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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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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25 00:49
연재수 :
2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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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77
추천수 :
682
글자수 :
1,298,011

작성
22.12.0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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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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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27. 참고로 뚝배기는 머리입니다

DUMMY

치안군이 정규군의 부대장을 꺾다.

누가 들으면 자극적인 향신료를 팍팍 뿌린 헛소문쯤으로 치부할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물론 현장에서 이 순간을 구경한 관중들은 마음 한 켠에 '이걸 이겼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싶은 의문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세슈람이 보여줬던 마법의 위력 하나만큼은 진짜였기에 사람들은 모두 위 사실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더군다나 단순히 부대장을 꺾은 게 아니다.

오늘 경연에서 우승한 사람은 최후의 4인에 속한다는 뜻이고 이 말은 네 사람 중에서 3등만 해도 한 부대의 부대장이 된다는 말과 다름 없었다.

즉, 일개 치안군의 반편이 마법사가 순식간에 정규군의 부대장이라는 자리까지 오르는 파격적인 승격을 이룰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자리가 자리인만큼 많은 사람들이 경연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치안군의 부대장인 떼르 유드바 역시 현장에 있었다.

그는 전 독사, 이제는 나름 얌전히 치안군 일을 하며 사는 부하들을 이끌고 경연을 구경하고 있었다.


"저거저거. 입꼬리 올라간 거 봐."


멀찍이 심판 역으로 앉아있는 대장들을 보며 그가 한소리 했다.

정확히 말하면 최후의 4인에 든 제 아들을 보며 미소를 숨기려 애쓰는 펠페림 디율 사번대 대장을 보며 하는 소리였다.


"어우. 저놈이 좋다고 웃는 게 왜 이렇게 꼴보기가 싫은지."


쩌억


심술을 부리기 무섭게 그의 등에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통증이 일었다.


"마음 좀 곱게 쓰라니까."


감히 누가 제 등짝을 후려치는가 싶어 살기를 내뿜던 그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기? 지금 등 좀 맞았다고 살기 뿜은 거야? 아직도 정신 못차렸지!"


쩌억


또 다시 날아드는 손바닥에 그의 등에 불이 났다.

눈물을 찔끔거리며 돌아본 곳에는 역시나 그의 아내인 떼르 이시아가 서 있었다.

한 손에는 하얀 과자가 소복이 쌓여있는 봉투를 들고 있었으며 팔로는 술병을 안고 있었다.


"일은?"


집행관인 떼르 가주가 감옥에 들어간 이후로 집행처는 집행관의 보좌인이었던 그녀가 이끌고 있었다.

아직 대낮인만큼 집행처 일이 끝났을 리도 없는데 어떻게 왔냐는 말이었다.


"밑에 애들에게 맡겨 놓고 왔지. 아무리 그래도 딸내미 경기인데 놓칠 수 없지."


유드바 옆에 있던 부하 한 놈을 밀어낸 그녀는 유드바 옆에 자리를 잡았다.


와삭


종이 봉투에 담긴 하얀 구름 같은 과자에서는 고소하고 짭쪼름한 향이 났다.


"당신. 옥수수 튀김은 또 어디서 난 거야?"

"오는 길에 팔던데?"


옥수수 튀김은 옥수수 낱알에 버터와 소금을 둘러 튀긴 과자다.

옥수수 낱알이 열기에 익으면 껍질이 터지면서 하얗게 부풀어 올라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폭신한 식감을 만들어 낸다.

카밀로테 음식은 아니고 프로토케에서 건너온 조리법인데 만들기도 쉽고 맛도 있어서 카밀로테에 조리법이 소개된 이후로는 이런 행사가 열리면 빠지지 않고 파는 과자 중 하나였다.


과자를 한 입 먹은 그녀는 곧 품에 안고 있던 병을 따서 크게 들이켰다.

맥주향이 솔솔 그의 코를 자극했다.


"과자에 맥주까지..."


이건 뭐 딸을 응원하는 것은 그냥 핑계고 사실은 먹고 마시러 온 것 아닐까?

물론 그는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곧이곧대로 입밖으로 내뱉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세슈람 대단하던데?"


아내는 부대까지 오면서 영사기로 하늘에 띄워진 세슈람의 대련 영상을 본 모양이었다.


"그 애가 이렇게까지 높이 올 것을 예상한 거야?"

"아니. 뭐."


사실 세슈람도 그렇고 딸도 그렇고 대장이 되면야 당연히 좋겠지만 그보다는 경험을 쌓으라는 의미가 더 컸다.

만에 하나, 아주 극적으로 둘 중 한 명 정도 최후에 4인에 오른다면 더할 나위 없고 말이다.


"꽤나 운이 많이 따라준다면 한 명 정도는 올라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게 세슈람이었던 거지."


