알아채고 격렬하게 쏘고 수직사다리에 텅텅텅 때린다. 우리를 보고 쏘는 건지는 몰랐으나 그 수직 사다리를 타고 양발 양손이 묶인 채 내려가면 100% 맞을 거 같다. 아래보다 빛도 훤하다.


뒷사람들은 나에게 빨리 가라고 밀었지만 이 상황을 목도한 내 뒤 두 명 정도는 섬뜩했다. 내 뒤에 붙은 부중대장 몸이 떨린다. 어떡하나 망설이는데 내 땀방울이 철제 통로에 뚝뚝뚝 떨어진다. 막힌 걸 뒤에서 눈치 채자, 통로에 밀린 지역대원들이 몸을 일으켜 터널 입구를 향해 “이 썅!” 수류탄을 힘껏 던졌다.


첫 번째 수류탄이 펑! 터졌을 때 이명이 오면서 난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했다. 수평으로 놓인 철제 통로는 내벽에서 50c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난 그 틈으로 어거지로 몸을 넣어 끼어 들어갔고, 이어 패스트로프처럼 거기 붙은 수직 지지봉을 온 몸으로 잡았다. 노가다 아시바보다 두껍게 철제난간을 바닥에서 수직으로 지지하는 것인데, 수직 사다리에서 가장 가까운 걸 부여잡았다.


잡자마자 몸은 무게를 못 견디고 밑으로 쭉 미끄러진다. 오른손으로 총을 쥔 왼손 손목을 잡아 헤드록을 걸고 군화 안창으로 제동을 걸려고 했으나 계속 미끄러져 내려간다. ‘어... 어... 어...’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고 팔뚝 피부가 벗겨져 나가고 속도가 빨라진다. 바닥에 수직 봉을 너트로 박은 삼각형 돌출부가 발을 때리면서 봉에서 떨어졌다. 난 발목이 뜨끔하면서 그 자리에 멈췄고, 순간, 수직 사다리를 포기한 지역대원들이 나를 따라 계속 내려오면서 날 밟았다. 내가 응용포복 자세로 피하기 전까지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몇 번 째인가 군홧발이 내 오른다리 접힌 무릎을 내리 찍으며 밟은 것이다. 내 입이 벌어지고 고통의 단말마가 나왔다.



“안으로 들어가!!! 안으로~~~!!!”


5대대장이었다. 입구를 향해 엄폐한 곳에 대대장이 서서 손가락을 안으로 지시하고 있었다. 입구를 막을 테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라는 거다. 나는 온 몸에서 터지는 신음 속에 일어서려 했는데, 오른 무릎이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일어섰고 쩔뚝이면서 지역대원들 가는 곳으로 따라간다. 아무리 아프고 다쳐도 거기 남아서 먹통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눕고 싶었다. 누워서 뜨거운 호흡을 좀 진정시키고 싶었다.


다른 조들은 더 안으로 들어갔고, 우리 후미경계조가 이동하다 방인지 사무실인지 한 명이 문을 잡아 돌리고 있었다. 안 열린다. 발로 차도 육중한 무게가 버티고 있다.


“누가 문고리 잡고 버텨!”


“그냥 갈겨!!!”


“안 놔? 놔~~!!!”


선두가 문에 대고 AK를 난사했다. 그리고 뻥 차자 문이 반 쯤 열렸는데, 문을 잡고 있던 서너 사람이 쓰러져 문을 막았다. 두 명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 방 저 끝에 서너 명 보였는데, 지역대장이 플래시를 비췄다. 드러난 것은 50은 넘은 민간인들이었다. 봐도 과학자나 기술자 같은 사람들. 당기기 주저된다. 지역대장이 소리쳤다.


“이 새끼들 뇌가 무기야! 없애!”


타다다다다다...


5초도 되지 않아 우리가 난사하는 총에 고깃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기괴하게 정리되었다. 재봉실이 강제로 뜯기는 소리가 났다. 뽀얀 연기가 흐르고 분위기 야릇했다. 그렇다. 다 뒈지고 뒈지는 거다. 그걸 보고 내 눈이 터질 듯했다. 용기가 필요했다. 나에게 용기가 필요했다!


‘고등어 통조림 먹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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