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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0 16:21
연재수 :
243 회
조회수 :
10,942
추천수 :
681
글자수 :
1,293,406

작성
22.12.21 11:59
조회
47
추천
2
글자
12쪽

135. 길을 잃거든 그에게 길을 묻거라

DUMMY

며칠 전이었다.


"천년 서고에는 대현자에게만 허락되는 고대 마법들이 있죠?"

"네."

"제가 그것들을 배우면 좋겠는데요."


훈련을 하다 휴식을 취하는 중.

듀시아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호위군 대장에게 은밀히 다가온 넷이 말했다.


"저 역시 대현자님께서 고대 마법들을 배우신다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정식으로 즉위하셔야 들어가실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는 겁니다."


원래 그는 넷이 정식으로 대현자가 될 때까지 천년서고의 마법을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의심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감이 이상하고 그 나름대로 확인 작업을 거치고 싶었던 것이다.

빛의 검은 대단한 마법이고 이를 재현하는 것만으로 넷을 대현자로 추대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대현자라 할 만한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천년서고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은 것이다.

절차상으로도 정식으로 대현자가 되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니 그녀가 설령 천년서고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하더라도 그녀가 천년서고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에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생각이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넷 곁에 붙어서 지내보니 그는 자연스레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대현자에 오른다면 그 역할을 굉장히 잘 수행해 낼 것이라고 말이다.


실력이나 재능, 위엄, 권위 등등.

대현자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요소들은 많지만 그 중에도 중요한 점을 한 가지 꼽으라고 한다면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의지'를 꼽을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까지 견디는 힘.

그가 확신을 얻은 부분은 넷이 남들보다 의지가 강하다는 점이었다.


이미 그는 마음 속으로 기어코 넷을 대현자로 만들어 놓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가주님들에게 정식으로 요청하면 가능은 하지만 말씀하시는 것을 보아하니 남들 모르게 들어가고 싶은신 거 같은데 제 생각이 맞습니까?"

"네. 혹시..."


그렇기에 그는 그녀의 부탁이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최대한 협조할 생각이었다.


"... 힘들까요?"

"아니요. 가능은 합니다."


정식으로 천년서고에 들어가는 방식은 총 두 가지다.

모든 가문의 가주가 모이거나 혹은 대현자가 되거나.

전자의 경우에 열두 명의 가주들이 각자 쪼개어 가지고 있는 열쇠의 조각을 한데 합쳐야 서고의 문을 열 수 있다.

엉덩이 무거운 사람들을 모으는 것도 일이고 그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도 일이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에는 서고에 들어가기가 훨씬 간편하다.

대현자의 상징과도 같은 천년목 지팡이에 가주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열쇠 조각을 각인하여 온전한 열쇠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굳이 사람들을 모을 필요 없이 천년목 지팡이만 있다면 된다는 뜻이다.


"이미 대현자님께서 쓰실 천년목 지팡이는 완성이 된 상태지만 쓸 수는 없는 상태입니다."


감옥에 갇힌 떼르 가주에게서 알아낸 열쇠 조각의 형태를 포함하여 가주들이 한데 모여 열쇠의 각인도 끝마쳤지만 그와 더불어 모든 가주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봉인을 해놨기 때문이다.

그러니 넷에게 갈 천년목 지팡이를 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남들 모르게 들어갈 방법이라면 불법적인 일을 해야한다는 뜻이죠."


그가 말하는 불법적인 일이란 전대 대현자의 천년목 지팡이를 훔치는 것이었다.


원래 역대 대현자의 천년목 지팡이는 대현자의 은퇴 후 그대로 성전 내 정원에 심긴다.

하지만 전대 대현자의 천년목 지팡이는 달랐다.

그녀는 범죄자 신분으로 감옥에 갇혀있으며 그녀의 지팡이는 현재 집행처에서 보관중이었다.


물론 집행처 내에서도 나름대로 천년목 지팡이를 지키기 위해 여러 마법을 써놨겠지만 가주들의 봉인 열두 개를 뚫느니 이쪽이 훨씬 뚫기가 쉬웠다.


이날 그는 집행처에서 아무도 모르게 천년목 지팡이를 가져와 천년서고에서 고대 마법이 적힌 문헌을 옮겨 적어왔다.


