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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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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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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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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3

DUMMY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사람들은 동영상만 안다. 이 부대가 간부 퇴근도 안 시키고 밤에, 그것도 야외훈련에서 돌아와 잘 먹고 잘 쉬고 체력단련이나 신경 써야 할 밤에... 얼마나 공부를 많이 시키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교범과 책으로 사람 죽이는 부대란 걸 모른다. 인원이 얼마 안 되니 많이 알길 바라는데, 가장 좆같은 건 사령부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국방부 직속으로 내려오는 육군부대 공통사항에 관한 시간낭비다.


특히나 위관 영관 시절 여기 경험 없는 여단장이 와서 여단을 뒤집는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거 밖에 모르는 거다... 하여간 대대 전투력측정 떨어지면 어느 팀에게 어떤 게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일반과 특수전 과목 엄청난 공부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다른 주특기를 대충대충 알게 된다. 바로 옆에서 매일 보니 많이 알게 된다. 통신만 빼고.


먼저 와 있던 정찰조는 야간에 그 환기구에 직접 머리까지 넣어서 아래를 봤으나 컴컴해서 발이 닿기까지 높이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20미터 짜리 로프 둘을 묶어 사용하기로 했다. 산악등반이나 유격용 로프가 아니었으나 사람 하나 몸무게는 충분히 버틸 것 같았다. 각자 딱 한 번 하강만 하면 된다.


개인 예상시간은 1분인데 그렇게 되면 다 들어가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래서 모두 들어갈 때까지 1조가 기다리느냐 먼저 행동을 해야 하느냐로 의견이 조금 갈라졌다. 5대대장이 단번에 해결했다.


“내가 1조와 같이 들어가 내부 구조와 상황을 보고 결정하겠다.”




나는 3차대전은 무슨 무기로 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4차대전은 분명히 돌도끼로 할 것이다.


- 아인슈타인




우리가 작전을 꺼리는 달이 휘엉청 뜬 밤. 있는 담배들을 모자에 넣어 피우면서 시간을 기다렸다. 우리 조는 맨 뒤라서 선두가 언제 출발했는지 모른다. 저녁 8시 정도에 우리 조가 앞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출발 전, 난 담배를 피우며 하늘의 달과 별을 마음껏 봐두었다.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다. 서글픈 밤. 그러나 해야 하는 밤. 정말 이게 마지막 밤인가?...


굼벵이들이 열을 지어 나가듯이 꾸물꾸물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난 3조 마지막 사람과 20미터를 벌리고 4조 선두로 가기 시작했다. 무릎이 시려오고 장딴지와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4시간의 시작이었다.


기본적인 이동은 50cm였다. 1분에 50cm. 그렇게 두 시간 이동했을 때 처음으로 하얀 실이 동그랗게 놓인 걸 본다. 3조 마지막이 기다렸다가 손가락으로 정확히 강조하고 앞으로 갔다. 예상대로 지뢰였다. 지뢰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수목이 정리된 지역으로 들어갔다.


납작 엎드리라는 신호가 와서 뒤로 전달하고 완전히 몸 깔고 있기를 몇 번. 앞 상황도 모르고 기다리다 오라면 간다. 모르고 하는 게 정말 불편하다. 이러다 쾅! 터지고 총이 탕탕탕 터지나? 자유롭게 휩쓸면서 공격하던 게 그립다. 상대에게 당혹감을 주고 밤잠에서 헤까닥 기상시키는 게 죽이는데... 이건 확률을 알 수 없는 생 노가다. 언제라도 발각되면 터널 입구를 향해 뛰어야 하는데 제대로 뛸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정지한 상태에서 손가락과 발가락을 계속 움직인다. 유사시 몸이 굳어 있을까 두렵다.



내 눈이 벌려진 철조망을 봤을 때 너무나 기뻤다. 1선을 통과. 2선까지 얼마나 걸려? 그저 간다. 앞으로 기어가 후미가 철조망 복원하는 걸 지켜본다. 숨은 거친데 소리 안 나게 억지로 참아 나누어서 내뿜는다. 이를 물고 치아 차이로 천천히 내뿜는다. 얼굴이 후끈후끈하다. 자꾸 사방을 보게 된다. 이 상태로 교전이 벌어지면 난처하다.


철조망 복원이 끝나고, 후미에서 가라는 신호를 주어 난 앞 사람을 찾는다. 3-40미터는 멀어진 것 같다. 야투경 없지만 보인다. 저 앞에 미세하게 꾸무럭거리는... 몸을 일으켜 오리걸음으로 따라간다. 총끈 제거한 총 들고 소리 안 내고 가려니 여간 부산한 게 아니다.


