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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15 23:58
연재수 :
242 회
조회수 :
10,927
추천수 :
680
글자수 :
1,287,640

작성
22.11.28 11:59
조회
50
추천
2
글자
11쪽

122. 예쁜 모습만 보이고 싶은 게

DUMMY

떼르 율의 장례식은 간소하게 치러졌다.

이미 한 번 대규모 장례가 있기도 했으며 카밀로테는 진작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노인 한 명이 죽은 것에 큰 힘을 쏟을 여력도 시간도 없었다.

그것이 전 대현자라고 해도 말이다.

지금 카밀로테는 준비하고 나아갈 때였지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멈춰있을 때가 아니었다.


대장을 뽑기 위한 경연은 예정대로 진행되었으며 그의 죽음을 옆에서 지켰던 오르디나 이레는 장례식에 참석하는 대신 경연에 나와 후보들을 살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담담하게 일정을 소화하는 이레가 이센은 몹시도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계속 비틀거릴 거면 얼른 다리 치료를 받던가. 어쩌자고 세슈람 그 핏덩이에게 기회를 넘겨서는."


한 쪽 다리가 없어도 곧잘 몸을 놀리던 그녀가 오랜 벗의 죽음 이후로는 심심하면 휘청이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이센이 일부러 그녀의 신경을 긁을 말을 툭툭 던져보았지만 그의 뒤통수는 어떠한 타격 없이 멀쩡했다.

날아 들어도 수십 차례는 날아들었을 이레의 손바닥이 잠잠한 것이 그녀가 현재 위태롭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 그렇게 신경이 쓰였으면 장례식이라도 다녀오지 그랬어요. 그. 그날. 한참이나 울었잖아."


살다보니 네가 내 눈치를 보는 날이 온다면서 이레가 쓰게 웃었다.

어떻게 봉안당에라도 다녀올 것이냐고 이센이 묻자 이레는 훑고 있던 종이 뭉치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그 사람은 진작 죽은 사람이었다."


말은 매정했고 손가락의 떨림은 애틋했다.


"파편이 그에게서 빠져나와 새로운 대현자에게로 들어간 시점에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어. 그걸 알고 있었음에도... 난."


그녀는 놓지 못한 미련으로 내린 어리석은 결정을 후회했다.

하지만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녀는 똑같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터였다.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있던 것은 나의 미련때문이었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그녀의 미련 때문에 율은 지금까지 살았던 것이다.

그녀가 품은 미련이 율의 몸에 감겨있는 검은 실가닥들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파편이 새로운 대현자의 몸으로 거처를 옮기기 위해 율의 몸에서 빠져나가면서 해놨던 일종의 장난질이었다.


이레의 미련을 동력삼아 그의 몸을 붙들고 있는 실가닥들이 움직이게 하는 것.

죽은 육체가 어설프게 살아나는 것이다.


왜?

파편이 왜 이런 짓을 벌였는가?

답은 간단하다.

헛된 희망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인간을 만들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잡아먹을 인간을 더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다만 파편의 의도와 벗어나는 부분이 있다면 이레는 파편의 속셈을 알고도 이 형편없는 연극에 어울려 줬다는 것이고 끝끝내 헛된 희망이 주는 좌절감에 몸을 맡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율이 죽었다는 사실.

너무나 비참한 방식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이레는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거기에 그녀가 뭘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 역시 인정했다.


"진작 끊어냈어야 할 과거였다."


그럼에도 정작 그와 함께 맥주를 마실 때면 그의 몸을 옭아맨 실가닥들을 끊어내기 위해 그녀가 들었던 날붙이들이 뭉툭하게 부푸는 것이다.

얇디 얇은 가닥들을 도무지 끊어낼 수 없을 정도로 뭉툭하게.


이레의 표정 속 무수한 감정 변화를 눈치 챈 이센이 말했다.


"그러면 그냥 마지막까지 망설이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몽글몽글한 꿈 좀 꾼다고 누가 뭐라고 한다고..."

"그럴 수는 없지..."


