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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는 아궁이

글에 관해


[글에 관해] 쓰는 이, 읽는 이의 입장

예전에 한창 글 쓰는 게 신나서 습작을 써댈 때는 개인적으로 독자들에게 불만이 많았다. 당장 눈 앞의 답답함이나 이상함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좀 덜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물론 내 글을 믿고 따라오는 분들도 있었고, 여타 막나가는 글들도 많았기에 내 글도 다르지 않겠거니 생각한 탓도 있었겠지. 글을 보는 성향이 뒤바뀐 탓도 있을 거다.

 

여튼 반 이상이 날 지지하건 뭐건 간에, 나는 그런 상황이 싫었다. 처음부터 태클을 걸었더라면 아직 내 글을 모르니 그렇겠거니 생각했다만,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던 터라 ‘이만큼이나 읽고도 나를 못 믿어?’란 생각에 꽤 격렬하게 반응했다. 대충 떠올리자면 ‘내 글을 못 믿으면 당장 선삭하세요.’라고. 그 생각에는 한동안 변함이 없었었다. 대부분의 투정 댓글들은 내가 글을 못 썼다가 아니라, 이런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투정 식이었으니까.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건데, 글을 쓰는 건 그 사람 개인의 권한이다. 뽕빨을 쓰건, 막장을 쓰건. 고품질이건 저질이건 쓰고 싶은 사람이 꼴리는대로 쓰면 된다. 그게 마음에 안 들면 독자는 그냥 안 보면 된다. 몇몇 소수를 제외하면 보라고 사정하는 것도 아니고, 당사자가 쓰고 싶은 글을 쓴느 건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도 웃기는 노릇 아닌가? 정 마음에 안 들면 직접 쓰면 되지.

 

내 경우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런 쪽이었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내 취향이 아닌 글이 너무 많고, 솔직하게 까놓고 말해서 ‘내가 써도 이것 보단 잘 쓰겠다’ 싶었기에 댓글로 어쩌니 저쩌니 떠드는 대신 그냥 내가 쓰기 시작했으니까.

 

글 쓰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독자가 매 분량마다 일희일비하는 게 즐거움이자 안타까움이다. 내가 쓸 글이 당장 10회 내로 완결을 찍는다면야 모르겠지만, 또 중요한 인물을 죽이느니 살리느니 하는 장면이라면야 또 모르지만 사사건건 일희일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좀 답답하다. 단편도 아니고 장편을 쓰고 있는데 저런다면 어떻게 이 긴 글의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일희일비하다가 질려서 떨어져나가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든다. 물론 잘 쓴다면 넘어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필력이 없는 사람을 제외하고, 잘 쓰는 사람이라면 독자를 더더욱 일희일비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그게 안 된다면? 그럼 그 글이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나 전문서적이겠지. 소설인데 독자의 감정을 널뛰기 하듯 만들지 못하면 그게 무슨 재밌는 글이겠나.

 

여튼 간에 나는 그리 생각하고 자기 생각을 과도하게 보이는 독자들을 불퉁한 시선으로 지켜봤다. 대놓고 반발또는 막말하는 분들에게는 ‘안녕히가세요’식으로 말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서 여러 연재 글을 보게 되었다. 평생동안 본 연재 글들보다 올해 본 글들이 더 많았을 거다. 책으로 따지면 50권도 넘게 본 것 같으니까.

 

읽다보니 연재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책으로 읽는다면 독자의 입장에선 구태여 일희일비 할 필요가 없다. 다음 내용이 아직 남았고, 책의 마무리 부분을 본다면 이 글을 더 볼지 안 볼지 가닥이 잡히기 마련이니까. 더불어서 아주 열정적인 사람이 아니라면야 펜레터까지 보낼 사람도 없고. 댓글 달 창도 없고. 하지만 연재분은 그날 본 적으면 삼천 자에서 많아봤자 일만자. 아주 드물게 이만 자 까지가 전부다. 다음의 내용은 오직 글쓴이의 비축분이나 머릿속에 있으니 다음 연재가 올라올 때까지 알아 볼 방법이 전무하다. 글 쓰는 입장에서도 지금 이리 쓰고 있는 건 나중에 나올 건데, 독자가 모르고 답답해 한다고해서 다음 내용을 작자 본인이 까발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렇다보니 자연 답답한데다가 얼마 안 되는 분량씩 보게 되는 독자로서는 마침 댓글 창도 달렸겠다 별다른 고민 없이, 또는 적정한 예의를 갖춰서 댓글을 달게 된다. 그 글이 재밌으면 재밌을 수록. 더불어서 못 쓰면 못 쓸 수록 악의를 담아서 악플을 달 수도 있겠다. 욕구불만인 사람이라면야 뭐 어떻게 되건 말건 ‘히히 오줌 발사!’란 마인드로 막장 짓을 하게 될 수도 있고.

