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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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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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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1

DUMMY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이런 걸 블랙홀이라고 하나? 모든 게 빨려 들어가 벗어날 수 없는 중력의 검은 구멍? 여기 실물이 있다. 들어가면 벗어나지 못할 것이 똑같다. 사람이 시추공으로? 소공 대공 시추 노가다 따라다니던 생각이 난다.


물에 버무려져 끝도 없이 나오는 눅눅한 회색 흙과 하루 종일 지속되는 삽질. 내가 보기에 물은 잘 나오는데 고개를 까딱하면서 ‘다른 데 파야겠어.’하던 십장. 점심 때 먹던 푸짐한 한식뷔페라는 뷔페라는 단어가 심히 무색한 시골 노가다 밥집. 그래도 이빠이 목구멍으로 떠 넣었지.


굵은 똥이 팍팍 나오고 또 삽질, 장비 운반. 이제 끝이구나...를 알리는 엑셀과 모터 설치. 지금 그림 무척이나 비슷하다. 인생 쌈빡한 게 최고지. 뚫느냐 실패하느냐 물이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 그리고 얼마나 나올 것인가. 그 구멍을 지금 나는 바라보고 있다.


이제 여기로 들어가면... 모른다. 다시 나올 수 있을지. 거의 못 나온다고 봐야지? 두렵기도 하나, 그래도 지금까지 때리고 도망치던 것에 비하면 버라이어티 할 것 같다. 버라이어티? 이게 적당한 표현인가? 흐흐. 생각 그만 하자. 인생 흘러. 흐르다 보면 어디 가 있겠지. 우린 운명적으로 여기 흘러들어가. 태어날 때부터 여기 들어가게 되어 있었어.


네다섯 시간 동안 쪼그리고 포복하고 숨소리조차 마음껏 못 냈다.


앞 사람이 총 각개로 내려갈 준비하고, 뒤를 돌아보니 내 다음 순번 부중대장이 고정된 눈동자로 좆됐다고 웃는다. 말? 못하겠다. 뒤로 쪼그려 앉은 뱀 같은 열. 열에서 이탈하고 싶은 생각 없다. 이탈하고 싶어도 티 내지 않고 그대로 가는 것. 하사도 상사도 대위도 소령도. 그리고 중령까지. 중령 정도 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앞사람이 내려가면서 몸을 돌렸다. 양 손바닥은 입구 주변을 짚어 지지하고 밑에서 발이 더듬는다. 앞사람은 모르는 얼굴이다. 컴컴한데다 종이를 태워 침으로 이겨 시커멓게 칠해서 그런 것만이 아니다. 우리 대대가 아니고, 여단에서 본 기억이 없다. 분명 5대대, 계급 모른다.


앞사람이 양 발로 로프에 꼬아 고정한 다음 손을 땅에서 놓고 로프를 잡아 내려간다. 순간 우리 눈이 마주한다. 부사관인가 장교인가. 품위?는 장교 같기도 하고. 발을 로프에 꼬은 것 같고, 그러자 자기 왼쪽을 본다.


거기 조금 얇은 나무에 로프를 돌려 묶고, 묶고 남은 줄을 한 명이 어깨에 걸고 혹시나 매듭이 풀려 슬립(미끄러짐. 추락)이 날 경우를 대비해 ‘확보’하고 있다. 나무는 얇고 로프는 더 멀리 어디 묶을 수가 없다. 벌써 많이 내려갔지만 혹시나 자기 차례에 로프 끊어지거나 매듭이 풀려 추락할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추락하면 당근 병신된다. 추락할 높이가 너무 높다.


맨 첫 사람이 내려갔을 때, 바로 다음 사람에게 공중을 향해 손가락으로 높이를 알렸고, 숫자는 2. 그 2는 밑을 바라보던 두 번 째 대원이 세 번째 대원에게 알리면서 길게 길게 뒷 대열로 전파되었다. 어둠 속에 수십 명이 뒷사람을 향해 손가락 둘을 보였다. 20미터. 내부는 어떻단 말인가... 순번에 의해 딱 한 명씩 계속 들어가기 시작했다. 검은 구멍은 한 명 이상 못 들어간다. 만약 밑으로 내려간 숫자가 충분하지 않을 때 총소리 나면 좆된 거다.


죽을 ‘사’자도 아니고, 네 개 조로 편성되었으나, 내려가는 대원들의 조별 간격은 이제 없다. 그냥 순서대로 최대한 빨리 내려간다. 70명이 넘을 인원 중에서 나는 근 55번을 받았다. 아직 밑에서 총소리는 없다. 허나 이 많은 인원이 한 명 당 빨라도 40초, 전체 시간이 상당하다. 그 두려움 속에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앞 사람은 5대대, 내 앞사람까지 다른 공격조다. 나부터 우리 지역대.


