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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월 님의 서재입니다.

1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건보
작품등록일 :
2020.11.24 15:24
최근연재일 :
2022.09.20 19:45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2,465
추천수 :
8
글자수 :
451,055

작성
21.02.04 20:00
조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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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3화

DUMMY

73.


유리는 움직이지도 않고 그들의 비명과 죽어가는 모습을 귀와 눈에 담았다.

끔찍한 모습임에도 그들의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무심하기만 했다.


“으아아아아!”


그들의 몸에서 흐르는 피가 벽을 따라 바닥에 흘러 유리의 발치에 닿았다.


“하···.”


끔찍한 비명과 함께 그의 입에서 나온 깊은 한숨 소리가 넓은 공간을 메웠다.


“어때? 마음이 좀 편해졌어?”

“죽은 딸의 모습을 마주했을 때부터 편해지고 말고 할 마음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야.”

“그거 안타까운 얘기네. 역시 많이 죽어서 그런가?”

“그치.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마음이나 감정 같은 것들은 사라져 있더라고. 그래서 네가 안타깝다고 해도 별생각이 안 들어. 그냥 그런 가보다 할 뿐이지.”


유리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여자를 바라봤다.


“그보다 뭐 하려고 여기 왔어. 어차피 루테프를 죽이러 갈 건데 그놈 옆에서 기다리지 그래.”

“네가 오나 내가 가나 달라지는 건 없잖아. 그건 그렇고 방금 그 말은 간과할 수가 없네.”

“그럼 검이나 뽑아. 상대해줄 테니까. 하지만 만나자마자 그럴 생각으로 온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유리의 입에서 들려오는 답은 없었다.

둘 사이에는 그저 침묵만이 자리 잡았다.


“기사단에 있을 때보다 입도 험해지고 손속도 많이 잔인해졌네. 소리를 지르지 않았으면 사람이 아니라 새빨간 고깃덩이를 매달아 논 건 줄로만 알겠어. 예전 동료들이 보면 많이 놀라겠는걸.”


침묵을 깨고 여자가 유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벽에 매달린 이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원래 이런 놈이었어. 그저 네가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거일 뿐이야. 게다가 극소수긴 하지만 알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어.”

“그 극소수의 인물 중에 나는 없단 거네. 그건 좀 섭섭한데.”

“그럼 이 일을 안 했으면 됐어. 그랬다면 나는 이런 모습을 보일 일도 없었고 너도 나에게 섭섭해하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유리도 그녀에게서 답이 오지 않아 입을 닫고 가만히 있었다.


“안나, 널 찾으러 온 거 같은데.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안나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 이건 내 독단으로 행동한 거야. 그래도 저들만 모르지 폐하는 알고 계시니 상관없어.”

“그래? 멋대로 움직이는 상관 때문에 부하들만 고생이군.”

“그 말이 네 입에서 나온다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당장 고생하고 있는 라이라만 봐도.”

“그 점은 네가 상기시켜 주지 않아도 알고 있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비명이 사그라든 공간 안에 이번에는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리는 고개를 돌려 달려오고 있는 둘의 모습을 바라봤다.


“두 사람. 항상 너를 따라다니던 이들이지?”

“맞아.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네?”

“네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곁에서 도와주니까. 익기 싫어도 얼굴이 눈에 익네.”


그리고 다시 안나를 바라봤다.


“기사단에 너랑 저들 말고 또 숨어있는 이들이 있어?”

“궁금해?”

“그렇게까지 궁금한 건 아니야. 어차피 몇 시간 뒤면 모든 게 끝날 텐데. 중요한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안나 곁에 도착한 그들은 검을 뽑으며 귓속말을 했다.


“안나님, 어째서 폐하 곁에 계시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게 부하인 너희들이 알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차피 폐하께서는 알고 계시고 말이야.”

“그래도 중요한 시국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자 곁에 있는 건···. 단장님을 죽인 이이지 않습니까.”

“한두 번 얼굴을 마주친 것도 아니고 상관의 동료이자 친구였는데. 저자라니 너무한 거 아니야?”