병실 창 밖으로 이레가 그럴 수 없는 이유가 마침 훈련을 다 마치고 치료소로 돌아오고 있었다.

트리아트 넷.

어린 나이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나아가는 마법사.


"넷이 저렇게 고생하는데... 기만의 힘을 조금이라도 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해야하지 않겠느냐."


기만.

가장 오래된 파편.

파편들의 어미.


넷이 작은 용을 벴다고 기만이 죽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직도 '그' 작전은 유효했다.


"그거 좀 줄인다고 넷이 져야 할 무게가 가벼워질 리가 없잖아요?"


기만이 사방에 퍼트려 놓은 힘을 없앤다고 기만의 힘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레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선택을 내린 것은 아마도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아직 어린 넷이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은 산전수전 다 겪은 이레보고 걸으라고 해도 어려운 것이었다.


***


떼르 율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이뤄진 대장 선발 경연.

세슈람과 딜람은 모두 각자 경기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딜람은 옆 무대에서 치료사들에게 기절한 채로 실려나가는 세슈람을 보고 있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세슈람은 이겼다.

그의 상대는 꽤나 젊은 축에 속하는 조장이었다.


미리 마법의 종류를 듣고 약점을 찌른다는 전술은 상대 조장의 강한 위력에 곧바로 쓸모를 잃었고 이후 부터는 순수한 힘 겨루기였다.

다룰 수 있는 마법의 종류가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세슈람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같아 보였지만 세슈람의 식물 마법은 그것이 아무리 조장이라고 하더라도 특화 마법이 아니라면 막기 어려울 정도로 그 위력이나 재현 속도나 제어 능력이 뛰어났다.


거기에 더해 상대 조장의 특화 마법이 식물 마법에 약하다는 물이라는 점도 한 몫해 두 사람의 전투는 의외로 엇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힘이 비슷하다면 남은 것은 누가 더 기운이 넘치는가였고 이 부분에 대해서 세슈람을 따라올 마법사는 드물었다.


세슈람에게 있었던 치명적인 약점인 지구력에 관해서는 뵈나 율레 치료사가 해결해 준 상태였다.

원래 뵈나 율레 마법의 다음 대상으로 예정되었던 사람은 오르디나 이레였다.

그러나 세슈람이 경연 참가를 밝히자 이레는 세슈람에게 치료 차례를 넘겼고 치료를 받은 이후 세슈람에게 있어 힘이 남아 돌아도 마법을 쓰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일은 없게 되었다.


그로 인해 소모전에서 세슈람이 우위를 점하는 듯 했지만 힘을 효율적으로 쓰는 요령은 조장이 한 수 위였기에 세슈람은 그가 가진 힘이 동나기 전에 겨우겨우 조장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승리 직후 세슈람은 마력 탈진이 와서 실려나가야 했지만 어쨌든 승리는 승리였다.


세슈람이 2조에서 우승하기까지 이제 단 1승만이 남은 상태.

다음 상대가 부대장인 것을 생각하면 우승은 힘들어보이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다만 대견한 것은 대견한 것이고 걱정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에 딜람은 실려나가는 세슈람을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러다 몸 상하면 어쩌려고 무리를 해... 바보.'


이런저런 걱정을 하고 있으니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남자친구?"


순식간에 얼굴을 붉힌 딜람이 방금 말을 건넨 사람이 누구인지 살폈다.

방긋 웃고있는 여자는 딜람이 싸워야할 대련 상대였다.

그녀 역시 조장이었는데 세슈람과 싸웠던 젊은 조장보다 더 어렸다.


딜람보다 고작 열 살 더 많은 20대 중반의 조장.


대장에 지원한 사람 중에 나이가 지긋한 사람은 의외로 적었다.

사람의 육체란 것이 한창 때를 지나면 약해지기 마련이다.

육체가 약해지기 전에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마법 실력 역시 같이 줄었다.

그나마 아홉을 제외한 하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정규군의 마법사들은 겨우 현상 유지를 할 뿐이었고 말이다.


즉, 나이가 지긋한데도 아직 조장을 맡고 있는 마법사들은 한계가 거기까지 라는 뜻이었다.

