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뿡꺕
작품등록일 :
2022.05.11 15:17
최근연재일 :
2022.05.28 08:35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1,711
추천수 :
172
글자수 :
102,973

작성
22.05.15 14:10
조회
107
추천
11
글자
12쪽

5화-앙조장(1)

DUMMY

* * *


로이가 천 조각을 돌려줬다.


“엘리엇 가자.”


엘리엇은 말없이 로이를 따라 걸었다. 언제든 검을 뽑을 준비를 했다.


품 안에 총도 있지만 근거리에선 칼이 더 빨랐다. 놈들이 덤비면 한 놈을 처치하고 로이를 잡아채 거리를 띄우면 된다.


엘리엇과 달리 앞서가는 로이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역시 경험이 부족하군. 나에게 감사하라고.’


생체실험의 후유증으로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무기도 손에 익지 않았다. 하지만 용병 생활로 단련된 몸은 이런 놈들 따위 두렵지 않았다.


그때, 쥐상의 남자가 갑자기 바뀐 눈빛으로 검을 뽑았다.


“가긴 어딜 가. 저승으로 가야지! 이 새끼들 죽여!”


조금 전까지 호의를 베풀던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엘리엇이 칼을 뽑았다. 역시 예상대로 로이는 무기도 꺼내 들지 못했다.


‘이번엔 내가 구해줘야겠다.’


세 놈의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저놈들은 단순 강도가 아니라 살인을 즐기는 자들이 확실했다.


로이를 보호하기 위해 지면을 밟고 앞으로 쏘아졌다. 로이의 목이 떨어지기 전에 막기 위해서였다.


‘어라. 왜 저러는 거지?’


대장처럼 보이던 남자가 칼을 뽑던 자세로 멈춰 서 있었다. 신호에 달려오던 두 놈도 어정쩡하게 멈추어 섰다.


“군타, 뭐 하는 거야? 왜 가만히 있어?”


“왜 그래?”


군타라는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이었다. 로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남자를 돌려세웠다.


“자기 잘못을 깨우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군. 내 말 맞지?”


엘리엇의 눈에 로이가 남자의 뒤통수를 잡아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 그래. 마법인 거야! 로이는 마법사가 확실하군. 근데 저게 무슨 마법인 거지?’


군터란 남자의 고개가 끄덕이자 두 놈은 당황했다. 뒤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뭐, 뭐야? 갑자기 왜 그래?”


로이가 남자를 밀자 밀랍 인형처럼 바닥으로 툭 쓰러졌다. 창백한 얼굴이 이미 죽은 것 같았다.


‘아니? 어떻게 한 거지? 주문을 외우지도 않았는데?’


용병으로 일하며 마법사를 여러 번 만났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마법을 쓰는 자는 본 적이 없었다.


‘분명 아무런 준비도 하고 있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죽였다. 어떻게 이런 마법이?’


그러고 보니, 감방에 간수들도 열 명이 넘게 죽어있었다. 분명 로이 혼자 한 일이었다.


그런 곳을 탈출했다는 건 뛰어난 마법사라는 것.


‘보통 실력자가 아니다.’


대장이 쓰러지자 나머지 두 명이 검과 도끼를 휘둘러 왔다.


“죽어, 이 새끼야!”


엘리엇이 움직이기도 전에 로이의 몸이 먼저 앞으로 튀어 나갔다.

도끼가 로이의 머리에 닿기도 전에 남자의 가슴을 로이의 손끝이 건드렸다.


“윽.”


짧은 단말마와 함께 도끼가 툭 떨어졌다. 도끼 주인인 남자의 몸도 마찬가지였다. 첨벙 소리를 내며 구정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로이는 독으로 사람을 처음 죽였다. 군터란 남자는 꽤 많은 독을 주입했지만, 도끼를 들고 있던 남자는 달랐다.


‘독을 심장 가까이 주입하니 단번에 죽었다.’


그 사이 검날이 로이의 목에 떨어지고 있었다. 로이가 몸을 회전시키며 검날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텅!


검을 따라 남자의 몸이 반 바퀴 돌았다. 로이가 뒤에서 턱을 잡아 꺾었다.


우드득.


목이 돌아가면서 축 늘어졌다. 눈이 부릅떠진 그대로 즉사였다. 하수도적의 마지막다웠다.


