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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를 지피는 아궁이

글에 관해


[글에 관해] 클래스는 영원하다

가왕 조용필씨의 새 노래가 나왔다. 먼저 공개 된 곡은 ‘바운스’. 그리고 이 바운스는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싸이의 젠틀맨을 단숨에 제치고 각종 음원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어린 우리들에게 조용필의 이미지는 부모님 세대가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 그냥 유명한 아저씨 가수다. 나름 알아봤던 나 역시 그런 생각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나이가 있기에, 그가 전성기를 누렸던 세월의 기억이 남았기에 젊은이들이 듣는 음악을 만든다기 보다는, 그를 좋아했던 세대가 공감할 만한 음악을 만들 것이라 섯부른 짐작을 했다. 하지만 나온 결과물은 전혀 달랐다. 옛날의 느낌과 현대의 감각이 공존하는 바운스는 그 인기만으로도 ‘가왕’이란 타이틀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증명햇다.


노래는 편안하고, 가사는 부담 없이 귓속에 틀어박힌다. 몇 번이고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음악. 이 곡 또한 이전의 곡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십 년을 넘게 가겠지. 이런 힘은 과연 어디서 올까?


잠깐 글로 넘어가 보자. 요즘의 나오는 글들은 대부분 일 년의 유통기한을 지닌다. 아이돌들의 노래와 같다. 일 년이라도 불꽃 같이 타오를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어쨌거나 아이돌의 노래에는 깊이가 없다. 유행이 될 수 있을 지언정 오래도록 사랑받기는 힘들다. 글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작품들은 기획부터가 그리 기획되었다. 소비되는 문화. 분명한 유통기한을 라벨에 새겨 넣고, 그 기한 동안만 타오를 수 있는 제품.


하지만 가왕의 노래처럼, 아직도 추억속에 되새기곤 하고 책장에 꼽아놓은 것을 다시금 뽑아들어 되새겨 보는 명작들은 어떻게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 세월을 거스르고, 이겨내며 대중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명품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물론 이것 역시 기획이 있었을 것이다. 이름 값이란 것도 있겠지.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천재성과 그것을 잡아 이끌 수 있는 엄청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조용필씨의 나이는 벌써 아득하다. 부모님세대를 휩쓴 분이니 우리들의 부모님과 같거나 그보다 많은 나이. 그러한 연세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까지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데에는 이전까지의 수많은 도전이 있었다.


조용필이 무슨 도전이냐고? 그의 음악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팝 위주의 음악시장을 가요 위주로 되돌렸고, 노래에 신사이져를 비롯한 무수한 시도를 했다. 록과 발라드 또한 시도했고, 제대로 된 콘서트의 시작을 연 것도 그다. 음악에도 여타 장르들을 넘나드는 무수한 시도가 있었다. 그는 최고이기 전에도 노력했고, 최고가 된 뒤로도 세션과 설비 등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한 노력, 음악적 도전들이 있었기에, 그리고 오랜 세월간 쌓인 대가만의 힘이 있었기에 세대조차 뛰어넘은 음악을 만들 수 있던 게 아닐까?


글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처음부터 한 시절만을 불태울 글을 쓰고 싶은 이는 없었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글이 세월에 자유로운 불멸의 생명력을 얻게 되길 바랐을 거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 진지하게 글을 쓴다면 그랬을 것이라 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그러려면 폭이 좁아서는 안 된다. 대가가 되려면 좁다란 물에서 물장구나 치면서 이 정도면 된다고 만족할 리가 없다. 하지만 이 바닥을 시작하는 우리들에게는 그런 폭 넓은 경험이 부족하다.


불과 일 년을 불태울 수명에도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하물며 십 년을 넘어 세월과 세대를 뛰어넘는 작품이라면 어떤 노력이 들어가야 할까. 심지어 그것을 만드는 이가 천재도 아니고, 수십 년의 노하우가 쌓인 베테랑도 아니라면.


천재성도, 노련함도 없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당장의 유행에 뒤늦게 몸을 싣는 약삭빠른 우둔함이 아니라 내가 가야 할 길을 바라보며 그 길을 확신하고, 그에 대한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수 외엔 없다. 처음부터 남을 따라가려는 자는 결국 유행을 만들지도 못하고, 일 년의 수명조차 얻기 힘들다. 범을 그리다 실패하면 고양이라도 그리면 되지만, 고양이를 그리다 실패하면 뭘 그릴 건가? 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직 젊기에 가질 수 있는 번뜩이는 재치와 아직 시도해보지 않았기에 시도할 수 있는 무모하기까지 한 도전 뿐이다. 얼마 나이를 먹지도 않았는데 지레 겁먹고 노회한 정치인처럼 남의 길을 고대로 따라갈 필요도, 따라 가서도 안 된다. 젊어서 시도하지 못한다면 나이 먹어서는 더더욱 할 수 없다. 가왕이라 불리는 저 조용필도 젊었을 때는 노래 한 번 부를 기회를 기다리던 새파란 젊은이 였을 것이다. 그는 젊음으로서 가고자 하는 길에 도전 했고, 자신의 길을 만들었으며 결국 업계의 대부로 우뚝섰다.


우리라고 못할 건 뭔가? 그 당시의 음악시장은 팝으로 가득했다. 국산 가요보다 팝을 듣는 이들로 가득했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던 이들도 거의 없었다. 이제 간신히 시도를 하고 있던 이들만 있던 때. 격동이 일어나기 전. 가수들은 조그만 출연료를 받고 밤무대에 올라 연명하던 그런 때다. 정말 우리라고 못할 건 뭔가?


시장이 무너지고, 독자가 떠나가고, 불법 공유, 대여점 등등.


하지만 또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장이 아니더라도 제대로 된 글이라면 출판사들이 알아서 두 손 벌리고 찾아와 맞이할 거다. 왜 인지 아는가? 다들 알지 않는가. 볼 만한 글이 없다. 단순히 일 년을 보낼 글은 있지만 새로이 십 년을 불태우며 등대가 될 글이 없다. 독자는 자신의 책장에 놓을 글에 목말라 있고, 많은 작가들도 자신들을 앞서 이끌 선지자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기회는 있어 왔고, 그 첨병은 노련한 숙련자들보다는 자신만의 꿈을 가진 젊은 피였다. 우리는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 남이 뚫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앞장서 새로운 영광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지녀야한다.


댓글 3

  • 001. Lv.1 [탈퇴계정]

    13.04.18 06:28

    잘 읽고, 배우고 갑니다.

  • 002. Personacon 큰불

    14.01.11 21:06

    아... 나는 약해졌나보다.

  • 003. Personacon 큰불

    18.07.22 04:35

    하지만 일 년도 힘들었다지. 세상은 대가도 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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