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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3.24 20:50
연재수 :
238 회
조회수 :
10,811
추천수 :
676
글자수 :
1,265,948

작성
22.12.19 12:03
조회
53
추천
2
글자
11쪽

133. 뭐야 뭐야 나 촉 되게 좋아

DUMMY

"안돼!!!"


비명과 함께 넷이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깬 그녀는 다급히 빛의 검을 만들어내며 주변을 살폈다.


"넷... 괜찮아?"


숨을 헐떡이는 넷에게 듀시아가 뛰어왔다.


"허억... 헉. 듀시아 너..."


그녀는 대뜸 듀시아를 끌어 안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갑자스러운 포옹, 옷감 넘어로 느껴지는 체온, 귓가로 들려오는 숨소리까지.

평소의 듀시아였다면 한꺼번에 쏟아지는 생생한 자극들에 정신이 아득해졌겠지만 지금 넷은 울먹거리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다른 것들은 그에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악몽이라도 꿨어?"


도닥도닥.

그는 품에 안긴 그녀의 등을 나릿하게 쓸어내렸다.


"응... 훌쩍. 지독한 악몽이었어."

"괜찮아. 그저 꿈일 뿐이야."

"... 응."


등을 천천히 쓸어내리는 그의 손길에 훌쩍거리던 소리가 줄었다.


"크흠."


서로 한참을 부둥켜안고 있으니 누군가 인기척을 냈다.

고개를 들어보니 호위군 대장, 일명 근육 아저씨였다.


"저... 대현자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시는데 훈련을 이어갈 수 있으신지요?"

"아..."


생각도 못하던 삼자의 등장에 넷과 듀시아는 어정쩡한 자세가 되어 서로 떨어졌다.

주변을 살피니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호위군 대장 말고도 한쪽에 호위군 대원들이 모여있었다.


그제야 넷은 악몽을 꾸기 전에 그녀가 뭘 하고 있던 것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훈련을 하고 있었지.'


칠번대 부대장 살인 사건이 여전히 수사 중에 있는 것 외에는 카밀로테는 한동안 특별한 사건, 사고가 없었다.

최후의 4인이 대장 자리를 걸고 벌이는 경연은 충분한 휴식을 위해 3주간의 준비 기간이 주어진 상황이었다.

그 사이 카밀로테는 마지막 달에 접어들었다.


여전히 반혁명파는 혁명단이 위험한 집단이라며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12월 3일, 속죄제를 멈춘 두 번째 3일에는 술에 취한 반혁명파 일당과 다른 마법사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

서로 치고박고 싸우는 통에 술집이 엉망이 되고 몇 사람이 이가 나갔다느니 뼈가 부러졌다느니 등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사고라고 하기에는 사소했다.


12월 3일에 일어났던 술집 내 싸움 정도가 그 사이 있었던 가장 큰 사고라고 할 만큼 카밀로테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예비 졸업생들은 각자 들어간 마을 업무에 적응해 이제는 한 사람 몫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른 학생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치르는 시험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그 사이 첫눈도 내렸다.

많은 죽음이 있었던 대지 위로 쏟아지는 눈은 상실의 아픔을 위로하고자 소복이 쌓여 대지를 포근히 감쌌다.

어린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며 꺄르르 웃는 소리가 눈과 함께 덩달아 카밀로테에 쌓였다.


이렇게 평화로운 날 중에 홀로 평화롭지 못한 사람이 바로 트리아트 넷이었다.

그녀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육체 단련과 근육 아저씨와의 무지막지한 대련을 매일같이 이어가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훈련이 이어졌다.

아니 어제보다 더 묵직한 훈련이 이어졌다.

쇠로 된 원판의 무게는 어제보다 오늘 더 늘었고 원판에 깔리지 않기위해 그녀는 안간힘을 써야했다.


다만 어제와 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어제까지는 이 훈련의 궁극적인 목적인 '임시 근육'에 대해 감도 잡지 못했다면 오늘은 좀 달랐다는 것이다.