가만히 쪼그리고 있는 게 지친다.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용을 쓴다. 하지만 안다. 완전히 힘 빠져 탈진에 이르러도 한동안은 몸이 움직인다는 것. 잠시 쉬면 또 몸이 사악하게 깨어난다는 사실. 군생활은 그것의 반복이었다. 고통과 탈진은 잠깐이며 인간은 놀랍게도 회복한다. 버틴다.


침투가 아니라 얼차려 받는 기분이다. 가장 민감하고 죽을 정도로 힘든 건 맨 앞 선두개척조다. 난 차라리 엎드려 포복으로 기기로 했다. 관절이 너무 아프다. 그냥 뛰어가서 면상에 총구 대고 조지고 싶다. 짜증이 밀려오고, 가다가 정지해 대기하면 열이 났던 몸이 또 추워진다. 계속 반복된다.


'우린 우리만 안다. 나머진 아무도 모르지. 항상.'


저 멀리 터널 입구 쪽은 북한군도 철저하게 등화관제로 통제해서 그저 어둠뿐이다. 낮에 보니 이곳도 전쟁 초기에 이미 폭격을 당했는데, 가장 정확한 미국 위성으로도 이 터널 안쪽은 알 수가 없다. 열상과 방사선은 볼 수 있나? 미국은 이 안에 뭔가 강하게 추정하는데 직접 가볼 부대가 우리 밖에 없다. 정보사가 있지만 여기까지 오려면 그들도 우리처럼 거리를 월경해 낙하산으로 뛰어내리는 것 외에 방법 없다.


한 번도 다리를 펴서 서지 못했다. 쪼그리고 기기의 반복. 그러다 엎드리고. 무릎과 허리가 뻐근하고 굳는다. 언제 도착하나 염불을 외울 지경이 되고, 어느 순간 저 터널 입구가 상당히 가까워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먼저 왔던 정찰조 두 명씩, 무성총을 휴대하고 2선의 양쪽 초소를 감시하는 가운데 두 번째 철조망에 도달했다. 초소에 적이 있는지는 모른다. 정찰조가 그들을 죽인다고 해도 시간을 봐야 한다. 근무 시간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교대 5분 전에 쏴 죽이면 병신이다. 유선전화 있는지도 알아야 하고, 그들을 죽였을 때 언제 쯤 발견되는지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한다.


입을 굳게 다물어 절대로 열지 않고, 수기와 터치로 상황을 전파하기에 정확한 내용을 알기 힘들었다. 우리 후미경계는 나와 한 명만 본대를 보고 모두 후방을 향해 엎드려쏴 하고 있다. 양쪽의 초소가 무척 걸렸다. 만약 거기서 비상을 전파하고 몰려들면 충분한 병력이 안에 못 들어가고 너 죽고 나 죽는 혼전. 그때는 지뢰 안전핀을 제거해 모두 환기구로 투하하고 터널로 돌격한다.



여기서 특수전부대에 관해서 몇 마디 하고 넘어가면, 가장 중요한 것은 살기와 체력이 아니라 여러 상황 다양한 훈련이다. 체력과 의지는 기본으로 갖춰야 하는 거다. 전투가 실현될 수 있는 그 모든 ‘다양’한 상황이 중요하다.


실미도 부대는 체력적으로나 의지나 전투력 생존력 그 모든 걸 강하게 훈련받았다. 그러나 다양한 경험을 거기 추가해 밑바탕이 되어야 했다.


몇 개월 훈련하고 김일성 죽이러 간다는 자체가 상식 아래였다. 총 들고 대열 지어 있는 보병이 닝기리 합바지로 보이나? 특수전부대는 그 총에 맞아죽는 거다. 북에서 가장 훈련됐다는 124군부대도 세검정에서 총소리 몇 방 나자 그대로 와해되어 분산탈출하기 시작했다. 북한군도 이 사실에 충격 받았을 것이다. 최고라고 믿고 보낸 거 아닌가.


어느 대가리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특전여단 역시 주둔지 훈련도 중요하지만 실전에 쓰일 진짜는 전술종합훈련과 독수리훈련 등이다. 아무리 훈련된 대원도 새로운 상황에서 자력으로 완벽히 소화 못 한다. 여러 목표, 다양한 지형, 여러 명령을 해보는 게 실전에 좋다. 아무리 잘 뛰고 잘 쏴도 닥칠 모든 상황에 장담할 수 없다.