늦은 밤.

치료소 특실에 홀로 깨어있던 넷은 그가 가지고 온 종이를 받아들었다.


"강해지시고 싶으신 거죠?"

"네."

"모두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네. 누구도 잃지 않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어요."


넷에게 문헌을 건넨 호위군 대장은 창문을 나서며 말했다.


"대현자님께서 노력하신다면 하실 수 있을 겁니다."


***


대현자의 부름으로 현장으로 공간 이동된 호위군 대장은 먼저 상황을 살폈다.


넷의 상태는 좋은 말로도 멀쩡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몸에는 자잘한 생채기가 나있었고 입고 있는 옷은 너덜너덜 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디 심각한 상처를 입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누군가로부터 공격당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예비 대현자의 억지라고 한다면 조언을 하든 말리려 했겠지만 이 정도라면 호위군 대장이 명령을 받아들이기에 명분이 차고도 넘쳤다.


궁금한 게 있다면 떼르 출신의 아이가 있는데 굳이 왜 직접 저를 불렀냐는 정도였다.

남들 몰래 배운 공간 이동 아니던가.


"저를 해하려한 습격자들 모두. 제 앞에 데려 오세요."


그녀의 명을 받은 그는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가 갔다.

듀시아가 넷으로부터 누군가를 막고 있었다.

복장이 영 수상쩍은 것이 넷을 공격한 습격자들 중 한 명인 모양인데 아무래도 그를 처리하는 데에 의견 차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호위군 대장에게 있어서 누구를 따를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그는 듀시아를 향해 말했다.


"그 자를 받아가도록 하겠다."


그러나 듀시아는 대장이 아닌 넷에게 묻고 있었다.


"본보기로 삼는다는 말은 이 사람을 죽일 생각이지?"

"응."


넷의 답에 듀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그 명령을 듣기는 힘들겠네요."


듀시아가 사리 분별이 안되는 사람도 아니고 여기 널부러져 있는 습격자들은 당장 처형에 처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실제로 습격자가 한 짓을 생각하면 그들이 처형을 당하는 것에 듀시아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그럼에도 습격자를 넘기지 않는 이유는 현재 넷이 일을 벌이는 방식 때문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사태를 키우기 위해 미연에 막을 수 있었던 일을 방치했고 확실한 증거를 만들기 위해 폭발하지 않은 마법석을 일부러 폭발시켰다.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있었는데도 상처를 입었으며 반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고 제압할 수 있었는데도 일부러 손을 과하게 썼다.


혹자는 습격자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도록 일을 처리한 넷의 방식이 영리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들의 악의에 그녀는 무언가를 잃고 있었다.


"그렇다면..."


호위군 대장이 손바닥으로 듀시아의 몸을 잡듯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에 맞춰 듀시아는 제 몸 주변으로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


꾸구국


몸을 짓누르는 압박은 이제껏 듀시아가 겪어온 누구의 마법보다 더 단단했다.

겨우 공기 덩어리가 누르는 것일 텐데 마치 무거운 쇳덩어리가 사방에서 그를 옥죄기라도 하듯 옴짝달싹할 수도 없었다.

반응할 시간도 없었다.

집광도 없이 쭉쭉 뽑아내 쓰는 힘이 이 정도라는 말이다.


그의 입장상 이대로 손 놓고 당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넷이 저지르는 일을 막아야 했다.


화륵


듀시아의 몸 주변으로 불길이 거칠게 솟아올랐다.

그를 붙잡고 있던 공기층이 느슨해지는 찰나였다.


"허튼 짓 하지 말아라."


어느새 그의 코앞까지 다가온 호위군 대장의 두꺼운 주먹이 그의 배에 꽂혔다.


"커헉!"


충격에 숨이 턱 막히며 몸이 기울었다.

호위군 대장이 훤히 노출된 듀시아의 목을 내리치자 그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한 호흡도 안되는 시간에 듀시아를 기절시킨 호위군 대장은 듀시아 옆에 쓰러져 있는 이를 끌고 넷 앞으로 갔다.


넷은 몸을 낮춰 습격자의 귀에 속삭이듯 물었다.


"누가 시킨 일이지?"

"하...하하. 괴물년. 나가 뒤져. 퉤."