마법 실력이 줄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대장이 될 정도로 실력이 성장할 가능성 역시 없는 자들.

그렇기에 이들은 대부분 제 자리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젊은 나이에 조장에 오르거나 그에 준하는 위치에 오른 마법사들은 달랐다.


아직까지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다는 뜻은 한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가졌다는 의미였고 이 가능성 하나만으로 젊은 마법사들은 의욕을 불태우기에 충분했다.


딜람에게 말을 건 젊은 조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장의 꿈을 안고 경연에 참가한 사람.


"음... 혹시 내가 실수 한 건가?"


눈이 마주치고도 딜람이 말이 없자 상대 조장의 말투가 조심스러워졌다.

한편 속으로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을 하던 딜람은 뻔뻔해지기로 했다.

이전에 엉겨붙었던 펠페림 디트나도 그렇고 갈수록 세슈람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아. 아뇨. 그... 크흠. 흠. 남자인... 남자 친구 맞아요."

"오..."


일단 거짓말은 아니었다.


"대단하네. 연애도 하고. 잘 어울려."


적이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방긋방긋 웃는 것이 사람도 좋아보였고 무엇보다 자신과 세슈람 사이가 잘 어울린다고 하는 것을 보니 기본적으로 보는 눈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딜람의 이런 생각이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너한테 질 거 같지는 않네."

"... 예?"


여전히 웃는 낯으로 조장이 말을 이었다.


"네가 연애한다고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난 훈련을 했으니까 말이야."


억울해서라도 지면 안 되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갑작스레 말로 때리는 적을 보며 딜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슈람이 2조에서 우승해야 그녀와 함께 최후의 4인에 들텐데 따위의 걱정은 일단 그녀가 3조에서 우승을 하고나서 할 걱정이었다.


정신을 차린 딜람은 곧바로 반격을 가했다.


"조장님은 그렇게 야무진 성격은 못 되시나 봐요. 둘 다 완벽하게 해내면 그만인 문제를 굳이 하나를 포기하시는 것을 보면 말이에요."

"... 뭐. 뭐라고?"

"아. 혹시 기분 나쁘셨어요? 죄송해요. 근데 전 진짜 이해가 안 가서요..."


천연덕스럽게 구는 딜람에 상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침 두 사람의 차례를 알리는 신호가 왔다.

신호를 받은 상대 조장은 금방이라도 딜람을 잡아먹을 것 같던 표정을 지우더니 숨을 고르게 쉬었다.


'쓰읍... 그래도 조장이라고 이런 도발은 안 먹히나.'


금방 침착함을 되찾은 상대 조장이 먼저 무대에 올라섰다.

딜람 역시 그녀의 뒤를 따라 무대에 올랐다.


멀찍이 떨어져 서로 마주보며 자리를 잡으니 영사기가 움직이며 두 사람의 모습을 하늘에 띄웠다.

이 영상은 실시간으로 주위 관객들에게 중계될 것이며 이후 술집 같은 곳에 팔려 사람들의 안줏거리가 될 것이었다.

요컨대 지면 꼴사나운 모습이 몇 번이고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릴 것이라는 뜻이었다.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그런 흑역사를 남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사랑은 나를 강하게 한다.'


터무니 없는 이유를 들며 의지를 다지는 딜람이었다.

카밀로테 작명표.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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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238. 미칠듯 사랑했던 기억이 24.03.24 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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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236. 나 때는 말이야 24.03.19 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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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233. 선택 24.03.11 10 1 13쪽
232 232.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어 24.03.10 5 1 12쪽
231 231. 강해지고 싶다고 말해 24.03.07 6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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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229. 재능 24.03.04 6 1 12쪽
228 228. 너 엄청 못하잖아 24.03.01 11 1 12쪽
227 227. 펜던트 속 그림 속의 그 24.02.29 9 1 12쪽
226 226. 자기애가 과한 사람 24.02.28 1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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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221. 바보 멍청이 똥꼬 24.02.08 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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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214. 눈을 떠라 눈을 떠라 24.01.25 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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