이렇다보니, 게다가 사람들의 성향이 개개인마다 다르다보니, 거기다가 또 글 쓴이는 한 명인데 독자의 수는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몇 만까지도 달하다보니 내용이 어쨌건 잘 쓴 글이라면 온갖 칭찬과 아쉬움을, 못 쓴 글이라면 온갖 아쉬움과 악평을 받게 되기 마련.

 

그간 나는 대부분 글을 쓰는 입장에 있었고, 다른 글을 보면서도 냉정한 입장을 유지해서 더 안 볼 글이라면 댓글을 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삭제해버리고 땡 했기에 독자의 입장에 선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올 들어 많은 글을 보게 되고, 그러다가 독자의 입장이 되어서 댓글을 달까말까 손가락이 근질근질하게 되다보니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어졌다. 거기다가 그 다다음 화에서 글쓴이가 직접 예전의 나처럼 열 뻗쳐서 구구절절한 설명을 하고, 앞의 내용을 대대적으로 스포일러해버리니 깨달은 바가 생겼다.

 

독자는 최소한의 예의. 그러니까 작자와 얼굴을 마주했을 때는 못할 정도의 수위의 말만 아니라면 뭐든 달아도 된다. 아쉬움을 토로해도 되고, 좋다는 건 당연히 된다. 글의 빈틈에 대한 충고도 되고. 이건 좀 불쾌하겠지만 글의 방향이 이러이러하게 진행 되는 게 낫겠다는 것 까지도 나쁘지 않다. 그런 건 글을 읽는 사람의 자유니까.

 

글쓴이의 경우는 아니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독자의 댓글 정도는 그러려니하고 받아야 한다. 인터넷 예의니, 상처 받는다느니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게 싫으면 아예 모든 댓글을 달지 못하게 하던가. 그런 경우에는 쪽지함이 폭발할 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인터넷에 글을 쓰는 이상 좋은 말만 들을 수는 없다. 작은 카페에서 연재하는 것도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는데 이렇게나 크고 불특정 다수가 몰려드는 사이트에서 좋은 댓글만 달리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그저 작정하고 악플 다는 진상을 제외하면 무플보단 낫다는 생각으로 넘겨버리는 게 옳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에는 그렇단 거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애초에 그걸 피할 수 있는 방도란 없으니까. 글쓴이의 생각이 어쨌건 피할 수가 없으니 그저 담담해지거나, 무시하거나, 즐기면 되는 거니까.

 

덧붙여서 댓글을 볼 때는 좀 더 긍정적으로 보는 습관이 들면 좋다. 짧은 댓글에서 감정을 읽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그 내용도 아쉬움을 토로하거나 불만을 제기한다면 당연히 악감정이 담겼으리라 여기기 마련이다. 연애를 해봤다면, 또는 누군가를 좋아해 봤다면 알것이다. 상대가 아무런 생각 없이 한 말에 온갖 의미를 담아서 수십 개의 추측을 만들어 냄을. 하지만 서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별 거 아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보낸 문자이고, 내가 문자에 붙인 좋거나 나쁜 의미들도 아무것도 아니다. 댓글 역시 그와 비슷하다. 아니, 짝사랑의 대상이 보낸 문자보다 훨씬 낫다. 최소한 독자의 댓글은 대놓고 쌍욕 하고 비아냥 거리는 게 아닌 이상은 최소한의 애정이 있기 마련이니까.

 

스스로 돌이켜 생각해보자. 아무 호감 없는 그냥 아는 사람이나, 별 관심 없는 글에 문자 하나, 댓글 하나 보낸 적이 있는지. 미안함이건 힘 내라는 응원이건, 투정이건 다 문자, 댓글을 보내는 수고로움을 감당할 정도의 애정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위에 언급했던 막장의 예외만 아니라면 독자의 댓글은 최소한의 애정은 담겨 있다는 것만 기억해 놓자. 그것만해도 어지간한 댓글에의 내성은 생기기 마련이니까. 투정의 댓글도 ‘하, 귀여운 짜식.’ 정도로 넘어 갈 수 있게 된다. 물론 막지거리 하는 놈이라면 고소나 고발도 진지하게 생각해주자. 모욕을 받았는데 참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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