그 섬에서 사람을 죽일 정도로 패고 훈련시킨 결과물은 강하겠지만, 이후 내륙으로 들어와 다양한 전술훈련을 병행했어야 한다. 섬에 3년간 가둘 일이 아니다. 전술훈련도 그 작은 섬 지형에 한해서 숙달되었을 뿐이다. 어디 잡아둔다고 최고로 성장하지 않는다. 평양 주석궁을 습격한다고 하면서 그 정도 전술훈련으로 어쩌려고?


그 섬은 상부에서 잘못한 거다. 시키는 대로 존나게 맞으면서 죽도록 훈련한 사람들이 무슨 죄인가. 그러하기에 군대에서 짬밥이 중요한 거다. 그 짬밥은 여러 상황의 경험이고, 이것은 전시에 긴요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잠수타고 놀자고 드는 성격 드런 늙은 원사 상사가 필요할 때가 생긴다.



이 작전에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건 독수리훈련, 국가 최고경계 목표물이나 군부대 침투훈련이었다. 훌륭한 (혹은 창조적인) 침투방법 찾기, 경계망 분석하기, 위장전술, 참기, 버티기. 이 모든 게 긴 시간 지속되다 타격은 아주 잠깐이다.


특수전을 비근한 것으로 예로 들면, 어느 아주머니가 된장찌개 김치찌개 생선찌개를 정말 맛있게 잘 끓인다 하자. 그러나 식당을 차려 성공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근 20분 안에 된장찌개 생선찌개 김치찌개 동시에 10개를 끓여야 하고 그 중간에 무침과 전도 부쳐야 한다. 못 버티면 자빠진다. 거기에 어떤 손님이 갑자기 2만원 줄 테니 메뉴에 없는 육개장 끓여달라고 한다. 그 중간에 홀에서 술 취한 단골이 다른 손님과 싸우고 있다. 이걸 버텨야 장사가 된다. 장사, 살벌한 거다.


특수전만이 아닌 모든 주특기에서 이러한 전혀 예상하지 못할 것을 소화하는 것이 경력이다. 전쟁은 그 ‘예상치 못하는 것’의 연속일 수 있다. 미군으로 치면 체력은 그린베레보다 레인저가 훨씬 나을 수 있다. 그린베레는 군 생활 7~8년에서 10년이 수두룩한 경력형 부대다.


덜거덕거리는 총열덮개를 테이프로 감거나 끈으로 꽁꽁 묶었고, 혹시 끌리거나 걸려거나 다른 사람이 밟지 않도록 군화끈을 모두 짧게 결속해 묵었다. 얼굴은 물론 군복에 맞닿는 목이 금방 하얗게 노출되기 때문에 찢은 군복 천을 감거나 완벽히 칠했다. 장갑을 벗어야 하는 첨병조는 손까지 종이를 태워 칠했다.


여분 실탄은 파우치에 천이나 풀을 넣어서 소리가 안 나도록 했고, 총기끈은 제거하거나 덮개에 둘둘 감아 꽉 묶었다. 해 지기 전, 종이를 모두 태워 침에 이겨 서로서로가 검게 얼굴 귀 목을 철저하게 칠해주었다.


원사가 선두에 인계철선 간파하며 나가는 손동작을 가르쳐주었다. 가느다란 가지를 들고 원을 겹치며 돌리면서 전진시키는 방법이다. 야투경은 1조에 몰아주었고 불필요한 장비를 모두 모아 위장했다. 반합, 침낭, 판초, 더 이상 배터리가 없는 작전무전기와 야투경 통신장비를 모았다. 우리 조가 모아 위장하는 물품을 보며... 저걸 다시 손 댈 수 있을까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몸에 꼽았던 풀을 모두 빼 던졌다. 대원들이 조용해졌다. 말하지 않는다. 얼굴과 모든 곳에 위장을 해 순간순간 그 사람이 없다가 나타난 것 같다. 눈동자와 치아만 빛난다. 시간이 멈춘 듯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무슨 생각들 하는 걸까. 누워서 편하게 쉬는 사람도 있다. 여기가 남한이고 우리가 상대편이었다면 벌써 헬기에 간파되어 다 죽었을 거다.


척박한 땅, 그래도 가을 오기 전에 우리를 가려줄 건 있었다. 이제 남쪽에서 들리는 포성 없다. 원래 섹터에서 한참 북상했다. 문득, 압록강이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밀리자 놈들이 그 이상한 걸 최후에 쓰려는 징후가 보인 것 같다. 미친놈들. 정말 그랬다간 우리가 여기 씨를 말려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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