그의 말에 아내가 얼굴을 굳히며 다시 물었다.


"우리 딸은 좀 어때? 운이 따라주는 거 같아?"

"글쎄..."


세슈람의 상대가 육번대 부대장으로 정해진 순간 싸움을 좋아하는 육번대 특성상 아주 아주 아주 희박한 확률로 '굉장히 운이 좋다면 이런 장면이 나올 수도 있겠다'하고 그림이 그려지긴 했다.


그런데 딸의 상대는 도통 모르겠다.

그가 원래 알고 있던 세유 율름 칠번대 부대장은 계획적이고 분석적이며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칠번대 부대장의 이런 성격은 전투에 있어서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우리 딸이 힘들었을 거야."


경험상 싸울 때 본능이나 직감보다 머리를 쓰는 사람은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절대적인 우세를 가진다.

문제는 딸 역시 본능보다는 머리를 쓰는 쪽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 다 머리를 쓴다면 결국 승부를 판가름 하는 것은 순수한 실력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뒤이어 나올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칠번대 부대장이 보여준 모습은 내가 알던 모습과 좀 달라."


냉철한 판단력과 상대방의 약점을 들쑤시는 철저함, 사소한 습관까지 잡아내는 날카로운 눈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힘으로 찍어 누르는 싸움.


거기에 그는 죽은 칠번대 대장을 상징하는 바위 거인 마법에 상당히 집착하고 있었다.

만약 이번 전투에서도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 딸에게도 승산이 있을 것이다.

그것도 꽤 높은 확률로 말이다.


"걸리는 게 있다면 그 애가 하고 있는 눈이지."

"눈이 어때서?"


마침 3조의 대련이 시작되었는지 무대 위로 딜람과 칠번대 부대장이 등장했다.

무대 위에 오른 칠번대 부대장의 눈을 본 아내는 남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금방 알아챘다.

두 사람 모두 그런 눈에 익숙했다.


"외할아버지의 눈이네."


아내의 외할아버지, 즉 떼르 가주의 눈이 꼭 저랬으며.


"당신이 파편에 붙잡힌 이후 내가 하고 있던 눈이기도 하고."


유드바 자신이 하던 눈이기도 했다.


궁지에 몰린 사람의 눈.

그럼에도 손 내밀 곳 하나 없는 사람의 눈.

어쩔 수 없이 제 고결함을 팔아 넘기고 만 사람의 눈.


그래.

그건 영혼이 좀먹힌 사람의 눈이었다.


"이거... 계속 해도 되는 거 맞아?"

"일단은 지켜보자고. 여차하면 내가 가서 막을테니."

"그래도..."


아내는 불안한지 유드바의 손을 찾았다.

그 역시 아내의 손을 꼭 붙들며 딸을 지켜보았다.

부디 딸에게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



쿠궁

쿠구구궁


마지막 바위 거인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거인을 이루던 바위가 쪼개져 마지막 한 조각까지 남김 없이 떨어져내리는 동시에 세유 율름, 칠번대 부대장 역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허억... 허억..."


쓰러진 부대장 앞에서 딜람이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서있었다.


"승자... 떼르 딜람!"


모두의 예측을 벗어나 또 다시 부대장 패배했으며 그 결과 3조의 우승자는 떼르 딜람이 되었다.


대련을 쭉 지켜본 유드바와 그의 아내 이시아는 그제야 긴장했던 몸을 늘어뜨리며 의자에 기대었다.

먼저 아내가 말했다.


"다행이네. 별일 없어서 말이야."

"그러게... 단순한 기우는 아니었지만 말이야."

"응."

"칠번대 부대장 저 친구는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겠어."


딸이 상대할 사람의 눈이 평범한 눈이 아니었기에 걱정이 많았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딸은 생채기 하나 없이 우승을 하였다.

다만 대련 중간에 칠번대 부대장이 보인 모습은 그가 정상이 아님을 보여줬다.


대련 시작 후, 칠번대 부대장은 여태 그래왔듯이 계속 바위 거인만을 만들어 딜람을 공격했다.

특화 마법도 아니면서 그렇게 고집스럽게 재현하니 바위 거인의 완성도는 꽤나 높아져 있었다.

겨우 이틀도 안되는 시간동안 나쁘지 않은 수준에서 꽤나 능숙한 수준으로 바뀌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바위 거인은 더 단단했고 더 빨랐다.


본래의 딜람의 위력으로는 바위 거인을 뚫지 못했겠지만 그녀에게는 위력을 끌어올릴 방법이 있었고 대련을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성벽을 축소시켜 본인 몸에 둘렀다.


물 마법으로 바위 거인을 공격하고 바위 거인을 파고든 물을 얼린다.

이 단순한 방식으로 딜람은 바위 거인이 만들어지는 족족 조각낼 수 있었다.

