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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는 아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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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관해] 가끔. 아니, 종종. 아니, 자주 이런 때가 있다.

글을 쓰고나서 얼마 뒤에 돌아보면 어디라고 콕 집어 말하기 힘든 불쾌감이 생겨난다. 각 문장마다 보노라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문단으로 넘어가면 숨이 턱턱 막힌다. 다시 쓰고자 생각하면 또 이 이상으로 쓸 수 있을 것인가 확신이 없다. 또 그렇다고 놔두기엔 눈에 가시가 박힌 듯 거슬리다. 자꾸 눈에 밟히고 생각이 나다가 그 비슷한, 상태가 좋았다 자평했을 때의 글을 돌아보고나서야 뭔지 모르겠던 문제가 어렴풋이 잡힌다. 하지만 문제를 안 것만으로 반은 해결한 것이라 누가 말했던가. 이 망할 작업은 공식이 아니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기분에 따라, 뭘 봤었는지에 따라, 뭘 듣고 있느냐에 따라 또 전개가 달라지는 빌어먹을 작업이다. 내가 당장 이걸 수정하더라도 남들이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획기적인 변화가 이뤄지지 않음을, 그마저도 쉽지 않음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같은 글을 거의 이 년에 걸쳐서 몇 번이고 꼬라박았던 시절의 경험이 헛짓거리 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그대로 돌아서야 하건만, 당시 반쯤 미쳐있던 나날의 후유증으로 얻은, 아마도 정신병 비슷한 무엇이 나를 자꾸 충동질한다. 거슬리면 엎어버리라고, 마음에 안 들면 싹 날려버리라고. 그런 미친 짓과 작별을 고했노라 생각했고, 오랜 시간이 지났으며, 더는 연중 따윈 생각지도, 쓴 글을 돌아봐선 안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건만 나는 아직도 이지랄이다. 십오 년도 넘게 매달렸음에도 나는 아직도 글을 못쓴다.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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