습격자가 뱉은 핏덩이가 넷의 얼굴에 튀었다.


"대답할 거라고 생각 안했어. 어차피 너 말고도 알아낼 사람은 많으니까."


그 사이에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주변 마을에 있는 사람들부터 해서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어 보였다.

폭발로 자리를 피했던 트리아트의 사람들도 자리를 지키는 중이었다.

트리아트 사람 중에는 하람과 율트나, 넷의 부모님도 있었다.


그 밖에도 반혁명파라 불리는 자들도 있었으며 혁명단 단원들도 보였다.


넷은 주위를 빙 둘러보며 목소리를 키웠다.


"여기 이들은 트리아트 가문을 해하려 한 자들이다."


가죽 포대를 높이 띄운 그녀는 그 속에 있는 군용 마법석을 꺼내 보였다.


"이들은 군용 마법석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3월 마을을, 내 마을과 내 가족들을 흔적도 없이 없애려고 하였다."


그녀의 손에 한기가 퍼져나가며 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꺼운 얼음 몽둥이처럼 보이던 것이 그녀가 힘을 줄 때마다 얇게 압축되었다.

이윽고 완성된 것은 시리도록 푸른 얼음으로 된 칼이었다.


넷은 얼음의 칼을 들어 습격자의 목에 가져다 댔다.


"이번 일을 꾸민 자들은 잘 들어라. 지금 이 자리에서 경고한다. 죄 없는 이들을 해하려 한다면 나 역시 똑같이 대항할 것이다. 협박에는 협박으로. 칼에는 칼로."



숨을 크게 들이쉰 그녀가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죽음에는 죽음으로!"


촤아악


습격자의 목이 깔끔하게 떨어져 나가며 피를 뿜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사람의 목이 떨어지는 장면에 충격이라도 받았는지 침묵할 뿐이었다.


"이 목은 한동안 대광장에 걸어두세요. 나머지는 가둬두시고요. 나중에 심문할테니."


그녀의 명을 받은 호위군 대장과 대원은 나머지 아홉 명의 습격자들을 한데 모아 구속해뒀다.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룬 넷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트리아트 가문의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모두 괜찮으시죠?"


무리 가장 앞으로 나선 트리아트의 가주는 감격한 표정이었다.

지금껏 핍박을 당해도 저항다운 저항은 하지도 못했다.

그저 숨죽이고 몸을 웅크리고 연명하던 삶이었다.


그랬던 붉은 머리 가문이 이제는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옳지 못한 일을 옳지 못하다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부당한 일을 당한 사실에 분노를 표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겪은 갖은 수모와 치욕의 장면장면들이 가주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나갔다.


혀가 굳은 그녀는 감사하다는 말도 못하고 그저 눈물만 꺼이꺼이 흘릴 뿐이었다.

가주 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트리아트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가주와 같은 얼굴이었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에우랄의 엄마인 다날과 넷의 부모님 정도였다.

넷의 부모님은 넷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더니 집문에 다다르고 나서야 넷을 돌아봤다.

하람이 말했다.


"오늘 피곤하겠다. 얼른 들어가서 쉬자."

"... 엄마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해?"


자신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얼굴.

넷은 그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내가 사람을 죽여서? 저 사람들!"


왜 그런 얼굴인 거야?

왜 울 것 같은 얼굴인 거냐고.

왜 나를 보고 슬퍼하고 있는 거냐고.


"법대로 하면 처형당할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 어서 엄마 아빠도 내게 잘했다고 말해줘요.


"넷."


하지만 이런 넷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는 대신 하람은 뜬금없는 말을 할 뿐이었다.


"사람은 모두 실수를 해. 너도. 나도. 오늘 죽은 그 사람도."

"제가 오늘 실수를 저질렀다는 건가요?"

"모르지. 다만..."


세상을 만든 신이라는 권능자가 죄를 저지른 사람을 곧바로 처벌하지 않는 이유는 그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단다.


"..."


넷은 더 이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없었다.

밝은 빛과 함께 넷이 모습을 감췄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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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5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7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6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8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7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6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6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7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6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0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5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6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6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6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1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9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0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7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9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7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7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6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9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6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6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215 215.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24.01.29 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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