다만 칠번대 부대장 역시 그 실력이 실력인지라 바위 거인을 무너뜨리자마자 그를 공격하려고 해도 그전에 그가 다시 빠르게 거인을 만들어내는 바람에 도무지 공격할 틈이 없었다.


그대로 소모전으로 이어지는 듯했지만 전세는 딜람의 한 마디에 확 뒤집혔다.


- 도대체 죽은 칠번대 대장님의 마법에는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거예요? 더 좋은 다른 마법들. 많잖아요?


칠번대 부대장이 바위 거인 마법에 집착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기에 도발을 하겠다고 던진 말이었다.

그리고 이 말은 제대로 먹혀들어 칠번대 부대장이 이성을 잃고 날뛰게 만들었다.


- 닥쳐라! 비겁한 혁명단 놈들아!


원래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지만 부대장의 바위 거인 정도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던진 수였다.


바위 거인의 움직임이 거칠어졌으며 그만큼 행동이 커졌다.

좀처럼 빈틈을 찾을 수 없던 딜람은 이제껏 한 것처럼 바위 거인을 부수는 대신 몸에 둘렀던 성벽을 털어내고 거인 안으로 파고 들었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에 바위 거인은 이도저도 못하게 된 상태.

갑작스레 바뀐 공격에 칠번대 부대장은 눈에 띄게 당황을 하였고 그가 보인 찰나의 틈은 작정하고 파고든 딜람에게 승리를 안겨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몸을 가볍게 만든다고 몸에 붙여놨던 성벽을 떼어냈던 그녀였지만 손에는 여전히 작은 성벽 한 장이 들려있었다.

그녀는 성벽을 들어 그대로 부대장의 머리를 내리쳤다.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부대장은 기절하였고 그걸로 끝이었다.


무대 위에서 관중이 보내는 함성소리를 만끽하던 딜람은 문득 부대장이 열에 받쳐 내질렀던 말이 떠올랐다.


'비겁한 혁명단 놈들이랬지?'


어쩐지 자신을 보는 그의 눈에 적개심이 가득하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 역시 작은 용 사건에서 혁명단에 쌓인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자결한 칠번대 대장의 아들 처럼 말이다.


"싸하네 진짜."


이 사람 졌다고 나한테 무슨 짓 하는 거 아니야?


찝찝함과 함께 무대에서 내려가니 넷과 듀시아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 호위군이 있는 것을 보니 일부러 떼어놓고 온 모양이었다.

딜람을 보자 넷이 심각한 얼굴로 먼저 입을 열었다.


"들었어."

"어? 뭐를?"

"칠번대 부대장, 세유 율름이 하는 말 들었다고."


당연히 들었겠지.

온 동네 사람들 보라고 영상까지 띄웠는데.


"너~ 내가 걱정이 되어서 온 거구나?"


친구의 마음씀씀이에 딜람은 마음 한 켠에 남아있던 찝찝한 감정마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딜람은 고마운 마음에 넷을 품에 쏙 안으며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부대장님 마음을 아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


친구의 품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에 딜람은 벌어질지 확실하지도 않은 걱정 같은 것은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 안돼."

"응? 뭐라고?"


얌전히 품에 안겨있던 넷은 품에서 조심스레 벗어나더니 딜람의 얼굴을 붙들고 다시 말했다.


"그렇게 어설프게 대처하면 안 된다고."


단호함이 깃든 넷의 얼굴은 그다지 따뜻하지 않았다.

카밀로테 작명표.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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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242. 달갑지 않은 재회 24.04.15 7 1 12쪽
241 241. 으악 24.04.13 8 1 11쪽
240 240. 도망쳐 24.04.08 6 1 12쪽
239 239.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돼 24.04.03 9 1 13쪽
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7 1 13쪽
237 237. 자연도태 24.03.21 7 1 12쪽
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6 1 12쪽
235 235. 가면을 벗고 정체를 24.03.18 8 1 12쪽
234 234. 눈치라고는 없는 사람 24.03.14 7 1 13쪽
233 233. 선택 24.03.11 10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6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7 1 13쪽
230 230. 듣고 씹기 안 듣고 씹기 24.03.06 7 1 12쪽
229 229. 재능 24.03.04 7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1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10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1 1 12쪽
225 225. 더 뜯으면 안 돼 24.02.27 6 1 12쪽
224 224.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24.02.22 8 1 12쪽
223 223. 칠인의 위기 탈출 24.02.20 10 1 14쪽
222 222. 기억 넷 24.02.19 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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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220. 손을 뻗는 이유 24.02.06 7 1 11쪽
219 219.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 24.02.05 9 1 13쪽
218 218. 양치기 노인 24.02.01 6 1 10쪽
217 217.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야옹 24.01.31 7 1 11쪽
216 216. 예기치 못한 상실 24.01.30 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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