그들의 대화에 유리가 끼어들었다.


“폐하를 섬기지도 않는 데다 우리의 상관도 아닌데 너를 존대할 이유가 어디 있지?”

“뭐,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리고 어디서 우리가 대화하는 사이에 끼고 있나. 폐하의 넓은 아량으로 너를 죽이지 않고 있는 것인데. 닥치고 그분께서 부활하시는 걸 얌전히 기다리고 나 있어라.”

“너희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유리는 검을 뽑으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진정시켰던 살기도 거칠게 풍겼다.


“첫째는 나는 루테프에게 죽이지 말아달란 소리를 하지 않았어.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야 하는 게 죽이지 않는 게 아니라 죽이지 못하는 거잖아. 너희들의 실력이 한참 부족하니까 말이야.”


그의 검에 맴도는 푸른빛이 횃불과 함께 안을 밝혔다.

삽시간에 공간을 가득 메우는 그의 기운과 기세에 둘도 마찬가지로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러니 너희의 잘못을 섬기는 이에게 함부로 넘기면 안 되지. 그리고 둘째, 내가 너희의 대화에 낀 게 아니라 너희가 우리가 대화하는 와중에 낀 거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않겠어?”


천천히 그들 코앞으로 걸어가 발을 멈추고 눈을 마주쳤다.


“마지막 셋째, 내가 할 일이 없어서 여기서 안나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 같은데.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거니 모르거나 죽고 싶지 않은 거면 너희들이나 주둥이 다물고 얌전히 있어.”

“폐하의 위대함도 알지 못하는 하찮은 게 입만 살아있구나. 죽이고 싶으면 죽여봐. 대신 네놈도 몸이 성치는 않을 거니까. 목적을 이루기도 전에 죽으면 어떡하려고 그렇게 나불대는 거지?”

“논리적으로 반박을 하지 못하니 이상한 소리를 다 지껄이고 있네.”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니라 네놈이 딸이 죽은 충격으로 머리가 이상해진 거 아닌가 모르겠는데?”

“그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유리는 다짜고짜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둘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리며 자세를 잡았다.


“너희들 그만두지 못해.”

“죄송합니다, 안나님. 저것이 함부로 지껄이는 얘기를 도저히 참고 듣고 있지를 못하겠습니다.”


대화가 다 끝나기도 전에 안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이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그는 검을 받아내기는 했으나 충격이 컸는지 신음을 흘렸다.

유리는 냉소를 지어 보였다.


“아까는 나를 잘도 죽일 수 있는 것처럼 얘기했잖아. 그런데 왜 공격 한 번 막은 거 가지고 벌써부터 힘들어하고 있어. 이제 시작인 건 너도 잘 알잖아.”


유리는 몸을 옆으로 날리며 다른 이의 공격을 피해냈다.

둘은 곧바로 유리에게 쇄도했다.

그들이 휘두르는 검 두 자루가 유리를 향해 이리저리 휘둘러졌으나 그는 무리 없이 흘리거나 쳐내며 틈틈이 반격하는 것으로 공방을 이어갔다.


“잘해봐. 머릿수로 너희가 이기는 데도 나한테 상처하나 입히지 못하고 있잖아.”


앞으로 뻗어 나오는 유리의 검에 표적이 된 한 명이 서둘러 거리를 벌렸다.

순간 생긴 빈틈을 이용해 나머지가 달려들며 빠르게 검을 뻗었다.

하지만 그에게 닿지는 않았다.

몸을 숙여 공격을 피하며 어깨로 그의 팔을 위로 쳐내고 비어버린 가슴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려쳤다.


“크헉!”


그는 피를 토해내며 바닥을 굴러 흙먼지를 뒤집어썼다.

유리는 힘들어하는 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둘 다 그만 포기하고 얌전히 죽지 그래? 한 놈은 온몸이 베여 피를 흘리고 다른 놈은 바닥에 엎어져 피를 토해내고 있고.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잖아.”


둘은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닥쳐라! 네까짓 게 뭘 안다고.”