어깨에 짊어진 쇳덩이를 받치고 서있는 두 다리는 분명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다리에 돌연 힘이 붙었다.


부족한 근육이 갑작스레 늘을 리는 없고 빠진 힘이 갑작스레 차오를 리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두 다리는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던 쇳덩이를 짊어지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가볍게 반복할 수 있었다.


- 그 감각입니다!


드물게 근육 아저씨가 흥분한 목소리였다.

넷 역시 지금 느끼는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다리에 드는 힘에 집중했다.


- 이게 바로! 임시 근육!


의식해서 만들려고 해도 만들지 못했던 임시 근육이 어느 순간 저 보란 듯이 떡하니 다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 어떻습니까? 인간의 한계를 한 단계 뛰어넘은 기분이? 쇠질이 좀 즐거워지지 않으셨습니까?

- ... 뭐. 그냥 그렇네요.


말은 무덤덤하게 했지만 사실은 즐거웠다.

무거운 것을 들어 근육을 찢는 행위가 갑자기 흥이 났다.

그녀는 그대로 임시 근육의 감을 익힌다고 이전보다 배는 더 훈련을 이어갔다.


- 하... 오늘 굉장히 훌륭하셨습니다.

- 감사합니다.

- 그러면 이제 조금 휴식하고 대련으로 넘어가도록 하시죠.


넷은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휴식을 취했고 어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에 지친 그녀는 그대로 잠에 들었던 것이다.

잠에 든 그녀는 그녀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모조리 죽는 악몽을 꾼 것이고.


넷은 훈련을 이어갈 수 있겠냐는 호위군 대장의 물음에 답했다.


"음... 괜찮습니다. 그냥 꿈이 너무 생생해서 놀라서 그런 겁니다."

"그렇습니까?"


일단 본인이 괜찮다고는 했지만 그녀가 깨어날 때의 반응은 굉장히 격렬했다.

호위군 대장은 훈련을 이어갈지 말지 고민이 되는 듯 했다.


'너무 놀라서 껴안았다고?'

'역시 두 분은 그렇고 그런 사이인가?'

'꺄아! 어떻게 해! 아주 애틋하셔.'

'달다. 달아서 이가 썩겠어.'


데클락 정상은 성전에 있는 사람이 전부라 굉장히 조용한 곳이다.

대원들은 저들끼리 은밀하게 쑥덕거린다고 하는 것 같지만 넷의 귀에는 다 들리고 있었다.

남녀 간의 사랑 얘기는 일반인이든 호위군 대원이든 가리지 않고 인기가 좋은 모양이었다.


대원들이 속닥거리는 말들에 얼굴을 붉혔던 넷은 오가는 주제가 점점 노골적으로 바뀌기 시작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호위군 대장은 수군대는 부하들을 째려보았다.

아무래도 요즘 너무 풀어줬다며 으르니 꺅꺅 거리던 대원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들은 뒤늦게 용서를 구하며 넷을 붙잡았지만 호위군 대장은 되려 서둘러 넷을 돌려보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걸로 하시죠."


넷은 대원들이 한 말에 부끄러워 내려가겠다고 하는 거겠지만 대장이 생각하기에도 지금 그녀는 쉬는 게 좋았다.

임시 근육을 만드는 데에 처음으로 성공해 몸에 피로가 더 쌓인 것도 있지만 정작 그가 걱정하는 쪽은 넷이 꾼 악몽이었다.


성전에서 지내는 호위군에게만 발견되는 현상이 있다.

그건 그들이 환청을 듣는다는 것이다.

꼭 성전에서 오래 지냈다고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오래 지낸 대원일수록 환청을 듣는 빈도수가 더 늘어나고 있었다.


환청을 듣는다는 현상 자체도 문제였지만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환청으로 그들이 듣는 말의 내용이었다.

맥락없이 튀어나오는 뜬금없는 말이 아니었다.

귀에 속삭이는 소리는 철저히 그들 내면의 욕망에 기초하고 있었다.

욕망에 기초한 소리는 본래 그들의 욕망보다 더 거대했으며 더 파괴적이었으며 뒤틀려 있었다.


