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는 생에 처음으로 커다란 무대에 섰다.
흘깃 옆을 바라보자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가 그에게 미소를 지어 주는 모습이 보였다. 이 백전노장 베테랑들은 곧 위대한 아티스트로 다시 태어날 주인공의 긴장을 풀어 주려는 모양이었다.
‘하아...’
그는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었다.
10년이 넘는 무명 생활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천 원짜리 컵라면으로 식사를 때우던 나날들, 고시원 월세를 낼 돈이 없어 찜질방과 여인숙을 전전하던 시절.
그는 고시원 월세를 밀린 적은 있어도 작업실 월세를 밀린 적은 없었다. 자고 먹고 씻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인생을 음악에, 노래에 바쳤다.
그 대가로 그는 결국 이곳 카네기 홀에 섰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카네기 홀에서 공연할 그에겐 앞으로 거대한 부와 드높은 명예가 주어질 터였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어. 실수 없이 이 무대를 끝낼 수 있다.’
첫 소절로 저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말리라. 그런 각오가 그에겐 있었다.
아랍의 왕자이건 범국가적 기업의 총수이건 내 노래를 다시 찾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그 마치 신의 축복처럼 강인한 힘이 몸에 깃들자 그는 앞이 똑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적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빨리 노래하고 싶어서 몸이 달아오를 정도였다.
[공연을 찾아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저 먼 동양 한국에서부터 몰아친 폭풍, 비운의 천재, 악마의 재능을 지닌 아티스트의 공연이 이제 막 시작됩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대를 비추던 조명 몇 개가 꺼지자 그는 노래를 시작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연주자들이 그가 마이크를 잡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서서 손을 뻗었다. 몇만 달러가 넘는 마이크가 손에 잡히자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짜릿한 전율이 몸을 달렸다.
‘그래, 바로 이 감각이야.’
그는 한동안 그 짜릿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잠깐 기다려 달라고 연주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려 했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어?’
곧 그의 몸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장내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모였다. 그 수없이 많은 시선 중에서 그의 몸에 뭔가 생긴 거라 여긴 이는 오직 음향 감독 뿐이었다.
“당장 공연을 멈추시오! 이건 감전사고야!”
곧 누군가가 그의 손에 잡힌 마이크를 걷어찼다. 그는 의식이 점점 멀어지는 걸 느끼며 동시에 저 멀리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
이 감전 사고의 피해자는 결국 사망했고 본래라면 위대한 아티스트가 되었을 청년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세계가 잠깐 들썩였으나 아주 잠깐뿐이었다.
지금껏 자기 이름을 내건 공연을 한 적도 없고, 역사에 남을 명반을 낸 적도 없는 그는 시간이 흐르자 비운의 아티스트에서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사망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곧 다른 세상에 다시 태어나리라는 걸 아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그 자신을 포함해서.
-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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