“잘 알고 있지. 말만 잘할 뿐 실력은 하나도 없는 쓰레기들이잖아. 그 모습을 보면 누가 봐도 알 거 같은데?”


유리의 말에 둘은 미간을 찌푸리기만 할 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태도에 유리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니 이제 끝내자.”


그는 힘들어하는 둘을 향해 움직였다.

먼저 여전히 입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엎어져 있는 자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목이 떨어지며 목숨을 잃었다.


“무릎이라도 꿇으면 편하게 죽여줄 건데 어떻게 할래?”


유리는 검 끝을 남은 적을 향해 겨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겨우 그것 때문에 내가 너에게 무릎을 꿇을 거 같나?”


그의 대답에 유리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생각이 곧 바뀌게 될 거야.”


순식간에 그의 앞으로 쇄도한 유리는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어딜!”


하지만 상대가 맞받아치려 하는 것보다 유리가 더 빨랐다.

그는 어깨가 잘려나가며 쥐고 있던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유리는 발을 걸어 거리를 벌리려는 상대를 넘어뜨렸다.


“어딜 가려고.”


빠르게 검을 휘둘러 남은 팔과 함께 두 다리를 베어냈다.


“미치도록 아플 텐데 소리를 지르지 않는 점은 칭찬해 줄만 하네.”


유리는 땅에 떨어진 검을 줍고 뒷덜미를 잡은 다음 벽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이전처럼 복부에 검을 찔러넣으며 벽에 박아 공중에 매달았다.

고통 섞인 외침이 다시 안을 울렸다.


“그보다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 이것들이 다쳐도 별다른 감정은 들지는 않나 봐?”

“꼭 그런 감정이 들어야 해?”

“매정하네. 몇 년이나 같이 다닌 거 아니야?”

“몇 년이나 같이 다녔다고 해도 저들은 결국 할아버지의 부하지 내 부하는 아니라서 말이야.”

“그래서 방금처럼 네 말을 듣지를 않았군.”

“그런 셈이지. 그런데 뭐 좀 물어봐도 돼?”


안나가 자신을 바라보자 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맘대로.”

“대답하기는 할 거야?”

“들어보고. 질문이 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

“그래? 그럼 들어보고 대답해줘. 왜 나를 죽이지 않는 거야? 예전이면 모를까 지금은 간단히 날 죽일 수 있잖아? 오히려 그래서 죽이지 않는 건가.”

“그건 아니야.”

“그럼 왜?”


유리는 안나와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이어갔다.


“어젯밤인지 오늘 새벽인지는 모르겠는데 여관에서 만난 거 기억나?”

“그걸 어떻게 기억하지 못하겠어. 다 기억나지.”

“그때 나눴던 대화도 기억해?”

“대충은?”

“그 대화에서 너는 내 질문에 우리에게 보여준 말, 표정, 행동 전부 일단은 진심이라고 답했어.”

“기억난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구나. 잔뜩 흥분했어서 그런지 까맣게 잊고 있었네. 그런데 그게 왜?”

“그 말은 마리아에게 보여준 모든 것들이 다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그랬다는 거잖아. 그런 너를 죽이면 마리아를 슬퍼할 테니까 그러는 거지.”


안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감정이나 마음 같은 건 사라졌다기에 방금 말은 너무 감성적인 거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냥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들었다는 거니까. 그 얘기를 꺼내면서도 솔직히 어떤 마음도 들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냥 생각난 대로 내뱉었다?”

“그렇지.”

“그럼 다음 질문. 여기서 내가 너랑 목숨을 걸고 싸우기 위해 검을 뽑는다면 어떻게 할 거야.”


안나가 자신의 손을 검으로 가져가자 유리도 손을 검으로 가져갔다.


“행동을 봐서 알겠지만. 대답···, 들을래 어떻게 할래?”

“말해줘. 그래야 마음이 편해.”

“죽일 거야.”

“그렇구나. 딱히 변하는 건 없네.”


그녀는 검을 뽑아 오른손에 쥐었다.

유리도 마주 보며 검을 뽑아 들었다.


“이번에는 내 질문에도 대답해줘.”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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