'대현자를 죽여 그리고 네가 대현자가 되는 거야.'


어느 순간부터 그의 귀에 계속해서 들려왔던 소리.


전대 대현자가 파편이라는 사특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환청도 파편의 짓인가 싶었지만 파편이 죽은 이후로도 환청은 지속되고 있었다.


그는 근육이 풍성한 그의 육체만큼이나 정신 역시 굳건한 자였다.

귀에 들려오는 환청에 좀처럼 무너지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넷을 차기 대현자로 추대할 수 있었다.

카밀로테에 필요한 자는 자신이 아니라 넷임을 알았기에 한 일이었다.


'악몽이라...'


환청과 악몽은 다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넷이 꿨다는 악몽이 그가 겪고 있는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내일 뵙겠습니다. 자기 전에 신경써서 몸을 풀어주시는 것 잊지 마시고요."


넷과 듀시아가 빛무리에 안겨 사라지고 남은 자리.

대장은 넷이 떠난 자리에서 좀처럼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만약.

만약 그녀가 꾼 악몽이라는 것이 그가 듣는 환청과 같은 것이라면 악몽 속 그녀는 어떤 모습이었던 것일까?

최근 그녀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다.


그녀가 따라오기 벅찬 훈련량을 이를 악물고 따라오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강해지기 위해서.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쥐고 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넷이 대현자에 오르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결국 용을 막아내지 못하면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카밀로테 안에 살고 있는 그녀가 사랑하는 자들의 안위를 위함이지 카밀로테, 넓게는 한대륙을 생각하고 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만큼 그녀의 최대 관심사는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의 안전이었다.

이런 커다란 욕망이 뒤틀린다면 그녀가 어디까지 망가질 지 그는 선뜻 예측할 수 없었다.


"정신 수양도 겸행해야겠군."


고작 악몽이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 하니까.

어디까지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


데클락에서 내려온 넷이 한 일은 혁명단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그녀는 카밀로테 모든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도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온 동네를 발발거리며 돌아다닌 넷은 마지막으로 3월 마을로 향했다.


"넷."


트리아트 가문의 안전을 확인하러 가는 길.

줄곧 넷의 뒤를 묵묵히 따라다니던 듀시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가 꾼 악몽이라는 게 무슨 꿈이었길래 이러는 거야?"

"... 모두 죽었어."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마법이 나오지 않았어.

지키지 못했어.


넷이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혀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그 상태가 더 심각했다.


"넷. 너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네가 지켜줘야 할 정도로 약한 사람들이 아니야."

"... 응."


저거 말로만 알았다고 그랬지 전혀 납득한 눈치가 아니었다.


"하아. 이거 영 믿지를 못하는고만."

"아냐! 나도 알고는 있어... 근데 아직 파편이 살아있잖아."


그러더니 덧붙이기를.


"너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은 파편에 대항할 빛의 검 같은 강력한 마법이 없으니 내가 더 강해져야지."

"..."


듀시아는 그녀의 말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언제부터 파편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빛의 검으로 제한되었던 것인지.

불안함에 시야가 좁아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작은 용을 죽였다는 사실에 너무 큰 감동을 받은 것인지.

혹은 둘 다 인지.


명확히 해야할 부분은 명확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넷을 멈춰세우려 했지만 그가 말하기도 전에 넷은 돌연 걸음을 멈췄다.


"쉿."


3월 마을이 눈으로 보이는 거리.

그녀가 가리킨 곳은 옆마을인 1월 마을을 감싸고 있는 철책으로 생긴 그림자 쪽이었다.

그곳에는 누가 봐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몸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은밀히 속닥거리는 그들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3월 마을이었다.

카밀로테 작명표.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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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7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6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0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5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6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6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6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0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7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8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7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9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7 1 12쪽
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7 1 12쪽
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6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9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6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6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215 215.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24.01.29 6 1 11쪽
214 214. 눈을 떠라 눈을 떠라 24.01.25 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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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211. 진짜 나다운 게 뭔데 24.01.22 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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