“로이, 너 정말 대단하구나! 이 정도일 줄이야···.”


엘리엇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로이는 생각보다 더 강자였다.

지금의 몸 상태로 엘리엇이 혼자 싸웠다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엘리엇이 보기에 로이의 움직임은 마법사보다는 단련된 전사 같았다.


‘전투를 많이 해봤나?’


엘리엇이 로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혹시, 용병 일 해볼 생각 없어?”


“없다.”






* * *


나는 엘리엇과 헤어져 집으로 왔다. 구정물이 말라서 끈적거렸다.


집이라곤 하지만 난생처음 본다. 나무 창가로 빛이 들어왔고 곳곳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구석에는 술병이 잔뜩 쌓여 굴러다녔다. 몸에서 진동하는 악취에 참을 수가 없어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에는 거울이 있어 얼굴을 비춰 봤다.


생소하고 낯선 얼굴.


말상의 얼굴은 감정이라곤 없어 보였다. 왼쪽 눈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있었다.


연쇄 살인범 느낌이라고 표현한 그대로다.


‘울퉁불퉁한 감촉이 이거였구나.’


몸 여기저기에 베이고 찔린 흉터도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등 중간에 거미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일단 씻고 자세히 보자.’


나는 샤워기에 물을 틀었다. 더러움과 함께 피로까지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따듯한 물이 주는 심리적 편안함 때문일까 몸이 나른했다.


물을 받으며 다시 한번 거울을 바라봤다.


문득, 로이가 어떻게 살아왔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기억나는 것들은 많지 않았다.


이름이 로이이고 이곳이 집이라는 것. 그 외에는 기억나는 것들이 거의 없었다.


거울 속 눈을 쳐다보며 생소한 얼굴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그 순간, 거울 속 로이가 대답했다.


거울 속 로이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잘 부탁합니다.’


거울 속 얼굴은 눈가가 촉촉이 젖어있었다.

입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텔레파시처럼 생각이 전해졌다.


나는 거울 밖에서 의문투성이였다. 거울 속 사람이 어떻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의 말은 무슨 뜻인지.


“뭐를 부탁한다는 거냐?”


나의 말에 거울 속 로이가 묵묵부답 고개를 숙였다.


‘부모님의 복수.’


“네 부모님의 복수를 왜 내가 해?”


그 순간, 머리에서 맥박이 팔딱거렸다.


로이 부모님의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마인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숨어서 지켜보는 로이의 기억이었다.


내 눈에서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왜, 슬픈 거지?


이어서 술에 찌들어 살던 기억이 떠오른다. 로이에게 대대로 운영하던 양조장은 공짜 술을 얻는 곳일 뿐이었다.


부모님이 살해당할 때 지켜보기만 했던 스스로를 형편없는 쓰레기라 생각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싸움박질로 피떡이 돼서 들어오던 기억도 떠올랐다.


나는 그런 로이가 안쓰럽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술에 의존하며 우울증에 시달리던 로이는 동생도 지킬 자신이 없었다.


동생의 얼굴을 보기도 힘겨웠고, 동생도 그런 로이를 견디지 못했다.


결국 집을 나간 여동생 걱정에 마음 한곳이 무거웠다.


‘찾아서 데려와야지.’


이젠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감옥에서 탈출하겠다는 생각 뒤엔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싸우고 능력을 키워 게임을 클리어 하는 게 플레이어의 인생이라면, 나는 세상에 뚝 떨어진 사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로이의 기억이 합쳐지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마인과 악마를 죽여 세상을 구하는 것이 스토리인 게임이다. 그런 세상에 악마를 증오하는 자의 몸속에 들어왔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일까?


신이 나에게 악마와 싸우라는 것일까?


해답은 알 수 없다.


이 게임에 플레이어는 오지 않는다. 닥칠 미래는 오로지 나만 알고 있을 뿐이다.


세상이 멸망하는 엔딩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로이같은 불쌍한 사람이 생겨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내가 싸워야 한다.


다시 거울 속 로이를 바라봤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네 염원을 들어줄 것이다.”


거울 속 로이가 환하게 웃었다.

점차 모습이 흐려지다 지금의 내가 비춰 보였다.


나는 거울을 보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김현우다.”


“이 게임을 만든 사람 중에 하나다.”