앞 사람이 검은 구멍 속으로 사라지고, 난 곧바로 거기 몸을 넣는다. 뒤 부중대장이 내 어깨를 잡아 지지해준다. 앞사람이 했던 대로, 총이 밖으로 걸리지 않도록 몸에 붙여 누르면서 몸을 집어넣고, 양손으로 땅을 지지하고 발로 로프를 더듬는다. 아직 팽팽한 걸 보니 앞 사람이 바닥에 안 닿았다.


로프가 걸리면 로프 중간에 양발을 X-자로 꼬아 U-자 직각으로 꺾고 땅을 짚었던 손으로 로프를 잡는다. 그 자세에서 팔 힘에 의지해 발을 풀어 사지를 밑으로 쭉 뻗고, 다시 발을 꼬아 확보하고, 이어 몸을 쪼그리며 내려간다. 내가려는데 머리가 갑자기 허해진다. 모자가 걸렸다. 그러자 부중대장이 내 북한군모 챙을 잡아 내 머리에 눌러준다.


내려간다. 칩니와 같은 좁은 통로. 흙가루 같은 게 밑으로 안 떨어지게 조심하며 내려간다. 로프를 발로 꺾어 고정한 상태에서 무릎을 굽히고 몸이 내려가면서 손이 로프를 타고 시야는 더욱 컴컴해지면서 내려간다. 몇 번을 반복해야 발이 닿나 모르겠다. 여섯 번 쯤 했을 때, 드디어 하체가 바깥보다 따뜻한 온기를 인지한다. 칩니가 끝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반복에서 내 상체와 머리까지 그 온기와 접촉했다. 젠장. 칩니를 나왔지만 여전히 밖과 별다르지 않게 컴컴하다. 컴컴하다... 여전히... 왼쪽 눈을 감아 어둠에 적응한다.


뛰었다. 전문을 전달받은 사람들이 무리로 뛰었고, 사용하던 모든 무인포스트에 쪽지를 남겼다. 그 쪽지는 우리들만 알 수 있는 약어와 비속어 같은 걸로 요약되어 있었다.


[어디어디로,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도달하라. 신속하게. 시간.]


이유 몰랐다. 내가 인지했을 때는 거리 20km. 나와 동료는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뛰다가 목표가 가까워져 오자 점차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산에 혼자 혹은 삼삼오오 뛰고 있는 것이 적일 수 없다. 뒤섞인 북한군복은 순간순간 사람 놀라게 한다. 그렇게 지점에 근접해 우리 지역대 생존자를 만났고, 그러다 우리 대대 다른 지역대까지 나타난다.


깨달은 결론은 대대 규합.


이런 게 실제로 이뤄진다니 놀랍고 신기하고 간 쓸개 다 내놓을 정도로 기뻤다. 그런데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리 대대가 아닌 5대대가 나타나기 시작한 거다. 5대대는 우리보다 훨씬 멀었고, 우리 섹터 동쪽 저 어디 있을 걸로 알았다. 그 이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2개 대대 규합. 우리는 1-2차 작전이 끝나고 나서 자기 섹터의 보급선과 이동을 방해하고 때리고 있었다.


규합의 이유가 궁금했다. 북한 땅에서 처음으로 남조선 항공륙전 중좌를 만났다. 5대대장... 난 그 분이 넘어왔는지조차 몰랐었다.


평양이 점령되었음을 생존 대원들은 알았다. 기뻤다. 우린 개성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저 평양을 기점으로 어디까지 왔나 귀추가 주목한다. 좁은 땅덩이라고는 하지만 평양은 서울에서 너무 멀어 외로웠다. 그리고 평양 위쪽 더 외로운 곳에 우리가 있었다.


동료들을 만났다는 기쁨도 잠시, 5대대장을 통해서 받은 우리의 명령은... 이제 끝났구나... 전쟁이 끝났구나가 아니라, 우리의 임무 작전 목숨이 이제 마지막 종착역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뜻이다.


사령부에서 내려온 긴급명령은 미군 정보를 토대로 한 것 같다.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북한 땅에 있는 2개 대대 규합 및 특정목표를 부여했다. 소수 대대본부는 엄청 숨 가빴다. 시간이 없단다. 하시, 즉시, 곧 바로 움직여야 했다. 사령부가 긴급으로 하달한 목표로 5대대장은 정찰대 다섯 명을 이미 이틀 전에 내보냈다. 더 이상 그 자리에서 추가 합류자를 기다리지 않고 두 시간 뒤 바로 출발이라고 했다.


“불필요한 건 버려라.”


그러나 목표의 대충 위치만 말해주었지 목표가 무엇이며 어떤 이유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가는 도중에 통보할 것이라고만 했다. 마음 불안했다. 약간 거 아니다.


몸과 땀과 똥. 개나 소나 인간이나 약간의 구조 차이 외에 결국 같다. 지구상의 동물들은 결코 별다르지 않다. 지구가 아닌 곳에 어떤 새로운 형태 생명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지구 안에서 구조는 비슷하다. 눈. 입. 코. 삼키고 씹는 것. 척추와 위장. 그리고 먹은 만큼 싸는 것. 각 동물은 태어나면서 받은 몸과 머리가 있고, 먹은 것으로 발달해 구조가 갖춰진다. 인간 몸이나 동물 몸이나, 현재의 몸은 지난 3개월간 먹은 것이다. 그 먹은 것이 살이 되고 뼈를 강화하고 힘을 낸다. 먹은 것들은 화학적으로 변해 똥으로 빠진다. 똥 잘 싸는 것도 지구상 동물들의 건강이다.


인간도 그것이 근본적인 것이며 사회적으로 몸을 가리기 위해 옷을 입는다. 군인은 군복을 입는다. 민간인들은 가방이나 필요한 걸 들고, 군인은 프레스와 금형과 전자부품으로 찍어낸 병기와 장비를 사용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똑같이 먹고 싼다. 그건 변하지 않는다. 그게 변하거나 중단되면 그 인간은 이제 죽은 거다.


그 먹고 싸는 것에서 여유가 생기면 생각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이상과 이데올로기도 구상한다. 어떤 놈은 먹고 싸면서 생각하는 것에 주력하고, 어떤 놈은 먹고 싸면서 뛰고 쏘고를 연습한다. 그 쏘고 뛰는 놈들도 둘로 갈려 적이라 생각하며 서로 죽인다. 거기에 근본적인 배경, 차가운 심리가 깔린다. 내가 죽지 않고 상대를 먼저 죽이면서 똥을 계속 싸는 것. 양쪽 국민 모두 서로 아군이 먼저 많이 죽이고 승리를 쟁취하기 바란다.


그 먹고 싸고 총 든 인간들이 여러 곳에서 동시에 뛰었다. 생존한 다수가 도착했으나, 아직도 뛰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규합 장소에 다시 간략한 무인포스트를 묻었는데, 쪽지는 정확한 목표를 지시하지 않고 1차 재집결지로 우리가 가는 루트 중간을 적었다. 이동하다 거기서 몇 명이 남아 다시 추가 합류자를 데리고 오는 거다. 목표를 적을 수는 없었다. 절대로. 절대로...


생존자 모두를 모을 수는 없다. 장거리무전기가 살아 있는 팀에서만 이 내용을 알았고, 낙오되거나 격리된 병력을 위해 무인포스트를 남겨 놓았지만, 누가 보고 도달할지 아무도 모른다. 대부분 막판에 강력한 추격부대를 만났고, 삼삼오오 추격을 피해 갈라져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낙오자 규합은 힘들어졌다. 이제 대원들이 암기 하고 있는 유보계획이 바닥을 드러냈다. 더 이상 약조가 없다.


존나게 가다 보면 저 멀리서 총소리와 폭음이 들린다. 의미는 바로 들어온다. 그 교전음 듣고 다시 뛸 방향을 변경한다. 그 총소리 중에는 더 이상 도피탈출이 불가능한 대원이 동료들 들으라고 적 위치를 알리며 죽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전우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뛴다. 포로로 잡힌 사람도 있다.


다 사람 사는 세상이다. 북한 정찰조처럼 모두가 자결하는 건 아니다. 이 북한 땅의 전면 비정규전은 숫자도 제대도 많고 복잡하게 버무려져있다. 개별적인 생존의 조합은 사령부도 모른다. 사령부에 정식으로 전사 보고 올라가는 사람은 희귀하다. 모두 실종이다. 어디서 어떻게 죽고 사라졌는지 모른다. 나중에 모이면 비어있을 것이고, 그때서야 진짜 전상률은 나올 것이다. 대부분 전사가 아닌 실종. 나도 알고 너도 안다.


내가 여기서 사람을 아무리 죽여도 어떤 법도 처벌이 없다. 30초도 길 정도로 빠르게 골로 가는 존재. 우린 영원한 실종상태를 위해 끝까지 죽인다. 아군 죽일 놈들을 우리가 먼저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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