“로이의 아픔 또한 내가 가지고 가겠다.”


과거의 로이처럼 살아갈 생각은 없었다.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살 거다.”


하지만 로이의 염원과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일치했다.


“신이 있다면, 보고 있겠지. 지켜봐라. 나는 게임을 클리어하겠다. 왜 나를 이곳에 데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날 맘대로 휘두를 생각은 하지 마라. 이 세계는 나에게도 책임이 있으니 하는 것뿐이다.”


샤워를 마치니 허기가 몰려왔다.


‘하나씩 차근차근. 당장 할 수 있는 걸 하자.’


탈출하는 동안 굶어서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먹다 남은 스프는 곰팡이가 잔뜩 피어있고, 음식이랄 만한 게 없었다. 그나마 냉동실에는 고기 한 덩이가 얼어 있었다.


집안을 둘러보니 바구니엔 싹이 가시처럼 피어오른 감자가 있었고 귀리를 쪄서 말린 오트밀이 보였다.


당장 이거라도 먹어야겠다.


나는 물과 오트밀을 넣고 팔팔 끓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는데 아키스에서는 흔한 음식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소금을 넣은 오트밀 죽을 저으면서 내 시선은 자꾸 싹튼 감자를 향했다.


애써 외면하지만, 자꾸 눈이 간다.


이유는 짐작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탈출하고 처음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거다. 그게 먼저다.


얼어 있던 고기도 구웠다. 역시 고기는 고기다. 냄새가 끝내준다. 입에서 침이 저절로 나왔다.


구운 고기와 완성된 오트밀 죽을 냄비째 가져왔다. 냄비를 든 내 손이 달달 떨리는 게 보였다.


당이 떨어져서 그렇겠지.


냄비를 내려놓자마자 오트밀 죽을 떠 입에 쑤셔 넣었다.


따뜻한 음식이 몸에 들어가니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맛이 원래 이렇게 썼나?


곡물만 넣고 만든 죽이니 맛없는 건 인정한다.


이번엔 고기를 입에 넣었다. 육즙이 터지며 사르르 녹았다.


웩.


근데 맛이 이상했다. 애완동물의 사료를 먹으면 이런 느낌일까. 내 것이 아닌 음식을 먹은 것 같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애써 부정해 본다.


다시 먹는다. 먹어야 사니까.


“······.”


그릇이 점차 줄어들었다.


“하아······.”


억지로 배를 채웠지만, 음식이 당으로 전환이 안 되는 건지 힘이 나지 않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싹튼 감자로 자꾸 눈이 갔다.


나도 모르겠다. 이게 본능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감자 바구니에 손을 뻗었다. 괴생물체처럼 길게 자라난 싹을 잡아 뜯었다. 흙냄새가 나는 줄기를 욱여넣고 씹으니 퍽퍽하고 질겼다.


특히, 씹힐 때마다 비릿한 냄새가 맴돌았다.


그런데, 혀가 이상해진 것 같다.


감자 싹을 먹는데 알싸한 맛이 끝내줬다. 이건 크게 잘못됐다. 감방에서 독을 마셨을 때도 이상했지만, 아닐 거라고 부정했다.


그런데 지금, 혀에 느껴지는 이 맛이 말하고 있었다.


‘응, 너는 주식이 독이야.’


이건 안된다. 감자 싹, 독, 그런 걸 먹고 살라고?


그래야 한다면, 닭, 돼지보다 못한 꼴이다. 차라리 사료가 나았다.


억울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자취 생활을 하며 유튜브로 단련된 요리 실력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말인가?


제발, 이건 아니다.


야속하게도 내 눈이 자꾸 냉장고로 향했다.


본능에 이끌리듯 냉장고 문을 열었다. 곰팡이가 잔뜩 핀 수프를 꺼내왔다. 자제할 틈도 없이 어느새 혀로 곰팡이를 핥고 있었다.


혀에 감기는 곰팡이 맛은 독특했다. 보드랍고 감미로웠다.


잠시 후, 감자 싹과 곰팡이를 먹은 대가로 고통이 찾아왔다.


나는 다짐했다.

정말 신이 있어 나를 이곳으로 보낸 거라면, 그 신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할 수만 있다면 주둥이를 후려쳐서 미각을 뒤집어 놓을 것이다.


당한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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